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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정치1/몸과정치2

‘관품(官品)’으로서의 사회 - 下

by 북드라망 2018. 10. 18.

‘관품(官品)’으로서의 사회 - 下



생물의 지각은 뇌해(腦海)에 모이고, 신경이 통치기관이 되어,

​전체가 그 생을 따라야 하는 것이 이치다.

​그러나 사회단체는 그렇지 않아,

​각부에 기관이 통력합작(通力合作)하고, 역사분공(易事分功)해,

​전체의 생을 따름으로써 견고함을 얻는 것이 이치다.

─옌푸,「천연진화론(天演進化論)」(1913) 


 

분공역사, 기관공용


옌푸는 국가란 태어나서 성장하는 것이지 제조물이 아니라는 사비니의 말과, 인간사회는 유기체와 같은 큰 생물이며 생로병사를 말할 수 있다는 스펜서의 말을 빌려 『정치강의』를 마치고 있다. 하지만 실리의 유기체 논의를 기본으로 옌푸 자신의 생각을 더해 전개한 강의에서의 유기체상은 스펜서의 논의와 많은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옌푸에게 스펜서의 유기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슈워츠가 스펜서의 내적 모순이라고 지적한 점을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스펜서의 논의 속에서 개체에 대한 강조는 그의 이론 내에서 자연적으로 도출된 것이 아니라 스펜서 개인의 가치관의 영향을 받아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스펜서의 내적 모순, 즉 자유주의와 유기체론 사이의 대립 중에 옌푸는 ‘군사형 사회’로서의 유기체의 강조라는 일면만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슈워츠의 해석이다. 이는 스펜서의 ‘군사형 사회’와 ‘산업형 사회’의 이분법적 구분에 대해 옌푸가 명시적으로 논의한 부분이 없다는 것이 해석의 논증으로서 제시된다.


그렇다면 실제로 스펜서의 유기체론에 대한 옌푸의 이해가 어땠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시기가 조금 지난 1913년에 쓴 「천연진화론(天演進化論)」이라는 글에서 옌푸는 사회유기체설이 스펜서로부터 나왔음을 말하며 사회와 생물 유기체 사이의 공통점에 대해 설명한다.


사회가 유기체(有機體)임에 대해 논해보자. 이 설은 스펜서로부터 나왔는데 사회와 생물 유기체를 서로 비교하면 매우 닮은 점이 많음을 볼 수 있다. 생물은 처음에 몸이 반드시 먼저 내외부로 나뉜다. 외부로서 접물(接物)하고, 내부로서 생존한다. 이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조금 진화하면[進] 교통 표산(俵散)의 기관[機]이 생기는데 생물에는 혈맥이 있게 되고, 사회에는 도로, 상매(商買)가 있게 된다. 조금 더 진화하면 통치기관이 생기는데 생물에는 뇌해(腦海)신경이 있고, 사회에 법률정부가 있게 된다. 가령 이러한 예들과 같이 비유가 효과적인 것은 끝이 없다. 이를 자세히 알고자 하는 학자는 졸역인 『군학이언(群學肄言)』을 보라. 이 설에 의하면 중국과 서양의 옛사람들은 이를 모르지 않았다. 사회진화는 즉 분공역사(分功易事)가 있어, 서로 의지해 생존하는 형국이다. 생물의 몸 역시 그렇다. 고로 눈과 귀, 장(臟)과 부(腑) 모두 상직(常職)이 있어, 서양인은 이를 일러 기관공용(機關功用)이라 하고 중국은 이를 일러 관사(官司)라 했다. 기관이 있으면 공용이 있는 것은 관(官)이 있으면 사(司)가 있는 것과 같다. 기관[官]이 없는 사물에게 기관을 주는 것을 조직(組織)이라 하고, 옛사람은 이를 부서(部署), 제치(制置)라 했다.


