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존 윈덤, 『트리피드의 날』 식물원에서 트리피드를 말하다

존 윈덤, 『트리피드의 날』

식물원에서 트리피드를 말하다



나의 부모님은 식물을 좋아하신다. 아주. 

집 앞 마실이건 가벼운 공원소풍이건 캐리어 챙겨든 장거리여행이건 간에, 두 분과 함께라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불시에 가르침이 치고 들어오고(“저기 저거, 뭔지 아니? 저건 우묵사스레피나무란다”), 느닷없는 퀴즈의 고비들을 숱하게 넘겨야하기 때문이다 (“자, 어제 저 나무 이름 가르쳐줬지? 맞춰봐.”). 그리고, 재작년 어느 날의 나처럼 이랬다가는 끝장이다.  

“오목이었나 볼록이었나. 아... 볼록사슬 어쩌구 칡나무?”

짠, 이제 우묵사스레피나무가 보일 때마다 놀림당하기 연간회원권을 획득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볼록, 아니 우묵사스레피 나무



사정이 그러하니, 제주도 여행 스케줄에 부모님이 유료 식물원 방문을 꾹꾹 욱여넣으신 것은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앞서 며칠간의 여행 일정에서 휴양림이며 숲길이며 둘레길을 다니며 천남성이네 비자나무네 삼나무네 먼나무네 공부 아닌 공부를 실컷 해온 내가, 이제 식물원에서 직면할 상황을 상상하며 정신 아득해져 온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일 년에 한 번 마주하기도 힘들 열대식물 워싱턴야자의 이름을 외우고 카나리아야자와의 차이를 구별해낼 압박에 눌리게 된다면, 누군들 그런 기분이 안 들겠는가. 나는 각오를 다졌다. 당하지 않으려면, 공세적으로 나가야한다. 


그리하여 결전의 날, 과거 이미 여러 번 그 식물원을 방문한 바 있으며, 이제 그렇게 좋아하는 장소와 다양한 식물의 콜라보를 딸에게 보여주게 된 기쁨에 들뜬 부모님과 마침내 운명의 장소에 입성했을 때, 나는 결연한 의지에 가득차 있었다. 전략은 이거였다: 질문 받기 전에 앞질러 질문한다! 듣기 전에 먼저 말한다! 나는 성큼성큼 앞서 나가며, 부모님보다 먼저 이름 표지를 확인한 뒤 선수쳐 퀴즈를 내는 전술을 채택했다. 퀴즈를 낼 만하지 않으면, 설명판 읽기를 독점해버렸다. 


“이 야자 이름이 뭐게요!”

“이게 로즈마리게요, 라벤더게요?”

“와, 이거 멕시코세이지라는 식물인데 냄새가 없대요!”


그 방법은 무리없이 먹혀들었다. 여러 번 식물원을 방문하며 이런저런 이름들을 익혀온 부모님은, 내가 내는 퀴즈들을 의심없이 게임처럼 즐기셨다. 그러나 그곳은 기대보다 훨씬 넓고, 기대보다 훨씬 잘 조성된 식물원이었다. 기획된 열심은 진실한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 그 대상이 공부건 일이건 식물이건 마찬가지다. 아열대관을 다 돌고 나와 허브관과 선인장 구역까지 둘러보고 나니 나는 전의가 다 사라져버렸다. 퀴즈를 낼 동력도 다 소진되어버리고 말았지만, 부모님의 두 눈은 여전히 생생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나는 내 전문분야로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식물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 아세요?”

“뭐?”

“우리가 자초한 실수와 유전자 조작이 합쳐지면, 저들은 인류를 절멸시킬 수도 있어요.” 

“...?”

“외계인까지 갈 것도 없이, 식물의 침공으로 문명이 멸망할 수 있겠더라고요. 제가 읽은 책에 나오는 얘기예요.” 

  

나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냉전시대 소련이 만들어낸 유전자조작 식물 트리피드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트리피드가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냉전시대 베일에 가려져있던 구체제 소비에트 연방의 연구소에서 유전공학적으로 ‘발명’되었다고 추측될 뿐이다. 이 식물의 종자로부터 아주 질 좋은 기름을 착출해낼 수 있기 때문에, 트리피드 경작은 상업성이 아주 높은 사업으로 평가되었다. 엄청난 적응력으로 단시간 내에 전 세계 각지로 퍼져나간 이 낯선 식물은 평범한 씨앗으로부터 발아하여 여느 풀처럼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조용히 자라지만, 웬만큼 커서는 갑자기 경천동지할 일을 일으킨다. 땅으로부터 제 뿌리를 쑥 뽑아내어 온 사방을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것이다. 세 개의 ‘발’로 원통형의 단단한 목질 몸뚱이를 받치고, 놈들은 목발 짚은 사람처럼 기우뚱기우뚱 곧잘 걷는다. 트리피드라는 이름도 결국 그런 특징에서 유래하였다. 

