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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심기가 불편하십니까? 그럼 소충혈을!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 10.

소충(少衝), 심기(心氣)를 다스리다

 

류시성(감이당 연구원)

 



심기(心氣)가 불편하다. 심기가 언짢다. 심기가 상한다. 아마도 많이들 애용하시는 말일 게다. 기분이 나쁠 때, 뭔가 수틀릴 때, 갈굼을 심하게 당할 때. 입에서 저 말들이 술술술 튀어나온다. 그런데 좀 궁금한 게 있다. 왜 기분이 나빠졌을 때 심기(心氣)에 문제가 생겼다고 표현하는 것일까. 말 그대로 심(心)의 기운(氣)이 상하면 우리 몸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기에 저런 표현들을 쓰는 것일까. 오늘은 이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심기(心氣)가 불편해!


일단 심기가 상하면 어찌 되는지부터 살펴보자. “심기(心氣)는 혀에 통하니, 심이 화(和)하면 혀가 능히 오미(五味)를 구별할 수 있다.”(『황제내경』,「영추」, <맥도>) 그럼 심기가 상하면? 그렇다. 밥맛이 뚝 떨어진다. 심(心)의 조화로움이 깨지고 혀가 오미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엄마의 잔소리에 갑자기 심기가 상한 아버지가 밥상을 뒤엎으면서 내뱉던 말. “에이! 밥맛 떨어져!” 이거 진심(眞心)이었다.^^
 

그럼 심기가 더 상하면? “눈을 감고 자려고만 하며, 멀리 가는 꿈을 꾸고 정신이 산만하며, 혼백이 망령되어 나다닌다.”(『동의보감』,「내경」, <심장>) 어찌 이리도 틀린 말이 없을까. 기억해보시라. 심기가 상하면 획 토라져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던 기억을. 이놈의 집구석을 반드시 떠나고 말리라는 다짐과 함께 집을 떠나는 꿈을 꾸게 되던 기억을. 아! 의학이란 실로 위대하다. 우리들의 행동을 이리도 쉽고 간명하게 설명해주니 말이다. 그렇다면 갑자기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동의보감』을 좀 더 들여다보자.


심장의 형상은 아직 피어나지 않은 연꽃과 같은데, 가운데 9개의 구멍이 있어서 천진(天眞)의 기(氣)를 이끌어 들이니, 신(神)이 깃드는 곳이다. (중략) 심장에서 7개의 구멍과 3가닥의 털이 있는데, 7개의 구멍은 북두칠성에 응하고, 3가닥의 털은 삼태성(三台星)에 응하기 때문에 마음이 지극히 정성스러우면 하늘이 응하지 않을 수 없다. 

 

ㅡ『동의보감』,「내경」, <심장(心腸)>


실로 재밌는 말들이 한 가득이다. 심장이 피지 않은 연꽃모양이라는 거. 심장에 9개 혹은 7개의 구멍이 있다는 거. 거기다 3개의 털까지 나 있다는 거. 하나같이 생소하기 그지없는 말들이다. 헌데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건 구멍과 털의 역할이다. 일단 구멍들은 하늘의 진짜 기운(天眞의 氣)을 끌어들이고 북두칠성과 응하는 통로다. 털도 마찬가지다. 털은 하늘의 중심이라는 자미궁(紫微宮) 근처의 세 별, 삼태성(三台星)과 통한다. 이 구멍과 털로 심(心)은 우주와 소통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심기(心氣)가 상하고 불편해지면 저 통로들에 문제가 생긴다. 밥상을 엎고 토라져서 잠을 청하고 잠 속에서 집구석을 떠나는 꿈을 꾸게 되는 것도 저 통로들이 막혀버렸기에 생기는 증상들이다. 이런 사태가 반복되면 문제는 좀 심각해진다. “대골(大骨)이 드러나고 대육(大肉)이 꺼져 들어가며, 가슴속이 그득하고 답답하며, 호흡이 불편하고 가슴속 통증으로 어깨와 목이 당긴다. 이러면 한 달 이내에 죽는다.”(『동의보감』,「내경」, <심장>) 몸의 큰 뼈들이 드러나고 살들이 패이고 곧 죽게 된다는 이 불편한 진실. 그러니 심기(心氣)가 불편하다는 것, 심기가 언짢다는 것, 심기가 상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사태인지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을 거다.
 

그렇다면 기분이 나쁠 때 왜 심기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는 것일까. 이미 눈치 채셨을 거다. 기분이 나쁘다는 건 지금 저 소통의 창구들이 꽉 막혀버렸다는 몸의 신호다. 그렇지 않은가. 어딘가 막혀 있을 때 우울하고 기분이 나빠지지 않는가. 글이 나가지 않아 막혀 있고 마음의 장벽에 생겨서 통하지 못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문제는 심기가 이런 사태를 참기 어려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사실 심기는 양기(陽氣)의 대명사다. 양의 최고봉인 화(火)를 품은 심(心)과, 혈(血)에 비하면 양적인 속성이 훨씬 더 강한 기(氣)의 만남. 글자만 봐도 심기(心氣)가 몸의 그 어떤 기(氣)보다 양의 성질이 강함을 알 수 있다. 양기는 속박당하면 쉽게 상처받는다. 흘러가고 운동하는 성질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심기는 뜨거운 화(火)의 기운이기에 속박당하면 몸에서 열을 발생시킨다. 기분이 나쁠 때 몸에서 열이 나는 것도 이 맥락에서다. 요컨대 기분이 나쁘다는 것은 가장 운동성이 강한 심기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밥상을 엎을 만큼 화를 내는 것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인 셈이다.


