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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보 활보(闊步)

예술이 된 삶의 조각들- 제이, 고흐를 만나다

by 북드라망 2012. 11. 26.

감자 먹는 사람들



301호 여자의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강아지 두 마리 키우는 것만으로는 성이 안 차는지 여자는 동네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한 마리까지 거두어 먹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3층 복도에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와서 산다. 내가 지나가면 야옹, 고양이는 화닥닥 계단 쪽으로 달아난다. 복도가 좁아서 나는 들어가고 고양이는 나온다는 게, 고양이가 나한테 몸을 던지며 덤벼드는 것 같다. 어떤 날은 내가 지나가도 흘깃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밥을 먹는다. 뼈다귀 모양의 플라스틱 그릇에 콩알 같은 사료가 가득 담겨 있다. 비가 오면 문 열어 달라고 복도 현관문 밖에서 야옹 야옹 애절하게 운다. 그러면 여자가 쪼르르 달려나가서 문을 열어준다. 바닥이 차갑지 않도록 담요도 깔아준다. 밤늦게라도 고양이가 들어와 잘 수 있도록 여자는 항상 복도 문을 조금 열어 놓는다.


집에 들어오면 고양이 덤비지, 개 짖지… 나는 아주 죽을 지경이다. 대문 앞에까지 와서도 집에 바로 못 들어오고 동네를 몇 바퀴 돌면서 숨을 고른다. 오늘도 무사히… 살금살금 요강이 있는 내 방으로 무사히 귀환하기를 기도한다.

여자가 너무 경우가 없구만. 부당한 일에 왜 부딪쳐 싸우지 않고 피해의식에 시달리느냐고 얘기할 수 있다. 나도 안다. 이것 보세요! 여기 당신 혼자 사는 게 아닌데 강아지 두 마리에다가 고양이까지 끌어들이는 건 너무 한 거 아닌가요? 나는 여자에게 이렇게 따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못 하고 있다. 왜냐… 나는 여자가 너무 무섭기 때문이다. 정말 무섭다. 여자는 내 인내력의 한계를 넘어서 버렸다. 그 결정적인 사건은 여자가 거두어 먹이는 고양이가 발정난 밤에 벌어졌다.

고요한 밤… 뭐가 방문에 쾅쾅 부딪치는 소리에 나는 잠을 깼다. 그것은 발정난 고양이 두 마리가 서로 엉겨 붙어 교성을 지르며 몸싸움을 하는 소리였다. 고양이들은 고요한 밤의 정적을 사정없이 찢어발기며 밤새 난투극을 벌였다. 당연히 나는 잠을 못 잤다. 아침에 퀭한 눈으로 문을 열고 나가보니… 돈가스 소스 냄새 같은 게 확 끼쳤다. 그리고 복도 벽과 바닥에 온통 진한 밤색 소스가 휘뿌려져 있었다. 그것은 발정난 고양이가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싸갈긴 똥이었다. 오오… 이때 나는 딸깍, 하고 내 안에서 어떤 스위치가 전환되는 것을 느꼈다.



여자는 여전히 고양이 밥그릇을 치우지 않는다. 나 또한 여자에 대한 증오심을 멈출 수가 없다. 그런데 참혹한 밤 이후, 나는 여자와 싸울 용기가 없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무력하다. 나는 차라리 더 무력해지기로 했다. 하루 종일 부지런히 일을 해서 집에 들어오면 여자도 개도 고양이도 신경 안 쓰고 곯아떨어지는 것. 몸과 마음의 힘을 완전히 빼는 것이다. 다행히 잔머리 안 굴리고 우직하게 몸을 많이 써야 하는 활보는 그런 일로 안성맞춤이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서 하루 12시간 일하는 활보 강행군을 나는 다시 시작했다. 하루 두 명의 활보를 하는 것이다. 아침에는 혼자서는 누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킬 수 없는 친구의 씻고 아침 먹는 일을 도와준다. 오후에는 제이의 외출 보조를 한다. 생활비를 더 벌어야 하는 형편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일하는 시간을 더 늘리면서 나는 집에 들어가는 일이 전보다 편안해졌다.


