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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몸 속 화열(火熱)을 식히는 물의 계곡, 통곡(通谷)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4. 11.

바람 맞은 날, 통곡(通谷)하자!



지금 이 시각, 나는 침을 꽂고 글을 쓴다. 글이 얼마나 써지지 않으면 저렇게 발악을 하는가 싶겠지만 그게 아니다. 이유가 있다. 나는 화요일마다 산에 간다. 그런데 이번 주 화요일, 청명(淸明:하늘이 점차로 맑아진다는 절기. 정말?)으로부터 사흘 뒤인 4월 9일. 이것이 정녕 봄바람인가 되묻고 싶은 바람과 마주했다. 아마도 이날 밖에 나가보신 분들은 기억하시리라. 마치 ‘폭풍(暴風)’을 연상시키듯 천지를 뒤흔드는 바람. 이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산을 탔다. 산정상은 바람으로 가만히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서둘러 산을 내려와 평소처럼 씻고 밥을 먹고 한숨자고 일어나자 머리를 바늘로 쑤시는 것 같은 통증이 찾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 쪽으로 열감이 느껴지더니 눈까지 아파왔다. 이 상태에서 원고를 써야했던 것.


그런데 이게 무슨 인연인가. 이번에 내가 써야하는 혈자리 통곡(通谷)이 몸의 열을 내리고 두통을 치료하는 명혈이 아닌가. 하여 급히 양쪽 통곡에 침을 찌르고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이것이 침을 꽂고 글을 써야했던 나의 곡절이다. 하나의 물음이 생겼다. 글이 삶을 만드는가. 삶이 글을 만드는가. 이 양자택일할 수 없는 어리석은 물음에 난 ‘간혹은 글이 삶을 만든다’라는 답을 얻었다. 적어도 이번 경우만큼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바람이 나를 덮치고, 몸에 열을 불어넣고, 두통에 시달리게 할 수 있었겠는가. 급기야는 통곡에 침을 찌르고 글을 쓰게 만들 준비를 이미 이 글이 내 삶에 부여한 것은 아니었겠는가. 이 묘한 운명의 덮침 속에서 오늘은 통곡과 두통의 관계를 탐사한다.

두통의 메커니즘


내게로 불어 닥친 바람(風), 그것은 어떻게 두통을 유발했는가. 먼저 이 운명의 고리부터 풀어보자.


두통은 흔히 담(痰)과 관련되지만 통증이 심한 것은 화(火)가 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토하게 할 것도 있고 설사시켜야 할 것도 있다. 여러 경맥의 기(氣)가 막혀도 두통을 일으킨다. 두통에다가 눈까지 아픈 것은 풍담(風痰)이 위로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동의보감』, 「두(頭)」, 법인문화사, p.577


두통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셋이다. 담(痰)과 화(火)와 경맥(經脈)의 기(氣). 그러나 잘 따지고 보면 모두 화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선 담의 문제. 이미 여러 번 보셨다시피 담은 몸의 진액이 열에 의해 졸여진 상태를 의미한다.(자세한 담-이야기는 후계혈을 참조할 것) 즉, 두통의 원인으로 지목된 담이 만들어지는 건 화와 동류(同類)인 열(熱)과 관련된다는 것. 문제는 이렇게 생겨난 담이 몸의 순환통로-경맥의 기를 막음으로 인해서 열이 몸 전체로 퍼져나간다는 점에 있다.


아이구 머리야! 열로 인한 두통인가?


주지하듯이 경맥은 온몸을 감싸고도는 기혈(氣血)의 순환통로다. 기혈은 몸을 따듯하게 만드는 기능을 수행하는데 기혈이 막혀서 흘러가지 못하면 몸은 따듯한 것을 넘어 뜨거워진다. 경맥이 막혀서 발생한 이 뜨거운 열기는 위로 올라가기 마련인데 이것이 머리에 머물면서 두통이 유발된다는 것. 결국 담과 화와 경맥의 기 가운데 두통이 생기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화(火)인 셈이다. 그럼 우리들의 문제, 바람은 어떻게 두통을 일으키는가의 실마리가 잡힌다. 바람(風)은 어떻게 화(火)를 만드는가라고 다시 질문해야 하는 것. 화(火)가 두통을 만드는 것일 테니까.


