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정화스님 멘토링] 적게먹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적게먹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1. 소식(小食)하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질문1. 소식(小食)을 해야 하는데, 소식을 잘 하지 못하고 어느 순간 폭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폭식을 하다가 다시 절식하는 패턴을 반복하게 됩니다. 꾸준히 소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스님 : ‘소식-폭식-절식’하는 패턴이 계속되면 별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음식을 맛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맛없게 만든다는 것은 요리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전부 날 것으로 먹는다는 뜻입니다. 그 중 밥은 예외입니다. 밥은 여러 잡곡을 넣어서 해야 합니다. 그렇게 밥을 해서 김치하나만 놓고 나머지 반찬은 전부 요리하지 않은 것들로 계속 씹어 먹되, 오래 씹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먹을 때에는 우리의 위장에서 뇌로 신호를 보내게 됩니다. 위장에 있는 신경세포가 척수를 통해서 뇌의 전두근까지 오는 것이죠. 이 신호는 먹는 즉시 뇌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먹자마자 ‘배부르다’는 신호를 보내면 신체에서는 많이 먹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반면 전달되는 신호가 늦은 경우는 대부분 많이 먹게 되어 과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몸은 머리로 전달되는 신호를 스스로 조절합니다.

그리고 위장은 늘어나고 줄어드는 폭이 크기 때문에, 대개 식단을 꾸준히 조절하면 위장이 서서히 줄어듭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는 예전보다 훨씬 적게 먹었는데 더 빠르게 ‘배부르다’는 신호가 머리로 전달되는 것이죠. 우리가 천천히 오래 씹고 있어야만 위장이 신호를 잘 알아챌 수 있습니다. 아직은 ‘배부르다’는 신호가 늦게 전달되지만, 그래도 천천히 씹으면 평소보다 훨씬 빨리 감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학인들 : 천천히 먹으려고 해도 이미 목구멍 뒤로 넘어가 있습니다.^^;

 

스님 : 어디 하루아침에 바뀌겠습니다?(허허)

 

 

2. 저는 어떻게 살아온 걸까요?

 

질문2. 저는 20대를 혼돈상태로 보낸 것 같습니다. 제가 누군지도 몰랐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런 것들이 딱히 고민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외부환경에 맞춰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 후, 결혼하고 10년쯤 지나 힘든 시기도 있었는데 또 어쩌다보니 지나가고 그러다 2-3년 전부터는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그 전에 제가 힘들었을 때는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궁금합니다. 

 

  

스님 : 일반적으로 우리가 유전자를 받을 때, 정해진 형태로 받는 것도 많지만 이번 생에서 발현되는 것과 발현되지 못하는 것을 결정하는 ‘코드’가 있습니다. 정자, 난자만 해도 이 코드에 ‘차압 딱지’ 같은 것이 붙어있습니다. 이 유전자는 내 몸에 있을 때 발현되지 말라고 붙여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 붙어있는 차압 딱지가 모두 떨어집니다. 그래서 사람이 만들어 지는 것은 부모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정란’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굉장히 자율적이라고 생각하지만 태어나는 것은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양수의 농도에 의해서도 유전자는 바뀝니다. 이렇게 수정란은 태어나는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신경세포는 어른의 150%-200%가 많습니다. 그 후 20세가 되면, 지금 어른의 신경세포정도로 줄어듭니다. 이처럼 20살 이전까지는 혼란스러운 상태가 계속 되어 세포들이 어디로 어떻게 발현될지 모릅니다. 특히 사춘기 시기에는 신경세포가 연접을 만들어 자기만의 삶의 지도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이 지도가 계속 바뀌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도 저녁에 생각해보면 아침에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를 때가 있었습니다. 사실 내가 그때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아는 후손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수정란의 신경세포들이 계속해서 환경의 영향을 받아 이리저리 바뀌기 때문이죠. 이렇게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자기 나름대로 세상사는 길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 길이 강화되고 나머지 10%에서 50%정도 죽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자기의 길을 만들 때 외부의 다른 것을 나의 길인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은 40-50대가 되면 ‘나는 왜 이렇게 살아왔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외부의 영향을 지나치게 많이 받은 사람들은 사춘기에서부터 자기가 살아온 날까지의 기억을 의도적으로 없애기도 합니다. 이것은 병이죠. 내 안에 있는 외부의 힘을 잘 보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들면 그 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데, 그것을 감당해내지 못하면 기억자체를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소년기는 어쩔 수 없이 하라는 대로 지나왔고, 결혼하고 애들 키우다가 혼자 서게 되는 40-50대 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라고 생각하는 과정을 지나게 됩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3. 어렸을 때의 안 좋은 기억이 지금까지 따라다닙니다.

 

질문3 : 어렸을 때의 안 좋은 기억이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은 딱히 특별한 상황이 없는데도 자꾸만 스스로를 고통에 넣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스님 : 보살님은 감정의 아픈 측면만 보도록 하는 통로가 강화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감정체계 중 80%는 어떤 감정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10%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게 되어있고, 나머지 10%는 나쁜 쪽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상을 주는 것을 의미하고 나쁜 쪽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에게 벌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벌주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벌주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발바닥에 감각이 전부 없어졌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칼을 밟고 다른 날카로운 것들을 밟아도 우리가 인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유쾌하지 않은 감정도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기분 나쁘고 유쾌하지 않은 감정은 이상한 감정이 아닙니다. 하지만 좋게 받아들이는 감정과 나쁘게 받아들이는 감정이 감정체계의 10%로 동일한데, 여기에서 자꾸만 자신에게 벌을 주는 방향으로 감정의 통로를 강화하게 되면 자신에게 상 주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니 문제가 되죠. 이때에는 자신에게 상을 주는, 즉 감정을 좋게 받아들이는 훈련을 계속 해야 합니다.

 

또 이런 분들은 내성적인 분들이 많습니다. 내성적인 성격도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들보다 좀 더 면밀하게 사건을 대하곤 합니다. 그래서 내성적인 성격의 사람들은 일을 시작하긴 어렵지만 한 번 일을 하겠다고 결정하면, 그 강도는 외향적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세게 작용합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부분에 있어서는 외향적인 성격이 잘할 수 있지만 사건을 깊이 있게 판단하는 것은 내향적인 사람들이 유리합니다. 이렇게 사람의 성격에 따라 각자 다른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내향적인 사람들 중에는 간혹 ‘친구를 많이 사귀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우관계를 넓히면 안 됩니다. 여러 사람과 친한 것이 좋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때에는 ‘나는 몇 사람과 친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니면 혼자 있는 것도 좋습니다! 


내가 원하는 상태로 있는 것이 충분히 이상하지 않고 그 상태가 나에게 상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여러 사람과 어울리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나에게 계속해서 벌을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기본적으로 혼자 있는 것이 좋은 사람들은 여러 사람과 사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취미생활을 하면 됩니다. 주변에서 왜 친구가 없느냐고, 친구 좀 사귀라고 하면 그 사람이 틀린 말을 하는 겁니다. 친구를 많이 사귀는 것이 정답이 아니고 내향적인 사람에게는 친구를 많이 사귀지 않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래서 혼자 있거나 친구를 많이 사귀지 않는 것이 이상한 상태가 아니라고 계속해서 자신에게 말을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리_소민(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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