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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씨앗문장

선택의 가능성 ― 오래전 글이 불러온 바람

by 북드라망 2018. 9. 14.

선택의 가능성 ― 오래전 글이 불러온 바람




오래전 내가 쓰고 잊었던 나의 글 한 편을 어느날 친구가 프린트하여 편지와 함께 보내주었다. 프린트된 그 글은 분명 내가 썼던 글이었지만, 내가 쓴 것 같지 않았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그 시간 동안 내 가치관을 바꿀 만한 사건을 맞았기 때문이다. 어쩐지 마음이 아파져 그 글을 덮어 두었다. 그 글은 그 ‘사건’과 전혀 상관없지만, 그 ‘사건’을 둘러싼 배경과 사람들을 선명히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그 글을 어쩌다 다시 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여전히 아득하긴 하지만, 내 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로소 그 ‘사건’을 ‘상처’로 받아들이지 않고 떠올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전에 쓴 그 글에서 내가 ‘더 좋아했던 것들’을 ‘여전히’ 좋아하고 있음을, 내가 ‘더 좋아하는 것들’이 조금씩 더 늘었음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아무튼 이것이 내게 안도를 느끼게 했다. 


바라건대, 사는 동안, ‘더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 늘려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소중한 사람들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선택의 가능성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영화를 더 좋아한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바르타 강가의 떡갈나무를 더 좋아한다.

도스토옙스키보다 디킨스를 더 좋아한다.

인간을 좋아하는 자신보다

인간다움 그 자체를 사랑하는 나 자신을 더 좋아한다.

실이 꿰어진 바늘을 갖는 것을 더 좋아한다.

초록색을 더 좋아한다.

모든 잘못은 이성이나 논리에 있다고 

단언하지 않는 편을 더 좋아한다.

예외적인 것들을 더 좋아한다.

집을 일찍 나서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의사들과 병이 아닌 다른 일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한다.

줄무늬의 오래된 도안을 더 좋아한다.

시를 안 쓰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

시를 써서 웃음거리가 되는 편을 더 좋아한다.

명확하지 않은 기념일에 집착하는 것보다

하루하루를 기념일처럼 소중히 챙기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에게 아무것도 섣불리 약속하지 않는

도덕군자들을 더 좋아한다.

지나치게 쉽게 믿는 것보다 영리한 선량함을 더 좋아한다.

민중들의 영토를 더 좋아한다.

정복하는 나라보다 정복당한 나라를 더 좋아한다.

만일에 대비하여 뭔가를 비축해놓는 것을 더 좋아한다.

정리된 지옥보다 혼돈의 지옥을 더 좋아한다.

신문의 제1면보다 그림형제의 동화를 더 좋아한다.

잎이 없는 꽃보다 꽃이 없는 잎을 더 좋아한다.

품종이 우수한 개보다 길들지 않은 똥개를 더 좋아한다.

내 눈이 짙은 색이므로 밝은 색 눈동자를 더 좋아한다.

책상 서랍들을 더 좋아한다.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마찬가지로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다른 많은 것들보다 더 좋아한다.

숫자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자유로운 제로(0)를 더 좋아한다.

기나긴 별들의 시간보다 하루살이 풀벌레의 시간을 더 좋아한다.

불운을 떨치기 위해 나무를 두드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얼마나 남았는지, 언제인지 물어보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존재, 그 자체가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끝과 시작』에서)



저는,

코미디를 더 좋아합니다.  

다리 짧은 개를 더 좋아합니다.

막 돋아난 연연두색 잎사귀를 더 좋아합니다.

1930년대에 나온 소설들을 더 좋아합니다.

악당이 나오지 않는 만화들을 더 좋아합니다.

사람의 행동을 분석하기보다는 사람의 마음에 다가서 보는 걸 더 좋아합니다. 

자기 확신에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져 보는 사람을 더 좋아합니다.

삶 이야기를 더 좋아합니다.

다양한 유희거리 사이를 활보하기보다는 하나의 활동에 몰두하는 걸 더 좋아합니다.

침묵이 흘러도 어색하지 않은 관계를 더 좋아합니다.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기 자신에 몰두할 수 있는 사람을 더 좋아합니다. 

하나의 행동을 보고 그의 인격 전체를 판단하지 않는 걸 더 좋아합니다.

손이 식기 전에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더 좋아합니다.

알고 싶은 열정으로 뛰어든 학문의 길을 더 좋아합니다.

아픈 사람들을 위해 발언하는 사람보다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을 더 좋아합니다. 

어디에서든 가르치려는 것보다는 무엇에서든 배우려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둥근 글씨를 더 좋아합니다.

온 얼굴로 웃는 모습을 더 좋아합니다.

다른 이들의 웃음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더 좋아합니다.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가 타인에 대한 사랑이 되는 걸 더 좋아합니다.

부담을 주지 않는 정갈함을 더 좋아합니다.

싱거운 맛을 더 좋아합니다.

빠른 화면보다는 느린 화면을 더 좋아합니다.

남탓보다는 자기를 먼저 돌아보는 마음을 더 좋아합니다.

말보다는 활동으로 드러나는 마음을 더 좋아합니다.

슬픔과 괴로움이 너무너무 커졌을 때도 아주아주 작은 기쁨 하나를 찾아내는 지혜를 더 좋아합니다.

100년 뒤에도 읽힐 책을 더 좋아합니다.

말랑말랑한 손을 더 좋아합니다.

삶은 수건을 더 좋아합니다.

쨍한 날 점심식사 후 마시는 달달한 커피를 더 좋아합니다.

뜻밖의 편지를 더 좋아합니다.

훈련된 상냥함보다 쑥스러운 배려를 더 좋아합니다.

실수를 어물쩡 넘기기보다는 정면으로 받아안는 마음을 더 좋아합니다.

담백한 글을 더 좋아합니다.

시간을 견디는 힘을 더 좋아합니다.

그리고

진실한 마음은 반드시 가닿는다는 그 믿음으로 꾸리는 일상을 더 좋아합니다.



위의 쉼보르스카의 시를 차용해 제가 더 좋아하는 것들을 적어 보았습니다. 저는 쉼보르스카 시에서 중요한 건 “더 좋아한다”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싫은 것보다 좋아한다’라기보다는(싫은 것보다 좋은 걸 과연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도 의아합니다) “이걸 좋아하지만 저걸 더 좋아한다”는 것. 다 좋은데, 더 좋은 것들을 말하는 것. 그것이 저에겐 중요하게 와닿았습니다. 싫은 것투성이에서 좋아하는 것을 겨우겨우 골라내는 일상이 아니라, 좋은 것투성이에서 더 좋은 것을 찾아내는 일상으로 살아내자는 말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걸 ‘더’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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