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 - 조금씩 ‘분’(憤)발 중

조금씩 ‘분’(憤)발 중 



참으로 스스로 입을 떼기가 민망스럽기는 하나…, 이번엔 탁구를 시작했다. 재작년인 2015년부터 작년 여름까지는 스쿼시를 (하기는;;) 했었다. 1년 반이 조금 못 되는 시간을 하면서도 결국 초급반의 장기 유급생으로 남았고, 물론 월반 같은 건 애초에 꿈꾸지도 않았으니 적어도 ‘그래도 스쿼시를 사랑하게 되었어’ 정도는 된 상태로 아름답게 마치고 싶었으나… 흠흠. 아무튼 작년 여름부턴 이사 준비를 해야 했기에 자연스럽게 그만두었다. 이제 이사를 한 지가 7개월 정도 되었으니 운동을 안 한 지는 더 오래되었다. 비록 설렁설렁하긴 하였으나 그래도 스쿼시를 하는 동안에는 살이 쪄서 맞지 않았던 옷들을 다시 입을 수 있게 되기도 하였었는데, 운동도 안 하고 출퇴근길도 앉아서, 사무실에서도 앉아서만 있다 보니 또 다시 윗배가 아랫배를 누르기 시작하였고, 제일 심각한 건… 한포진이 재발하였다(흑).




뭔가 운동을 하긴 해야 하겠는데, 구관이 명관이라고 동네 근처에 스쿼시를 할 만한 데부터 찾아보았으나―내겐 라켓도 (어딘가;;) 있지 않은가 ㅋㅋ―마땅치가 않았다. 제일 쉽게 찾을 수 있는 헬스와 요가 같은 것은 여전히 어우…. 마땅한 종목을 찾지 못하고 동백 호수만 한 바퀴씩 돌아대던 어느 날, 남편이 같이 탁구를 배우자고 했다. 자기 뱃살만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우리는 진심으로 서로의 뱃살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한 명이 뭔가에 마음을 냈으니 당연히 그걸 해야(겠)지. 콜!


그렇게 해서 동네 탁구장에 찾아간 것이 또 한 2주 전쯤.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라켓과 탁구화를 구비했다. 그래, 이것만 해도 스쿼시를 할 때와는 다르다. 이제 난 달라졌……기는 개뿔. 사람은 이다지도 변하질 않는 것인가. 소름끼치도록 놀랍다. 가만 보니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는 운동신경이 있는 편이었다(응?). 탁구 레슨 첫날, 선생님이 보내는 공을 계속 받아쳐야 하는데 자세야 어떻든 나는 그걸 곧잘 받아쳤다. 선생님은 전에 탁구를 해 본 적이 있냐고 (없습니다) 물으면서 놀라워하셨는데, 나의 체육 활동(?)으로 누군가 그렇게 감탄하는 것을 본 것은 나도 처음이었다(허허허허). 


하지만 문제는 역시 ‘자세’였다. 스쿼시 때도 그랬다. 선생님이 자세 연습을 시키면 늘 건성건성하면서 속으로 ‘그냥 공이나 치게 해주지’ 하며 툴툴댔고, 결국 공도 아무렇게나 치고, 스텝도 아무렇게나…. 그리고 결과는 아시다시피…;; 지금도 레슨 때 선생님 앞에서만 조금 자세를 잡는 시늉만 할 뿐이고, 자유시간에는 또 아무렇게나다. 또 같이 탁구를 치면 남편은 거의 탈춤 수준으로 몸을 움직이는 반면 나는 정말 최소한으로만 움직인다. 이것도 스쿼시를 할 때와 똑같다(‘어째 회원님보다 내가 더 많이 뛰냐’며 탄식한 선생님도 있었다). 