풍사(風邪)가 피부 사이에 머물면 안으로는 경맥이 통하지 않고 밖으로는 위기(衛氣)가 빠져나가지 못한다. (중략) 만약 땀구멍이 열리면 양기가 외부로 빠져나가 오한이 나고, 땀구멍이 닫히면 양기가 내부에서 울결 되어 신열(身熱)·번민(煩悶) 증상이 발생한다.


-『황제내경』, 「소문」, <풍론>


핵심은 바람의 기운(風邪)으로 인해 땀구멍이 닫히면 따뜻한 양기(陽氣)에 해당하는 위기(衛氣)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내부에서 엉키고 막혀서 열(熱)을 발생시킨다는 것. 이 열이 경맥을 타고 온몸에 전해지면서 신열(身熱)로, 번민(煩悶: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운 것)으로 발전한다는 것. 반대로 바람으로 인해서 땀구멍이 열리고 따듯한 위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버리면 덜덜덜 떨리는 한기(寒氣)가 찾아온다는 것. 따라서 바람을 심하게 맞으면 한기가 찾아오거나 온몸에 열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내 경우엔 땀구멍이 막혀서 생긴 열로 인해 두통이 발생했던 셈이다. 즉, 열이 담(痰)을 만들고 다시 경맥을 막으면 두통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이라는 것. 그런데 여기에 우리들의 관심사인 경맥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바람(風)은 양사(陽邪)다. 양의 기운을 가진 사기라는 것. 양의 기운은 항상 이리저리 움직여 다니고 위로 올라가려는 성질을 가진다. 또한 일정한 방향 없이 이동하고 변한다. 그래서 『황제내경』에서는 양사인 풍(風)을 이렇게 정의했다. “바람은 잘 돌아다니고, 자주 변한다.(風者, 善行而數變)” 실제로 풍병(風病)에 걸리면 몸이 이곳저곳, 여기 아팠다 저기 아팠다, 이 병인가 싶으면 저 병인가를 반복한다. 바람의 생리를 병 또한 그대로 밟는 셈이다.


그런데 경맥의 차원에서 보자면 양사인 풍(風)은 양경맥(陽經脈)으로 들어온다. “풍사가 양의 부위에 잘 침입한다는 것은 풍사가 인체의 상부, 양경(陽經)과 기부표면에 잘 침입한다는 뜻이다.”(배병철, 『기초한의학』, 성보사, p.353) 우리 몸에서 양경맥은 모두 여섯 개. 이 여섯 개의 양경들은 모두 두부(頭部), 즉 얼굴과 머리 쪽으로 모인다. 결국 양경맥을 타고 들어온 풍사가 얼굴과 머리로 올라가서 열을 발생시키고 두통을 유발하는 것이다. “삼양경병에는 두통이 있으나 삼음경병에는 두통이 없다.”(『동의보감』, 「두(頭)」, 법인문화사, p.577) 라고 한 것도 이 맥락에서다. 두통은 양병(陽病)이다. 그렇다면 통곡은 이 두통을 어떻게 치료한다는 것인가.


통곡- triple 水, 물의 바다


水氣 가득한 천부혈 통곡, 내 몸속의 바다.


두통을 잡기 위해선 먼저 화(火)를 잡아야 한다. 火를 잡는 방법 가운데 가장 확실한 건 火를 극하는 水를 이용하는 것. 통곡(通谷)이 두통을 잡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엄청난 水의 기운을 가진 혈자리라는 점에 있다. 통곡은 족태양방광경의 형혈(滎穴)이면서 오행상 水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지난 번 위중(委中)에서 살펴봤듯이 족태양방광경은 태양한수(太陽寒水)와 水의 기운인 방광이 만나는 경맥이다. 몸에서 가장 차가운 경맥인 것. 여기에 통곡의 오행, 水가 더해지면 水(태양한수)-水(방광의 오행)-水(통곡의 오행)의 형국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우리 몸에서 가장 강력한 水의 기운을 가진 혈자리가 되는 것. 이렇게 오로지 하나의 오행으로만 구성된 혈자리를 경혈에서는 천부혈(天符穴)이라고 부른다.


