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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무너지는 척추를 잡아주는 버팀목, 목기운을 가진 속골(束骨)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4. 4.

허물어진 중심에게, 속골(束骨)을!


헛... 친구 아버지는 허준의 후예?


희한한 진단법?!


내가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한 친구의 아버지는 한의사셨다. 메기수염을 길게 기르고 늘 한복을 입으셨는데, 가끔 학교에 와서 아이들을 무료로 진찰해주시곤 했다. 몸이 좋지 않아 아저씨한테 가면, 먼저 양 손목을 잡힌다. 손가락을 얹어 지그시 잡으시고는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고르셨다. 침을 놓을 때는 눕힌 상태에서 배를 이리저리 눌러보기도 한다. 그렇다, 이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한의학의 진단법이다. 맥진(脈診)과 복진(腹診). 맥을 짚거나, 배를 눌러보거나, 환자의 안색을 관찰하는 것(망진).


맥과 손끝의 감각으로 균형이 무너진 곳을 찾아내는 아저씨의 기술은 실로 신기했지만, 누구든 하루아침에 그런 능력이 생길 수는 없다. 우선 맥을 짚을 촌, 관, 척 각각에 해당하는 장기를 알고 있어야 하고, 왼손과 오른손이 다르다. 또 맥이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뛰는지, 잡힐 듯 말듯 약한지, 깊이 가라앉았는지, 튀어나올 듯 생생한지 모두 느껴야한다. 이런 맥의 차이를 분별하려면 무엇보다 많은 경험이 중요하다. 무턱대고 맥을 짚고, 배를 눌러본들 돌아오는 것은 그저 개구리 뛰듯 팔딱이는 맥과, 소화 안 된 점심밥이 꾸룩대는 소리뿐이다.


그러니 책을 보고 맥을 잡아보아도, 이게 팽팽한 건지, 느슨한건지, 빠른지 느린지 아리송한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진단법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실용적이기 그지없다. 바로 '수혈(兪穴)진단법'이다. 수혈이란 유혈이라고도 부르는데, 척추를 따라 등에 위치한 12개의 혈자리다. 등뼈를 따라 내려가며 주먹으로 두드려보면, 아픈 장부를 알 수가 있다고 한다. 등을 두드리는 것만으로 진단을 할 수 있다고? 정말? 이 쌈박한 진단법은 어찌해서 가능한 걸까? 궁금하지 않으신지? 그럼 지금부터 12수혈의 세계로 떠나보자. ^^ 


등에 숨은 6장 6부(六腸六腑), 12수혈


그간 오수혈에 익숙해진 독자라면 눈치 채셨을지 모르겠지만,(만약 잘 모르신다면 '오행의 스텝, 오수혈' 참고 : http://www.bookdramang.com/350) 12수혈은 오수혈에서 정형수경합의 수(兪)와 같은 한자를 쓴다. 하지만 오수혈은 아니며, 따로 구분되는 12개의 혈자리로 방광경에 속해있다. 등에 모여 있기 때문에 배수혈(背兪穴)이라고도 한다. 족태양방광경은 몸의 뒷면을 지배한다. 12경맥 중 가장 많은 혈을 갖고 있으며, 그 영역 또한 가장 넓다. 눈 안쪽에서 시작해 이마를 타고 뒤통수를 넘어, 등줄기를 따라 발끝까지 내려간다. 이때 등을 타고 내려가는 라인에 바로 심수, 격수, 독수, 간수.....수혈들이 줄줄이 이어져있다. 


그런데 등에 있는 수혈은 사실 19개다. 엥? 앞에선 12개라고 해놓고 웬 19개? 그 중에서도 12경맥처럼 6장 6부(六腸六腑)와 연결된 혈자리만 추린 것이 12수혈이기 때문이다.  수혈은 해당 장기의 기운이 나타나는 혈이다. 가령 간수(肝兪)의 경우, 간의 상태를 나타내며, 또 그 위치가 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폐수(肺兪), 심수(心兪) 등도 다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12수혈은 어떻게 해서 장부의 병증을 나타내게 되는걸까? 


십이수혈(배수혈) 사진. 심수, 독수, 격수 등이 심유, 독유, 격유로 나와 있다.


황제내경 – 소문(素問) 중에서 풍론(風論)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풍중오장육부지유(風中五臟六腑之兪), 역위장부지풍(亦爲臟腑之風), 각입기문호소중(各入其門戶所中), 직위편풍(則爲偏風).

