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임신톡톡] 임신, 자연지를 기르고 만나는 시간



몸과 우주가 만나는 시공간

- 열 달 동안 태 기르기 -



비밀지(秘密智)와 자연지(自然智)


멕시코의 고원지대에 사는 위촐족은 ‘페요테 사냥’이라는 특이한 의식을 치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선인장의 일종인 페요테에는 강력한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그러나 이 선인장은 아무 곳에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까지 가지 않으면 페요테를 발견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해마다 위촐 사람들은 원정대를 구성해 페요테 사냥을 위한 길을 떠난다. 



원정대에는 이 사냥길에 처음으로 참가하는 젊은이도 포함되어 있다. 이 젊은이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페요테의 환각작용을 체험하는 셈이므로, 신성한 식물을 만나는 자격을 얻기 위해 아주 혹독한 이니시에이션의 시련이 부과된다. 마시는 것도 먹는 것도 극도로 억제하고 몸을 깨끗이 한 채, 선배들의 엄격한 지도에 따라 길고 고통스런 여행을 해야만 한다. 


그런 고된 여행 끝에 마침내 신성한 선인장을 만난 그들은 산속에서 식물이 일으키는 환각작용을 체험하는 의식을 은밀히 거행한다. 이때 그들은 신비한 내면공간을 체험하게 된다. 모든 형태가 유동적인 것이 되고 색채가 선명해지며 빛이 어지럽게 교차해, 마치 광대한 우주공간을 떠다니는 듯한 엄청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페요테와 같은 환각성 식물은 그것을 섭취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마음)으로의 여행을 체험하게 하는데, 그때 ‘내면’으로 불리는 공간은 바로 유동적 지성(무의식)이 활발한 활동을 하는 곳의 한가운데에 해당한다. 이렇게 ‘페요테 사냥’이라는 의식은 유동적 지성의 운동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대칭성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또 다른 이상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위촐의 순례자들에게 깊이 인식시키려고 하는 셈이다. 


국가를 갖지 않은 사회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 가운데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생각해온 것은 이런 ‘숨겨진 지혜’였다. 그것은 공동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어른들에 의해 소중히 보관되었다가 자격을 인정받은 젊은이만이 혹독한 이니시에이션 의식을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대면이 허용되는, 매우 특별한 지식체계였다. 그런 지혜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들의 ‘마음’의 기층인 유동적 지성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고자 했다. 



그렇다면 ‘지혜’의 획득에는 비밀스러운 격리나 엘리트적인 집단이 항상 필요한 걸까? 그렇다면 지혜는 남자들만으로 이루어진 비밀결사의 성격을 띤 집단의 전유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여기에 대해 위촐족을 조사한 한 인류학자가 흥미로운 보고를 했다. 


페요테 사냥에 참가가 허용된 사람은 경험이 풍부한 나이 든 체험자와, 이제부터 이니시에이션을 거쳐 페요테의 비밀에 동참하고자 하는 기개가 높은 젊은이들, 그리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소수의 여성 주술사다. 일반 여성은 보통 참가하지 않는다. 남자들이 페요테 체험을 위해 순례길에 오른 몇 주일 동안, 여자들은 마을에 남아서 모험의 길을 떠난 남자들의 무사안녕을 빈다. 그런 다음 여자들은 마을 입구로 나가서, 마침내 지칠 대로 지쳐서 돌아온 용기 있는 남자들을 맞이한다. 그때 마중 나간 사람 가운데 경험이 풍부하고 박식한 한 여성에게 인류학자가 묻는다. 


“남자들은 저런 식으로 귀중한 지혜를 찾아 모험을 떠납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마을에서 그들을 기다릴 뿐입니다. 뭔가 불공평하지 않나요? 여성은 그런 지혜에 다가갈 권리를 부여받지 못한 셈이니, 차별받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이 질문에 대해 마을의 여성이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가엾게도 남자들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혜에 다가갈 수가 없는 거예요. 하지만 여자는 그냥 자연스럽게 그것을 알죠.”


남자들이 몰래 손에 넣었으면 하고 그토록 바라던 ‘비밀지’(秘密智)라는 것은 목적지에 도착하고 보니, 거기에는 처음부터 ‘자연지’(自然智)가 기다리고 있다가 남자들의 영웅적인 행위를 따뜻하게 맞아준다. 그렇게 해서 비밀결사적인 ‘비밀지’와 내추럴한 ‘자연지’는 결국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다. 


‘비밀지’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혹독한 이니시에이션의 시련을 거쳐야만 한다. 하지만 ‘자연지’는 특별한 훈련이나 고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극히 자연스럽게 우리 ‘마음’의 내부로부터 발생하는 대칭성 무의식의 작용에 따라 일상생활을 원만하게 해나감으로써,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나카자와 신이치, 『대칭성인류학』, 동아시아, 149~159쪽 정리)  



‘열 달 동안 태 기르기’는 자연지를 기르고 만나는 시간


위촐족 여성들이 경험하는 자연지는 어떤 것일까?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가운데 그야말로 내추럴하게 터득하게 되는 자연지는 무엇일까? 몇 년 전, 나카자와 신이치의 『대칭성인류학』을 읽었을 때 나에게 떠올랐던 질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지혜라고만 어렴풋이 생각되었지, 과연 그것이 어떤 것일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그런 자연지를 발휘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나, 이렇게 묵혀둔 질문은 시절인연을 만나 다시 나의 머리에 떠올랐다. 『동의보감』에 나와 있는 이 문장을 보면서 말이다.  


