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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심장소리를 멈춰라! 소부혈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2. 27.

심장이 뛰는 병?

 

조현수(감이당 대중지성)

 
심계항진, 이런 병증 혹시 들어보셨는가? 마음 심(心), 두근거릴 계(悸), 오를 항(亢), 나아갈 진(進). 쉽게 말하면 그냥 심장이 두근거리는 거다. 맞다. 심장은 원래 두근거린다. 다만 평온한 상태에서 우리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끼지 못한다. 심장은 언제나 뛰고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지각하는 순간은 극히 일부인 것이다. 반면 조급하거나 초조할 때 심장이 뛰는 속도는 저절로 빨라진다. 그리고 쿵덕거리는 소리가 직접 들리기도 한다.


그럼 우리는 어떨 때 이런 두근거림을 느낄까? 짝사랑하는 사람을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만났을 때, 인터넷하다 난 아무것도 안했는데 갑자기 파바박 펼쳐지는 살색 사이트(?)를 볼 때, 출근길, 이번에 오는 버스 안타면 완전 지각하는데 내 앞에 스무 명쯤 줄 서있을 때, 그것도 아님 내가 찍은 후보가 뒤지고 있는 대선 개표방송을 지켜볼 때 등등.


또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 법한 상황은,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 나서서 말을 하려면 입이 마르고 심장이 뛰는 일이다. 그럴 때면 줄줄이 외웠던 웅변도 망치고 초라하게 내려오는 일도 있다. 이 두근거림 때문에. 가끔 다른 사람이 앞에 나서 떨면서 말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저게 뭐라고 떨릴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막상 앞에 나가면 나도 똑같이 떨면서 말이다. 다만 관객의 입장도, 웅변자의 입장도 겪어보았으면서, 그 상황이 별것 아니라는 것도 알면서 왜 우리는 남 앞에서 두근대며 서있게 되는가? 심장이 마구 뛰고 입이 마르는 것. 이런 두근거림은 왜 일어나는 걸까? 이것에 대처하는 방법은 뭘까? 오늘의 주제는 이것이다.^^


이 주제, 왠지 두근거리지 않나요?^^ 내가 이상한 거니~~


두근거림의 이유

앞에서 밝혔듯 사람이 두근댈 때는 여러 가지 상황과 이유들이 있다. 가령 ‘따오기’폴더에 있는 헐벗은 언니들을 볼 때 두근거리는 건 지극히 정상이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고난 뒤 두근대는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럼 뭐가 문제인가? 바로 끈질기고도 반복적인 두근거림, 나를 지치게 하는 그런 두근거림이다. 예를 들자면 에세이 발표가 이틀 후인데 본론은커녕 목차도 안 나왔을 때, 빈 공간에 깜빡이는 커서를 보니 이틀 내내 두근대더라, 잠도 잘 안 오더라. 이런 거 정말 심각한 문제다. 심계가 일어나면 따라오는 증상도 여러 가지다. 불면과 두통, 신경질 등등. 그럼 이렇게 반복적으로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원인은 뭘까? 한의학적으로 볼 때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것은 火에 문제가 생겼음을 뜻한다. 


본래 화는 수와 더불어 생명력의 원천이면서, 가장 양적인 형태의 에너지다. 즉 가장 따뜻하고 힘이 세지만, 가장 제어하기 어려운 기운이기도 하다. 작은 자극에도 마구 타오르는 것이 불이요, 연료가 없으면 금방 꺼져버리는 것도 불이다. 그런데 요즘은 예전보다 화기에 문제가 생기기 쉬운 세상이다. 심장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도처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위에 등장한 살색 영상물은 물론, 술과 커피, 각종 오락거리 등. 요즘은 영화도 3G로 본다. 한층 화려해진 시청각적 자극은 또 심장을 들뜨게 한다. 화기가 망동(妄動:망령 난 것처럼 동하게)하게 되는 것이다.


온몸이 불탄다 불타~~~


화기가 망동하면 몸에 있는 음액(陰液)이 마른다. 흔히 초조하고 불안할 때 ‘피가 마른다’고 하는데, 혈은 음액에 속하므로 심화(心火)가 치성하면 정말 피가 마른다. 진액이 졸아들어 혈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렇게 음양의 균형이 흐트러지고 화기가 혼자 마구 나대게 되면 으레 불면이 온다.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이다. 잠 역시 양기와 음기가 사이좋게 껴안고 잠들어야 온다. 낮에 우리가 깨어있는 동안에는 위기(衛氣)가 피부 쪽에 머무르며 사기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지키고, 활동을 돕는다. 그러나 밤이 되면 위기도 혈관 안으로 들어와 영기(營氣)와 함께 사이좋게 쉬어야 한다.



그런데 화기가 지나치게 치성하면 양기는 그득하고 양기를 다독일 음기는 부족하니 자리에 누워도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안 올 때,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그렇다. 대개는 낮에 있었던 일을 곱씹는다. 거기까진 좋은데, 문제는 이게 대부분 망상으로 흐른다는 점이다.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하며 자책하기도 하고, 기억을 되짚다 누군가를 탓하며 미워하기도 한다. 이렇게 실제 일어난 일에 살을 보태 감정적인 추측을 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이 세계와 단절된 망상에 빠져든다. 게임 속 세계 혹은 좋아하는 연예인과 남쪽 어느 섬에 있는 상상 등. 요약하면 잠 못 이루는 밤은 곧 나를 미워하거나, 남을 미워하거나, 이 세계와의 단절이다.


