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낭송 세종실록』 - 한글 창제와 가치들의 대립

『낭송 세종실록』 - 한글 창제와 가치들의 대립


이조판서 허조가 아뢰었다.

“신은 그에 따른 폐단이 두렵습니다. 만일 간악한 백성이 율문을 알게 되면, 형벌을 피하는 요령만을 터득하여 거리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법을 농단하는 무리들이 생겨날지도 모릅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백성들을 무지한 상태로 두어서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옳겠는가? 백성들에게 법을 알지 못하게 하고 그것에 의거해 죄를 준다면 조삼모사의 술책에 가깝지 않겠는가? 더욱이 태종께서 이두로 법문을 번역하게 하신 것은 모든 사람들이 법을 알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경들은 고사를 상고해서 올리도록 하라.”

- 홍세미 풀어읽음,  『낭송 세종실록』, 125~126쪽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 비슷한 것은 보통 사람이 ‘법’의 오묘한 조화를 알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에 결론이 난 나의 민사소송 건만 보아도 그렇다. 도무지 어째서 ‘그 사실들’이 문제가 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불어 그게 ‘법’의 어떤 부분들을 위반했는지, 혹은 위반한 혐의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그래서 결국엔 변호사 상담을 받아보았지만, 그래도 역시 말끔하게 해소가 되지는 않았다. 어떻게 저떻게 원하는 결론이 나오기는 했지만, ‘소송’이란 어떻게 결론이 나오더라고 그 자체로 하나의 공포, 모르기 때문에 무서운 어떤 것이다. 


조선시대라면 어땠을까? ‘법’은 그야말로 신성한 것이다. 왕의 권위, 대국(명나라)의 권위가 거기에 집중되어 있으니까. 그런 법을 백성이 알아들을 수 있는 글자(한글)로 바꿔 놓으려고 했던 세종대왕의 행동이 대신들의 반발에 부딪혔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법(권위)의 해석은 글을 아는 양반 사대부, 지배계급만 할 수 있고, 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지배계급의 권위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한글 창제가 한반도 역사에서 혁명적 사건인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글을 읽고 쓰는 능력에서 국가를 운영하는 근거를 찾았던 구체제의 질서는 모두가, 혹은 상당수가 읽고 쓸 줄 알게될 때 위협받는다. 체제의 균열은 지식의 양과 질이 체제를 초과할 때 시작된다.


말하자면, 세종대왕은 우리 역사의 ‘계몽군주’라 할 수 있다. 어쩌면 근대는 한글의 탄생과 함께 잉태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임금이 말하였다.

“전에 김문이 말했다. ‘언문을 제작하서는 안 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말을 바꿔 옳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정창손도 말을 바꿔서 ‘삼강행실을 반포한 후에도 충신, 효자, 열녀의 무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은 사람의 자질에 달려 있습니다. 언문으로 번역한 삼강행실을 본다고 해서 백성들이 충신, 효자, 열녀가 되겠습니까?’라고 한다. 이따위 말이 어찌 선비의 도리를 아는 자의 말이겠는가? 너희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비열한 자들이다.”

같은 책, 131쪽


여기에서도 대립되는 가치가 충돌하고 있다. 사람의 행동은 ‘타고난 자질’에 달려 있어서 바뀔 여지가 전혀 없다는 주장과 배워 고치면 바뀔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인류가 이 상태로 사는 한 이 대립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이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다만, 나는 사람이 앎으로 인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바뀌리라 믿는다. 이율배반적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외에 다른 결론을 떠올릴 수가 없다. 




한글 창제는 조선 역사 전체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다. ‘한글’이 오늘날 가지고 있는 위상에 비춰보아도 그렇지만, 창제과정에서 대립되는 가치들을 보아도 극적이다. 말하자면 거기에는 오랫동안 반복된 세계관의 충돌이 있는 것이다. 

낭송 세종실록 - 10점
홍세미 지음/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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