─嚴復,「天演進化論」(1913), 『嚴復全集 卷七』, 435쪽


​이 글에서도 중국의 유기체론과 서양의 유기체론을 유사한 것으로 소개하며, 사회진화를 맹자식의 분업의 논리, 분공역사(分功易事)에 의해 서로 의지해 생존하는 것으로 이는 생물의 몸에 눈과 귀, 장과 부가 모두 각자의 역할로서 관사(官司)가 있는 것으로 이것이 서양에서 말하는 organism, 즉 조직의 논리라 설명한다. 하지만 그가 스펜서의 논의 자체에 대해서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생물과 사회 사이의 비유가 효과적인 것이 끝이 없는데 자신이 스펜서의 『사회학 연구(The Study of Sociology)』를 번역한 『군학이언(群學肄言)』을 참고하라고 적고 있다. 여기에서 옌푸는 『천연론』에서 보여주었던 논리를 가지고 와서 군에 대해 설명한다. 천연의 원리가 군(羣)의 진화[進演]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관직을 나눔[分官]과 직무를 맡김[任職]으로써 간단한 것에서 번잡한 것으로 변해간다. 이처럼 최초의 군은 그 수가 적고 서로 속박하지 않으며 상하의 제어함이 없고 일존(一尊)으로 통어됨이 없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 사이에 기강이 생기고, 권력이 안정된다. 이를 그는 ‘판분(判分)’이라 부르고 이것이 천연의 첫 번째라 한다. 즉 제어함과 제어받음을 나누는 것은 사회=군의 진화에 큰 줄거리라는 것이다.


이 진화의 원리에 대한 설명은 원문에는 없는 부분으로 옌푸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첨가한 것이다. 그에게 진화의 원리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기능상의 분화가 핵심이었다. 이로써 규제하는 부분(regulating part)과 규제받는 부분(regulated part) 사이의 분화가 생겨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스펜서의 논의를 옮기고 있다. 여기서 생물과 유기체 간의 유비의 핵심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진화하면서 기능상 분화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옌푸는 사회학과 생물학이 진화의 원리에 있어 공통적이라는 스펜서의 주장과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펜서의 논의를 개체와 전체 간의 논리라기보다 전체 안에서 단순한 조화라는 전통적 논리 속에서 유기체를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옌푸는 『천연진화론』에서 생물유기체와 사회유기체의 차이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생물유기체는 그 중 지각이 일부에만 있어서 이를 담당하고, 그 몸은 무수한 세포와 무수한 유닛(么匿)으로 이루어져있어, 무수한 것들이 하나를 이룸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회유기체는 모든 유닛에게 각성(覺性)이 있어, 고락과 감정 생각 등이 사람에게 두루 있다. 생물의 지각은 뇌해(腦海)에 모이고, 신경이 통치기관이 되어, 전체가 그 생을 따라야 하는 것이 이치다. 그러나 사회단체는 그렇지 않아, 각부에 기관이 통력합작(通力合作)하고, 역사분공(易事分功)해, 전체의 생을 따름으로써 견고함을 얻는 것이 이치다. 국가사회는 홀로 각성을 구비한 것에는 차이가 없으며, 반드시 인민의 각성으로 각성을 삼는다. 소위 국가 사회의 문명복리는 그 인민의 문명복리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생물이 생명을 보진(保進)하는 때 그 지체는 잘라낼 수 있으며, 그 관해(官骸)는 깨질 수 있어 지체 관해의 고락을 반드시 계산하는 것은 아니다. 군형(君形)은 리로서, 그 나머지를 돌아볼 겨를이 없으나 사회는 이 같은 홀로 중요한 특별한 주체가 없다.


─嚴復,「天演進化論」(1913), 『嚴復全集 卷七』, 435쪽


생물 유기체는 지각이 있는 세포와 지각이 없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사회 유기체는 모든 ‘유닛(么匿)’에 ‘각성(覺性)’이 있어 모든 사람이 고락과 감정을 느낀다. 따라서 생물의 지각이 ‘뇌해(腦海)’에 모여 ‘신경’이 통치기관이 되어 전체를 통제하는 반면 사회단체는 각부 기관이 ‘통력합작(通力合作)’하고, ‘역사분공(易事分功)’하지 않을 수 없다. 이때 그는 스펜서의 말을 인용한다.


생물의 유닛은 각성이 없고, 전체에만 각성이 있다. 그러나 사회는 유닛에게 각성이 있고, 전체는 따로 각성을 갖추지 않았다. 따라서 치국이라는 것은 나라의 이익을 위해 개인[小己]를 희생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개인의 이익이 있어야 무리[群]를 세울 수 있지 무리가 있어 개인이 있는 것이 아니며. 개인의 이익이 없다면 무리 역시 세워질 수 없다. 생물 개체처럼 그 중에 일체의 유닛 지부가 개체의 고락 존폐를 빼놓고 이해(利害)를 말할 수 없는 것과 다르다.


