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일상의 도(道)

일상의 도(道)




食不厭精 膾不厭細

사불염정 회불염세

色惡不食 臭惡不食 失飪不食 不時不食

색악불식 취악불식 실임불식 불시불식

割不正 不食 不得其醬 不食

할불정 불식 부득기장 불식

沽酒市脯 不食

고주시포 불식


밥은 정(精)한 것을 싫어하지 않으시며, 회(膾)는 가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않으셨다.

빛깔이 나쁜 것을 먹지 않으시고, 냄새가 나쁜 것을 먹지 않으셨으며, 요리가 잘못된 것을 먹지 않으시고, 때가 아닌 것을 먹지 않으셨다.

자른 것이 바르지 않으면 먹지 않으시고, 간장을 얻지 못하면 먹지 않으셨다.

시장에서 산 술과 포를 먹지 않으셨다. - 향당편 8장


글자풀이


관련주석


《논어(論語)》의 〈향당(鄕黨)〉편에서는 식사, 복식, 주거, 접대의 예(禮) 등을 세심하게 따지는 공자를 볼 수 있다. 공자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너무 까다롭다 싶을 정도다. 대표적인 것이 위에 열거한 공자의 식생활이다. 잘 도정한 쌀밥이나 얇게 썬 회가 아니면 먹지 않고, 음식의 색이나 냄새가 나빠지면 먹지 않고, 덜 익으면 먹지 않고, 제철에 맞지 않는 건 먹지 않고, 고기가 부위별로 제대로 잘리지 않으면 먹지 않고, 소스가 요리에 맞게 준비되지 않으면 먹지 않고, 시장에서 산 술과 고기는 먹지 않고……. 얼핏 보면, 성인(聖人)치고는(?) 입이 너무 짧은 것 같기도 하고, 격식만 중시하는 까다로운 사람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공자의 일상-의식주(衣食住)는 까탈스러운 개인의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소스가 준비되지 않거나 때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는 구절을 보자. 오규 소라이는 《예기(禮記)》의 〈내칙(內則)〉을 인용하여, 요리할 때는 각각의 계절에 맞게 간을 하고, 소스 역시 재료의 성질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사용됐다고 한다. 가령, 생선회에는 꼭 겨자를 같이 먹었는데, 혹시 모를 미생물이나 생선의 차가운 성질 때문에 탈이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쌀밥과 얇은 회가 아니면 먹지 않았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희에 따르면, 그것들을 먹은 것은 보신(保身)의 차원이지 먹는 즐거움에 취해서 그것들만을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먹어야 할 것을, 가장 알맞은 방법으로, 때에 맞게 먹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공자는 음식을 즐기기는 했으나 맛(감각)을 탐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 비결은 뭘까? 사실 답은 간단하다.(물론 실천은 어렵다.) 일상의 모든 부분에서 과(過)와 불급(不及)에 이르지 않고 중(中)을 지켰을 뿐이다.




삶 전반이 과(過)로 점철된 우리와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식생활의 경우, 지금 우리에겐 야식을 먹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졌다. 편의점, 배달 등 우린 언제든 손쉽게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다. 자정이 가까워지면 슬슬 공복감이 느껴지고, 무언가를 먹고 싶어진다. 사실 몸이 진짜 공복감을 느끼는 건 아니다. 음식과 관련된 영상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음식을 먹고 싶어진다. 또는 비디오를 보거나 게임을 하게 되면 먹을 것이 생각나기도 한다. 시각적 쾌감이 미각적 쾌감을 불러 일으키고, 이 쾌감이 습관화된 결과, 그 시간만 되면 몸이 저절로 음식을 원하는 악순환을 낳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잠깐 입과 배가 즐거워진 대가로 다음 날 일어났을 때 극도의 피로를 경험하게 된다. 입맛이 없어서 밥은 먹기 싫고, 위액이 올라와서 너무 쓰리다. 먹으면 이렇게 되리란 것을 알고 있음에도 또 다시 야식에 손을 대는 것은 그만큼 감각에 휘둘려 살고 있다는 얘기다.


공자가 음식을 먹을 때 지켰던 규칙은 개인의 취향 때문도 아니고 감각에 길들여진 습관 탓도 아니었다. 이는 몸에 대한 자연스러운 이해와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일상윤리에 기반한 것이었다. <향당>에 기록된 다른 예들도 마찬가지다. 업무를 할 때의 복장, 집에서 있을 때의 자세 등등은 모두 공자 자신의 구체적인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령, 평상시 입는 옷이 길었던 것은 따뜻함을 위해서이고, 오른소매를 짧게 한 것은 공무를 편하게 집행하기 위해서이다. 즉, 그가 행한 사소한 예절들은 모두 상황에 가장 적합한 것이었고, 무엇보다 실용적인 것이었다. 요컨대, 〈향당〉편에 보이는 공자의 예(禮)는 여러 사람들 및 사물과 관계맺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취해야 하는 적절함(中)이 구체화된 것이라고 하겠다. 이와 달리, 과연 지금의 우리에게 일상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취향’이라는 말로 자신의 감각적 쾌락과 무절제함을 합리화하고 있지 않은가. 개인의 취향을 좇을 뿐 자신의 조건 속에서 어떻게 일상을 다듬어나갈지에 대한 생각이, 즉 ‘일상의 윤리’가 우리에게는 부재하지 않은가.


흔히 유가의 철학을 인의예지(仁義禮智), 충(忠)·신(信) 등을 반복하는 고리타분하고 고원한 형이상학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향당〉에서 공자의 일거수일투족이 말해주는 것은 철학이 드러나는 자리가 구체적인 일상이라는 사실이다. 공자의 사소해 보이는 행동양식들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길(道)을 찾는 과정에서 도출된 구체적 ‘실천’들이다. 공자가 지킨 예는 어떤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 있다. 즉, 공자에게 예란 공자만의 독특한 삶의 양식이었던 것이다. 공자가 일상에서 가졌던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는 이로부터 기인한 것일 테다.


내게는 일상의 윤리라 할 만한 것이 있었는가?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태도를 멸시하면서도, 사실 나는 항상 감각적 쾌락에 휘둘리지 않았던가. '선비적' 삶을 동경하면서도, 그 삶이 비근한 일상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지 않았던가. 도(道)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일상의 말과 행동 속에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글 : 규창(고전비평공간 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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