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피카소가 사랑했던 여인, 마리 테레즈를 만나다

무언가를 구경하는 눈은 오로지 결과만을 본다. 기린이 어떤 기후를 좋아하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경로를 통해 지금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보지 않고, 그냥 거기 존재하는 기린만을 본다. 마찬가지로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은 그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서 작가가 무슨 생각을 했고, 그걸 본 사람들은 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경로로 작품이 그곳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등등의 과정은 생략한 채, 결과물로서의 작품만을 바라본다.


─채운, 『예술의 달인, 호모 아르텍스』, 164쪽


예전에 퐁피두 미술전에 다녀온 적이 있다. 미술책에서 본 마티스, 샤갈, 피카소처럼 유명한 화가들도 있었고 처음 듣는 화가들의 작품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인상적이었던 몇몇 그림은 "미술책에서 봤던 것보다 크네"라던가 "작네"하는 느낌으로만 기억된다. 마치 그림 속에서 보던 동물들을 살아있는 모습으로 보기 위해 동물원에 '구경'가는 것처럼, 그림 역시 보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중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다. 많은 작품들 중 피카소의 그림이 딱 1점 있었다. 유명 화가인만큼 그 작은 작품 주변에는 인간 바리케이트가 형성되었다.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려면 에워싼 사람들이 빠져나가야 했다. 그래도 궁금하니까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는데, 어떤 엄마와 아이의 대화가 들렸다. “엄마, 이건 뭘 그린거야?” 엄마는 잠깐 침묵했다. 여성의 누드화였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자 다른 아이가 소리쳤다. “코끼리다, 코끼리!” 이 아이의 말처럼, 그림 속 형태는 코끼리 같기도 했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누워있는 여성이라며, 머리의 위치와 다리의 위치를 설명했다. 하지만 그 아이 덕분에, 이 그림을 보면 '코끼리'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



이후에 그 작품 속 모델이 피카소의 연인 마리 테레즈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피카소는 한 백화점에서 그녀를 우연히 본 후 모델이 되어달라며 강하게 프로포즈를 했고, 아직 어린 나이였던 그녀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마리 테레즈의 어머니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설득하고, 결국 그녀의 마음까지도 얻는데 성공한 피카소! 그림 속 여인의 머리칼이 금빛인 것처럼, 마리 테레즈는 아름다운 금발머리의 아가씨였다고 한다.


13세때의 모습


피카소의 그림은 너무 교과서 위주로만 배워서인지(^^;) 입체파라는 것 말고는 아는 것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우연히 들은 '코끼리같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아직까지도 그 작품만은 기억하게 되었고, 그림 속 주인공이 궁금해졌으니~ 이런 인연도 참으로 신기하다. 거울을 보고 있는 아래의 그림 역시, 마리 테레즈이다. 피카소의 여러 그림 속 모델로 활약했으나, 그녀는 딸을 낳고, 피카소와의 관계가 차츰 멀어졌다고 한다. 피카소는 다른 연인에게 가고, 그의 그림 속 모델 역시 새로운 연인으로 바뀌었다. 그 이후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의 그림이, 그림 속 인물이, 화가가 강렬하게 사랑했던 누군가이고, 그(그녀)에게 촉발을 받아 작품이 그려지고, 그것을 많은 세월이 지난 우리들이 다시 보게 된다는 것! 그래서 화가의 삶이 궁금해지고, 그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지기 시작하면,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다. 


예술에 대한 구경꾼이 아니라 예술과 친구가 된다는 건 뭘까? 멀뚱멀뚱 지켜보기만 해선 절대로 친구가 될 수 없는 법. 성큼성큼 다가가서 손 내밀고 말 걸 때, 남들이 다 아는 외모나 학력 같은 것 말고 자신만이 볼 수 있는 그의 매력을 낚아챌 때, 그때 비로소 서로의 마음이 열리면서 멋진 우정을 나누게 된다. 작품과 친구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끌리는 친구를 만나면 이것저것 궁금증이 생기고, 여러 친구들을 통해 그에 관한 정보들을 수집하면서 하나씩 그를 알아가는 것처럼, 누군가가 걸작이라고 한 작품보다는 내게 말을 건네는 작품을 응시하고, 그 작품의 매력을 찾기 위해 열심히 주변을 서성거리시라.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작품과 두터운 우정을 나누게 되고, 그 첫 만남을 통해 또 다른 만남들이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앙드레 말로는 그런 만남들로 자신만의 '상상의 박물관'을 건설했다. … 기둥도 천장도 없지만 생생하게 살아 있는 미술품으로 가득찬 상상의 박물관. 질서도 걸작도 따로 없는 길 위의 박물관! 구경꾼이 아니라 친구가 되려고 한다면, 미술관은 내 마음에 있는 것. 누구나 지을 수 있는 책-미술관! 여러분도 하나씩 지어서 친구들을 초대해보시길.(같은 책, 164~165쪽)


 마케터 M


예술의 달인, 호모 아르텍스 - 10점
채운 지음/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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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무심이 2013.09.05 23:00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어쩜 다 비슷한 경험을 하나 봅니다.
    저도 언젠가 예술의 전당에서 고흐전을 할 때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보면서
    친구에게 '생각보다 작네'라고 한 말이 퍼뜩 떠오르네요.

    <달리 나는 천재다>라는 달리 자서전을 읽고
    달리전을 보러 갔었는데
    느낌이 참 많이 달랐고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는 조각들이 많아요.

    • 북드라망 2013.09.06 12:16 신고 수정/삭제

      사랑하게 되면 알고 싶고, 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퍼뜩 떠오르더라구요. ^^;
      그래서(응?) 저도 얼마전 모 작가의 평전을 구입했습니다.
      아직 읽지는 못하고 있지만...ㅎㅎ;;

      달리 작품은 웹 상의 이미지 위주로만 봐서,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