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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아파서 살았다

정정당당(精精堂堂)하게 사는 법

by 북드라망 2016. 11. 16.

정정당당(精精堂堂)하게 사는 법

 

 

경마에 미친 선배가 있었다. 그의 일상은 모든 것이 경마로 채워졌다. 도서관에서 들려오는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는 말발굽 소리로 들려온다고 했다. 아침수업에 지각을 면하기 위해 머리를 풀어헤치며 달리는 여자들은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경주마들 같다고 했다.(젠장! 선배는 김예슬보다 더 먼저 우리가 경주마였던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그의 증상은 날로 심해져갔다. 급기야는 학교를 작파하더니 경마방에 들어앉았다. 그리곤 어느 날, 해장국이나 한 그릇하자며 나를 부른 선배는 말했다. “모든 게 다 경마로 보인다.” 해장국집 앞에 ‘안경마을’이 있었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 이 축복받아 마땅한 구절은 불변의 법칙이다. 정(精)에 대해 쓰려니 나도 선배처럼 되어간다. 이제 그의 심정이 이해된다. 이리저리 정(精)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 헤매다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 이른바 남성의원 혹은 비뇨기과들의 작명센스가 그것이다. 아주 죽인다. 트루맨남성의원. 진실한 남자를 만들어주는 남성병원이란다. 혹은 진짜 남자를! 길맨비뇨기과의원. 여긴 남성수술 혹은 시술 전문병원을 표방한다. ‘길’이라는 접두사가 아주 흥미롭다. 맨탑남성의원. 남성을 맨 위에 올려준다는 건지 남성들 가운데 탑을 만들어준다는 것인지 헷갈린다. 하지만 노림수는 분명해보인다. 이 가운데 놀라운 이름 하나를 발견했다. 아담스비뇨기관의원. 아담하게 해준다는 것인지 아담과 이브의 그 아담인지 혼란스럽다. 아!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이름들. 모든 게... 그것(?)으로... 보인다.(@.@);


아, 나는 왜 이토록 무더운 날 이토록 뜨거운 망상에 시달려야 하는가. 이게 다 『동의보감』 때문이다. 아니 이렇게라도 떠넘겨야 그 망상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다. 나는 살기 위해 이 순간 『동의보감』을 읽는다.^^ 정(精)이란 무엇인가. 쉽게 그것은 정액이다. 『동의보감』은 이 정(精)을 아끼고 아끼라고 충고한다. “남에게 베풀면 사람을 낳고, 내게 간직해두면 내가 산다네. 아이를 만드는 데도 오히려 아껴야 할 것을, 하물며 공연히 버릴손가. 버리면서도 너무 버린 줄 모르다가, 쇠하고 늙어 목숨이 끊어지리.” 허나, 그것이 어디 아끼기 쉽더냐!(나만 그런거니...) 『동의보감』은 이런 남성들을 위해 친절하게도 정(精)을 단련하는 비결을 전해준다. 이른바 훼손된(?) 남자들을 위한 정(精)-탈환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잠시 음미해보도록 하자.

 

정을 단련하는 비결. 이 비결은 전적으로 신(腎)을 다루는 데 달려 있다. 내신(內腎:腎臟)의 한 구멍을 현관(玄關)이라고 하며, 외신(外腎:생식기)의 한 구멍을 빈호(牝戶)라고 한다. 정액을 배설하지 않아 파정(破情)이 안 된 남자는 외신의 양기(陽氣)가 자시(子時)에 일어난다. 그리하여 인체의 기는 천지의 기와 서로 합치된다. -『동의보감』, 「내경편·정(精)」, 법인문화사, p.233-234   


몇 마디 알아먹을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나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정(精)을 단련하는 비법은 신(腎)을 다루는 기술에 있다는 것. 그럼 대체 신(腎)이란 놈은 어떤 놈인가. 신(腎)은 흔히 콩팥이라고 불리는 기관이다. 우리가 간혹 순대국밥 속에서 봤던 콩 모양의 쫄깃한 살코기. 그게 바로 신(腎)이다. 신(腎)은 우리 몸에서 정(精)을 저장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정(精)이 가득한 신(腎)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만 정(精)-유출사고가 많아 정(精)이 부족한 신(腎)은 그야말로 재앙(?)에 가깝다. 이 재앙을 한의학에서는 신음허(腎陰虛)라고 부른다. 그 증상들은 아주 가관이다. 허리가 시리고, 머리가 어지럽고 귀에서 소리가 나는 증상이 생긴다. 간혹 귀에서 매미 우는 소리가 나는 경우도 있는데 그 사람에겐 여름이 지나도 매미들이 함께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입이 마르고 광대뼈가 오후에 발갛게 달아오르고 손발바닥에서 계란후라이가 가능할 정도의 열이 발생한다. 정도가 심해지면 정(精)이 저절로 흘러나가는 끔찍한 사고도 벌어진다. 오 마이 갓!

