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임신톡톡] 임신 3~4개월, 태를 꽃피우는 두 개의 경맥



셋째 넷째 달, 태를 꽃피우는 두 개의 경맥



 

주술, 하늘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


상고시대 갑골문에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라든가 임신을 했는가?’를 점친 내용이 남아 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런 것도 점쳤나 싶지만, 고대인들에게 점이란 미신이 아니라 내가 하늘과 소통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행위였다. 그것은 천지가 나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로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안의 이기심을 내려놓는 방편이기도 했다. 물론 점을 칠 때 꼼수를 가지고 치면 꽝이다.


친자 확인을 점을 쳐서 한 재미난 기록도 있다. 그 당시에도 남자들은 아이가 내 아이인가를 의심스러워했다. 요즘으로 치면 유전자 검사인 셈이다. 점을 쳐서 친자 확인을 했고, 결과가 나오면 의심하지 않고 승복했다. 점사(占辭)를 믿는 것은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우주의 이치를 따르겠다는 우주 상응적 태도이다. 이것은 임신이 개인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라 천지가 내려준 선물로 여겼기에 점을 신뢰했던 것이다.


상고시대 사람들은 갑골문에 점을 쳤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 '임신을 했는가?' '내 아이가 맞는가?'


고대부터 인간은 태어나고 죽음을 궁금해 했으며, 그것을 알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 중 생명의 탄생은 그 자체로 신비로운 것이었다. 고대인들은 영혼이 새의 모습이 되어 어디론가 떠나고 다시 새롭게 온다고 여겼다. 새 모습을 한 영혼은 생명의 원리를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담겨야 할 그릇이 반생명적이라면 영혼은 오지 않는다고 보았다.


모든 경우에 해당 된다고 볼 수는 없지만, 만약 아이를 낳지 못한다면 영혼이 깃들지 못하게 막는 악령의 소행으로 보았다. 즉, 내 몸이 탐진치로 막혀 있기 때문에 악령을 불러들여 영혼의 소통을 막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임신하거나 아이가 태어나면 악령이 깃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옥을 쥐여 주고,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기와 조각을 손에 쥐여 준다. 새로 태어난 영은 힘이 약해 악령이 잘 붙으니 옥과 기와가 영을 지키라는 뜻이다. 그 밖에도 영을 지키기 위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이마에 문신을 새기기도 했다.


생명의 탄생, 영혼의 소통, 우주의 이치


이 시대의 말은 그 자체가 신(神)이었다. 그것은 천지를 소통하게 하는 기운으로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 고안된 것이 문자였다. 하여 문자란 신이 깃듦의 표시이자 생명을 탄생하게 하는 힘이다. 생명의 탄생은 바로 우주의 소통을 전제하고, 문자란 우주의 이치가 드러난 형식인 셈이다. 문자를 사용하는 이상 인간은 동물처럼 본능에 충실하게 살 수가 없다. 아니 인간의 본능이 바로 앎의 의지라고 볼 수 있다.


성경도 ‘태초에 말이 있었다.‘로 시작하고 있다. 말이란 인간에게 절대적 생존 조건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보았던 점을 치는 것, 청정한 몸에 영혼이 깃들게 하는 것, 옥과 기와를 쥐게 하는 것, 문신을 세우는 행위 등 모든 것이 하늘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것은 우주의 이치를 알았기에 할 수 있었던 실천이기도 하다.



무형에서 유형을 꽃피우는 두 개의 경맥

 

사족이 길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 이치를 모르면 바로 악령이 깃들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명이 깃들고 자라는가를 알아야 인간답게 사는 길이 열린다. 이제 보이지는 않지만, 태가 자라는 과정을 만나야 할 시간이다. 저번 연재에서는 봄의 기운인 목()을 주관하는 족궐음간경맥과 족소양담경맥이 태를 기르는 시간이었다. 이제 목의 역할은 끝났고 화()의 시간이 도래했다. 쉽게 말해 봄이 가고 여름이 온 것으로, 화를 담당하는 수궐음심포경(셋째 달)과 수소양삼초경(넷째 달)이 태를 기르기 시작한다.


수궐음심포경(手厥陰心包經)은 석 달째, 100일이 지나야 작동하는 경맥이다. 동양에서 숫자는 단순히 수량을 표현하지 않는다. 3×9=27에서 3은 천지인 세 가지의 기운을 뜻하고, 9는 꽉 찬 기운(10이 되는 순간 다시 제로에서 시작한다.)으로 그 둘이 만나서 27이란 기운을 만든다. 27이란 천지인 3가지의 기운이 성숙한 기운 9를 만나서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어떤 변화냐 하면 무형에서 유형이 되는 것이다.


또한, 273번의 변화(27×3)를 거치면서 100일에 이른다. 그러니까 임신 100일이 되면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생겨난 씨앗이 남녀를 구별할 수 있는 형체가 되어 마치 꽃처럼 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생명이 꽃피게 하는 역할을 수궐음심포경이 주관한다. 수궐음심포경이 피워낸 인간 꽃 모양은 다음과 같다. 콧물 속에 흰 실 같은 것이 사람의 형체인데, 잘 보면 코와 생식기가 뚜렷하게 구분되고 몸체가 갖추어져 남녀가 구분되는 모습으로 인간의 형상이 꽃 피듯이 펼쳐진다.


