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엄마들을 위한 혈자리!

자애로움이 있는 혈, 소택

 

최정옥(감이당 대중지성)


오늘은 아줌마 수다로 시작해 볼까 한다. 나에겐 딸이 둘 있다. 두 아이는 모두 모유를 먹고 자랐다. 첫아이 때는 어찌된 일인지 정말 젖(젖소부인? 요런 거 생각마시길)이 나오지 않았다. 젖은 항상 모자랐고 젖 맛이 든 아이는 우유도 먹지 않았다. 아이는 늘 허기를 못 이겨 빈 젖을 사정없이 빨았고, 모성으로만 참을 수 있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 10년 뒤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당시 생활하던 농촌마을에선 면내에서 3년만에 태어난 아이를 함께 기뻐해 주었다. 그리고 큰 아이때의 고통을 너무 잘 알던 사람들의 관심사는, 젖을 잘 나오게 하는 것이었다. 옆 마을 양돈장에선 돼지족을 수시로 가져왔고, 5월 농번기에도 아저씨들은 날만 궂으면 낚시를 나서 붕어와 잉어를 잡아다 주었다. 이 일은 여름을 넘겨 찬바람이 불때까지 계속되었고 주변의 공력 덕분인지 젖은 넘쳐 아이가 숨이 막혀 할 지경이었다. 말 그대로 먹고 자고, 먹고 자며 순둥이 노릇을 했다. 그러나 사실 이것들을 곰국처럼 고아서 마시는 일은 어지간히 비위가 좋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었다. 그 역하고 비릿한 맛이라니. 아무리 향신제를 넣고 잘 끓여도 정말 모성의 힘을 발휘해야만 들이킬 수 있었다. 공감영역이 넓지 않을 것이므로 아줌마 수다는 이쯤에서 스톱.

 

배고픈 아기들 때문에 엄마들은 힘들다...^^;


여성의 근본, 乳


동의보감에 보면 ‘남자에게는 신腎이 중하고 여자에게는 유방이 중하다. 위아래가 같지 않으나 생명의 근본이 되는 것은 한가지이다.’(직지)라고 하였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를 ‘여자는 음에 속하니 음이 한계에 다다르면 반드시 아래로부터 상충하므로 유방이 크고 성기가 오므라든다. 남자는 양에 속하는데 양이 극도에 이르면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므로 음경이 늘어지고 유두는 오그라든다.’(입문)고 한다. 그 많은 생체용어를 대입하지 않고도 참 간결하고 타당하게 설명해 놓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이가 태어나 젖을 먹고 자라는 과정은 인간의 가장 근본이 발현되는 순간이 된다.

 

그럼 산후에 젖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는 뭘까? 동의보감에선 두 가지 경우를 드는데 하나는 ‘기혈이 너무 왕성해서 젖이 몰려서 막혀서’ 안나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혈이 너무 약해서 젖이 말라서’ 나오지 않는 것이다. 처방은 당연 전자는 ‘소통’일테고 후자는 ‘보익’해 주는 것이다. 소통해주려면 통초, 누로, 토과를 쓰고 보익의 방법으로 종유분(종유석을 갈은 가루), 돼지족, 붕어를 쓰라고 하였다. 나의 경우로 보면 결혼과 출산이라는 환경 변화에 적응하느라 기혈이 많이 소진 되었을 첫아이의 경우는 수유가 원활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둘째 아이땐 익숙한 환경에서 본의 아니게 동의보감의 처방에 충실히 따를 수 있었고 즐겁게 수유기를 보낼 수 있었다. 물론 먹은 것 이외의, 관심과 사랑의 기운이 함께 키운 것이겠지만. 

 

유방은 동의보감에서 설명하였듯, 음의 충실함이 극에 달해 양으로 전화되어진 상태이다. 그래서 유방 위로는 이미 공부한 족양명 위경이 흐른다. 양명경은 금의 성질을 품고 있어(위경 오수혈 참조) 물을 품고 있는 태양경보다도 성질상으론 더 뜨거운 기운이다. 그래서 수유기의 산모가 감정이 상해-열 받거나 우울하거나- 혈이 뜨거워지면 그 열(熱)이 유방으로 가 염증을 일으키고 딱딱하게 뭉치게 된다. 그렇게 보면 아이가 먹는 것은 젖이지만 결국은 어미의 기운(氣運)을 먹고 자라나는 것이다. 보통 엄마들은 젖이 돌면(찌릿한 느낌이 온다)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라는 걸 안다. 엄마의 기운이 잘 소통되면 아이가 배고플 때와 엄마의 젖이 차는 주기가 잘 맞아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먹여 키울 수 있게 생체리듬이 조절된다. 그 기운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아이의 기운도 순조로워지도록 역할을 할테니 말이다.
 