나도 어린 시절 몇 번 봤다. 그때 소충혈만 알았더라면 ㅋㅋ. 그 먹을 것들이 눈 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穴)자리에서는 이러한 심기불편의 증상을 소충(少衝)혈로 다스린다. 그럼 이제 우리들의 주제, 소충혈로 들어가 보자.


새끼손가락의 비밀


여기도 찌르면 무지하게 아프다!

소충(少衝)은 새끼손가락의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새끼손가락 손톱눈 내측 모서리에서 부추잎만큼 떨어진 곳에 있다.”(『동의보감』, 「침구」) 이제 좀 익숙하실 거다. 부추잎 만큼 떨어진 곳에 있다는 저 표현. 그렇다. 손톱 옆에 있는, 침으로 찌르면 아주 까무라치는 곳이 바로 소충이다. 재밌는 것은 소충의 이름이다. 소충은 새끼손가락(少)에 있는 요충지(衝)라는 의미로소충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그럼 여길 왜 요충지라고 본 것일까. 이걸 알기 위해선 새끼손가락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새끼손가락. 흔히들 언제 사용하시는가. 맞다. 주로 약속할 때 많이 사용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새끼손가락을 걸고 지장까지 찍어가면서 약속한 바 있으실 거다. 우리가 흔히 보는 드라마에선 눈물-콧물을 짜낼 때 노골적으로 새끼손가락-약속을 등장시킨다. 아빠와 아들이 새끼손가락을 걸고 놀이동산에 가기로 했던 장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눈물을 흘리는 가장. 새끼손가락은 이렇게 가족의 사랑을 표상하는 손가락으로 자주 등장한다. 한편 새끼손가락은 애인을 상징할 때도 많이 쓰인다. 새끼손가락만 펴고 흔들면서 ‘나 요거 생겼다~!’라고 외치면 우리는 으레 애인의 탄생(?)을 감지한다. 그런데 새끼손가락은 왜 이런 용도로 사용되는 것일까. 이름에 단서가 있다.
 

새끼손가락은 수소지(手小指) 혹은 계지(季指)라고 불린다. 수소지는 한자 그대로 손(手)에 있는 작은(小) 손가락(指)이라는 뜻이다. 그럼 계지(季指)란 무슨 뜻일까. 아마도 많이들 보셨을 거다. 저 계(季)자. 계절(季節)할 때 쓰이는 글자다. 계(季)는 끝, 막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글자가 만들어진 기원이 좀 재밌다. 계(季)는 벼 화(禾)와 아들 자(子)로 이루어진 글자로 곡물(禾)의 신 가운데 가장 어린 신(神)을 그린 글자였다. 즉, 천방지축이면서도 사랑을 독차지하고 귀여움을 받는 어린 곡물의 신. 이 어린 신이 머무는 손가락. 이게 계지(季指)라는 이름의 뜻이다. 이런 이름 때문인지 새끼손가락은 신(神)과 영혼 그리고 사랑을 의미할 때 주로 사용되었다.
 

중세까지만 해도 서양에서는 새끼손가락을 접신(接神)의 통로로 이용했다. 그들은 새끼손가락으로 두 귀를 막으면 초자연적인 힘(神)과 접속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또 한쪽 귀를 막고 남은 한쪽 귀에 새끼손가락을 넣어서 영혼과의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 지방에서는 두 사람의 영혼이 통했음을 새끼손가락을 걸어서 보여주곤 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약속할 때 새끼손가락을 거는 행위의 기원이다. 그런 점에서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하는 건 신(神)들의, 영혼들의 거래(?)에 해당한다. 그래서일까. 새끼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는 마음에 찌꺼기가 남은 듯 불편해진다.

영혼의 크로스! 새끼손가락 걸고 영원하자던 그대는 지금 어디에~.. 갑자기 김현식의 노래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동양에서도 새끼손가락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이미 보셨다시피 곡물의 신(神)이 머무는 손가락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부터 심상치 않다. 경락에서 새끼손가락은 다른 손가락들과는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지위를 갖는다. 일단 다른 손가락에는 하나의 경맥이 흘러가지만 유독 새끼손가락만은 두 개의 경맥이 흐른다. 안쪽은 수소음심경(手少陰心經)이, 바깥쪽은 수태양소장경(手太陽小腸經)이 흘러간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경맥이 물과 불의 기운을 가진 경맥이라는 점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수소음심경은 여름철의 무더위를, 수태양소장경은 겨울철의 차가운 물을 품고 있다. 이 물과 불의 기운은 몸의 상하축이자 순환의 근본동력이다. 즉, 몸에서 가장 중요한 기운들이 새끼손가락을 타고 흘러가는 셈이다.
 