​이에서 보듯 옌푸가 사회와 개체 유기체 사이의 차이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이 스펜서식의 자유주의적 발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사회를 이루는 개인의 역할에 대해 강조한 스펜서와 마찬가지로 옌푸 역시 민력, 민지, 민덕의 개발을 강조하지만 이것이 스펜서식의 자유주의적 유기체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는 근대 중국이 처한 절박한 현실과 천하를 구하려는 사명감, 특수한 유학경험과 개인적 학문 소양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볼 수 있다.


스펜서와 달리 옌푸에게 유기체란 개체의 자율을 보장하기 위한 사상적 도구가 될 수 없었다. 그에게 유기체가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개체 내의 각 세포들에게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유기체 전체의 생존, 부강을 목표로 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이 처한 현실은 그가 스펜서의 자유주의적 유기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곤란했던 사정을 일정 정도 설명해준다. 그동안의 옌푸의 유기체 해석은 슈워츠가 그러하듯 당시 상황이 스펜서의 자유주의적 측면에 눈감아 버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 때문에 그런 식으로 유기체를 이해했을 것이라는 외재적 설명방식만으로 모든 것을 돌릴 수만은 없다. 내재적인 논리의 차이 역시 간과될 수 없는 부분임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다시 생각한다면 옌푸가 스펜서의 유기체와 다른 실리의 유기체론을 받아들였던 것은 처음부터 유기체에 대한 이해가 달랐던 것은 아닐까. 그가 전통 담론에서 유기체를 부회론적 입장이 아니라 서양의 바디폴리틱과 동일시했던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옌푸 역시 스펜서의 유기체론에서 세포가 갖는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옌푸에게는 이러한 지점들이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 스펜서의 논의가 미리 선재하는 개인들이 조화롭게 협동함으로써 사회가 구성되는 점을 강조한다면 이러한 기반이 부족했던 중국에서는 스펜서의 낙관론을 받아들일 만큼 상황이 녹녹하지 않았던 점이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신체를 보는 관점에서도 개별 세포 혹은 기관에 대한 강조보다 전체의 조화를 중시하는 전통적 신체관의 영향이 있었을지 모른다. 이는 그가 스펜서식의 사회[群]를 설명하며 순자를 가지고 와서 설명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그에게 분업의 원리란 순자 혹은 맹자식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옌푸에게 유기체란 그런 점에서 분업을 통한 전통적인 조화로운 질서 개념에 가깝게 인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스펜서에게 전체로서 유기체는 선험적으로(a priori)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체들의 기능적인 ‘관계’들 속에서만 나타난다. 반면 옌푸가 바라본 유기체는 전체로서의 조화가 중시되며 전체는 각 부분들보다 미리 존재하며, 존재론적 우위성을 지닌 것이었다.



신체관의 충돌


옌푸가 스펜서의 사회유기체(social organism)론을 받아들이는데 일종의 변형과 굴절의 양상이 보인다. 그것은 컨텍스트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기저에 깔려있는 신체관의 차이 좀 더 넓게는 생명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측면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스펜서의 유기체 개념의 수용 과정에서 옌푸에게 개체적인 것의 강조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은 점은 전통적 신체관의 영향을 깊게 받을 수밖에 없었던 중국의 맥락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이는 신체와 정치를 따로 분리해 생각해 왔던 기존의 연구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이다. 따라서 정치담론은 단순히 지식의 수용 차원뿐만이 아니라 세계관 자체와 연관된 문제이기도 하다.




유기체론과 같은 바디폴리틱에 대한 담론들을 보는데 있어 정치관과 신체관은 분리될 수 없다. 스펜서가 개별 세포의 자유로운 개체성을 강조하며 이것들 간의 조화로운 관계로서 인간의 신체를 사유한 것과 개별 인간들은 하나하나 독자적인 감각과 판단을 가진 존재로서 이들이 조화로운 유기적 사회를 만들어 낸다는 사유는 둘이 아니다. 옌푸에게 유기적 신체는 개별 세포들의 독자성보다 전체로서 조화롭다는 점에 방점이 찍혀있다. 그리고 이는 사회나 국가를 생각할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펜서가 말한 개체의 자유에 대한 강조가 갖는 의미가 사상된 채 유기체라는 개념이 수용되었던 것은 그 밑에 깔려있는 신체에 대한 인식의 차이, 세계관의 차이 때문일 수 있다.


이로써 19세기 근대 동아시아에서도 유행한 사회를 유기체로 사유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서양의 것이 그대로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또한 이는 원본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오는 복사본의 한계도 아니었다. 전통적인 세계관 속에서 새로운 근대적 사유들이 접합되면서 나오는 ‘어긋남’과 ‘새로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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