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조선왕조실록―무궁무진한 인정세태 보고서

조선왕조실록―무궁무진한 인정세태 보고서



임금이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요즈음 의원들은 약방서(藥方書)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 양홍달과 조청 같은 내의원들도 그러하다. 궁중에서 열 살쯤 되는 아이가 병이 났었다. 조청에게 약을 지으라고 명했더니 어른이 복용하는 것과 똑같이 지어 왔다. 의심스러워 사람을 시켜 물으니 대답하기를 ‘약방서에 소아는 5,6세를 가리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가 상고한 것에 빠뜨린 것은 없는지 염려스러워 내가 직접 약방서를 열람해 보았다. 『천금방』을 보니 ‘2,3세는 영아(嬰兒)라 하고, 10세 이하는 소아(小兒)라 하고, 15세 이하를 소아(少兒)라 한다’고 쓰여 있었다. 이것을 조청에게 보여 주자 부끄러워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러니 어찌 사람이 상하지 않겠느냐?” 

_ 『낭송 태종실록』, 김석연 풀어 읽음, 북드라망, 2017, 193쪽


상참을 받고 경연에 나갔다.

“집현전을 설치한 것은 학자들로 하여금 학문과 문장에 전념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 정미년(세종 9년, 1427년)에 내가 직접 시험해 보았는데 집현전 관리들이 우수한 글을 써 내어 마음속으로 기뻐하였다. (……) 그런데 최근에 들으니, 집현전 관원들이 집현전에서 일하기를 싫어하고 모두 대간(臺諫: 사헌부와 사간원)과 육조에서 일하기를 희망한다고 한다. 나는 집현전을 매우 중히 여겨 특별히 선별해서 뽑았고 대간과 다름없이 우대하였다. 하지만 공부를 싫어해서 관직을 옮기고자 한다니, 집현전 관원들이 이와 같다면 다른 보통의 관리들은 어떻겠는가?”

_ 『낭송 세종실록』, 홍세미 풀어 읽음, 북드라망, 2017, 85쪽


드라마 <징비록> 중에서



낭송Q시리즈 조선왕조실록편을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된 것은 왕과 당대 정치에 관한 기록이라고만 생각했던 조선왕조실록이 사실은 당대 일상의 기록이기도 하다는 점이었다. 물론 역사 속 왕의 이야기나 당시 조정을 둘러싼 정치 이야기도 중요하고 또한 흥미롭게 볼 수 있지만, 제일 매력적인 건 역시 ‘사람’이야기. 실록의 기사들을 통해 조선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은 물론이고 그들이 어디에 마음을 썼는지나 당시의 물정을 무궁무진하게 볼 수 있고, 게다가 그 모습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흥미로웠다.


하긴, 수천 년 전의 공자님 말씀이 지금에도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은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모습이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아서가 아닐까. 사람살이는 그렇게 늘 비슷하기 때문에 그 옛날 사람들의 삶을 보며 사유한 기록들이 지금도 마음을 흔들고 깨우침을 줄 수 있는 것일 게다.


위의 『낭송 태종실록』 기사를 보며 나는 정말 어디나 어느 때나 사람의 일하는 본새는 비슷하구나 했다. 이 기사에서 이른바 ‘전문가’들의 매너리즘 같은 것을 볼 수도 있지만, 나는 2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난 무수한 ‘일하는 사람’들 생각이 떠올랐다. 그들의 다수는 왜 그 일을 그렇게 하냐고 물으면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혹은 이렇게 하는 선배를 보고 배웠기 때문에 이렇게 한다는 식의 대답을 했다. 그런데 그들 중 아주 소수의 사람들은 달랐다. 자기가 그 일을 하는 근거를 명확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하는 자기만의 논리적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그것만으로도 그는 비슷비슷한 일을 남다르게 해내고 다른 결과물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일을 하다가 아주 간단하게 그 일의 교과서적인 책(당연히 그 분야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아는 책이다)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을 모른 채(그 책을 안 읽은 것이다 혹은 책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무조건 묻고 보는 사람이나 반대로 내 방식이 무조건 맞다고 목소리 높이는 사람을 만날 때 당황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이런 당황스러움은 곧잘 불쾌감으로 바뀌곤 한다). 한 번만 정보를 찾아볼 부지런(이런 정도도 부지런이란 말을 붙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을 떨어도, 혹은 한 번만 내가 틀릴 수도 있지 않을까 의심할 수만 있어도, 사실 많은 일들이 잘못된 결과나 치명적으로 나쁜 결과를 내지 않을 수 있다(20년 정도 한 가지 일을 계속 하다 보니 알게 된 것은, 시스템이 아무리 잘 갖추어져 있어도, 결국 그 시스템을 돌리는 것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낭송 세종실록』의 위 기사는 좀 뜻밖이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집현전’이면 세종 시대 최고의 엘리트 집합소이고, 당연히 여러 젊은 관리들의 꿈의 직장 같은 곳이 아닐까 막연히 상상했었기 때문이다. 공부하기 싫어서 임금이 특별히 선별하고 우대하는 곳임에도 집현전이 아니라 다른 곳에 가고 싶어 한다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나, 어쩐지 그래도 ‘선비들이면서…’ 하는 흉보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했는데 그 뒤에도 계속 더 더 더 공부하라니… 게다가 똑같이 급제해서 다른 벼슬자리에 간 누구는 이런 거 저런 거 누리며 사는 모습도 보이고… 하는 어느 집현전 관리의 마음은 아마 오늘날 무슨무슨 고시나 전문대학을 나와 고위 전문직을 가진 어느 고급 공무원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모습 때문에 아마도 ‘수신’(修身)은 또 그렇게 중요한 덕목이었을 터인데…. 예나 지금이나 제일 바뀌기 쉬운 것이 사람 마음이고, 제일 바꾸기 어려운 것이 또한 사람 마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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