─ 황제내경, 소문, 풍론


이것을 풀어보면, 풍은 오장육부의 수혈(兪穴)을 통하여 몸 안으로 침입함과 동시에 오장육부에 전달된다.(장부에 풍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왼쪽이나 오른쪽, 위쪽이나 아래쪽 중 어느 한 수혈(兪穴)로 들어오므로 편풍(치우쳐 든 바람)이라고 일컫는다는 말이다. 즉, 모든 경혈이 그렇듯 수혈도 척추를 두고 좌우대칭으로 혈이 존재한다. 그 중 어느 한쪽으로 외사가 들게 마련이고(왼쪽, 오른쪽), 또 12수혈 중 어느 한 곳으로 들어 올테니(위쪽,아래쪽) 편풍, 즉 치우친 풍사라고 한다는 말이다. 이쯤해서 어려운 원문은 넘어가자.(;;)


중요한 것은 수혈이 외사(外邪)가 들어오는 대문(門戶)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병이 장부로 들어간다는 것은 이미 병세가 상당히 오래됐음을 말한다. 양병은 체표에 머무르며 급하게 앓고 낫는 것과 달리, 음병은 장부로 들어가 은근하게 지속된다. 바로 만성병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병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우리 몸의 앞뒤를 음양으로 구분하면 배가 음이요, 등이 양이다. 그러니 등으로 양병이 나타나고, 배로 음병이 올 것 같은데, 양병은 배 쪽에 있는 혈로 증상이 나타나고, 음병이나 만성병은 등에 있는 유혈로 진단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대비되는 것을 통한 음양의 조화가 병증의 발현에도 있는 거다.


그런가하면 또 난경(難經) 육십칠난(六十七難)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수(兪)는 오장의 기(氣)를 옮기는 작용(作用)을 영위하는 혈위이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기를 옮기는 것은 양(陽)의 작용이다. 그래서 수혈은 배부(背腑)에 있는 것이다.” 수혈은 장부의 기(氣)를 옮기는 역할을 하는데, 기(氣)는 양(陽)에 해당하므로 12수혈이 등에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등, 양기의 통로


네발로 기어다니던 시절, 인체 내부에서도 음양이 나뉘어졌다.


위에 살짝 말했듯이 등은 양(陽)의 영역이다. 왜일까? 그 비밀은 아주 먼 옛날, 인간이 네발로 기어 다니던 시절에 있다. 하늘은 양이요 땅은 음이다. 무릎과 손을 땅에 대고 기고 있으면 내리쬐는 햇빛을 받는 부분은 등허리였다. 그래서 양기는 등 뒤로 흐르고, 음기는 배 쪽으로 흐른다. 그 음양의 큰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임맥과 독맥이다. 몸 앞에 흐르는 임맥은 음기를, 등 뒤로 흐르는 독맥은 양기를 실어 나르는 가장 큰 고속도로라고 봐도 무방하다.


양기를 대표하는 독맥은 꼬리뼈에서 시작해 척추 바로 위를 지나 머리를 넘어 윗입술에서 끝난다. 그래서 양기가 세면 허리가 굽는다고도 한다. 잔뜩 굽은 허리로 지팡이를 짚고도 큰소리를 치며 바쁘게 움직이시는 할머니들, 어딘가에서 한번쯤은 보셨을 거다. 또 독맥이 윗입술에서 끝나기 때문에 양기가 세면 윗입술이 두껍다고 했다. 그래서 맹금류인 독수리는 윗부리가 아랫부리를 덮는다. 상어도 위턱이 월등히 발달했다. 반면에 붕어나 펠리컨처럼 사납지 않은 동물은 위아래가 그만그만하거나 아래턱이 더 크다. 


아.. 저 엄청난 기운장이 독맥에서 나오는 것이란 말인가!!!


그런데 양기는 외부로 발산하는 에너지이기 때문에, 사실 그 뜨거운 힘을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다. 어릴 적 드래곤볼 같은 만화영화에서 한번쯤 보셨을 거다. 언제나 분노하는 주인공의 등 뒤에는 붉은 오오라가 생겨나지 않던가. 그래서 우리 몸엔 절묘하게도, 독맥이 지나는 척추 양 옆에 방광경이 있어 물길을 대주는 것이다. 양생의 모토는 한결같이 수승화강이지 않던가. 물길과 불길의 조화, 그것을 잃으면 각종 병에 시달리는 것이다. 불면, 냉증, 두통, 굽은 자세까지도.


중심실종, 척추를 세워라!


척추는 신장에서 만들어낸 정기가 오르내리는 통로이자, 뼈가 가지고 있는 수기운(水氣)의 강한 응축력을 가지고 있다. 척추 바로 위를 지나는 독맥의 강한 양기에도 끄떡없음은 물론, 머리와 몸을 가누고 세우는 중심축이다. 걷고 움직이는 모든 행동의 축인 것은 물론, 척추에 붙어있는 흉골과 갈비뼈 안에는 장부가 들어있다. 


소장은 뒤로 등뼈에 붙어있고, 배꼽에서부터 왼쪽으로 첩첩이 돌아 아래로 내려간다.

─ 『동의보감』,「내경편」,<소장부>, 법인문화사, 2012, p.432


대소장계는 횡격막 아래에서 등뼈와 심장, 신장, 방광을 이어주고 있으며, 지막과 근락이 퍼져서 대소장을 싸고 있다. 그러나 각각 구분이 되어 방광에 얽혀있는데, 그 속은 기혈과 진액이 도는 길이다. 

─ 『동의보감』,「내경편」,<대장부>, 법인문화사, 2012, p.434


등은 가슴속의 심폐(心肺)가 거처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등이 구부러지고 어깨가 처지면 심폐의 기가 장차 상할 것이다.

