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 - 지천명, 順하게 살라는 가르침

지천명, 順하게 살라는 가르침



예컨대 지천명 같은 말에서 ‘천명을 안다’라고 말할 때, 이것은 하늘로부터 이 세상에서 부여밭은 사명을 안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 사명을 내가 수행해 나아갈 때 그 결과는 어찌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함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명이란 어찌할 수 없는 것이고, 또한 그 결과 역시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 일이란 게 의도대로 되질 않죠. 의도가 좋다고 반드시 당장에 좋은 결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 문성환, 『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 290쪽



‘의도’에 따른 행동과 그에 따른 결과를 연결짓는 것은 습관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자면 ‘인과율’이란 하나의 가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어떤 원인이 필연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는다. 그렇지만 그 사이엔 어떤 심연과 같은 것이 있어서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언제든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워낙 자주 그러한 일(원인-결과)이 있다보니 거기에 ‘필연’을 덧붙이게 된다. 이것이 다만, 물리적 세계에서만 그러하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대개는 이것을 다른 모든 것들에 확장하고 만다. 이를테면, 어느 때고 다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사람 사이의 관계나, 마음의 운동과 같은 것들에까지 말이다.


몇 해전부터 언제나 마음 속에서 맴도는 단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순명’(順命)이라는 단어다. 그러니까 운명에 복종한다는 뜻이다. 얄팍하나마 깨달은 바도 있고, 그리하지 않으면 도무지 살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끔씩 화가나고, 허무감이 엄습해 올 때, 마치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운명에 복종하리라는 다짐을 하곤 했다.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일을 두고 그렇게 된 원인을 아무리 찾아봐야 그런게 나올 리가 없다. 그저 자기 해석 아래에 갖가지 누더기를 기워 붙이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공자가 ‘하늘의 뜻을 안다’는 말로 표현한 바도 그러한 게 아닐까 싶다. 손을 떠난 일에 미련을 두면, 쉽게 말해 살아지질 않는 것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오늘’을 살 수가 없게 된다. 오늘을 살지 못하면 살아 나아갈 수가 없다. 죽지 않는 다음에야 삶이 괴로워질 것은 뻔한 일이다.



그래서 마음을 좀 바꿔 먹으려고 애를 써봤다. 지금도 딱히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낫다. ‘나아진’ 게 아니라 ‘낫다’. 이 차이는 관점을 차이인데, 말하자면 조금 살만해졌다는 뜻이다. 마음을 바꿔 먹은 바 내용은 이러하다. 못된 소리 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줄인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내게 해를 끼치는 것들을 안간힘을 써서 잊어버린다. 그리고 의도에 따라 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빨리, 최대한 빨리 포기해 버린다.


이제야 그걸 알게 되었다. ‘순명’의 첩경이은 ‘망각과 포기’에 있다. 물론 어떤 상태의 개선이나 (이른바) 진보는 운명을 개척하려는 태도, 혹은 의지에 따라 어떻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아갈 바로 남겨두면 될 일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느 하나로 인생 전체를 퉁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되지도 않겠지만 되지 않는다 하여서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동시에 그렇게 된다면 그 때문에 분명 마음 어딘가에 번뇌가 남으리라. 요지는 결국 순(順)하게 사는 수밖에 없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