오전 활보 H


아침에 활보하는 H에게서 나는 경이로움을 느낀다. H는 잠자는 시간 빼고는 하루 종일 활보와 함께 있다. 하루 서너 명의 활보가 와서 H의 일상에 참여하는 것이다. H의 몸은 여러 활보들의 활동 장소이다. 아침에 목욕을 하기 위해 H는 내 앞에서 알몸이 되어야 하는데 H는 그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H는 다리 근육이 비틀려져 있어서 다리와 사타구니 사이 살이 접힌 부분이 항상 가렵다. H는 거기를 박박 문질러 씻어 달라고 한다. 옷을 입을 때 나는 H의 젖통을 번쩍 들어 브래지어 안에 집어넣는다. 이런 행동들이 저기 탁자 위에 있는 컵을 여기로 갖다 달라고 하는 일처럼, 컵에서 엎질러진 물을 닦아 달라고 하는 일처럼 자연스럽다. 누가 내 신경 조금 건드리는 거 못 참는 나로서는 자기의 몸을 여럿이 함께 활동하는 하나의 ‘장소’로 대하는 H가 놀랍다.


오후 활보 제이


요즘 제이는 글을 쓰느라 낑낑거린다. 밀알 선교회에서 연말에 공모전을 하기 때문이다. 입상하면 상금을 준다. 상금 받으면 뭐 할까 기대하며 제이는 열심히 글을 쓴다. 제이는 돈 생기는 일이라면 뭐라도 한다. 나는 그게 심히 걱정된다. 혹시 돈 준다고 해서 아무나 따라갔다가 유괴당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글에서 제이는 겨울의 느낌을 ‘따뜻하다’고 했다. 날씨가 추운 대신 사람들이 온정을 나누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겨울, 하면 금방 찐 감자를 여럿이 둘러앉아 나누어 먹는 모습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 ‘찜통에서 찐 감자’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금방 찐 감자의 느낌을 표현할 적당한 형용사를 제이는 나한테 묻는다. 찜통에서 찐 ‘파근파근한’ 감자. 제이는 처음에 이렇게 썼다. 그런데… 파근파근?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본다 얘. 제이의 엄마가 그 표현은 좀 이상하니 활보 언니한테 물어보라고 했단다. 글쎄… 금방 떠오르기는 ‘따끈따끈’이라는 형용사이다. 찜통에서 찐 따끈따끈한 감자. 이렇게 쓰니까 편안하기는 하다. 그런데 왠지 꼭 맞는 느낌은 아닌 것 같다. 파근파근이 더 맞는 것 같기는 한데 그 말은 좀 낯설고 어색하다. 따끈따끈이라고 할까 파근파근이라고 할까 고민하다가 제이는 결국 ‘따끈따끈’이라고 쓴다.

아이구 골치아퍼. 우리는 머리도 식힐 겸 미술관에 가기로 한다. 예술의 전당에서 마침 고흐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나는 제이에게 고흐의 그림을 본 적 있느냐고 묻는다. 제이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 고흐라는 화가 이름은 들어봤다고 한다. 그 사람… 귀가 한 쪽 없는 사람 맞지? 같은 장애인으로서 제이는 고호에게 깊은 관심과 우정을 느끼는 것 같다.


전시장 입구의 유리문에는 삐에르 광장의 정원에 연인들이 산책을 하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전시장의 유리문을 열고, 우리는 빛과 색의 향연 속으로 들어갔다. 고흐는 얼마나 정직하고 성실한 화가인가. 그는 자신의 느낌을 끝까지 따라가서 본다. 그리고 그것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고흐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겨울날 따뜻한 햇볕을 쬐는 느낌이다. 고흐의 그림 중에서 나는 ‘감자 먹는 사람들’을 가장 좋아한다. 어두운 부엌에서 식구들이 감자를 나누어 먹는 그림. 감자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 감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몸의 양식이 될 뿐만 아니라 마음의 양식까지 되어 주는 것 같다. 전시실의 어둑신함 속에서 그림의 빛을 쬐고 있는 제이와 나의 모습이 마치 고흐 그림 속의 감자 먹는 사람들 같다.


