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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장·주·걸·쓰

여성들이여 생인지도(生人之道)의 길을 가라!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6. 26.


내 안의 리듬, 월경을 고르게 하라



생명, 인공부화소의 생산품인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란 작품이 있다. 시대는 약 2500년경. 인간은 엄마의 자궁이 아니라 ‘인공부화·조건반사양육소’라는 곳에서 배양병에 담겨 대량생산된다. 배양실의 병 속에는 알파, 베타, 감마, 엡실론으로 이미 계급이 결정되어 있다. 최상의 알파 계급은 태어날 때부터 최상의 두뇌가 될 수 있도록 산소와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고, 엡실론 계급은 병에 있을 때 산소나 영양분의 조절로 인해 생김새가 추하고 지능도 떨어진 인간이 된다. 또 배양실에 있을 때 베개 밑에서 들리는 녹음된 테이프를 통해 자기 계급에 어울리는 세뇌교육을 받는다. ‘알파계급은 베타계급보다 우월하다’, ‘살균된 것은 문명이다’, ‘나는 행복하다’ 등 계급에 맞는 맞춤세뇌교육을 받고 태어난 이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즐겁게 산다.



이들에게는 사랑이란 감정도 필요 없고, 무엇에 대한 책임이나 윤리의식 또한 필요 없다. 이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이며 성적인 것은 오로지 유희로만 사용된다. 이들은 배고픔과 괴로움이 없으며 조그마한 괴로움에도 ‘소마’라는 알약으로 해소한다. 그렇다. 눈부신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은 생명을 대량 생산하고 통제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과연 인간이 바란 것이 이런 인간들이 사는 멋진 신세계인가?


20세기에 쓰여진 『멋진 신세계』는 공상과학소설이다. 그런 만큼 비현실적인 공상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고만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탁월한 공상과학소설은 작가가 살고 있는 시대의 통찰과 비판은 물론 지극히 현실성을 띠게 마련이다. 그러니 이 작품은 20세기는 물론 21세기를 관통하고 있다. 이미 우리가 인공수정과 시험관 아기를 만들 수 있는 세계에 살고 있지 않는가? 다만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한 계획경제로 인구 조절을 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즉, 필요한 질(質)의 인간이, 필요한 양만큼 배양병에서 태어나고 있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공수정과 시험관 아기가 우리시대의 흔한 임신법이 된 것은 그만큼 자연임신이 힘들다는 반증이다. 이미 우리는 불임의 시대를 살고 있다. 불임! 저 멋진 신세계의 불임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음산한 그림자는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궁금하지 않는가. 생명이 인공부화소의 생산품이 아니라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은 어떤 것인가?



불임의 시대, 생명은 조작 가능한 것인가?


결혼을 하고 막상 아기를 갖겠다고 꼼꼼하게 준비를 하는 부부 중에는 신체적으로 특별히 문제가 없는데도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떤 부부들은 아기를 갖기 위해 매달 숙제하듯이 배란 테스트를 하고, 부부관계를 치르느라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렇게 노력해도 소용이 없을 때 그들은 불임클리닉을 찾는다. 의료과학의 힘을 빌기 위해서다. 그들이 선택하는 것은 인공수정과 시험관 아기다.



인공수정은 여성의 배란시기에 맞추어 채취된 남편의 정액 중에서 활동성이 좋은 정자만 분리하여 가느다란 관을 통하여 자궁 내로 직접 주입하는 방법이다. 정자가 자궁경부를 통과하는 동안 정자의 수와 운동성의 소실을 방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체내임신을 유도한다. 이와 달리 시험관 아기는 난자를 채취하여 시험관 안에서 수정시킨 다음, 그 배아를 자궁 안으로 이식하는 방법이다. 난세포가 수정된 후 처음 두 달 동안의 개체를 배아라고 하는데, 여성의 나팔관 대신에 시험관에서 수정되므로 시험관 아기 시술이라 부른다. 불임클리닉에서는 남성의 생식능력이 떨어질 때는 인공수정시술을 주로 하고, 여성의 생식능력이 떨어지거나 수정란의 착상이 힘든 경우에는 시험관 아기를 주로 시술한다.


