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걔가 나보다 더 잘나가? 동창회에 갔더니

동창 모임


제이의 소원은 친구가 만나자고 할 때 “어머 어쩌지? 시간이 없어서…” 하면서 거절 한 번 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제이에게는 언제나 시간이 너무 많다. 심심하게 혼자 놀다가 누가 나 좀 안 불러주나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는 일. 그것이 평소 제이의 생활이다. 다들 뭐가 그리 바쁜지 학교 졸업하곤 감감 무소식인 친구들의 안부가 궁금했는데… 제이에게 동창 모임을 한다는 연락이 왔다.

동창 모임? 나는 한 번도 동창 모임에 나가본 적이 없다. 맨날 발등에 떨어진 불끄기 바쁜 처지에 옛날 친구 만날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나는 동창회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다. 가끔 동창회에서 오는 전화라는 게 기부금 내라는 것이고, 학연을 이용한 장사 혹은 선거 운동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어떤 동기한테 왔던 전화도 그랬다. 동기라는데 내가 모르는 이름이다. 졸업한 지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나나 보다 생각하고 얘기를 한참 듣다 보니 결론은 자기가 지금 일하고 있는 잡지 1년 정기구독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전화를 받은 다음부터 나는 동창회 같은 건 일체 돌아보지 않게 되었다.


맞다, 동창모임이 다 <응답하라 1997>같지는 않다. -_-;


제이는 동창 모임에 특별히 볼 일이 없다. 그러나 다른 특별한 일도 없다. 그러니 이번에도 누가 만나자고 할 때 거절 한 번 해보는 소원은 이루지 못 하고 마지못해… 아니, 사실은 활짝 반기며… 제이는 외출 준비를 한다.

제이는 특수학교에 다녔다. 초등학교는 소아병동에서 생활하면서 다녔고, 중고등학교는 기숙사 생활을 했다. 한 반에 학생 수가 열 명 남짓이었다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한 반에 애들이 팔십 명이 넘는 때도 있었다. 그래서 이부제, 삼부제 수업까지 했었다. 그야말로 악다구니 속의 전쟁터 같은 곳에서, 일 년이 지나도록 격무에 시달리시는 선생님은 내 이름 한 번 불러줄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제이는 소수의 학생들이 많은 선생님들의 배려 속에서 공부했다니 부럽기 그지없다. 어떻게 보면, 일반 학교에 다녔던 나는 천민 교육을 받았던 반면, 특수 학교에 다녔던 제이는 귀족 교육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동창 모임은 제이보다 한참 윗대 기수의 어떤 선배가 소집한 것이었다. 그분은 현재 장애인 자립생활 센터의 소장으로 활동하고 계셨다. 그분이 이번에 동창들한테 연락을 한 것은 대선을 맞이하여 장애인 관련 정책 기획단을 모집하기 위해서였다. 대선 후보자들한테 장애인 관련 정책을 제안하려고 하는데, 그 정책을 함께 의논할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여성회관의 빈 사무실에 20명 남짓 되는 동창들이 모였다. 간단하게 다과를 나누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동창들은 자유롭게 앞으로 나가서 지금 자신이 부딪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말했다. 취업을 하기 위해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 취업을 하려는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면접 자체를 거부하는 회사(업무와 별 상관이 없는 장애임에도 불구하고), 간신히 취업을 해도 여러 가지 차별과 편견 때문에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들, 현재 장애인 관련 복지 정책의 문제점… 이런 얘기들로 토론 광장이 벌어졌다.

이렇게 건전할 수가! 내가 아는 동창회는 출세한 동창이 생색을 낼 겸 인맥 관리도 할 겸해서 커다란 식당 빌려 흥청망청 먹고 남 얘기나 실컷 하다가 끝나는 공허한 모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소박하게 모여서 자기 얘기를 하는 동창회라니! 나는 낯선 동창회 분위기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역시, 천민 교육 받고 자란 사람들과 귀족 교육 받고 자란 사람들은 다른가 보다.


뭐지, 이 분위기는....?!


모인 동창들 중 몇몇이 정책 기획단에 참여하겠다고 해서 다음 일정을 잡고, 우리는 2차를 가기로 했다. 근처 식당으로 저녁을 같이 먹으러 갔다. 휠체어가 여러 대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이 잘 없기 때문에 두 블럭 정도 거리를 걸어서 문턱이 없는 어떤 식당으로 갔다. 그 식당은 삼겹살을 구워 먹는 곳이었다. 흙바닥의 너른 마당에 원탁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원탁의 가운데 숯불을 넣어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우리는 원탁을 몇 개 붙여 함께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회의 시간 같았던 동창회는 삼겹살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소주가 한 잔씩 돌아가면서 부드럽게 풀어졌다.

나는 옆자리의 친구들에게 학창시절 제이는 어땠냐고 묻는다. 사실 나는 궁금하지 않다. 그런데 제이가 물어보라고 한다.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학창시절 제이는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고 한다. 있는지 없는지 잘 느껴지지 않는 존재.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혼자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미 제이는 불치병의 나르시스트였던 것이다. 남들한테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기 자신, 불완전한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채워줄 운명의 반쪽을 기다리며 요즘도 제이는 계절이 지나가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건전한 1차 모임에서는 조용하던 제이가 일상과 연애 얘기로 출렁이는 2차 술자리에선 활기에 넘친다. 뭐? 걔가 결혼했다구?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중 제이의 귀가 번쩍 뜨인 것은 동창 중 한 명이 비장애인 남자랑 결혼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어머 좋겠다. 걔는 어떻게 그런 남자를 만났을까. 어떻게 연애를 했을까.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을 텐데 어떻게 결혼을 했을까. 애는 어떻게 낳아서 기를까… 이렇게 그 동창을 부러워하다가… 아니, 근데 걔는 되는데 나는 왜 안 되는 거야! 제이는 분통을 터뜨린다.

세상 사는 일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 서른이 넘으면서 제이는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아! 꼭 비장애인이 아니어도 된다. 5급(장애등급)까지는 괜찮다. 3급까지는 괜찮다. 제이는 이렇게 결혼 대상자의 조건을 점차 낮추고 있다. 그런데 아직 결혼은커녕 연애도 한 번 제대로 못 해봤으니 동창의 결혼 성공담은 제이의 억하심정을 돋울 뿐이다.

그런데 제이는 왜 비장애인과 결혼하고 싶어 할까. 나는 그게 정말 궁금하다. 하지만 동창회의 밤이 무르익는 동안 나는 그걸 제이에게 물어볼 틈이 없었다. 왜냐하면… 모임에 온 사람 중에서 비장애인은 나 혼자 뿐이다.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고 흥겹게 얘기들을 나누는 동안, 나는 삼겹살 오겹살이 구워지는 자욱한 연기 속에서 이 불판 저 불판 다니며 고기 굽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추가 떨어졌어요, 마늘도 좀 더 주시고요, 여기 불판 갈아주세요! 주방에다 대고 이렇게 소리치면서, 왼쪽 오른쪽 사람의 입에 분주하게 쌈을 싸서 넣어주느라… 모임이 끝날 때까지 나는 자리에 한 번도 앉아 보지를 못 했던 것이다.


_정경미(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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