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지금, 행복하십니까? -<성균관 스캔들>에서 만난 삶을 바꾼 질문

행복하십니까?




드디어 <성균관 스캔들>을 다 보았습니다! 아, 정말이지… 미쳐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장면장면마다 TV 화면 위로라도 좋으니 그 뽀송뽀송한 얼굴들에 손을 대 보고 싶어 제 멋대로 뻗으려고 하는 나쁜 손(이라 쓰고 정직한 손이라고 읽는…;;)을 달래느라구요. 『동의보감』에서는 “흰 것은 검은 것만 못하다”고 했지만, 그건 분명 허준 할아버지가 잘금 4인방을 보지 못해 그리 쓰신 겔겁니다, 암만요!
 

제가 지난주에 말씀드렸었지요? ‘성스’ 속의 성균관에서는 이옥이 말한 진정(眞情)이 마구 피어날 것 같다고. 네, 그렇습디다. 잘금 4인방은 물론이고, 정약용과 정조까지도 ‘情약용’·‘情조’가 되어 버릴 정도로(사실 그건 좀 보기 민망하긴 하더라구요. 저리 정이 넘치는 금상께서 2년 뒤 이옥에겐 어찌 그리 무정하셨던 것인지. 흑) 정이 샘솟습디다요.


대저 천지만물에 대한 관찰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사람에 대한 관찰은 정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묘한 것이 없고, 정에 대한 관찰은 남녀의 정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진실된 것이 없다 …… 오직 이러한 종류의 진정은 어느 경우에도 진실한 것이 아님이 없다. 가령 그것이 단정하고 정일貞一하여 그 정도正道를 얻었다고 하면 이 또한 ‘참’ 그대로의 정이고, 그것이 방자 편벽되고 나태 오만하여 불행하게도 그 정도를 잃었다고 하더라도 이 또한 ‘참’ 그대로의 정이다. (『이언』俚諺, 「이난」二難)


‘성스’ 속의 정들은 ‘정일하여 정도를 얻은 정’이라기보다는 ‘방자&편벽&나태&오만하여 정도를 잃은 정’들입니다. 나이가 적건 많건, 한낱 유생이건 일국의 군주건 정에 부대끼는 것은 매한가지더군요. 그러니 보는 이들의 심정(心情) 역시 주인공들의 행보에 따라 이리 치우치고 저리 치우치게 되는 것이지요.



우정인가, 애정인가─물랑 커플 VS 걸림 커플


이옥은 「심생전」이란 글에서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보자기가 걷히는 순간에 버들눈, 별 눈동자의 네 눈이 서로 부딪쳤다.” 실제로 경험해 보진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참 가슴이 울렁거리는 표현 아닙니까? 요 장면이 ‘성스’에서 재연되고 있습디다. 바로 대물(왜 대물인지는 차마;; 찾아들 보셔요) 김윤식과 가랑(아름다운 신랑감) 이선준, 일명 물랑 커플에 의해서요. 도둑으로 몰린 윤희의 누명을 벗겨 주기 위해 시전행수의 집에 잠입했던 두 사람이 마주치게 되는 장면으로 말입니다.


눈동자가 부딪치는 소리, 들리십니꺄? ^^


이때 윤식은 기생 복장으로 미모 폭발! 이선준과 김윤식의 별 같은 눈동자가 부딪치는 소리, 이옥을 읽지 않으신다면 못 들으실겝니다들, 흠흠. 좌우간 이때부터 선준은 혼란 속에 빠집니다. 노론 명문의 자제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살아온 삶이 갑자기 비틀어지기 시작합니다. 남자(윤식)를 보고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래서 자기를 속일 수 없어 “사내 녀석인 네가 좋아졌다”고 고백은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윤식을 손가락질 받게 할 수는 없기에 마음에 없는 처자와 정혼 직전까지 갑니다. 결국 파혼을 하긴 하지만요.
 

걸오와 여림! ^^


한편 드라마가 방영되었던 그해 연말 시상식에서 남남 커플로는 처음으로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한 걸림(걸오-여림) 커플, 여기야말로 진정한 동성커플이기에 우정인지 애정인지가 헷갈립니다(보는 우리들은 말이지요). 걸오는 용하와의 관계보다는 비명에 간 형에 대한 골육지정과 형의 죽음에 대해 침묵하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 여인인 것을 알았기에 더구나 같은 사건으로 혈육을 잃은 아픔을 함께하기에 윤식에 대한 연정으로 복잡하지만 그것이 걸오와 여림(구용하) 사이에 갈등을 만들어 내지는 못합니다. 우정이든 애정이든 그저 ‘정’이 중요할 뿐이니까요. 특히 구용하에게는 말입니다. “나 구용하야!” 그렇기에 싫은 것은 절대 하지 않고, 좋은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내는, 정이 발동해야만 뭐든 하는 이 사람이 바로 구용하입니다. 드라마에서 구용하가 걸오와 ‘패션’에 꽂혔으니 망정이지 문장에 꽂혔었다면 어쩌면 문체반정은 이옥보다 구용하 때문에 먼저 일어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여림과 이옥은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그런 느낌이 팍! 왔던 장면은 바로 이 장면입니다. 


그래서 행복한가?