이렇게 인공수정과 시험관 아기로 아이를 갖는 것은 우리 스스로 생명을 조작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공부화소의 생산품처럼 생명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연 멋진 신세계의 세상이 소설에나 나올법한 극단적인 사례에 불과한 것일까? 여기에는 과학에 대한 맹신이 담겨 있다. 의료과학을 이용하면 생명 또한 가질 수 있다는 믿음. 그러니 기꺼이 내 몸을 의료과학에 맡겨버린다. 그렇게 맡겨진 몸은 의료과학에 절대복종하며 내 몸의 능동성을 잃어버린다. 허나 임신은 내가 생명을 만드는 주역이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임신은 부부가 함께 만들어가는 참으로 능동적인 활동이다.



태어난 자가 걸어가야 할 길, 생인지도(生人之道)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법도는 자식을 얻는 데서 시작하고, 자식을 얻으려면 먼저 월경을 고르게 해야 한다.


─「잡병편」, 부인, 동의보감출판사, 1745쪽


『동의보감』 부인편 첫 페이지에 나오는 문장이다.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법도는 자식을 얻는 데서 시작된다’고 하였다. 나는 이 문장을 처음 읽고 무슨 말인지 몰라,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어보았다. 그래도 모르겠어서 한문을 읽었다. ‘生人之道 始於求子’. 이것을 직설적으로 풀이하면, 태어난 사람의 도는 자식을 구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자식을 구한다는 것은 자식을 낳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은 태어난 사람은 무언가를 낳는다는 것! 자식을 낳든, 자식을 낳을 수 없다면 뭐라도 낳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태어난 사람의 도라는 말이다.


말뜻을 이해하고 나니까 더더욱 궁금증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왜 태어난 사람은 무언가를 낳아야 하는가? 며칠 동안 시시때때로 생각하고 생각했다.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때마침 세미나에서 읽고 있는 『주자어류선집』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우주적인 것을 몸적인 것으로, 몸적인 것을 우주적으로 설명하는 주자의 언사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선생이 말했다) “천지는 사물을 낳는 것을 그 마음으로 삼는다. 예컨대 시루로 떡을 찌는 것과 같다. ‘기’는 아래에서 위로 끓어오르고 위로 올라가면 다시 끓으면서 내려온다. 이처럼 오직 안에서 끓고 있다 보면 떡은 부드럽게 쪄진다. 천지는 그 가운데 많은 기를 함축하고 있는데 출구가 없다. 그러니 기가 그 속에서 한 번 끓어오르면 한 번 사물을 낳는다. 천지는 달리 하는 일 없이 오직 사물을 낳을 뿐으로 사람처럼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많아 여유가 없는 것과 다르다. … 하늘은 다만 맷돌과 같은 것으로 오직 사물을 갈아 낼 뿐이다. 사람은 작은 자궁, 천지는 커다란 자궁이다. 사람의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을 닮은 것이며 다리가 사각인 것은 땅을 닮은 것으로 그 사이에 많은 생기를 품고 있다.


─ 미우라 구니오, 『주자어류선집』, 예문서원,  212~215쪽


천지가 사물을 낳는 마음, 그것은 생기다. 기가 아래위로 오르내리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낳는) 것. 그래서 천지는 오직 사물을 낳을 뿐이다. 천지사이에는 이 생기로 흘러넘친다. “생기(生氣)”는 글자 그대로 ‘생생한 기’다. 생생한 기는 떡시루나 맷돌의 예에서 보듯이 저절로 솟구쳐 오르는 것이다. 그것을 주자는 ‘측은’의 마음이라 하였다.


생기는 만물을 낳고 흘러서 사계절의 변화로 드러난다. 봄은 ‘생기’가 일어나는 시기다. 그래서 봄에는 만물이 툭툭 튀어나온다. 꽃도 피고, 개구리도 튀어나오고, 겨우내 꽁꽁 얼었던 강물도 힘차게 흘러간다. 이렇게 ‘생기’가 활발하게 운동하면 만물이 번성하는 여름이 되고, 푹푹 찌는 무더위를 지나고 나면 계절은 또 다른 변신을 한다. 성장에서 수렴으로의 대혁명, 가을이 된다. 그러다 겨울이 되면 ‘생기’는 어느새 땅속으로 숨어 버린다. 헌데 ‘생기’가 숨어 버린다고 해서 그것이 단절되는 것은 아니다. 땅속 깊숙이 갈무리되는 동시에 ‘새로운 생기’가 태동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천지 생생의 흐름은 동시에 인간에게도 흐른다. 그래서 사람은 작은 자궁, 천지는 커다란 자궁이라고 한 것이다.



