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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24절기 이야기

한 해을 밝히는 첫 걸음, 입춘

by 북드라망 2012. 2. 4.
立春, 봄을 세우다

송혜경 (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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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도다 

입춘은 봄의 시작이다. 그런데 막상 그날이 되면 기대에 충족할 만큼 봄이 약동하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일까? 사실 하늘에 봄이 오는 것, 즉 태양이 지구를 따뜻하게 데우기 시작하는 때는 놀랍게도 한겨울 동지(冬至)부터이다. 밤과 낮의 길이가 똑같은 이때를 기점으로 비로소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기 때문이다. 지구가 서서히 덥혀져 봄이 땅까지 도착하는 데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까 입춘은 이제 갓 도착한 봄의 시작인 것이다. 또 입춘은 그 당일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절기 즉 우수(雨水) 전까지의 기간을 모두 포함한다. 대개 한 절기는 15, 16일 정도 되는데, 입춘의 처음 5일은 동풍이 불어와 언 땅을 녹이고 다음 5일은 벌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마지막 5일은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저 멀리부터 서서히 인간에게 봄이 달려오는 시간이 바로 입춘인 것이다.

여기서 잠깐! 입춘立春의 한자를 살펴보면 이상하게도 ‘입’자가 들 입(入)이 아닌 설 립(立)이다. ‘봄에 들어선다’가 자연스럽지, ‘봄을 세우다’는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봄이 오는 것에 대한 옛사람들의 철학이 어떠했는가 짐작해 볼 수 있다. ‘봄에 들어선다’의 경우 봄으로 세팅된 공간에 들어가는 다소 수동적인 느낌이 있다. 반면 ‘봄을 세우다’는 표현은 조금 더 늘어난 일조량, 따뜻한 바람, 움직이는 벌레들과 물고기들 그리고 인간이 한데 어우러져 함께 능동적으로 ‘봄을 세우는’ 그림을 그리게 한다. 그야말로 봄이 온갖 만물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처럼!

인간의 봄맞이

그럼 입춘은 인간들이 무엇을 하면 좋은 ‘타이밍’일까? 농사를 업으로 해서 살았던 옛사람들을 힌트 삼아 살펴보자. 입춘은 시작의 의미가 있으니, 농사짓기 위해 바로 땅으로 달려갔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큰 맘 먹고 쟁기를 언 땅에 꽂았다간 손만 아플 뿐이다. 즉 때가 아닌 것이다. 일단 사람들은 자연으로부터 봄을 ‘모셔오고’ 한 해 농사지을 마음부터 준비한다. 그래서 지방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주로 입춘에 굿을 하거나 점을 보는 풍습이 많았다. 입춘에 날씨가 좋거나 보리 뿌리를 뽑아 봐서 뿌리가 많이 나 있으면 풍년을 점쳤다. 그리고 입춘이 음력 설날보다 빠르고 느린 것에 따라 봄의 날씨를 짐작해 보기도 했다. 또,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을 붙여놓고 한 해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길고 추웠던 겨울의 끝을 알리는 입춘! 사람들의 마음도 덩달아 넉넉~ 훈훈~ 해진다(^^).


재밌는 풍습은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이라는 세시풍속이다. 이는 입춘 전날 밤에 거지 움막 앞에 밥 한 솥 해놓는다든지, 끊어진 다리를 이어 놓는다든지 남몰래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한 해의 공덕을 쌓아 좋은 시작을 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풍습이다. 또 하나. '아홉차리'라는 풍속은 입춘에 무슨 일을 하든 9번 하는 것이다. 천자문도 9번 읽고, 새끼를 꼬더라도 9번 꼬고 매를 맞아도 9번, 밥을 먹어도 9번 먹었다고 한다. 10번 채우면 다한 것 같고 하나 모자란듯하게 해서 일머리를 잡아놓으려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풍습이 아닐는지.

입춘에 농부는 주로 거름을 준비하고 종자를 손질한다. 거름은 가을에 만들어 놓은 것을 뒤집고 겨우내 모아두었던 똥오줌, 낙엽, 마른 풀들로 새로운 거름더미로 만들어 준다. 또 처마 밑에 걸어두었던 종자를 체로 까불리고 소금물에 띄워 좋은 씨앗을 마련해 둔다. 이 작업들은 작년과 연속선상에 있다. 그렇다. 달력을 바꾼다고 작년이 없어지지 않는다. 시간은 연속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작년을 때 맞춰 잘 보내는 것이 올해를 잘 살게 하고 또 그것이 내년도 잘 살게 하는 밑바탕이 된다.
 
21세기의 입춘!

절기의 이름은 농사일을 메타포로 했기에 지금 우리식에 맞게 그 의미만 취하면 될 것이다. 24절기의 첫 스텝, 입춘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마음을 준비하는 단계이다. 계획하는 일에 무조건 달려들기보다 잠깐 멈춰 서서 다시 그 계획과 결심을 점검해 보기 좋은 때이다.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일이 있다면 과감히 제외시키고 꼭 필요한 일들을 골라 잘 되기를 기원해본다. 작년에 해놓았던 일들 중에서 밑거름이 될 만한 것이 있다면 재정비해서 올해 기원하는 일의 토대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다. 입춘 당일의 날씨를 보면서 그 일이 잘 될지 안 될지 예측하면서 마음의 준비도 해보자. 만약 날씨가 좋다면 기분 좋게 시작을 열 수 있을 것이고, 혹 좋지 않다면 마음을 비우고 가볍게 출발할 수 있어 또 좋지 아니한가? 마음이 씨앗을 잘 품을 수 있도록 따뜻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땅에 몰래 봄이 오는 기간 동안, 남 몰래 소박하지만 좋은 일을 아홉 번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지금 이 글을 쓰는 우리들도 올해는 절기력에 따라 살아가 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 글은 우리들의 절기력 실험보고서이자 ‘21세기 농가월령가’가 될 것이다. 우리들은 올 한 해 글쓰기 농사를 지을 작정이다. 좋은 글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입춘 기간 동안 ‘좋은 글’이란 게 나에게 어떤 것이지 고민해야 할 것이리라. 또 지난 해 써놓았던 글들도 다시 읽어 봐야겠고.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착한 일도 해보고, 글도 9번 써 봐야 하나?(^^;;) 어쨌든 다음 절기인 우수(雨水) 전까지 충분히 입춘스럽게(?) 시간을 보내 보고자 한다. 과연 어떤 에피소드들이 쏟아질지 기대하시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임진년 첫 봄을 맞이하여, 올 한 해를 이렇게 아름답게(?) 보낼 수 있도록 우리도 입춘을 잘 준비합시다^^


※ 임진년 입춘의 절입시각은 2월 4일 오후 7시 22분입니다.

※ 계사년 입춘의 절입시각은 2월 4일 오후 1시 13분입니다.

※ 갑오년 입춘의 절입시각은 2월 4일 오전 7시 03분입니다.

※ 을미년 입춘의 절입시각은 2월 4일 오후 12시 58분입니다.

※ 병신년 입춘의 절입시각은 2월 4일 오후 6시 46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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