생명을 꽃피게 하는 "수궐음심포경"


수궐음심포경에서 심포(心包)란 어떤 형체를 지닌 장부가 아니다. 심장을 싸는 포대기라는 이름인데, 심장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심보가 고약하다는 등의 표현을 하는데, 그때 심보가 바로 심포를 말한다. 심포 경락에 문제가 생기면 놀부처럼 마음이 꼬이고 못된 심성이 발동한다한의학에서 심장은 피를 주관하며 동시에 마음과 감정을 주관하는 곳이다. 그곳을 심포가 감싸고 있으니 심포는 심장의 아바타인 동시에 마음과 몸을 연결하는 전령사이다.


심포에 문제가 생기면 산모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태가 불안해진다. 그래서 이때 태가 가장 잘 동한다고 한 것이다. 10달 중 셋째 달이 심포락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간인 만큼 감정 조절에 신경을 써야 한다. 보통 임신 셋째 달까지 유산을 조심하라는 것도 심포락이 감정에 잘 동요하기 때문이다.


태의 혈맥을 생성시키는 "수소양삼초경"


이제 넷째 달이 되어 수궐음심포경수소양삼초경(手少陽三焦經)에게 배턴을 넘긴다. 수소양삼초경에서 삼초(三焦)는 현대의학에는 없는 기능으로 몸의 순환을 의미한다. 삼초는 크게 배꼽 아래, 배꼽, 가슴을 말하고 란 불을 태운다는 뜻이다. 같은 기운이라도 위치에 따라 하는 일이 달라지는데, 상초엔 폐와 대장이 자리하며 그곳의 기운은 종기로 호흡순환기와 관련된다. 중초엔 비위와 간담이 자리하고 그곳의 기운은 중기로 소화기를 담당한다. 마지막으로 하초엔 신장과 대소장이 자리하며 그곳의 기운은 원기로 생식 및 배설과 관련된 역할을 한다.


이렇게 엄마의 상, , 하초가 생명의 씨앗인 수 기운에 화 기운(‘가 불을 태운다는 것을 기억하시죠?)을 부여하여 태의 혈맥을 생성시킨다. 그때 형태가 갖추어지고 육부가 차례로 만들어진다. 만약 삼초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수액대사와 온화(溫化) 작용이 원활하지 않게 되어 태가 불안정하게 된다.



태를 안정시키는 두 개의 약

 

셋째, 넷째 달은 형태가 생기는 시기로 유산의 위험이 있는 달일 수밖에 없다. 흙을 빚어 무엇을 만들었다고 치자. 그것이 굳고 안정될 때까지 매우 조심조심하지 않겠는가. 이때 유산이 우려된다면 두 개의 약 처방을 떠올려야 한다. 금출환과 안태음.


임신을 하면 비위의 운화작용이 약해져서 습이 생길 수 있는데 습이 열을 발생시킨다. 운화란 운송, 수송을 의미한다. 위장에서 소화된 것을 비장이 다시 소화, 흡수하여 각 장부로 수송한다. 이때 영양분뿐 아니라 수액을 수송하여 장기에 공급한 뒤 남은 수액을 신장으로 보내 배출하게 된다.


그런데 운화기능이 원활하지 않으면 영양분과 수액이 잘 공급이 되지 않고 안개처럼 몸 안이 습으로 가득 차서 열이 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태가 굳어지지 못하고 열로 인해 불안정하게 되어 유산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때 금출환은 열을 내리고 비위를 튼튼하게 하여 몸에 습이 생기지 않도록 하여 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또한, 유산은 임산부의 혈기가 부족하여 태아를 영양하지 못해 생기므로 혈을 생성하여 태를 잘 기르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때 먹는 약이 안태음이다.



인간답게 살려면 이치를 알아야

 

오늘은 임신 10개월 중에 여름에 해당하는 셋째, 넷째 달에 심포맥과 삼초맥이 태를 기르는 과정과 만났다. 봄에 새싹을 틔우고 여름에 꽃을 피우듯이 10개의 경맥이 태를 양육하고 키우는 과정 자체가 우주의 이치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솔직히 동물과 다르게 인간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매우 복잡하다는 생각이 든다. ‘꼭 이치를 알아야 하나?’하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사유하는 이상 동물처럼 확 그냥 막 그냥 살 수가 없다. 동물은 생각하지 않아도 본능에 따라 움직이지만, 인간은 천지의 이치를 삶에서 생각하고 실천해야 인간의 길을 비로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부모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인간이 되지 않을 거면 배울 필요가 없다면서 혼내시던 기억. 난 요즘 인간답게 사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는 중이다.


그렇지만 멀리 갈 것도 없다. 동의보감이야말로 매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질문이자 답을 담은 책이다. 보이지도 않는 10달 동안 태를 기르는 과정에서도 우주의 원리를 읽어내고 오행의 스텝을 밝히고 있으니. 왜 보이지도 않는 세계를 일일이 밝히는 수고를 했겠는가. 이치를 알아야 인간답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글_박장금(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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