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임신톡톡] 임신 9~10개월, 형체와 기운의 균형


형체를 단단하게, 기(氣)를 충분하게




아홉째 달, 석의 정기를 받아 뼈마디가 완전해진다 


그 산꼭대기에는 신령한 돌이 하나 있었는데, (중략) 이 바위는 하늘과 땅이 열린 이래로 항상 하늘의 참된 기운과 땅의 빼어난 기운, 그리고 해와 달의 정화를 받아들였지요. 그런데 오랫동안 그런 것들에 감응하다 보니 마침내 신령하게 통하는 마음이 생겨나서, 안으로 신선의 태(胎)를 키우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돌이 쪼개지면서 돌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둥근 공만 했어요. 그 돌 알은 바람에 노출되어 깎이다가 모양이 돌 원숭이처럼 변했지요. 

─오승은, 『서유기』 1권, 서울대학교 서유기 번역연구회 옮김, 솔 출판사, 34-36쪽


『서유기』에 서술된 손오공의 탄생 과정이다. 저팔계‧사오정과 함께, 삼장법사를 모시고 서역으로 경전을 가지러 가는 돌 원숭이. 그 멀고 험난한 여정에서 마주치는 각종 요괴를 제압하고 마침내 임무를 완성하는 천하무적 손오공. 그는 돌(石)의 정기를 받아 돌 알로 태어난 것이다. ‘암 그러면 그렇지 그런 능력을 갖춘 존재라면 이 정도 탄생 비화쯤은 필수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우리에게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탄생 비화^^가 있다.


돌의 정기를 받다


족소음신경맥이 태아를 기른다. 처음으로 석(石)의 정기를 받아서 피부와 털, 모든 뼈마디가 완전해지고 몸을 세 번 돌린다.

                                                 「잡병편」, ‘婦人’, 법인문화사, 1,647쪽


돌은 단단하고 형체가 분명하다. 아홉째 달에는 태아도 이 석(石)의 정기를 받아 형체를 단단히 하게 된다. 그러기에 손오공 정도는 못 되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세상에 득시글거리는 온갖 요괴(!)들 틈바구니에서도 어지간하면 80년 정도는 버티는 걸 보면 말이다. 어쨌든 이 과업은 족소음신경맥(足少陰腎經脈)이 맡았다. 족소음신경맥은 신장의 수(水) 기운과 소음의 화(火) 기운이 복합된 경맥이다. 우선 신장의 수 기운은 어떤 일을 할까?


“신(腎)은 골(骨)을 주관하고 골수(骨髓)를 생성하며, 그 정화(精華)는 두발에 나타난다.” (배병철, 기초한의학, 180쪽) 신장이 골을 주관한다는 것은 인용문에서 말한 뼈마디를 완전하게 하는 것과 연결된다. 신장은 또한 조혈기능을 하는 골수를 생성하는데, 골수가 혈액을 충분히 만들어내면 그것이 모발을 검고 윤택하게 한다. 또한, 신장은 피부를 주관하는 폐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폐에서 흡입한 산소를 받아들여 몸 깊숙이 당겨주는 것이 신장이다. 신장의 기운이 함께 도와야만 호흡이 원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기능을 통해 신장의 기운은 태아의 골격과 피부를 완전하게 하고 모발을 온전히 갖추게 함으로써 형체를 분명히 해준다. 단단한 신체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형체를 단단하게~ 족소음신경맥


다음으로 소음군화(少陰君火). 군화는 군주의 불로 우리 몸의 체온을 유지한다. 바깥 온도가 변해도 일정한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군화 덕분이다. 불은 양이고 물은 음이기 때문에 불은 위로 치솟고 물은 가라앉게 된다. 이렇게만 되면 몸이 과열되어서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다. 몸은 항상성 유지를 위해, 불은 아래로 내려가서 물을 데워주고 데워진 물은 위로 올라가 다시 불을 식혀준다. 이것을 수승화강(水昇火降)이라고 한다. 여기서 족소음신경의 소음군화가 신장의 물을 데워 위로 올라가 심장의 불을 식혀주는 것이다.


따라서 아홉째 달에 태를 기르는 족소음신경은 겉으로는 태아의 뼈마디를 완전하게 할 뿐만 아니라, 안으로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능인 물과 불의 순환작용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한다. 그리하여 단단하면서도 순환이 잘 이루어져 항상성 유지가 가능한 생명체가 된 것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몸을 세 번 돌리는” 것이다. 동양에서 1은 하늘을, 2는 땅을, 3은 사람을 의미한다. 이제 하늘과 땅의 기운이 만나 한 사람이 창조되었다는 뜻으로 태아가 몸을 세 번 돌린다고 본 것이다. 



열째 달, 족태양방광경이 안팎을 통하게 한다


족태양방광경맥이 태아를 기른다. 기(氣)를 충분히 받아서 오장육부가 다 통하고, 천지(天地)의 기(氣)를 단전(丹田)에 받아들여 관절과 신기(神氣)가 다 갖추어지게 한 다음 때를 기다려 낳게 된다. 오직 수소음심경과 수태양소장경이 맡은 달이 없는 것은 이들이 특별히 따로 하는 일이 없는 것(無爲)뿐이다. 

