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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나는 이렇게 SF를 읽었다

아서 클라크, 『낙원의 샘』 - 오르는 것에 관한 생각

by 북드라망 2018. 1. 10.

아서 클라크, 『낙원의 샘』 - 오르는 것에 관한 생각




치열하게 연습해온 예인이 화려한 무대에 오른다. 이윽고 막이 오르고, 그날의 공연으로 그는 가요대상 후보의 자리에 오른다. 

새벽잠을 줄여가며 공부한 학생은 성적이 오른다.  

묵묵히 실력을 갈고 닦은 장인은 어느덧 업계의 정상에 오른다. 

한미한 집안 출신의 야심가는 신분의 사다리를 오른다. 

일주일을 생업에 시달린 사람들은 주말마다 삼삼오오 모여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믹스커피 한 잔씩 나눠 마시고 이곳저곳의 큰 산을 꾸역꾸역 오른다. 



오르는 것에 관해 생각한다. 굳이 성공에 대한 강박이 있지 않아도, ‘오른다’는 말에는 사람의 마음을 붕 띄우는 힘이 있다. 물론 ‘구설에 오르는’ 것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집값이 오르거나 물가가 오르는 건 또 다른 문제이지만, 대개의 경우 위라는 방향성은 아래보다 훨씬 좋은 광휘를 두르고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다. 승진에는 별 관심 없어도 산에 오르는 건 좋아하는 과장님들을 우리는 안다. 출세에는 아무 뜻이 없지만 영혼의 고양에 관해서라면 눈이 반짝거리는 은둔한 수도자들에 관한 이야기들도 들어본 적 있다. 높이 더 높이, 위로 더 위로. 차원은 제각기 다르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높이’를 열망하는 모양새다. 아마도 거기 깃드는 빛과 힘의 이미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태양 빛은 머리 위로부터 쏟아지고, 중력을 거슬러 중량을 견인해내는 상승의 작용에는 결국 힘이 필요한 것이니까.