─『동의보감』,「외형편」,<등>, 법인문화사, 2012, p.731


척추는 이처럼 장부가 달라붙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척추가 무너지면 그야말로 장기가 압박을 받는다. 12수혈이 장부와 통한다는 말은 단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척추가 무너지면 어깨가 안으로 굽는다. 비스듬히 구부정한 자세는 어딘지 애처롭거나 자신이 없어 보인다. 자신의 에너지(精氣)를 끌어올릴 통로가 막히니 생기가 없어진다.


어유... 앉은 자세 보아하니 척추도 알만하다...


폐가 눌리면 숨쉬기도 답답하고, 좋지 않은 자세로 계속 앉아있으면 변비도 생긴다. 그뿐인가? 어깨가 굽으면 목도 앞으로 튀어 나온다. 목이 뻣뻣해지면 두통도 자주오고 어지럽기도 하다. 고등학교 때 수업하기 싫어 휘청대는 아이들에게 담임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있었다. ‘벽에 기대지 않고 허리 똑바로 펴고, 인사 잘하고, 밥만 감사히 먹어도 너희 인생은 성공한 거다.’ 당시엔 도사님 같은 말씀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가끔 생각이 난다. 아, 그때 아이들의 비틀어진 자세를 안타까워 하셨던 선생님께 이 혈자리를 알려드렸다면 좋았을 것을.. ^^;


쭉쭉 뻗어라, 속골(束骨) 


멀리도 돌아왔다. 드디어 오늘 만나볼 혈자리는 바로, 속골(束骨) 되겠다. 속골은 족태양방광경(足太陽膀胱經)의 수(兪)혈로 목(木)의 성질을 가진다. 족태양방광경이 태양경, 즉 양경이므로 양목(陽木)의 기운이다. 갑목(甲木)처럼 쭉쭉 뻗는 성질이라 할 수 있다. 속골. 이름을 풀어보면 속(束)이라는 한자가 나무(木)를 다발(口)로 묶는다는 뜻이며, 골(骨)은 뼈를 나타낸다. 그래서 속골(束骨)은 족태양방광경의 뼈에 관련된 병을 파악하여 묶는 혈이며, 방광경의 수(兪)혈을 총괄하는 주치혈이다. 여기서 방광경의 수혈이란 물론 앞에 나왔던 12수혈이다. ^^ 속골의 위치는 새끼발가락 바깥쪽 툭 튀어나온 뼈의 뒷부분으로 손으로 눌러보면 약간 오목하다. 또 손바닥이나 발바닥의 붉은 살과 손,발등의 흰 살이 만나는 경계선을 적백육제(赤白肉際)라 하는데, 속골도 먼저 혈의 위치를 찾은 뒤 적백육제를 찔러주시면 되겠다. 


붉은 동그라미안에 위치한 혈자리가 바로 속골(束骨)


속골은 새끼발가락에 있지만 강력한 목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목의 성질은 생장(生長), 승발(昇發), 조달(條達)이다. 모두 위를 향해 뻗어가는 모습이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쭉 뻗어나가는 기운은 척추 옆 방광경맥을 타고 틀어진 중심을 꽉 잡아줄 것이다.  더불어 속골에는 열을 내리고 습(濕)을 내보내는 효과가 있으며, 전광병(癲狂病/정신병)이나 머리가 아프거나 뒷덜미가 뻣뻣하거나 허리와 등 및 다리 아래의 뒤쪽이 아픈 것 등을 주로 치료한다고 한다.


(束)이라는 한자를 자세히 보니 문득 척추 뼈 사이에 들어있는 디스크 모양 같기도 하다. 나무가 든든히 서있는 모습, 마디를 지어 꼭 동여맨 모습. 이 글자가 속골이라는 혈에 괜히 쓰이진 않았을 거다. 어느 책에서 보니 태극권에서 기본으로 삼는 자세란 정수리와 꽁무니가 대롱으로 꿰뚫은 듯 일치하는 자세라고 한다. 그걸 읽으니 문득 동의보감에서 생각나는 대목이 있다.


'등 뒤에 삼관이 있다'는 것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답하기를, '머리 꼭대기를 옥침관(玉枕關)이라 하고 등뼈의 양옆을 녹로관(轆轤關)이라 하며, 수(水)와 화(火)가 맞닿는 곳(신장)을 미려관(尾閭關)이라 하는데, 곧 정기가 오르내리는 길이다'라고 하였다.

─『동의보감』,「외형편」,<등>, 법인문화사, 2012, p.730



그렇다. 관이라는 것이 머리에 하나, 등에 하나, 신장이 위치한 아래 허리에 하나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정을 주고받기 위한 통로다. 정기가 잘 다니려면 이 세 관의 위치가 틀어져서는 안 될거다. 태극권의 기본자세 역시 다른 동작을 하기에 앞서 중심을 잘 세우라는 말일 테다. 굽어진 어깨, 답답한 가슴, 변비, 두통, 이런 것들이 항시 따라다니는 당신이라면, 속골과 한번 중심을 찾아보시는 게 어떠한지?


조현수(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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