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친절한 강의 중용』 - 정치의 핵심은 제 힘으로 인재를 얻는 데 있다

『친절한 강의 중용』

- 정치의 핵심은 제 힘으로 인재를 얻는 데 있다



그런데 ‘취인이신’(取人以身), 사람을, 인재를 얻는 것은 ‘신’(身)으로 한대요. 이럴 때 ‘신’은 ‘군주의 몸’인데, 결국 군주의 인격이란 뜻이에요. 군주가 ‘수신’한 그 수준, 그러니까 자기가 직접 그걸 발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돼요. 이걸 표현하는 데 ‘몸 신’자를 썼습니다. 정치를 하는 데 핵심은? 인재를 얻는 것! 그런데 사람을 취하는 것은 어떻게? 그 몸으로, 스스로! 이때 ‘신’이 곧 군주 자신이에요. 이건 누가 대신 못해줘요. 인재를 취하는 것은 군주 자신이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군주의 수준이 그 나라의 수준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군주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수신’을 해야죠. 자기 자신의 수준을 높여야만 그 국가를 같이 경영할 인물이 보일 테니까요. 그런 인물이 옆에 있어도 알아볼 만한 수준이 안 된다면, 큰 정치는 시작도 못해 보는 겁니다.

- 우응순 강의, 『친절한 강의 중용』, 2016, 북드라망, 199쪽


‘법치’는 근대 정치의 토대다. ‘토대’라는 말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과 같다. ‘법’에 따라 통치하냐, 마냐는 더 이상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말인즉, 이러한 이념에 따르자면, 그 ‘법’의 운용자가 누구든지 간에 사회에 야기되는 ‘변화’의 폭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까 이제는 (이념에 따르면) 누굴 대통령으로 뽑든 전체 사회의 안정성에는 큰 변화가 없어야 맞다. 그런데 어디 그런가? 어떤 형태로, 또는 강도로 ‘시스템’을 만들어 놓아도 운용자가 이상한 짓을 하면 시스템은 무력화된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듯이 말이다. 



지금은, 어쩌면,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지도 모를 이야기다. 그러니까, 결국엔 ‘군주’의 수준이 높아야 한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게 단순한 ‘옛날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다. ‘군주’가 아니어도 똑같다. 어떤 ‘인간’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 인간을 볼 것이 아니라 그의 주변을 보면 된다. 무얼 좋아하는지, 누구와 만나는지 같은 것들이 그 인간을 말해 준다. 말하자면, ‘관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주변이 훌륭한 사람이라면, 자신도 훌륭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자신이 훌륭해지지 않는다면, 훌륭한 사람과 어울릴 수 없을테니까. 반대로, 자신이 훌륭하다면 자연스럽게 훌륭한 관계들이 구축되지 않겠나. ‘인재’를 얻는 것은 언제나 그런 과정을 따른다.


어쨌거나, 우리는 지금 그 놀라운 일들을 목도한 이래로 나날이 훌륭해져가고 있는 듯 보인다. 일단, 그렇게 보이기는 하는데, 여기서 더 생각해 봐야한다. 정말로 나아지고 있는 것인지 말이다. 인용문의 말대로, ‘군주는 나라의 수준’을 반영한다. 근대적인 습관에 따라 보자면, 근대인은 누구나 자신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는다. 피안의 진리를 각자(개인)의 개인의 진리로 나누어 갖고 난 후부터 인간은 자신을 두려움 없이 진리의 자리에 놓았다. 따라서 이제 그것은 아예 ‘습관’이 되었는데, 그런 이유로 거기에서는 ‘사유’가 작동하지 않는다. ‘사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그것은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다시’ 검토하는 힘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확신’이 없다. 바깥으로 향하는 관심을 다시 자기 안으로 끌어오는 능력이기도 하다. ‘수신’(修身)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하여서, 나날이 나아지는 듯 보이는 것을 진짜로 나아지게끔 하는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이 일의 성패는 단지 누군가를 ‘바꾸는 일’이 아닌 것 같다. 각자 ‘수신’이 성공하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게 아니라면, 또 언제라도 이 놀랍고도 어이없는 광경을 다시 보게 될지 모른다. 


친절한 강의 중용 - 10점
우응순 강의/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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