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서대문 형무소』 - '위대한 여정' 속, 0.9평의 어둠

『서대문 형무소』

'위대한 여정' 속, 0.9평의 어둠



나는 어느 순간부터 '정치'에 무관심해졌다. 그것이 일상의 정치든, 저 멀리 국회나 아스팔트 바닥에서 벌어지는 정치든, 마찬가지였다. 미시권력이든, 거시권력이든 '권력'이라는 기호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이론과 실천의 이분법, 어떻게 해도 이론의 완전성을 따라잡을 수 없는 실천의 초라함, 그로부터 연유하는 죄의식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맑스주의 용어 중에 '당파성 이론'이라는 게 있다. 대충 요약하면, 중립은 없다, 우리 계급의 편이 아니면 다른 계급의 편이라는 내용이다. 좀 더 파고 들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편 안에서 '끊임없는 자기비판'이 있어야 한다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그게 문제다. '끊임없는 자기비판'을 하기에는 나는 너무 약하다. 나는 그걸 '끊임없이' 할 수 없다. 심지어 나는 비겁하기까지 하다. '자기비판'의 거의 세, 네배의 빈도로 '자기합리화'를 하니까. 차라리 나는 내 안에서 '당파성'의 척도를 없애고 싶다. 그렇게 하면, '당파성 이론' 안에서 나는 적敵이 되고 만다. 지긋지긋하다. 그래서 아예 잊어버리고 살려고 무진 애를 쓰며 산다. '정치'에 무관심해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또 나는 영원한 '계급의 적'이 되겠지. 언제까지나 '이론'을 따라잡지 못하는 '실천'처럼 결코 끝나지 않는 순환이다.




『서대문 형무소』는 사진집이다. '서대문 형무소'라는 기호는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게 붙어있다. 이 책에 대해 무어라 말하는 순간 나는 다시 '정치'로 돌아오고 만다. 사진집에 붙어있는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의 서문을 언급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리영희 선생과 '독재'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와 어떻게 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에 관해 이야기해야겠다. 다만, 나는 지금 현재의 한국 정치가 어떻고, 어떻게 저항해야 하며 같은 그런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서대문 형무소'에 갇혔던 수많은 정치범, 사상범, 양심수, 확신수 등등,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그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자유를 준 그 분들에 대한 감사를 전하고 싶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같은 문제는 2015년 8월 현재 시점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문제다. 어떻게 푸는지에 관해서는 누구도 답을 줄 수가 없다. 나름의 방식으로 도전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그 자유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걸 잊어버리면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게 무엇인지도 모르게 된다. 그러니까 잃어버려도 뭘 잃어버렸는지 모르게 된다. 


'서대문 형무소'는 1910년 짓기 시작하여, 1912년에 완성되었다. 여기에 갇혀있던 인물들의 목록을 보면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된다. 일제 시대에는 유관순, 강우규, 안창호, 여운형, 이승만 등이 있었다.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형무소 수감자의 70%를 '좌익'으로 채워넣었다. 70년대에는 리영희, 백기완, 김지하, 장준하가, 80년대에는 수없이 많은 '운동권 학생'들이 있었다. 책에 수록된 사진들 곳곳에서 감옥에 갇힌 '자유'들을 볼 수 있다. 


당신은 혹시 길이 여덟 자, 너비 넉 자 크기의 관 속에 들어가 누워 본 일이 있습니까? 어떤 느낌일까요?

경험이 없어서 상상이 안 가지요. 그 관의 크기는 0.9평입니다. 그 관에는 0.2평의 변소가 붙어 있어서, 전체의 크기는 1.1평이라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이제 상상이 좀 갑니까?

0.2평의 변소는 콘크리트 바닥이고, 그 네모의 대각선이 교차하는 중심에 직경 십 센티미터의 구멍이 뚫려 있다고 합시다. 십 센티미터 직경의 구멍을 통해서 정확히 배설해야 하는 생리적 행사에는 정확한 사격술이 필요합니다. 

이 관 속의 공간은, 변소 벽에 뚫린 사방 한 자의 틈에서, 그것도 철창과 널빤지로 가려진 틈 사이로 뿌유스름한 빛이 새어 들어올 뿐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보이질 않습니다. 

여름이면 낮에도 컴컴한 이 관 속 방바닥에서 '식사'라는 것을 차려놓고 먹을라치면, 막힘이 없이 통해 있는 변소의 구멍에서 누런 구더기떼가 줄줄이 기어 나와 더불어 생존하길 요구합니다. 처음 며칠은 음식이 넘어가질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 며칠 뿐이지요. 안 먹고야 살 수 있습니까? 그래서 며칠이 지나면 구더기떼를 빗자루로 쓸어내면서 '맛있게' 먹어야 합니다.

- 『서대문 형무소』, 김동현·민경원 사진, 리영희·나명순 글, 서문 16쪽, 열화당


리영희 선생이 남긴 서문의 한 대목이다. 생의 어느 순간에도 나는 0.9평의 방에서 잠을 자본 적이 없고, 구더기는 본 적도 없다. 당연히 상상이 잘 안 간다. 그럼에도 그 장면이 상상이 가서 마음이 무거워지고 만다. 그뿐인가? 수없이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서 고문받아 죽고, 사형당해 죽고, 병들어 죽고, 굶어서 죽어갔다. 지금 누리는 자유가 태어난 이 압도적인 역사의 어둠 앞에서 취해야 할 적절한 태도가 무엇인지 생각할 수도 없다. 그저 한없이 감사할 뿐이다. 그 와중에 영문을 알 수 없는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다. 이런 글을 써 올릴 수 있다는 사실, '서대문 형무소'를 '역사적'인 것으로만 볼 수 있다는 사실, 평생 구더기 한번 볼 기회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이 사실, 0.9평 독방을 상상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쁘기 때문일 것이다. 가지고 있는 게 무엇인지, 어디서 왔는지, 누가 주었는지 정도는 알고 살아야겠다. '광복 70주년 위대한 여정, 새로운 도약'도 좋다. '위대한 여정' 속에 0.9평의 어둠이 있었음을 꼭 기억하자.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