친애하는 ‘소장님’

 

혈자리서당 애독자라면 이쯤에서 이 이야기가 오늘의 혈자리와 관련 있으리라는 것은 감 잡으셨을 거다. 오늘의 혈자리는 기혈을 뚫어 유즙분비를 원활히 해주는 소택혈이다. 소택은 수태양소장경의 시작혈이다. 오수혈 편에서 보았듯이 우리 몸의 경락들은 서로 이어져 있다. 몸에는 각 수족(手足)의 태음-양명, 소음-태양, 궐음-소양이 세트가 되어 세 개의 물길이 있다. 소장경은 수소음심경에서 시작된 두 번째 길을 이어 받고 있다 수소음심경의 마지막 혈인 소충혈이 새끼 손가락 뿌리 안쪽에 이르면 새끼 손가락 바깥쪽 소택혈로 이어져 수태양소장경이 다시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심장과 소장은 서로 짝꿍이 된다. 심경과 이어진 소장경은 새끼 손가락에서 시작하여 손목을 따라 팔꿈치 뒤쪽 어깨, 목을 지나 뺨으로 올라가 눈과 귀에 이르는 길이다. 태양이라고 하니까 화기가 넘쳐 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 火기가 센 맥이다. 그러나 몸은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뜨거운 불기운을 끌 찬물을 품고 있다. 소장경은 태양한수(太陽寒水)라 하여 태양의 뜨거운 火기와 한수의 차가운 水의 기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경락이다. 몸에서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차 언급한 내용이다. 땀도 소변도 침도 눈물도 혈(血)도 골수도 정액도 모두 水이다. 몸의 축을 이루는 기운이 火와 水이고, 변수로 가장 많이 작용하는 것 또한 火와 水이다. 그런데 소장경에서 찬 물와 더운 불이 만났으니 火는 찬물을 데우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할테고 물은 火라는 동력을 만나 몸을 잘 순환할테니 스스로 생기(生氣)의 구조를 이룬다. 그래서 생리나 수유 등 水의 변동이 많은 여자들에게 매우 요긴하다. ‘여자들의 병은 수태양소장경을 쓰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니 말이다. 소장경은 스스로 생기(生氣)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소장은 탈이 나도 큰 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소장과 연결되어 있는 위암, 대장암은 들어봤어도 소장암은 없는 까닭이다. 내부적 운동성이 자생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물 속의 불, 불 속의 물. 이렇게 소장은 상반된 기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대단한(?) 장기다!

 

동의보감에서는 소장의 모습에 대해 ‘소장16곡(小腸十六曲)’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소장의 길이는 6-7m라고 한다. 이것이 아랫배 안쪽에 첩첩이 싸여 골짜기를 이룬 모양을 말한 것일거다. 그런데 이 긴 소장이 하는 일이 맑은 것과 탁한 것은 나누어 제자리로 보내는 일이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는 ‘비별청탁(泌別淸濁)’이라고 한다. 식도를 통해 들어 온 음식물을 위장은 대충 자르고 위액을 섞어 소장으로 내려 보낸다. 소장은 7미터나 되는 긴 길을 음식물을 끌고 가며 액(液)이 될 때까지 잘게 부수어 성질을 바꾸고 수분이 된 영양분을 대부분 흡수한다. 이렇게 흡수된 영양분은 인체에 진액대사로 전신에 골고루 퍼진다. 그리고 맑은 찌꺼기는 방광으로 보내 소변으로 배설하게 하고, 음식의 탁한 찌꺼기는 대장으로 보내 대변으로 내보낸다. 몸에 필요한 가장 실제적인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소변과 대변, 그리고 땀의 배출, 수액을 흡수해 정(精)과 혈(血)을 만드니까 말이다. 아이를 돌볼 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잘 먹고 잘 싸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포동포동 살은 오르고 있는지, 변은 제 때 제 색을 띄는지. 7미터의 긴 길을 인내하며 선별하는 소장의 미덕은 아이를 돌보는 자의 마음과도 닮아있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돌봄의 덕이다.