   

뭐, 그래, 나폴레옹 사전에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없다면, 식물사전도 그럴 수 있지. 질겁을 했던 사람들은 억지로 평정을 되찾고 당황하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래, 걸어다닐 수도 있지. 풀떼기라고 못 할 게 어딨어? 게다가 동물처럼 움직이는 식물이 전례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름도 아름다운 미모사는 손끝이 닿기만 해도 파르르 잎새를 움츠리고, 파리지옥은 가시 돋친 잎을 맞다물어 불쌍한 파리를 가둬버릴 줄 안다. 파리지옥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트리피드는 그 사촌쯤 되는 것처럼 판명되었다. 깔대기 모양의 꽃받침 속에는 소화액이 들어있어, 거기 빠진 파리라던가 기타등등 벌레들을 말끔히 녹여 흡수해버린다. 치명적인 문제는 파리지옥이나 벌레잡이통풀 등 상대적으로 얌전하고 무해한 다른 식충식물과는 달리, 트리피드가 사람고기 맛을 알게 되었다는 데 있었다. 놈들은 깔대기 모양의 꽃받침 안에 3m에 달하는 길고 낭창낭창한 가지를 돌돌 감아넣고 있다가, 먹잇감을 만나면 그것을 채찍처럼 내리쳐 독침으로 상대를 쓰러뜨린다. 그들은 죽은 자가 썩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부패한 살이 뭉정뭉정 떨어져나가기 시작하면, 그 조각을 촉수 끝으로 쿡 찍어 꽃받침으로 가져가 소화액에 담그는 식으로 ‘사람을 먹었다’.  


사실 인류문명이 멀쩡했다면, 트리피드가 사람 사냥하는 꼴 따위 안 볼 수도 있었다. 평화로웠던 시절, 인간 문명은 일식집 요리사가 복을 다루듯 트리피드를 손질할 줄 알았다. 독침달린 긴 가지를 잘라주는 식으로 적절히 조치를 가한 트리피드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고, 일반 가정집 관상용 식물로도 흔히 식재되었다. 그때만 해도 트리피드가 징그럽거나 미심쩍기는 할 지언정, 무려 사람을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놈들이 사람고기 맛을 알게 된 것은, 녹색 빛을 내뿜는 정체불명의 혜성이 지구를 스쳐간 뒤, 극소수를 제외한 인류 태반이 시력을 잃는- 인류 발원 이래 유래 없는 대참사가 벌어진 이후의 일이었다. 


존 윈덤이 1951년에 펴낸 『트리피드의 날』은 혜성으로 인한 인류의 실명(失明) 대참사와 식인식물의 창궐이라는 두 재난의 콜라보 속에, 시력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생존을 도모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장편소설이다. 처음 읽은 건 초등학교 때였다. 학년 초, 교실 서가에 이미 여러 해 전부터 꽂혀있던 학급문고에서 뽑아낸 그 책은 여러 사람의 손을 타 표지가 날긋날긋해진  어린이용 축약본이었다. 낯선 혜성이 연출하는 전대미문의 아름다운 우주 쇼를 목격한 사람들이 모두 눈이 멀어버린다는 배경, 걸어 다니는 육식성 식물이 그 혼란과 절망의 시기를 틈타 인간을 해친다는 설정은 축약된 판본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원본에서 선택적으로 발췌되어 줄거리 위에 얹어진 자극적인 장면들은 기억 속에 희미해져 갔지만, 그 기본설정에서 받은 충격만큼은 뇌리에서 지워진 적이 없다. 내가 유성우나 혜성 보기를 기꺼워하지 않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이 소설 탓이었다. 길가에서 흔히 보는 키 큰 명아주 같은 풀들에 대한 비이성적인 경계심도 마찬가지였다. 


수십 년이 지나 새로이 번역되어 나온 성인용의 온전한 판본으로 다시 읽어보니, 『트리피드의 날』에서는 의외로 트리피드와의 전쟁이 중요하지 않은 소재였다. 작가가 두툼한 장편소설의 절반 이상을 할애하여 그려내고 있는 건 문명이 망가져버린 세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생존을 이어나가기 위해 어떻게 서로 갈등하고 다투고 기대고 협동하고 이합집산 하는지의 문제다. 『우주 전쟁』류로 기억해온 소설이 사실은 『워킹데드』류였던 것이다. 이것은 괴물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극한상황에서의 인간과 인간 본성에 관한 이야기다. 




그날 식물원에서, 나는 트리피드라는 식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데 좀 더 집중하였다. 걸어다니게 진화된 세 가닥의 뿌리와, 돌돌 말아 숨기고 다니는 독침 달린 긴 가지와, 소화액이 분비되는 꽃받침에 관해 실감나게 설명하였다. 수만 종류의 식물들 중에서 트리피드가 대입되기 제격인 놈들을 찾아내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다. 식물원에는 물론 평소 흔히 볼 수 없는 낯선 식물들이 아주 많이 있고, 처음 보는 선인장이나 키 큰 열대산 희귀종이 눈앞에서 쑥 뿌리를 뽑아내 저벅저벅 우리 주위를 거니는 장면을 상상하는 건, 음, 그러니까 집 앞 단풍나무가 느닷없이 걸어다니는 걸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한 일이다. 휘척휘척 다가와 은빛 찬란한 이삭 부위로 사람의 뺨을 후려치는 팜파스 그래스, 구르듯 돌진해 와서 가시로 푹 찌르는 캘리포니아 선인장, 우아하게 기어와 혓바닥같은 꽃술을 휘두르는 열대난,... 움직이는 풀들의 다채로운 공격은 우리의 상상과 대화 속에서 일어났고, 그 결과는 영롱하고 아름다웠다. 내가 내심 두려워하고 있었던 실제적 공격, ‘퀴즈’가 결국 나에게로 향하지 않게끔 방어하는 데 성공했으므로.

작전은 유효하였다. 트리피드, 고마워.    


글_윰(SF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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