“불분(不憤)하면 불계(不啓)한다”는 말 기억하시나요? 배우려는 사람은 일단 스스로 배우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마음을 분을 내는 것이라 표현한 거죠. 그러니까 배움이란 분을 내는 것 즉 분발하는 것이고, 가르침이란 그러한 분발자와 더불어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불분하면 불계, 즉 깨우쳐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문성환, 『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 북드라망, 2017, 153쪽)


“불분하면 불계한다”는 것은 『논어』 「술이」편에 나오는 공자님의 말씀인데, 내가 딱 요렇다. ‘불분’의 아이콘이다. 뒤에 이어지는 말씀은 더 무섭다. “불비불발”(不悱不發), 애태우지 않으면 말해 주지 않는다, 는 말이다. ‘그래서요? 분을 내고, 애태우면 뭐가 좀 나아지나요?’ 요렇게 한 번 대거리를 해보고 싶기도 한데, 그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은 자로 때문이다.


자로는 공자님이 가장 사랑한 제자는 아니었다(공자님의 최애 제자는 역시 안회!), 자로는 공자와 아홉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그러니까 맞먹으려고 들면 얼마든지 맞먹을 수 있는) 제자였고, 스승 공자에 대한 충성도는 “100점 만점에 120점”이 되고도 남음에도, 『논어』에서 공자님께 갖은 구박과 핀잔을 면치 못하는 웃픈 캐릭터. 배우고자 하는 의지, 스승을 따르고자 하는 의욕은 넘치지만 지성이 따라주지 않는 자로에게는 출신 비화가 한 가지 있으니 한때는 동네에서 껌 좀 씹던 양아… 아니 아니, 왈인(건달)이었다는 것. 자로의 지적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에서 문성환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면 정말 심하게는 이런 정도가 아니었을지….


“오늘 강조하고 싶은 것은 헝그리 정신에 관해서야. 헝그리. 배가 고프다는 뜻이지. 헝그리 H. U. N…. 그 누구야. 현정화. 현정화 걔도 라면만 먹고 육상에서 금메달 세 개씩이나 따 버렸어.”

“임춘앱니다. 형님.”

“나가 있어.”(영화 <넘버 쓰리> 중에서)


아마도 그랬을(것이라는 것은 나의 상상이고 좀더 『논어』에 근거한 상상은 『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의 ‘자로편’을 꼭 보시라!) 자로는 놀랍게도 위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공문에서 ‘정사’(政事) 분야의 톱투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비록 건달 출신의 비천하고 미천한 인물이었음에도, ‘사람은 이런 배움이나 이런 계기를 통해서 얼마든지 다른 인물이 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실증하는 인물”(『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 174쪽)이 자로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로가 가지고 있었던 최고의 무기는 아마도 내게 없는 ‘분’(憤)과 ‘비’(悱)의 자세였을 것이다.


그저 사지나 움직여서 뱃살이나 어떻게 좀… 하는 내가 아직 건달 상태의 자로라면 이번에 제대로 배워서 나중에 시합 같은 데에도 한 번 나가 보고 싶다는 남편은 이제 막 공문에 입문한 자로다. 의욕이 넘친다. (나중에 알고 보면 틀린 건데 나한테 자꾸 알려 주려고 하는 것도 꼭 자로 같다) 그러니 아직 2주밖에 지나지 않긴 했지만 서로 서 있는 자리가 다를 수밖에. 선생님은 남편에게는 “이제 레슨 한두 달만 더 받으시면 되겠네” 하며 흐뭇해하시고, 내게는 “자세는 어떻든(;;) 받아치는 건 잘해요” 하며 마지못해 격려를 해주신다. 나는 그저 “선생님, 전 천천히 가르쳐 주세요.” 하고 공손하게 말씀드렸다(흠흠). 아직은 이 정도가 내가 낼 수 있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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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박선옥 2017.08.02 12:09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아.... 자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고 보니 책을 읽고 싶어집니다~

    • 북드라망 2017.08.02 13:24 신고 수정/삭제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까지 읽어주신다면 그야말로... 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