 

작은 길함이 있으리라

 

이제 오늘의 혈자리, 소택을 보자. 소택은 수태양 소장경의 시작혈로 정혈이다. 새끼손가락 손톱 바깥쪽 모서리에 위치한다. 새끼손가락 손톱뿌리에서 바깥쪽으로 1-2mm 떨어진 지점으로 보면 된다. 소택(少澤)의 소(少)는 작다 어리다는 뜻이다. 택(澤)은 삼수변(氵)에 음을 나타내는 글자 睪(역ㆍ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습지나 낮은 곳 또는 물길이 모이는 곳을 뜻하며, 윤택하게 하고 은덕을 베푼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한대사전1300쪽 참조) (氣)가 연못처럼 처음 모이는 곳이라 소택이라 부른다고도 하였다. 소택혈의 다른 이름은 소길(小吉)인데, 작은 길함이 있다는 뜻이 된다. 소택은 소장의 화 기운과 태양의 수 기운 그리고 양경락의 오수혈 배열에서 정혈이므로 금 기운을 함께 갖고 있다. 따라서 소택혈을 보해주면 화수금 기운을 동시에 넣어주는 효과가 있다. 기혈이 막혀 있을 때 쓰게 된다. 혈이 막혀 있는, 어혈로 인한 제반증상을 해결하는데 생리통, 자궁근종등에 쓴다. 또 혈압이 높아 혈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을 때 중풍으로 이어지기 쉬운데 급성적인 병이 있을 때 길을 여는데 쓴다. 그래서 기혈이 막혀 젖이 나오지 않을 때에도, 기혈이 모자라 유즙이 분비되지 않을 때도 기혈을 돌려 유즙의 양을 늘려주게 된다. 이런 기운이 모인 유즙이라 그런지 민간에선 눈병이 나거나 벌레가 귀에 들어 갔을 때 아기의 코가 막혔을 때 젖 한방울을 짜 넣어 해결하곤 한다.


시골에 가보면 간혹 밭 옆에 작게 웅덩이를 파 물을 담아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가뭄이 들었을 때 밭에 물을 대기 위함이다. -물론 극심한 가뭄엔 그 물도 말라버리지만. 그 물은 또 작물을 심거나 막 땅을 뚫고 올라온 어린 싹이 강한 태양에 말라버리지 않도록 물을 줄 땐 매우 요긴하게 쓰여, 작물의 생명을 유지시키고 성장을 돕는다. 새끼 손가락 바깥 가장 끝자리에 위치한 작은 웅덩이 같은 연못이지만 작은 기운을 받아 몸은 운동성을 갖는다. 그래서 몸은 윤택함을 얻고, 아이는 배부를 수 있다. 몸의 순환이 순조로우면 몸과 함께 가는 마음의 순환도 순조롭고 담담해진다. 때 맞춰 적당히 먹은 아이의 유순함처럼. 몸의 순환이, 마음의 고요함이 필요하다면 영양제 한 알 명상음악 한 곡보다 새끼 손가락을 먼저 주목하면 어떨까? 작은 곳에서 시작되는 실로 큰 자애로움이다.

 

ㅡ프레드릭 레이튼, <엄마와 아이>. 火가 水로 바뀌는 것처럼, 생명에서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나는 것처럼, 새끼손가락을 누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몸에 변화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자애로우면서도 生氣를 주는 소택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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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훔라 2013.04.03 22:23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소장이 물과 불을 함께 지닌 장부인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러고보니 대장암은 들었어도 소장암은 못 들어봤네요. 작은 고추가 맵다고 작은 장부가 큰 일을 하고 있었네요 기특하게도^^ 오늘은 소택혈을 눌러 주어야겠어요~

    • 북드라망 2013.04.04 11:32 신고 수정/삭제

      임상의학에서도 소장암은 위, 간, 대장에 비해서 발생 빈도가 낮다는 통계가 있네요.
      여튼 둘레의 지름이 대장보다는 좁지만, 그 길이는 대략 7m라고 하니~
      몸 안에 7m의 소장이 들어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합니다. ^^
      소장이 있기에 우리가 곡기(음식으로 생성되는 기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