우리 몸의 365혈(穴) 가운데 천부혈은 여섯 개다. 우리가 이미 배운 혈자리 가운데 상양(商陽), 태백(太白), 소부(少府)가 천부혈이었다. 상양(商陽)은 金, 태백(太白)은 土, 소부(少府)는 火로만 구성된 천부혈이다. 여기에 통곡(通谷)-水과 앞으로 다룰 지구(支溝)-火, 대돈(大敦)-木이 합쳐져 총 여섯이다. 천부혈은 오직 하나의 오행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그 작용력 또한 엄청나다. 가령 상양(商陽)은 건조한 金의 기운으로 몸의 습(濕)을 말리고, 태백(太白)은 비옥한 土의 기운으로 몸을 살찌운다. 소부(少府)는 뜨거운 火의 기운을 가지고 있기에 한증(寒證)에 많이 쓰이고 반대로 통곡은 水의 기운이 강하므로 열증(熱證)에 쓰인다. 지구(支溝) 또한 火의 기운으로 몸의 열을 불어넣고 대돈(大敦)은 뻗어나가는 木의 기운으로 몸에서 막힌 곳을 뚫는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이 혈자리들을 보(補)하는가 사(瀉)하는가에 따라서 그 작용력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가령 상양을 보하면 金의 기운이 강력해져서 습(濕)을 제거해주지만 사하면 마른 사람들에게 살이 붙기도 한다.(조만간 천부혈 특집을 다뤄야 할 듯!^^)


열로 인한 두통에는 특효인 통곡혈


통곡 또한 이렇게 작동한다. 통곡을 보하면 몸에 찬 물 기운을 줘서 열(熱)로 인해 생기는 두통, 충혈 등을 치료한다. 반대로 사하면 몸에서 찬 물 기운을 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몸이 따듯해진다. 특히 족태양방광경이 지나는 허리를 따듯하게 만들어서 통증을 완화시킨다. 통곡이 두통을 잡는 것은 바로 이러한 원리에 의한 것. 그렇다면 통곡은 모든 두통에 다 좋은 것인가. 일단은 열에 의해서 생긴 두통에는 통곡이 특효다. 하지만 두통의 세계 또한 혈(穴)의 세계처럼 다종다양하다. 잠시 두통의 종류들을 음미해보자.


두통에는 정두통(正頭痛), 편두통(偏頭痛), 풍한두통(風寒頭痛), 습열두통(濕熱頭痛), 궐역두통(厥逆頭痛), 담궐두통(痰厥頭痛), 열궐두통(熱厥頭痛), 습궐두통(濕厥頭痛), 기궐두통(氣厥頭痛), 진두통(眞頭痛), 취후두통(醉後頭痛) 등이 있다.

─『동의보감』, 「두(頭)」, 법인문화사, p.577


여기에 나열된 두통만 해도 11가지나 된다. 헌데 머리가 아프다고 약국에 가면 거의 대부분 비슷한 두통약을 처방받는다. 그렇다. 우리, 두통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러니 이참에 두통들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고 가자. 일단 정두통은 기(氣)가 위로 올라가서 생기는 두통이다. 눈과 목덜미가 같이 아프다. 편두통은 머리의 반쪽이 아픈 두통이다. 오른쪽이 아프면 담(痰)과 열(熱)의 조합인 경우가 많고 왼쪽이 아프면 풍(風)이나 혈(血)이 부족해서 생긴다. 당연히 치료법도 달라야 정상이다. 


풍한두통은 말 그대로 풍(風)과 한(寒)의 합작품으로 추위에 부들부들 떨면서 머리가 아픈 증상이다. 습열두통은 몸에 습(濕)과 열(熱)이 많아서 생기는 것으로 머리가 아프면서 가슴이 답답한 것이 특징이다. 궐역두통, 담궐두통, 열궐두통, 습궐두통, 기궐두통은 기(氣), 담(痰), 열(熱), 습(濕) 등이 머리로 치밀어 오르면서 생기는 두통들이다. 궐역두통은 찬 기운이 위로 치솟아서 두통과 치통이 같이 생긴다. 담궐두통은 담으로 인해 몸이 무겁고 속이 메슥거리면서 두통이 동반된다. 기궐두통은 머리가 아프면서 귀에서 소리까지 나고 열궐두통은 열이 올라서 몸이 불타는 듯 하고 찬바람-맞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습궐두통은 머리가 무겁고 어지러우면서 머리가 아픈 두통인데 비가 오거나 날씨가 흐리면 심해진다. 술 마시고 다음날 생기는 두통도 한 부류로 자리 잡는다. 이른바 취후두통(醉後頭痛). 가장 골치 아픈 것은 진투통이다. 진투동은 사기(邪氣)가 뇌로 들어가서 생기는 두통인데 머리가 아프면서 온 뼈마디가 다 아프다. 그러다 손발의 차가운 기운이 팔꿈치와 무릎 관절까지 이르면 죽게 된다. 두통이 진짜 사람 잡는다!