새끼손가락이 신(神) 혹은 애인과 관련되는 것도 이런 배치와 무관하지 않다. 예로부터 도교에서는 우리 몸을 ‘하나의 완전한 신들의 세계’라고 봤다. 이것을 체내신(體內神)이라고 불렀는데 이 신들의 작용은 생명을 물리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먹고 싸고 번식하는 차원을 넘어서 인생의 비전을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 이러한 신(神)의 작용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프레임에서 보면 몸에서 생리적인 욕구와 그것을 넘어서려고 하는 의지는 동시에 작동한다. 이 두 가지 본성 가운데 하나에 천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게 몸의 생리라는 것이 도교의 논리였다. 새끼손가락엔 바로 이런 몸의 생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안쪽을 흐르는 수소음심경은 우리 몸의 신(神)을 관리하고 바깥쪽을 흐르는 수태양소장경은 먹고 싸는 일에 관여한다.
 

좀더 나가보자면 수소음심경은 ‘사랑과 예술의 감성리듬’으로 불린다. 그래서 새끼손가락이 길면 예술적 재능이 많다고 봤다. 심경(心經)은 청춘의 힘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춘기 소녀들이 깔깔거리면서 웃는 것, 매혹적인 이성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 예쁘게 꾸미고 싶은 것. 이 모두가 심경을 흐르는 뜨거운 소음군화(少陰君火)의 기운이다. 이러한 청춘의 뜨거움이 차가운 겨울철의 물, 태양한수(太陽寒水)로 전환되는 곳이 새끼손가락이다. 불에서 물로, 가장 양적인 것에서 가장 음적인 것으로의 극적인 전환. 새끼손가락의 끝자락에 위치한 소충이 몸의 요충지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소충(少衝), 신(神)을 깨우라!

소충(少衝)은 수소음심경의 정혈(井穴)이다. 정혈이란 기(氣)가 샘솟듯이 나오기에 우물 정(井)을 써서 정혈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했다. 그래서 많은 책들에서 경맥의 기(氣)가 시작되는 것처럼 정혈을 설명한다. 헌데 이게 오해라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정혈은 우물이 솟아나듯이 그 경맥의 기(氣)를 순간적으로 북돋아주는데 탁월하다는 의미였다. 보통 손끝과 발끝에 있는 정혈들이 구급혈(救急穴)로 쓰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물이 땅을 뚫고 솟구쳐 올라오듯이 경맥의 기(氣)를 순식간에 불어넣어주겠다는 계산. 정혈에는 오랫동안 침을 꽂아두면 안 된다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거다. 과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
 

정혈인 소충(少衝)은 목(木)의 성질을 가진 혈이기도 하다. 그렇다. 우물이 솟고 나무가 땅을 뚫고 올라오는 듯한 기운이 서려 있는 곳. 아마도 이해되셨을 거다. 왜 심기가 불편한 상황에 소충을 쓰는지. 소충(少衝)은 약해지거나 막혀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심기(心氣)를 회복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앞에서 보셨다시피 심기가 약해져서 “정신이 산만하며, 혼백이 망령되어 나다닌다.”는 증상도 해결한다. 또한 심기의 운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막혀버린 심장의 구멍들을 연다. 주목해야할 것은 소충(少衝)이 기사회생(起死回生)의 혈자리라는 점이다. 정신을 잃고 죽음의 문턱까지 간 사람에게 심기(心氣)를 불어넣어서 몸을 떠나려는 신(神)을 붙잡는다는 거다. 실제로 페니실린을 맞다가 심장의 쇼크로 죽어가던 사람을 의사가 소충혈을 찔러서 살려냈다는 전설적인 임상사례도 전해진다. 그래서 소충(少衝)엔 경묘(經妙)이라는 별명도 붙어 있다. “이것에 鍼刺(침자)하여 起死回生(기사회생)하는 妙(묘)가 있다.”(『침구갑을경』) 이밖에도 소충은 기(氣)가 위로 솟구치는 상기(上氣), 어린아이들의 경기(驚氣)에도 효과도 가지고 있다.


꼭 기억해두세요~! 기사회생의 혈자리 소충!


심기(心氣)는 몸의 군주인 심(心)이 부리는 기(氣)다. 이 기가 요동치고 자기 궤도를 벗어나면 몸도 마음도 고달프다. 몸 전체를 소통시키고 순환시켜야 하는 군주의 힘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심기(心氣)가 불편하다. 심기가 언짢다. 심기가 상한다. 이제 이 말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할 때 소충을 지긋이 눌러보시라. 밥상을 엎을 듯한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소충을 마사지해 주시라. 곧 기분이 조금은 풀릴 테니. 또한 정신이 산만하고 피로할 때 소충을 기억하시라. 막혔던 심(心)의 구멍을 열어 북두칠성과 삼태성의 기(氣)를 받게 할 테니. 소충으로 내 안에 신(神)들을 깨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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