주자는 이러한 천지가 사물을 낳는 마음을 ‘측은’의 마음으로, 인(仁)의 마음으로 우리 몸속에 흐른다고 하였다. 그래서 ‘측은’의 마음은 지적(知的)으로 이해하여 생겨나는 마음이 아니라 저절로 솟구쳐 오르는 심정이다. 그러니 천지가 사물을 낳듯이 사람도 자식을 낳는다. 그것이 태어난 자가 걸어가야 할 길(道)이다. 


천지가 사물을 낳는 생기의 길은 사계절의 스텝에 따라 일어나고, 번성하고, 수렴하고, 응축하고, 다시 일어나고… 하는 순환의 스텝을 밟는다. 그런 면에서 남들은 할 수 있는데 나는 할 수 없는 그런 것이 아니다. 만인에게 동일하게 열려 있는 보편적인 것, 그것이 생인지도(生人之道)다. 다만, 우리가 그 도를 잘 쓰지 못할 뿐이다. 



생인지도의 최고 윤리 - 여성들이여, 월경을 고르게 하라!


『동의보감』에서 ‘자식을 얻으려면 먼저 월경을 고르게 해야 한다’는 것도 이 순환의 스텝을 잘 밟고 있는지 관찰하고, 그렇지 못할 때 자신의 생활리듬을 점검해 봐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의 리듬과 나의 리듬이 어긋났으니 낳는 기운(생기)도 교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월경을 고르게 하는 노력을 해서 생기가 순조롭게 흐르도록 리듬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


자식이 없는 부인을 보면 월경이 빠르거나 늦고, 양이 많거나 적으며, 월경 바로 전이나 후에 통증이 있고, 색이 자줏빛이거나 검고, 묽거나 덩어리져서 고르지 못하다. 월경이 고르지 않으면 혈기가 어그러져서 임신을 할 수 없다.


─「잡병편」, 부인, 동의보감출판사, 1745쪽


『동의보감』에서 월경은 “달이 차면 이지러지는 것을 본뜬 것”(「내경편」, 포, 295쪽)에 비유한다. "인간의 몸은 달의 리듬에 영향을 받는다. 달이 만들어내는 순환의 율동은 지상의 만물에 차고 넘친다. 그것이 바다에 가서는 밀물과 썰물의 리듬을 만들어 내고, 사람에게 오면 들숨과 날숨의 호흡을 만들어낸다.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달의 율동이 우리 몸에 리듬을 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의 월경주기도 달의 영향을 받는다. 여성의 월경주기와 달의 삭망월 주기는 모두 29.5일이다."(손영달, 『별자리서당』, 북드라망, 80쪽)


"고대의 한 문화권에서는 월경 중인 여성을 달과 호흡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자연과 함께 생활하는 여성들은 보름달이면 배란을 하고, 달이 완전히 기울어지면 월경을 시작하고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달이 완전히 어둠에 묻혀 버리는 시기를 거친 후 다시 조금씩 차오르면서 우리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여성들 또한 매달 잠시 동안 생명력이 사라져버리는 것 같은 어둠의 시기를 거친다. 그것이 월경 전과 월경기간이다."(크리스티안 노스럽,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한문화, 128쪽)



이렇듯 월경은 밀물과 썰물, 계절의 변화와 같은 자연의 리듬이 반영된 내 몸의 리듬인 것이다. 하여 자식을 얻기 위해서는 월경의 상태를 보아야 한다. 월경의 상태는 곧 여성의 몸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현대여성들은 월경에 문제가 많다. 생리불순과 월경통, 심지어 조기 폐경을 겪기도 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생활리듬이 어그러져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의식주와 활동리듬이 월경을 불규칙하게 만든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인식하고 있다 하더라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니 월경통이 있으면 진통제로 해결하고, 생리불순이 있으면 병원부터 찾는다. 월경은 내 안의 리듬이다. 여성이 이것을 알고 관찰하는 것은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한 자기배려이며 최고의 윤리다.


나의 월경 주기는 어떤지, 색깔은 어떤지, 통증이 있는지, 덩어리가 있는지 관찰하라. 만약 월경에 이상이 있다면 나의 생활을 돌아봐야 한다. 음식은 담담하게 먹는지, 고운 말을 쓰는지, 몸을 조이는 옷을 입지 않는지, 몸을 너무 차갑게 하지 않는지, 잠은 어떤지…. 일상생활에서 규칙적인 리듬을 찾고 자연의 리듬과 조율해 가는 것. 하여 내 안의 리듬, 월경을 고르게 한다면 병원이나 인공조작이 아닌, 여성 자신의 능동적 힘으로, 생명은 생인지도의 길을 따라 찾아올 것이다.



이영희(장주걸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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