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 '마음'을 바꾸는 일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 '마음'을 바꾸는 일


감정 등의 지각은 자신의 역사와 생명의 역사가 응축되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감정축의 배선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이해하시고, 매일매일 조금씩 새로운 감정회로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곧 지금의 감정선을 지닌 자신을 잘못됐다고 여기지 마시고, 그럴 수밖에 없는 배경을 이해하면서, 새로운 내부이미지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 정화 지음,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272쪽


운동이 그러한 것처럼 마음을 바꾸는 것도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일주일 운동으로 체중계의 눈금이 극적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일주일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욱하는 성미가 사라지는 일은 절대로 없다.




현대 사회는 그야말로 상품의 집적으로 만들어진 세계다. 배가 고프다고 해서 사냥을 하거나 땅을 갈지 않아도 된다. 돈을 들고 가서 음식을 사오면 그만이다. 입을 옷도 마찬가지다. 외출을 위해 짐승의 가죽을 무두질하지 않아도 된다. 마찬가지로 돈을 들고가서 사가지고 오면 된다. 그만큼 돈은 모든 것들의 왕이 된다. 그런데, 원시시대와 비교해서 거의 달라지지 않은 몸과 마음의 영역에서 돈은 그렇게 즉각적인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물론 성형수술이나, 각종 트레이닝 상품들, 정신과 상담 투어 등을 구입할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들은 즉각적이지도, 영구적이지도 않다. 최소한 무언가를 ‘직접’ 해야만 하는 영역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것들은 원시, 아니 원초적이다. 


어떤 상황에서 ‘욱’할 때 나의 성미는 나의 생애 수십년이 만들어낸 결과이면서 동시에 인류가 수만년 동안 세포단위에 축적해온 습관의 결과다. 어느 시기엔가 그런 성미가 지배적으로 유리하게 작동하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 조상 누군가는 ‘욱’한 덕에 살아남았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그 역사적 축적물이 오늘의 나를 불편하게 한다. 더 나아가 오늘의 생존을 위협하는 조건이 된다. 말인즉 이것은 변화-생성의 압력이다. 이 조건을 넘어서는 일이 ‘깨달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깨닫는 다는 것은 사실 ‘자유’, 조금 더 정확하게는 ‘자유로운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만약 자유가 어떤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면, 마음의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마음의 자유다. 오늘 내가 욱하는 성미에 예속되어 있다면 나는 부자유 속에 갇혀있는 셈이다. 또 허무에 사로잡혀서 일상을 온존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부자유다. 나는 자유롭게 욱한다, 나는 자유롭게 허무하다는 것은 형용모순이다. 그런 자유란 없다. 




마음의 자유도는 지금까지 없던 감정의 회로를 생성할 수 있는 능력과 연동되어 있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느꼈는데, 의지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도 있는 그 능력이 영혼의 자유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진화의 법칙을 거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거기에 잘 부합한다. 환경이 바뀌면 바뀐 환경에 ‘적응’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말하자면, 여전히 우리는 진화 중이다. 쉽게되는 일은 없다.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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