이런 망상은 칠정(七情:희노우사비경공)을 엄청나게 소모한다. 과도한 칠정소모는 또 다시 심장에 불을 붙이고 불면을 부르는 악순환도로를 탄다. 화는 망동하고, 음은 점점 쫄다 못해 맛이 가고, 그럼 몸의 주인(君主)인 심장도 ‘게 누구 없느냐. 짐이 슬슬 맛이 가고 있노라!’하는 신호를 보낸다. 그것이 바로 내 귀에 들릴 정도로 쿵쾅거리는 심장의 박동, 심계항진(心悸亢進)이다.(요즘 인터넷에서 쓰는 말 중에 ‘자다가 하이킥’한다는 표현이 있다. 흔히 쪽팔린 일을 겪은 사람한테 하는 말인데, 자려고 누웠다 이 일이 떠오르면 허공에 발길질 하지 않고 못 배길 거다, 뭐 그런 말이다. 이렇게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으면 망상으로 흐르는 것 역시 인간의 자연스런 습성인지 모른다. 방법은 하나다. 누우면 곧 잠들어야 한다.^^)


심장, 왕? 광대?


심장은 본디 군주지관(君主之官)이라 하여 우리 몸의 우두머리다. 어딜 가나, 어느 모임에서나, 지역구 보스건, 전국구 보스건, 우두머리는 무게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무게 잡는단 말은 쓸데없이 폼 잡는다는 뜻도 있지만, 촐싹거리지 않고 늘 중심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그게 바로 심장이 하는 일이기도 하다. 환경이 바뀌어도 유연하게 대처하며, 일정한 박동을 묵묵히 유지하는 것. 그런데 심화가 치솟으면 이런 일은 당연 불가능하다. 임금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맨발로 마당에서 뛰노는 꼴이다. 신하들이 혼비백산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심장이 리듬을 잃으면 다른 활동도 연달아 문제가 생긴다. 호흡이 가빠지고, 두통이 오고, 화장실도 자주 가게 되며, 신경질적이 된다. 어느 나라든 임금만 미치고 끝나는 일은 없다. 군주가 벌인 일은 상당한 파급력이 있게 마련. 이런 증상들은 바로 군주가 벌인 일을 뒷수습 하려는 비서실의 노력(?)인 셈이다.
 

심계의 원인은 당연 심화다. 음이 실조되고, 화기가 심장에 망동할 때 입으로 튀어나올 듯 심장이 뛰어댄다. 그리고 칠정은 심장의 화기를 부추긴다. 남 앞에서 발표할 때 두근대는 것도 그 안에 혹시 할지도 모를 실수나, 혹시 들을지 모를 지적질, 예전에 경험했던 기억, 잘하고 싶은 욕심 등 두려움과 갖가지 칠정이 섞여있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마음이니 이것을 병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이런 상태로구나 라고 느끼게 된다면 더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광해. 누가 광대이고 누가 왕인가. 몸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중심이 제대로 잡히지 않으면 다들 우왕좌왕한다.


진정 다뤄야 할 병증은 심계항진이다. 가만히 있어도 하루에 몇 번씩 가슴이 쿵덕거리고 초조해지는 분들. 물론 심계항진도 마인드컨트롤로 상당히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증상이 심각하면 보다 직접적인 개입이 필요하겠다. 여기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이 오늘의 혈자리, 소부다.^^


소부-火의 집결지


소부. 少府라 쓴다. 소(少)는 미소(微小)함을 말하고 부(府)는 모이는 곳을 가리킨다. 손바닥의 뼈와 뼈 사이 작은 틈에 있으며, 심경의 기가 모이는 곳이라 이런 이름을 가졌다. 소부는 수소음심경의 형화(滎火)혈이다. 화의 경맥(心經)에 화의 혈이니 따블 화혈이다. 그야말로 화의 집결지라 할 수 있다. 그러니 화기능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곳을 찔러주면 따블로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겠는가?


소부는 온갖 심화기능의 문제에 두루두루 쓰인다. 심계항진부터 해서, 손발바닥이 뜨거워지는 오심번열(五心煩熱), 심통, 히스테리, 정신병, 소변불리(小便不利), 유뇨(遺尿), 발기부전, 부정맥 등등등. 아, 죄송하다. 어디 있는지 말도 안하고 좋다고 떠들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닿도록 주먹을 가볍게 쥐어보시라. 새끼손톱과 약지손톱이 닿는 그 사이지점, 그곳이 소부다.
 

사실 고백하자면 이거 쓰다 심계항진 여러 번 겪었다. 해서 쓰다말고 직접 찔러보았다. 반응이 아주 즉각적으로 온다.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우두머리의 나팔소리에 우르크하이(오크)들이 집결하듯이 손바닥부터 새끼손가락까지 화악 뜨거운 느낌이 올라온다.(저질비유 죄송하다. 정말 이런 느낌이었다.;) 여기, 화의 집결지 맞는 것 같다.^^ 사법으로 자극하면 심계항진뿐 아니라 쾌락으로 인한 열병, 공주병, 왕자병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ㅋㅋ) 또 보법으로 자극 시에는 몸을 따뜻하게 하도록 도우며, ‘사랑과 정열이 메마른 차가운 성격’에도 효과가 있다니 해당사항이 있는 분들은 한번 실험해보시기 바란다.


또한 화기는 단순히 열의 문제로만 작용하지 않는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화기의 따뜻함은 생명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쓰러져 정신을 잃었을 때, 급하게 이곳을 찌르면 정신이 돌아온다고 하였다. 화는 곧 정신이나 의식을 담당하기도 하니, 화가 꼭꼭 모인 소부를 찌르는 것은 마치 형광등을 켜듯 번쩍 자극을 주는 것이다.


요 며칠 부쩍 날이 추워졌다. 겨울이 반갑지 않을 몸이 차가운 분들, 혹은 심장이 두근거려 긴 겨울밤 잠 못 이루는 분들, 소부와 한번 만나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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