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루이 알튀세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잊어야하는 것으로부터 배우기

잊어야하는 것으로부터 배우기

루이 알튀세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회사에서 새로운 업무나 제도를 도입하려 할 때면 으레 남들은 어떻게 그것을 도입했는지를 살피게 된다. 우리보다 앞서서 제도나 프로세스를 운영하는 내용을 잘 살펴보고 우리 회사에 맞게 고치는 것은 실무자로선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을 따르다 발생할 시행착오를 줄이고, 모범이랄 수 있는 것을 어찌어찌 잘 바꾸어 본다면 혹시 경쟁자보다 더 잘 세팅할 수도 있을 것이기에 그런 작업 자체가 회사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 아직 정착되지 않은 일이거나, 혹시라도 국내 첫 시도이기라도 하다면 “선진사례 벤치마크(Benchmark)”라는 이름으로 해외 유수 기업들의 사례를 조사하는 것은 필수를 넘어 필사적인 일이 된다. 그것은 목표가 되어 앞으로 내가 할 모든 일에 들이댈 기준이 될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벤치마크라는 게 그리 쉽게 찾아지지는 않는다. 아주 오래전에 내 일과 관련해서 해외 기관들의 조직형태를 찾아보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있었다. 거래하는 부서와 그것을 관리하는 부서가 하나의 의사결정체계로 구성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 결과에 따라서 구성원들의 운명이 일정하게 바뀔 태세였다. 하지만 우리와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는데도 해외기관들은 제각기 다른 형태들을 가지고 있어서 무언가 하나로 표준을 제시하기가 무척이나 난감했다. 그러니까, “이 업무의 해외 선진 조직의 구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답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벤치마크의 실체란 언제나 질문을 비웃는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것은 언제나 하나의 모범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벤치마크 이슈는 현대 기업들에게만 주어진 난감함은 아니다. 마르크스가 고민하고 삶을 이끌었던 19세기 초 독일에서도 동일한 고민이 존재한 듯하다. 1830년대와 1840년대 독일은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들의 혼란 속에 처박혀 있었고, 자신들이 가야할 길이라고 여겼던 민족 통일과 부르주아혁명은 도무지 실현하지 못할 것 같은 무기력이 사회를 감돌고 있었다. 이런 무기력한 상황 때문에 스스로를 독일 밖에서 진행되는 현실적 역사의 객체이자 구경꾼이 되게 해 버렸다. 다시 말하면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지체 현상이 독일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


그런데 이런 상황이 놀라운 불균형을 산출하는데, 그것은 이런 “역사적 저발전(underdevelopment)”에 대응하여 초래된 “이데올로기적·이론적 과잉 발전(over-development)”[각주:1]이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역사는 한참 지체되어 발전하는데, 그런 것들을 이루려는 욕망 때문에 그것을 사고하는 능력은 과잉 발전하게 된 것이다. 독일 관념론 철학의 화려한 성공은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 프랑스인들은 정치적 머리를 가졌고, 영국인들은 경제적 머리를 가졌으며, 독일인들은 이론적 머리를 가졌다는 농담도 이를 두고 이르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 알튀세르는 당대 독일의 이론적 발전은 자신들이 고찰할 현실적인 문제와 구체적인 대상이 존재하지 않은 채 허구적으로 발전된 것이었다고 말한다. 즉 그것은 소외된(alienated) 발전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풀어서 말하면, 그것은 현실과 동떨어진(alienated) 발전이었다. 사실 한 사상가가 언제 어디선가 태어나 주어진 세계에서만 사고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면, 마르크스의 경우 이 세계는 독일 관념론이 지배하던 세계, 따라서 역사의 현실적 발전은 지체되었지만, 이데올로기와 이론은 과잉 발전하던 19세기 초 독일의 세계이다. 마르크스는 이 세계에서 이 세계가 준 이론들에 기대어 사고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마치 현대의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서 글로벌 선진사례를 찾는 것처럼 독일은 프랑스와 영국을 마치 자유와 이성의 땅인 듯이 바라보았다. 알튀세르의 표현에 따르면 그들은 “남들이 행한 것을 살 수가 없었으므로, 남들이 행한 것을 사고”하기만 했다. 즉, 프랑스와 영국의 역사 경로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없으므로, 머리로만 끊임없이 상상하고 그 사회를 동경하기만 했다. 그래서 독일 관념론의 발전이라는 과잉발전이 발생하는데, 이로부터 프랑스의 정치적 감각과 독일 자신들의 이론의 결합에 미래가 달려 있다는 거짓 환상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독일 자신의 이데올로기 도식과 문제설정에 의해서 왜곡되어 드러난 현실들에 사로잡혀서 생긴 환상일 뿐이다. 프랑스와 영국을 무조건적인 정답으로 지향해야 하는 일종의 신화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1843년 마르크스가 프랑스로 떠나기로 결정한 것은, 일종의 신화(myth)를 찾아 떠난 것이었다. 식민지의 청년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프랑스에서 근본적인 발견을 하게 된다. 프랑스와 영국이 자신들이 상상했던 신화와 들어맞지 않는다는 발견, 계급투쟁과 적나라한 자본주의와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발견, 그래서 순수한 정치운동을 통해 자유를 획득할 수 있으리라는 거짓말에 대한 발견. 그러니까, 그들의 이론적 머리로는 도무지 볼 수 없었던 현실, 독일 관념론 철학 텍스트에서는 어떠한 모습도 드러나지 않았던 “근원적으로 새로운 현실(a radically new reality)”을 발견한 것이다.[각주:2]


