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친절한 강의 대학』 - 마음은 본래 허령한 것

『친절한 강의 대학』 - 마음은 본래 허령한 것


몸의 주인인 마음(心)은 그 본체가 원래 허령(虛靈)하여 한 사물에도 집착됨이 없다고 하네요. 마음을 본래 이러한 것으로 전제하면 분노, 우환 등의 감정은 치우침, 비정상이 됩니다. 마음의 작용, 이치를 살피는 데에 장애가 된다고 보게 되겠지요. 마음이 움직이는 그 순간부터 치우침이 없어야만 마음의 작용이 바르게 되고, 그래야만 마음의 본체가 바르게 유지될 테니까요. 한마디로 주자는 분노와 두려움, 좋아함과 근심, 지금 우리가 감정이라 하는 것들을 ‘성정지정’(性情之正), 마음이 정(正)한 상태가 아닌 비정상, 치우침으로 봅니다. 마음의 작용이 한쪽에 치우치고 매여 바름을 잃는다면 허령한 본체의 바름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 우응순, 『친절한 강의 대학』, 127쪽


어떤 것이 ‘원래 그렇다’는 식의 정의는 대개의 경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제 삶의 문제들은 원래 그러한 것이 그렇지 않을 때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원래’ 그러한 것으로 그렇게 머무른다면 사실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세상이 이렇게나 다이나믹한 이유는 어느 것도 원래 그러한 대로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평화와 안정을 갈망한다. 마치 인류가 이곳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로 언제나 평화와 안정을 꿈꿔왔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아마도 언제나 그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정에의 갈망은 어느 한 국면의 대표적인 욕망이지 싶다. 여하튼, ‘원래’의 자리에서 비켜나는 것이 본질적인 속성이므로, 방법론적인 가정이 중요해진다. 즉, 그것이 진리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써먹느냐의 문제다. 마음이 몸의 주인이며 그 마음은 원래 허령한 것이라고 ‘전제’하면, ‘치우침’을 문제삼을 수 있게 된다. 그렇다. 평화로운 마음, 안정된 마음의 최대 적은 치우친 마음이다. ‘마음을 비우라’는 말이 상투어가 된데에는 이런 사고방식이 깔려 있는 셈이다. 


‘문제들’이라고만 하면 대개는 괴로운 일, 슬픈 일, 화나는 일 같은 부정적인 사태들만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치우침’이 단번에 드러나는 쉬운 일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기쁘고, 황홀하고, 짜릿한 쾌감이 있는 그런 일들에 있다. 가끔 티비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기사건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기쁨과 황홀, 희망이 한꺼번에 몰아칠 때, 바로 그때 그 모든 것이 거짓부렁에 속은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곤 한다. 말하자면, 괴롭거나 슬프거나 하는 감정들 뿐 아니라 너무 좋은 감정도 사실은 치우쳐 일어나는 것이므로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은 원래 허령한 것이므로.


참 높은 경지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짐작컨대,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감정을 억지로 눌러서 될 일은 아닐 것이다. 범인으로서는 어떻게 하면 마음의 허령을 깨닫고 치우침이 없는 경지에 이를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한가지 해볼만한 일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무엇인가 하면 ‘관찰’이다. 그게 가장 먼저 되어야 할 것이다. 애초에 마음 먹기를 어느 쪽으로 마음이 치우치든 상관없다고 하고, 다만 내 마음이 어떻게 어디로 치우치는지는 끝까지 지켜보아야겠다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렇게 마음 먹고 해보았지만 그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내 마음과 나 사이의 거리는 멀다면 엄청나게 멀고, 가깝다면 거리없이 가깝기 때문에 보려고 하면 너무 멀거나 너무 붙어있어서 볼 수가 없다. 다만 그러다보면 어느새 화도 기쁨도 여러 마음 들 중 하나구나 하게 된다. 특별히 더 화내거나 특별히 더 들뜨거나 하는 일이 줄기는 확실히 줄었다. 




‘마음은 본래 허령한 것이다’, 나는 이 가정을 운전할 때 떠올려보려고 한다. 평소엔 그래도 화가 나더라도 가까스로 잘 거르는 편인데 운전대만 잡으면 내가 나를 도무지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세계가 어떤지는 아마 평생 다 알 수 없을테지만, 제한된 범위에서 내가 믿고 받아들이는 세계 정도는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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