이 많은 두통 가운데 통곡은 정두통(正頭痛)을 잡는다. “족태양경맥은 이마로 올라갔다가 정수리에서 교차하고 바로 뇌로 들어가 얽힌 다음 그 별락(別絡)이 목덜미로 내려간다. 따라서 그 병증은 기(氣)가 위로 쳐 올라서 두통이 생기고 눈이 빠질 듯이 아프며, 목덜미도 빠질 듯이 아프다.”(『동의보감』, 「두(頭)」, 법인문화사, p.577) 내 경우처럼 풍->열->기의 상승->두통이 발생한 경우에다 눈이 빠질 듯이 아픈 경우가 바로 정두통이었던 것. 통곡에 침을 맞지 않을 수 없는 구조였던 것. 그렇다면 정두통을 다스리는 통곡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두통은 새끼발가락으로 잡는다


붉은색으로 표시된 곳이 바로 족통곡


통곡(通谷)은 새끼발가락에 있다. 말로는 참 이 위치를 설명하기 곤란한데 새끼발가락이 시작되는 첫 번째 뼈, 바로 밑에 움푹 들어간 곳이 통곡이다. 통곡의 이름은 소통(通)시키는 골짜리(谷)라는 뜻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이어지는 방광경의 소통을 통곡이 관장한다는 것. 그런데 이 새끼발가락에 있는 통곡은 주로 족통곡(足通谷)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왜 그런 것인가. 통곡이라는 이름을 가진 혈자리가 배에 또 있기 때문이다. 배에 있는 통곡은 복통곡(腹通谷)이라고 부른다. 이 복통곡은 우리가 다음에 다룰 족소음신경의 혈자리로 배에 있는 만큼 소화기관인 비위(脾胃)를 튼튼하게 만든다. 말이 나온 김에 위치라도 알아두자. 복통곡은 배꼽으로부터 손가락 일곱 개 넓이 위에 있다.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면 여기를 눌러보는 것도 좋다. 


붉은색으로 표시된 곳이 바로 또 하나의 통곡인 복통곡.


『동의보감』에는 ‘기(氣)가 머리에서 어지러울 때, 전광(癲狂)이 있을 때’ 통곡에 침을 놓는다고 적고 있다. 기가 어지러운 것은 풍(風)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이미 살펴본 대로다. 양사(陽邪)인 풍이 몸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닌다는 것. 반면 전광(癲狂)은 흔히 정신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의학에서는 火의 작용으로 본다. 통곡은 강력한 물 기운으로 머리에 떠 있는 것들을 아래로 가라앉힌다. 


이밖에도 통곡은 머리에 열이 떠서 코피가 터지는 것, 목구멍이 열로 인해서 허는 것, 뒷덜미가 뻣뻣하게 굳고 아픈 것 등을 치료한다. 재밌는 것은 자주 하품하는 것을 통곡이 치료하기도 한다는 것. 옆 사람이 하품을 너무 자주하면 새끼발가락을 꾹 눌러주시라.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통곡이 화열(火熱)로 인해 발생하는 몸의 문제를 고치는 혈자리임을 기억하는 것. 그 메커니즘을 기억하는 것이다. 화열(火熱)을 끄는 물의 바다, 바람 때문에 생긴 두통, 여기엔 반드시 통곡을 기억하자. 바람 맞은 날, 통곡(通谷)하라! 


옆 사람이 하품을 자주하면 족통곡을 눌러주세요!



p.s. 통곡에 침을 찌른 결과는? 글도 쓰고 머리가 개운해졌다. 만국의 정두통 환자들이여, 통곡하라~!^^


  류시성(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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