어쨌든 마르크스는 언제 어디선가부터 자신도 모르게 ‘시작’을 하였다. 그것은 굉장한 우연성에 둘러싸인 사건이기도 하다. 그가 독일을 선택한 것은 아니니까. 그는 거대한 환상들이 두껍게 둘러싸여 있는 곳, 19세기 초 지체된 독일에서 사고를 시작하였다. 특히나 그곳은 독일 관념론의 과잉발전이 의식을 짓누르는 곳이었다. 그만한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어마어마한 거짓 사고의 화석층이 현실을 왜곡시키고 있었다던 곳. 바로 그곳에서 청년 마르크스(the Young Marx)는 아직 마르크스(Marx)가 아니었다. 청년 마르크스는 마르크스가 되기 위해 거대한 환상들의 층을, 그것이 얼마나 두꺼운지 지각하기도 전에, 뚫고 나가야 했다. 이 돌파로부터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에게 두 개의 현실이 드러난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청년 마르크스의 지적 진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행한 것은 이런 이중의 발견이었다. 이데올로기의 이쪽 편에서, 이데올로기가 왜곡했고 ‘이데올로기가 말한 현실(the reality)’을 발견한 것과, 당대의 이데올로기의 저 너머에서, ‘당대의 이데올로기가 무시한 새로운 현실(a new reality)’을 발견한 것이 그것이다. 마르크스는 이 ‘이중의 현실(double reality)’을 엄밀한 이론 속에서 사고함으로써, 요소를 바꿈으로써, 그리고 이 새로운 요소의 통일성 및 현실성을 생각함으로써 마르크스 자신이 되었다.”(「청년 마르크스에 대하여」, 강조와 인용부호는 인용자)[각주:3]

 



‘이중의 현실(double reality)’. 알튀세르가 청년 마르크스를 두고 말한 이 용어에 비추어 보면, 우리도 우리가 보는 현실이 어떤 왜곡에 의해 뒤틀린 현실일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우리도 항상 주어진 세계에서만 자신의 사고를 시작한다. 언제나 내가 그 세계를 선택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그 시작은 언제나 거대한 환상층을 품고 왜곡되어진 채일 수 있다. 그것은 이데올로기가 말한 기존의 현실(the reality)일 것이다. 만일 새로운 현실(a new reality)로 나아가려 한다면, 자신이 우연히 시작했던 자신의 기원들과 결별하는 대가, 자신을 배양한 환상들과 영웅적 전투를 해야하는 대가, 환상이 감추고 있는 어떤 현실과 직접 대면해야하는 대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청년 마르크스가 마르크스로 나아가며 거쳐간 그 대가를. 

  