부인이 회임한 1개월째는 족궐음간경맥이 태아를 기른다. 2개월째는 족소양담경맥이 기른다. 3개월째는 수궐음심포경맥이 기른다. 4개월째는 수소양삼초경맥이 기른다. 5개월째는 족태음비경맥이 기른다. 6개월째는 족양명위경맥이 기른다. 7개월째는 수태음폐경맥이 기른다. 8개월째는 수양명대장경맥이 기른다. 9개월째는 족소음신경맥이 기른다. 10개월째는 족태양방광경맥이 기른다. 모든 음양경맥이 각각 30일씩 태아를 기르는데, 수태양소장경맥과 수소음심경맥만이 기르지 않는 것은 이들 두 경맥이 아래로는 월경을 주관하고, 위로는 유즙을 만들어서 태아를 기르고 산모를 보양하기 때문이다. 사계절의 시령(時令)이 봄에서부터 시작되듯이 태아를 기르는 것도 간담에서부터 시작된다. 임신부는 매달 주관하는 경락에 침이나 뜸을 놓아서는 안 되는바, 침이나 뜸을 놓으면 반드시 유산한다.


─ 「잡병편」, 부인, 법인문화사, 1,645쪽


『동의보감』에서는 임신을 하게 되면, 열 달 동안 족궐음간경맥(木)에서 시작해 족소양담경맥(木), 수궐음심포경맥(火), 수소양삼초경맥(火), 족태음비경맥(土), 족양명위경맥(土), 수태음폐경맥(金), 수양명대장경맥(金), 족소음신경맥(水), 족태양방광경맥(水)의 순으로 태아를 기른다고 한다. 그렇게 경맥이 태를 기르는 동안 해당 경맥에 침이나 뜸을 쓰면 태가 떨어질 수 있으니, 임신 중에는 함부로 침이나 뜸을 사용하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고 있다. 


또 십이경맥 중 수태양맥과 수소음맥은 특정한 달을 주관하지 않는데, 이 두 경맥은 심장과 소장으로서 충·임맥(충·임맥에 대해서는 ‘자식을 얻으려면 척맥을 보라’편을 참조)과 표리가 된다. 아래로는 월경을 담당하고 위로는 젖을 내어 태아를 기르고 임신부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헌데 가만히 보면, 열 달 동안 태를 기르는 경맥의 순서는 오행의 상생원리인 목→화→토→금→수 순이다. 이것은 사계절의 차서와도 같다. 봄은 계절의 시작이며 만물이 발화하는 시간이다. 그것은 오행상 목(木)이라는 부호로 나타내고 여기에 해당하는 장부는 간과 담이다. 하여 맨 처음 태를 기르는 것은 족궐음간경맥이다. 이로써 보건대, 태가 길러지는 생명창조의 시간 또한 사계절의 흐름과 같이 가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동의보감』의 언표를 면밀히 살펴보면, 열 달 동안 태를 기르는 주체는 엄마가 아니라 경맥이다. 생명창조의 시간을 능동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은 경맥인 것이다. 그래서 잉태의 전체적인 메커니즘을 설명한 이 언표는 참으로 낯선 풍경을 자아낸다. 몸이 우주적으로 확장되고, 잉태가 우주적 사건이 되는 풍경이 펼쳐진다.


야첵 예르카(Jacek Yerka)의 ‘사계(Four Seasons)


경맥은 몸과 우주가 관통하는 통로다. 그 통로를 통해 기혈이 교류되면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러니 족궐음간경맥이 태를 기른다는 말은 엄마의 족궐음간경맥과 우주의 족궐음간경맥, 곧 목기(木氣, 생기)가 교류하면서 생명을 기른다는 말이다. 하여 생명은 몸과 우주가 함께 만든다. 생명은 오로지 엄마아빠의 작품이 아니라 몸과 우주가 만든 것이다. 고로, 우리 모두는 몸과 우주가 낳은 아이다. 


그러니 아기를 임신해서 태를 기르는 시간은 몸과 우주가 만나는 시간이다. 경맥을 통해 몸 안팎의 기운이 소통되면서 세계의 일부가 아니라 전일성을 가지면서 운동한다. 우주와 하나가 되어 태를 기르는 것이다. 하여 이 시간은 생성과 능동성으로 충만한 시간, 내 안의 자연과 접속하는 시간, 자기 내면의 지혜와 접촉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그렇다. 이 시간이야말로 위촐족 여성이 말하는 자연지를 기르고 만나는 시간이다. 


임신한 여성이 이 지혜와 접촉한다면, 여성의 몸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아기를 안전하게 지키고, 조산을 방지하고, 임신중독증을 예방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문화적인 환경은 여성들로 하여금 타고난 여성의 지혜에 접촉할 시간을 망각하게 한다. 타고난 지혜와 힘을 잊어버리고, 테스트와 기계에 의존하는 전문가에게 자신들을 내맡기도록 이끈다.(크리스티안 노스럽,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한문화, 327~329쪽 정리)  


그러니 여성들이여! 임신을 음미하고 축복하자. 아기를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막대한 창조성에 연결될 수 있는 최초의 경험이며, 자기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힘을 배울 수 있는 환상적인 기회다. 이 절호의 기회, 자연지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누리자. 생명창조의 과정은 몸과 우주가 접촉하는 시간이므로 여성의 자궁은 새로운 시공간이 열리는 장소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는 이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놀랍고도 거대한 이야기들이다. 매달마다 각 경맥을 통해 몸과 우주가 벌이는 창조의 드라마를 기대하셔도 좋다. 여성들이여! 우주의 뿌리를 탐사하듯 이 자연스러운 열림을 아기와 함께 열어가자. 



글_이영희(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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