 

이토록 중요한 정(精)을 단 한 번도 유출하지 않은 남자. 아마도 멸종위기종임이 분명한 이 남자는 시간에 맞추어 천지와 교합한다. 하루의 음양이 바뀌는 자시(子時:23:30~1:30)에 외신(外腎)이 일어서는 것이다. 이 순간, 천지의 기운을 몽땅 받아들인다. 부럽다.(*.*) 그럼 보통의 우리(?) 같이 훼손된 남자들은 어떤 실정인가? “정액을 배설하고 파정이 된 남자는 몸의 양기(陽氣)가 발생하는 시기가 점차 늦어진다.” 그럼 설마 우리가 잠들어 모르는 사이에 우리도? “축시(丑時:1:30~3:30)에 발기되는 사람, 인시(寅時:3:30~5:30)에 발기되는 사람, 묘시(卯時:5:30~7:30)에 발기되는 사람, 그리고 끝내 발기되지 않는 사람이 있으니, 이렇게 되면 비로소 천지의 기(氣)와 서로 응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잠 안자고 누가 확인해주나? 무척 궁금하고 얼굴이 붉어진다.


흥미로운 건 점차 시간이 늦춰지더니 아예 천지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남자다. 불행히도 발기가 되지 않는 남자. 그는 천지간의 가장 불쌍하다는 환과고독자(鰥寡孤獨者)​1급이다. 만물을 생(生)한다는 천지와의 교신이 끊어져버린 남자. 그는 아마도 정(精)을 너무 유출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불쌍한... 그렇다고 기죽을 것까진 없다. 『동의보감』은 수시로 병 주고 약 주고를 반복하는 책, 그래서 끊을 수 없는 잔인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한 최강의 정(精) 단련법이 이어서 등장하니 눈을 부릅떠보자.

 

 

정을 단련하는 비결은 자시(子時)에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앉아서 두 손을 마주하여 뜨겁게 비벼서 한 손으로 외신(外腎:생식기)을 감싸 쥐고, 한 손으로는 배꼽을 덮은 다음 정신을 내신(內腎:腎)에 집중시킨다. 오랫동안 계속하여 연습하면 정(精)이 왕성해진다. 서번(西蕃) 사람들은 장수하였는데 매일 밤 잠잘 때 늘 손으로 외신을 감싸 쥐고 따뜻하게 하였다. 이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동의보감』, 「내경편·정(精)」, 법인문화사, p.233-234 

 

내신과 외신을 따듯하게 하는 것. 그게 핵심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자시(子時)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일까. 이유는 신(腎) 때문이다. 자시(子時)는 하루 가운데 물의 기운이 가장 강한 시간이다. 우리 몸에서 물의 기운은 신(腎)이 관리한다. 그렇기에 정(精)을 단련하려는 자들은 자시(子時)에 그 기운을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 손으로 감싸 쥐고 따듯하게 해줘야 하고 정신도 집중시켜야 한다. 이렇게 부지런히 움직이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精)이 충만해져 있을 거란다. 중요한 것은 이 좀 민망한 단련법을 아예 습관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서번 사람들처럼 매일 밤을 연습하면 장수한다고 하니 누가 실험 좀 해보고 알려줬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헌데, 이렇게 단련을 해도 정(精)이 부족하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바람 앞에 등불’마냥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걸까. 아니다. 방법이 있다. 우리들의 위대한 책 『동의보감』에 따르면 이때부터는 음식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아무 음식이나 막 먹는다고 정(精)이 쌓이는 건 절대 아니다. 일단 “쌀의 정액”을 먹어야 한다. 뭐라고? 이 쌀의 정액? “대개 죽이나 밥이 거의 끓어갈 무렵에 가운데에 걸쭉한 밥물이 모이는데, 이것은 쌀의 정액이 모인 것이다. 이것을 먹으면 정을 가장 잘 생기게 한다. 먹어보면 효험이 있을 것이다.” 이걸 어디 가서 구해! 그러다 아줌마들한테 한방 먹었다. 냄비밥 해먹으면 되자나!(연구실의 밥통들을 퇴출시키고 냄비밥을 허하라!^^)

 


보다시피 일단 밥부터 잘 먹어야 한다. 라면이나 치킨, 기타 등등의 야식들은 곤란하다. 그것들은 오히려 정(精)을 위협한다. “달고 향기로운 맛을 가진 음식들은 정(精)을 생기게 할 수 없고, 오직 담담한 맛을 가진 음식물이라야 정(精)을 보할 수 있다.” 요새 세상엔 환영 받기 어려운 무미건조하고 담담한 맛을 내는 것들이 정(精)을 보하는 최고의 음식들에 해당한다. 하여, 『동의보감』은 일상 또한 그러하기를 학수고대한다. 이른바 평상심(平常心)을 지켜나가며 살아갈 것을 주문한다. 평상에 누워 맑은 가을하늘을 보고 있는 마음.^^ 먹는 것부터 마음의 상태까지 이 담담하고 평이한 것을 지켜나갈 때 정(精)-탈환이 가능하다고 한다. 자시(子時)부터 무언가에 분주해지는 남자, 담담한 음식을 가까이 할 줄 아는 남자, 평상의 마음(?)을 갖고 사는 남자, 그러다 어느 순간 정(精)이 왕성해지는 남자. 공허(空虛)한 남자가 아닌 정정당당(精精堂堂)한 남자로 사는 법. 이 법에 왠지 끌린다.^^

_ 류시성(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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