인간사회에서 높이를 향한 뭇 사람들의 선망이 얼마나 열렬히 긍정되냐면, 순전히 높이 기어올랐다는 이유만으로 복 받는 이야기까지 존재한다. 영국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민담, 『재크와 콩나무』가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인 동화와는 달리 권선징악의 교훈 따위 안중에도 없는 이 기묘하고 개연성 없고 황당한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장되거나 잊히기는커녕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어린이 동화로 자리잡았다. 권선(勸善)도 없고 징악(懲惡)도 없고, 교훈이랍시고 억지로 발라내자면 진짜 권고(倦高: 높이를 권함)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뿅 하고 솟아난 콩나무를 타고 하늘 끝까지 올라가, 구름 위에서 누구 피해 주는 것도 없이 평화롭게 잘 살던 거인의 재산을 훔쳐서 팔자 쫙 펴고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는 무도한 줄거리에서 대체 그 외 무슨 미덕을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착하게 살라는 얘기가 아니잖아요, 라고 다섯 살배기 조카가 혼란에 빠진 눈빛으로 의구심을 표하는 순간을 상상해보면, 나는 뱃속이 써늘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재크 요 녀석이 뜻밖에 걸출한 인물이긴 하다. 그는 가난한 농삿꾼 집안, 병든 홀어머니의 외동아들이다. 돈도 없고 집안도 한미하며 자기 자신 별 쓸모도 없이 밥이나 축내는 어린 소년이란, 당시 세인들이 보기에 아마도 납작하게 땅에 붙은 미물보다 못한 존재였을 것이다. 애지중지 키워온 소를 한줌도 안 되는 콩알과 맞바꾸는 정신머리를 봐서는 과연, 판본에 따라 노골적으로 ‘멍청한 인물’이라고까지 폄하해버리는 게 아주 이해가 안 가는 처사도 아니다. 그러나 재크는 확실히 두 가지 점에 있어서만큼은 남다른 아이였다. 첫째, 그는 겁이 없었다. 뒤뜰에서 콩나무를 발견했을 때, 그리고 까마득하게 구름 너머로까지 솟아오른 그 줄기를 타고 끝까지 기어오를 때, 재크가 눈곱만치라도 겁을 먹었다는 이야기는 어느 책에도 나오지 않는다. 일단 나는 가보련다, 라는 식의 위풍당당한 패기로 기세 좋게 오르고 또 오를 뿐이다. 둘째, 재크는 꿈을 품었다. ‘요술콩’이라는 아이템은 밑도 끝도 없이 허무맹랑하고 얼토당토 하지 않기는 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세상 숱한 꿈 중에 비단 요술콩만 그러했던가. 오히려, ‘순 엉터리 같은 소리!’라는 힐난과 의심에 더 거센 역풍을 맞았던 케이스일수록 끝에 이룬 위업이 더 찬란하게 빛나곤 한다. 그러므로 엉터리 같은 꿈을 품을 줄 알았다는 사실 자체가 재크의 탁월한 저력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서 C. 클라크가 1979년에 발표한 장편 SF 『낙원의 샘』은 결기 강하고 대담한 천재 공학자가 지구 상공의 정지위성과 지상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 궤도탑을 건설하는 이야기이다. 장장 3만 6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탑을 세우기 위한 악전고투의 과정을 과학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건조하고 정합성 있게 그려내는 가운데, 2천 여 년 전 스리랑카의 외롭고 괴팍한 왕위찬탈자가 깎아지른 절벽 위에 철옹성 같은 요새를 지어 올리는 시적인 이야기가 시간을 가로질러 병치된다. 소설 속에서는 『재크와 콩나무』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나로서는 그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이 이야기는 그대로 그 오래된 민담의 정밀한 변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엉뚱한 꿈을 품고 그 꿈의 끝을 보아내고야 마는 주인공이라니, 요술콩을 믿고 요술콩이 열어준 기회에 집요하게 도전한 재크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땅에다 단단히 뿌리를 박고서 가늘고 높게 솟아올라 구름 너머로 그 끝이 사라져버리는 탑이라니, 재크의 콩나무와 형태상으로나 기능상으로나 똑같지 않느냐 말이다. 시대적 여건이 허용하던 한계를 밀어붙여 지상에 걸친 몸뚱이를 위로 위로 끌어올린, 공학자 모건과 고대의 왕 칼리파사는 모두가 재크의 조상이며 후예이며 영혼의 판박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고 보면 인류사에는 수많은 재크들이 있었다. 그 재크들이 타고 오른 콩나무들이 있었다. 콩나무가 스스로 자라나지 않으면, 재크들은 직접 콩나무를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신화 속에서 우리는 하늘을 향한 도전의 상징인 바벨탑을 찾아볼 수 있다. 역사 속에서, 미관을 해친다는 악평을 견뎌내고 끝내 도시의 명물로 자리매김한 에펠탑을 꼽을 수 있겠다. 유수의 도시들에는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판타지 소설 속 모르도르의 끔찍한 악명을 계승한 제2롯데월드 타워는 부디 외면하도록 하자. 그것은 흉물스러움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했다.) 물론 어떤 재크들은 실패했다. 엄밀히는 성공한 재크보다 실패한 재크가 더 많았을 것이다. 『낙원의 샘』에는 거대하고 원대한 토목공사의 와중에 죽거나 패배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여럿 나온다. 칼리파사 왕의 건축가와 노예들, 우주공간에서 조난당한 23세기의 기술자의 이야기는 짧막한 언급을 넘어 복수의 문장들, 여러 페이지의 챕터들을 할애 받는다. 개인을 넘어선 역사적 위업 앞에서 예우할 것은 모건과 칼리파사같은 대표자들만이 아니라고, 아서 C 클라크는 이야기가 잡다해질 위험을 무릅쓰며 굳이 또박또박 새겨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낙원의 샘』을 읽고서야 나는 다섯 살 조카에게 신비롭고 흥미진진하지만 도덕적으로는 엉망진창인 『재크와 콩나무』를 읽어주는 데 별 문제가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쯤에서 거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민화 속 재크가 하늘 위에서 마주쳤던 그 거인 말이다. 사람고기 먹기를 좋아하는 천상의 거인은 재크의 목숨에 위협이 되었지만, 따지고 보면 애초에 그는 재크가 미워서 해코지하려 든 것은 아니었다. 사실 거인은 지극히 중립적인 존재로, 다만 덩치, 식성, 존재 자체가 사람에게 불리했을 따름이었다. 『낙원의 샘』의 모건에게 우주는 딱 저 거인과도 같았다. ‘고의로’ 모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무심한 적대자. 우주에는 인간이 호흡할 공기가 없지만 딱히 인간이 미워서 그런 건 아니다. 한없이 춥고 공허하지만, 딱히 인간이 미워서 그런 건 아니다. 그리고 모건을 필두로 그 치명적인 여건들을 정복하고 넘어섰을 때, 인류는 마치 보상처럼, 새롭게 만개할 삶터를 얻게 된다. 거인을 무찌른 재크의 인생이 새로운 전기를 맞아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듯이 말이다. 어쩌면 『재크와 콩나무』는 하늘 높은 데서 무자비한 우주를 대면한 인류 최초의 탐험가에 대한 우화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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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샘』은 좀 산만한 작품입니다. 작가는 ‘지상과 우주를 연결하는 엘리베이터를 짓는다’는 아이디어의 현실적인 가능성을 확인하고 상상력을 펼쳤던 것 같아요. 건설의 과정, 그리고 중간에 일어난 돌발사고를 해결하는 이야기가 주요 플롯인데, 이를 둘러싸고 정말 많은 인물들과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출몰합니다. 심지어 궤도탑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외계지성의 증거가 뜬금없이 나타나 유유히 지나가기도 하지요. 시점은 왔다리갔다리 둥실둥실 떠다니고, 인물들 제각각의 사연은 종종 참 시시콜콜해요. 이게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해지는 효과와, 뜬금없는 떡밥들을 중심 줄거리와 연결시키지 못해 갈팡질팡 하게 되는 효과가 동시에 발생하거든요. 그러나 주제의 외곽을 멀리 싸고 드는 이야기들에조차 매력이 넘치는 게 매력이랄까요. 여러 사건 사고 소식과 다양한 필진들의 칼럼이 혼재되어 있는 신문 지면을, 과학기술면을 중심으로 오락가락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읽는 동안 지루한 느낌은 거의 없으니, 한번 펼쳐서 끝내지 못하고 치울 걱정일랑 접어두어도 좋겠어요!   


글_윰(SF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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