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청년백수, 무엇이 되어 어떻게 살 것인가

『청년백수 자립에 관한 한 보고서』 

무엇이 되어 어떻게 살 것인가


이제껏 학교에서 마음을 참되게 하기 위해 공부하라는 가르침은 단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출세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쩝!

- 류시성 · 송혜경 외 13인의 청년백수 지음, 『청년백수 자립에 관한 한 보고서』, 64쪽


… 모든 청년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내 집 마련인 셈이다. 그런데 이 목표를 달성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집값이 엄청나게 비쌀 뿐만 아니라 집 안에 채워 넣을 물건이나 집의 크기를 늘리고자 하는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 같은 책, 188쪽



어릴 때 본 어느 뉴스에서 큰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맥락이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데, 당시 독일이 꽤 불경기였던 모양이다. 뉴스는 ‘불경기임에도 독일 수험생들이 철학과로 몰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학생과의 인터뷰, 한국 기자가 학생에게 ‘불경기임에도 철학과에 진학하려는 이유는?’하고 질문을 던졌다. 쇼킹했던 것은 학생의 대답이었다. ‘불경기니까요. 어딜 나와도 취업이 어려울 바에야, 본질적인 학문을 전공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싶었습니다.’ 대략 이런 맥락의 인터뷰였다. 아, 그때 나도 수험생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가뿐하게 하고 싶은 걸 선택하는 ‘선진국’ 학생이 부러웠던 것과 동시에 암울하기만 한, 나의 수험생으로서의 미래가 몹시 걱정되었더랬다.

 

지금 떠올려보면, 아…,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그날의 그 장면이 내 인생에 지금까지도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일단, 경기변동에 비교적 적게 영향 받고, 될 수 있으면 안 받는 인생을 살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할 계획이니 이 공부를 하겠다’는 식으로 공부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냥 잡히는대로 흥미 가는대로 읽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보면 딱히 이게 공부라거나, 저건 노는 것이라거나 하는 구분이 없어진다. 그런 성향들을 떠올릴 때마다 20년 전, 독일 수험생의 인터뷰 장면이 떠오른달ᄁᆞ.

 

말하자면 그렇다. 자주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갖고 싶은 것도 많고, 살고 싶은 집은 지천으로 널렸고, 내 주머니에 돈은 언제나 부족한 법이다. 그뿐인가, 돈만 부족하다면 뭐 그럭저럭 벌어서 어떻게 해보겠지만, 자식으로서, 배우자로서, 부모로서, 선배로서, 후배로서 나 스스로는 원하지 않지만, 꼭 해야만 하는 것들은 얼마나 많은지……. 세상은 언제나 내가 진행하는 방향의 역으로 흐르는 것 같다. 그렇게 반대로 가해지는 힘을 견디며, 혹은 헤치며 사는 게 인생인 것 같다.

 

그리하여서,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들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제 몸을 불려서 힘에 힘으로 맞서기도 하고, 누군가는 스스로 송곳이 되어서 뚫고 가려고 한다. 아예 휩쓸려 가는 경우도 있다. 나는 (실제로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닌 듯 하지만) 될 수 있으면 작아지길 바란다. 작지만, 뿌리는 튼튼하게 박고 있어서, 뭐가 지나가는 지도 모르는 채로 살았으면 좋겠다. 이게 가장 깊은 내면의 욕망은 아닐텐데, 현재로서는 내가 관찰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나의 가장 내밀한 욕망 중에 하나다.

 

이번주 내내 본업과 거리가 먼 집안일로 바쁘고, 컨디션은 바닥을 기다보니 문득 그때 생각이 자주 난다. 어디든 간에 손에 쥘 수 없는 것에 ‘내 것’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세금’을 내는 순간, 내 욕망을 거스르는 흐름이 더욱 강해지는 법이다. 그리하여 몸에서 힘을 뺄 수도 없고, 멋지게 웃을 수도 없고, 잠깐 발 떼고 어디를 다녀올 수도 없다. 말하자면, 자유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셈인데, 될 수 있으면 덜 그렇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청년백수 자립에 관한 한 보고서 - 10점
류시성.송혜경.13인의 청년백수 지음/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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