걸오와 윤식이 뜻하지 않게 남색(동성애) 의혹에 휩싸이게 되고, 잘금 4인방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병조판서의 아들이자 성균관짱인 하인수는 이를 이용해 걸오와 윤식을 궁지로 몰려고 합니다. 이에 선준은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을 추문이라 손가락질 할 자격은 없다”, “그것이 성리학을 하는 유생의 길이라면 차라리 남색이 되는 길을 택하겠다”며 나섭니다. 여림은 깜짝 놀랍니다. 맥락은 어찌 됐건 샌님 이선준이 ‘남색’이라 자처하며 이들을 돕다니, 하여 선준에게 묻습니다.


“출세가 보장된 좌상 댁 외아들이 하마터면 남색이라는 추문에 휩싸여 출사길이 막힐 위험도 무릅쓰고 말이지. 왜지? 뭘 위해서였나? 내일 정혼을 한다고? …… 아무라도 상관이 없다는 건가? 마치 도망이라도 치는 것처럼. 그래서 자네 행복한가? …… 지금도 이렇게 거짓말을 못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쭉 거짓말을 하고 살 생각이지?”


그래서 자네 행복한가?


사실 이 장면에서 딴짓을 좀 하고 있었는데, 저 대사만큼은 귀에 쏙 들어오더라구요. “그래서 자네 행복한가?” 여림은 선준에게 묻고 있지만, 그전에 이미 자신에게 수십 번 저 질문을 던졌을 테고, 또 징그럽게도 정조의 말을 따르지 않았던 외골수 아티스트 이옥 그 역시 자신에게 수백 번 저 질문을 던졌을 것입니다. 어차피 마무리는 이옥으로 할 테니 드라마 얘기 좀 더 할까요?

여림의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다음날 정혼을 위해 사저로 돌아간 이선준, 아버지와 마주합니다. 정혼을 앞둔 아들에게 아버지는 덕담을 합니다. “혼인을 하고 가솔이 생기면, 그 책임감이 사내를 밀고 가는 힘이 돼 줄 게다. 번성하는 가문을 보면 또 그 자부심이 장부를 밀고 가고, 남아일생 그럼 된 게다.” 됐다는데도 이선준은 묻습니다.
 
  “그래서 행복하십니까?”
 
‘행복한가?’ 별것도 아닌 저 한 마디에 이선준의 세계가 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성균관에 들어가 특별한 벗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도 아마 아버지가 말한 ‘남아일생’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살았겠지요. ‘위험해진’ 아들의 질문에 아버지는 거침없이 대답합니다. “답할 가치도 없다”고, “그런 불필요한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해 본 일이 없다”라구요. 마치 이옥의 응제문을 가차 없이 내쳤던 정조처럼 말입니다. 정조가 그리도 재빠르게, 그리고 치사하게 이옥을 소외시켰던 이유는 아마 이옥의 모든 글이 바로 저 질문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고문이 자신을 출사의 장으로 인도할 거라 믿으며, 남의 글을 베끼기에 급급한 청춘들을 멈칫하게 하는 질문, 기존의 세계를 깨 버리기까지는 못해도 당연했던 것들에 대해 한 번쯤 의심하게 되는 질문. 이옥의 질문에 답할 수 없었던 정조는 이옥에게 질문을 돌려 버립니다. ‘그리 써서, 그리 살아서’ (무슨 일을 당해도) 행복하겠느냐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유배의 형식으로요. 


이후 유배를 가는 길에서, 유배지에서, 해배 후 고향에 돌아와서 쓴 이옥의 모든 글은 그에 대한 대답입니다. 비록 아무도 들으려고 하지는 않았지만요. 하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서’ 밝혀지는 것처럼 ‘진심’과 ‘진정’도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인 듯합니다. 이옥이 친구 김려를 통해 책으로 묶이고, 그것이 또 연구자들에 의해 번역이 되고, 저희 채운 선생님을 통해 『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는다』로 갈무리되어 오늘날의 우리들에게까지 도달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이옥과 함께 출발했지만 이옥은 등장하지 않는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과 어쨌거나 이옥을 엮어야 했던 저의 사정을 굽어 살펴 주시옵고, 오늘밤 자기 전 자신한테 한번 물어봅시다. 대답이 바로 안 나오면, 행복했던 불행아 이옥을 만나 보셔요(『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는다』를 통해!!). “그가 삶의 부침 속에서 보여 준 기이한 용기,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일관된 어떤 태도”가 채운 선생님께 그랬듯이 묘한 감동을 줄 것입니다요!!  
  


_편집자 k 


情이 퐁퐁 샘솟는 '성스'와 함께 이옥도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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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애독자 2013.05.28 08:45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오,,,, 또다시 성스에 대한 글이 올라와 반갑군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옥에 관해 관심이 없었는데,
    편집자분의 글을 읽고 관심이 폭발됩니다.
    이옥도 '행복한지'에 중심을 두고 행복하지 못한 '방법'을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한 분이라는
    생각이 드니 나와 비슷한 부류(아니면 말구요^^;)가 아닐까 해서요.
    평소에 딴나라 사람이라는 느낌으로 살고 있는 저에게 힐링이 될 것 같은 책이라 예상됩니다.
    덕분에 아침부터 즐거웠습니다, 편집자님~~^^

    • 북드라망 2013.05.28 09:28 신고 수정/삭제

      '성스' 팬에게 더욱 즐거운 글이지요! >_<
      이옥을 만날(만난) 우리에게 이 질문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너의 글을 쓸 것인가, 남의 글을 베낄 것인가. 이 질문이 함축하는 바는 이렇다. 자유롭게 살 것인가, 사회가 파 놓은 홈을 따라 살 것인가. 이 질문은 또한 이렇게도 변형될 수 있다. 저항할 것인가, 복종할 것인가."

      ─채운, 『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는다』, 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