                                                               「잡병편」, ‘婦人’, 법인문화사, 1,647쪽


아홉 달 동안 오장육부가 생겨나고 골격이 그것을 감싸고 거기에 살이 붙고 털로 덮을 곳은 덮고. 이제 남은 것은 머지않아 독립된 개체로 살아갈 수 있는 기능을 완전히 갖추는 것. 지금까지는 엄마가 먹어서 소화한 정기를 에너지 삼고 엄마가 호흡하여 받아들인 천기로 호흡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법. 독립해야 한다. 스스로 먹고 소화하고 배출해야 하고 호흡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에 “기(氣)를 충분히 받아서 오장육부가 다 통”한다는 것은 오장육부가 각각의 기능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서로 간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즉, 섭취한 음식물이 비위의 기능에 의해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정미 물질로 바뀌고, 이것이 폐로 전달되고 오장육부는 모두 그 기를 받아 생명을 유지한다. 즉, 인체는 각 조직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생명체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단전은 대해(大海)라고도 하는데 여기에는 정(精)과 혈(血)이 저장되어 있으며 열두 경맥이 모두 이곳 단전에 매여 있다. 따라서 단전은 오장육부의 본원이며 12경맥의 근본이 되고 호흡의 문이 된다.”고 한다. 이러한 단전에 천지의 기를 받아들여 정신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신기(神氣)가 다 갖추어지게 한 다음 때를 기다려 낳게 한다.


기를 충분하게~ 족태음방광경


결국 족태양방광경(足太陽膀胱經)은 지금까지 길러온 태아에게 충분한 기가 안팎으로 통하게 하여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이를 위해 12경맥 중 가장 넓은 분포도를 가지고 있고 가장 많은 혈자리를 가진 방광경맥이 머리 꼭대기(百會)에서 새끼발가락 끝(至陰)에 이르기까지 몸 전신을 흐르며 태를 기른다.


그런데 열 달 동안 태를 기르는 과업에 빠진 경맥이 있다. 수소음심경(手少陰心經)수태양소장경(手太陽小腸經)이 그것이다. 이 둘은 도대체 무얼 한 걸까? 인용문에서는 이 두 경맥이 “맡은 달이 없는 이유는 특별히 따로 하는 일이 없는 것뿐”이라고 했는데, 얼핏 보면 아무 일을 안 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특별히 따로 맡아서 하는 일이 없을 뿐이지 나름 할 일은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는 심장과 소장의 경맥이다. 심장은 전신에 혈액을 공급해주는 기능을 하며 소장은 소화된 음식물의 영양분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소음(심경)은 군화로 뜨거운 불이고, 태양(소장경)은 한수(寒水)로 차가운 물이다. 심장의 군화는 몸을 데우고 소장의 한수는 데워진 몸을 식힘으로써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이 두 경맥은 특별히 어떤 달을 맡아 기르지만 않을 뿐, 열 달 내내 모체가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면서 혈액과 영양을 공급받아 태아를 기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준다.



달이 지나서 낳은 아이는 부귀하고 장수한다


달이 지나서 낳은 아이는 부귀하고 장수한다. 그러나 달이 차지 않아서 낳은 아이는 빈천하고 일찍 죽는다. 일설에는 달이 지나서 낳으면 반드시 귀한 아이를 낳는다고 하였다. 

                                                               「잡병편」, ‘婦人’, 법인문화사, 1,647쪽


태아가 달이 지나서 태어나면 부귀하고 장수하며, 달이 차지 않고 태어나면 빈천하고 일찍 죽는다고 했다. 여기서 부귀하다는 것은 물질을 많이 가진 부자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의학적으로 부귀하다는 것은 기운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이 없이 균형을 이루어 오장육부의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밖으로는 천지자연과 교감하며 그 리듬을 타면서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 없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형체가 충실해도 기가 쇠약하면 일찍 죽고, 형체는 충실해도 골격이 작으면 일찍 죽는다. 혈기와 경락이 형체를 감당할 만하면 오래 살고 그렇지 못하면 일찍 죽는다. 형체와 기운, 골격이 크다고만 좋은 것은 아니다. 그것들이 서로 감당할 만해야 한다. 즉 균형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만 그것들 사이에 순환도, 안팎의 교감도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아홉째 달과 열째 달을 거치며, 태아는 단단해진 형체를 갖추게 되고, 기를 충분히 받아들여 온몸에 돌게 하여 오장육부가 서로 통하게 된다. 그러나 형체가 감당할 만한 기를 돌게 해야 하고 기가 감당할 만한 형체를 갖추어야 부귀하고 장수한다. 다른 인생사도 마찬가지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을 맡아야 그 일을 즐겁게 할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짝을 만나야 피차 고생이 덜하다. 이 균형이 깨질 때 온갖 문제들이 생겨난다.



글_오창희(감이당)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