반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이번 전시회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고흐가 물감과 캔버스를 아끼기 위해 그것들을 재활용한 그림이었다. 캔버스에 그림 하나만 그린 게 아니라 덧칠을 해서 계속 새로운 그림을 그린 것. 그런데 요즘은 엑스선 촬영을 해서 밑그림을 알아낸다. 고흐가 까페에 앉아 있는 세가토리를 그린 그림 아래에 엑스선 촬영을 한 밑그림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밑그림에는 또 다른 여인의 흉상이 그려져 있었다. 하하, 세가토리가 보면 화내겠어. 속으로 딴 여자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하면서 제이랑 나는 웃었다. 그리고 고호는 캔버스를 아끼기 위해 양면에 다 그림을 그렸다. 해바라기가 있는 풍경 뒷면에 농부 여인의 초상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또 캔버스가 없어서 차를 담은 나무 상자에 그린 그림도 있다.

고흐는 정말 알뜰하구나. 제이는 감탄한다. 그리고 고흐에게 물감도 사주고 집도 얻어준 동생 테오에게 감동한다. 나한테도 그런 동생이 있었으면… 제이의 동생은 물감을 사주기는커녕 맨날 누나 뜯어먹을 궁리만 하니 말이다. 누나, 집에 들어올 때 새우깡 큰 거 하나 사오면 안 잡아먹지.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오면 더 이뿌지. 맨날 이런 문자나 날리는 것이다.

그림을 다 보고 나서 제이는 고흐에 대한 느낌을 두 단어로 표현했다. 섬세하다. 강렬하다. 고흐 그림 속에는 나뭇잎 하나 하나가 다 살아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 그래서 자화상 속의 고흐 눈빛은 불꽃 같다. 방의 침대, 아몬드 나무, 해바라기, 밀밭의 까마귀, 꿈틀거리는 땅, 소용돌이치는 밤의 어둠과 별빛… 이 모든 것이 고흐 바로 자신의 모습인데 그 눈빛, 표정, 색과 붓터치에서 모두 벅찬 삶의 열정이 터져 나온다. 고흐가 자화상을 많이 그린 것은 특히 제이에게 인상적이다. 왜냐하면 제이 또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 앞에서 자기 모습을 담은 사진 찍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역시… 고흐랑 나랑 통하는 점이 있나봐… 제이는 흡족해져서 전시실을 나온다.

그림을 다 보고 나와서 우리는 전시실 옆의 선물 가게에 간다. 다음 주면 밀알 모임이 종강을 한다. 종강 모임 때 밀알의 친구들은 송년 선물을 주고받기로 했다. 선물은 각자 마음을 담아서 소박하게 준비하면 된다. 선물을 뭘 준비할까 고민했는데 여기 가게에 보니까 고흐 그림이 담겨 있는 예쁜 선물들이 많이 있다. 그림엽서, 찻잔, 우산, 가방, 필통, 액자 등등… 여기서 제이는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맞추는 퍼즐을 한 통 샀다. 선물을 받게 되는 사람은 얼마나 신기할까. 평범한 삶의 한 조각 한 조각이 위대한 예술 작품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반 고흐, <아를의 방>


나는 고흐의 방이 그려진 엽서 한 장을 샀다. 이 방에서 고흐는 그림을 그렸던 것일까. 고흐의 방에는 요강은 없구나. 고흐도 어쩌면 301호 여자를 피해 달아나기 위해 그림을 그렸는지 모른다. 밤에 쉴 수 있기 위해서,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기 위해서…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는 활보를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림 속 고흐의 방에서 잠시 숨결이 편안해진다. 지옥의 관문을 통과하여 비로소 내 방에 와서 쉴 수 있게 된 것 같다. 후유… 고흐의 그림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자니까 옆에서 제이가… 뭐하냐고, 빨리 집에 가자고 하면서 이렇게 묻는다.

근데… 고를 보고 사람들이 왜 ‘빈센트 반 고흐’라고 하는 거야?
귀가 반밖에 없어서 ‘반’ 고흐라고 하는 거야?



_정경미(감이당 대중지성)





편집자 북블매가 한 말씀 올립니다~


오늘이 <활보 활보>의 마지막 연재일입니다. 『홍루몽』에 "좋은 것에는 끝이 있고 끝이 있어야 좋은 것"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걸, 아쉽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시점이 있다는 걸 매번 다시 배우게 되네요. 정경미 선생님도, 제이 님에게도 모두 즐거운 연재였길 바랍니다. 그동안 <활보 활보>를 사랑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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