이것은 마르크스가 변증법을 해방시키는 과정에서 더욱 극적으로 나타난다. 마르크스는 “변증법이 헤겔의 수중에서 기만을 겪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상상하듯이 좋은 변증법이 있지만 그 외부에 신비화된 요소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그것을 걷으면 원래 좋았던 그 변증법이 나타나는 식이 결코 아니다. 물론 둘러싸여 있는 기만적인 외부 요소들이 있긴 하므로 ‘첫 번째 싸개(first wrapping)’로부터 끄집어내긴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으론 부족하다. 헤겔변증법과 동체인 내적 요소, 그러니까 그것의 몸에 붙어 있는, 변증법 자체로부터 분리 불가능한 변증법 자체의 살갗이자 자체인 원리, 결국 두 번째 외피(second wrapping)로부터도 벗어나야 한다. 그 외피를 깎아내는 일은 언제나 고통이 수반되는 작업이다. 그것은 그저 본래적인 것을 끄집어내는 작업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추출한 것을 변형하는(transform), 마치 자기 자신을 원래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깎아 만들어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알튀세르는 이런 작업을 “뒤로 돌아가기(retreat)”라고 부른다. 그것은 거대한 환상이 이루어 놓은 층을 뚫고 나가 적나라하게 진행되는 ‘현실적 역사’로 되돌아가는 귀환(return to real history)[각주:4]이다.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에게 “존재들(êtres)”이란 되돌아갈 현실적 역사를 말한다. 실감으로 다가오는 역사. 독일 의식에 감도는 환상의 안개 속을 뚫고 현실적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기. 그러기 위해서 이데올로기 맞은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청년 마르크스를 논하는 이 사랑스런 논문(「청년 마르크스에 대하여(「On the Young Marx)」)에서 아주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환상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대(즉, 억눌린 독일)에서 마르크스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가 결말로부터 그토록 먼 곳(독일)에서 시작함으로써, 철학적 추상(독일 관념론) 속에 그토록 오래 체류함으로써, 현실을 다시 발견하기 위해 그런 공간들을 편력함으로써 얻은 것은 무엇인가?”(괄호안은 인용자)[각주:5] 즉, 환상투성이인 독일 사변철학으로부터 그는 무엇을 얻을 수 있었던가?

  

알튀세르의 대답은 훈련, 바로 이론을 위한 훈련이다. 마르크스가 되기 전의 청년 마르크스가 끊임없이 고투했던 “장정(Long March)”은 이론이 형성되는 시기(theoretical formation)가 아니라, 앞으로 형성될 이론을 위해 훈련하는 시기(formation for theory)였다는 것이다.[각주:6] 이데올로기에 의해 거대한 환상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그는 이론적 지성의 교육을 스스로 시키고 있었다. 분명 새로운 이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한 순간에 폭발하여 드러날 새로운 현실과 그것을 설명할 이론을 위해서 그에 앞서서 스스로를 단련하는 시간이다. 

  



이것은 알튀세르의 주요 공저자이면서 제자이기도 했던 알랭 바디우에게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사건을 대비한다는 것은 지배 세력들이 변화의 가능성들을 절대적으로 통제하고 있지 않다는 정신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일갈한다.[각주:7] 다시 말하면 내 정신이 지배세력에게 무조건적으로 구속되어 있지는 않다고 여기고 기존의 것 속에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단련시키는 것을 말한다. 기존의 것에서 스스로를 단련시킨다는 것, 아마도 그것은 사라질 것들 속에서 자신을 단련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알튀세르가 말한다. “자기가 잊어버려야 하는 것 바로 그 속에서 자기가 발견하게 될 것을 말하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잊어버려야 할 것, 그러니까 사라지고 말 것들로부터 중얼거림을 배우고, 끊임없이 단련해 나가는 것 외에는 해야 할 일은 없다. 


글_약선생(a.k.a 강민혁)

   

  1. 루이 알튀세르 지음, 『마르크스를 위하여』, 서관모 옮김, 후마니타스(주), 2017, 142쪽. ; Louis Althusser, 『For Marx』, Translated by Ben Brewster, Verso, 2005, p. 76 [본문으로]
  2. 루이 알튀세르 지음, 『마르크스를 위하여』, 서관모 옮김, 후마니타스(주), 2017, 150쪽. ; Louis Althusser, 『For Marx』, Translated by Ben Brewster, Verso, 2005, p. 81 [본문으로]
  3. 루이 알튀세르 지음, 『마르크스를 위하여』, 서관모 옮김, 후마니타스(주), 2017, 151쪽. ; Louis Althusser, 『For Marx』, Translated by Ben Brewster, Verso, 2005, p. 81 [본문으로]
  4. 루이 알튀세르 지음, 『마르크스를 위하여』, 서관모 옮김, 후마니타스(주), 20 [본문으로]
  5. 루이 알튀세르 지음, 『마르크스를 위하여』, 서관모 옮김, 후마니타스(주), 2017, 156쪽. ; Louis Althusser, 『For Marx』, Translated by Ben Brewster, Verso, 2005, p. 84 [본문으로]
  6. 알튀세르는 청년 마르크스가 고투한 시기를 마오쩌둥의 장정을 비유하여 ‘긴길’이라고 표현한다. 루이 알튀세르 지음, 『마르크스를 위하여』, 서관모 옮김, 후마니타스(주), 2017, 156쪽. ; Louis Althusser, 『For Marx』, Translated by Ben Brewster, Verso, 2005, p. 84 [본문으로]
  7. 알랭 바디우, 파비앵 타르비 지음, 『철학과 사건』, 서용순 옮김, 오월의 봄, 2015, 30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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