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일본 근대 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나다 -소세키의 『마음』

문학과 애니메이션의 만남! -푸른 문학 시리즈


<마음>에서 도련님의 목소리 연기를 한 배우 사카이 마사토가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부분도 있나봅니다. 저는 못 봤지만;;;


푸른 문학 시리즈는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키 등 일본 근대문학 대표 작가들의 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기획 시리즈입니다. 총 12개의 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과 나츠메 소세키의 『마음』은 만화 『데스 노트』의 작가인 오바타 타케시의 작화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본 시리즈는 <마음> 편입니다. <마음>은 여름과 겨울로 총 2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여름은 '선생으로 불리는 나'의 입장에서, 겨울은 친구인 K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여름과 겨울은 색의 대비가 뚜렷합니다. 여름은 "아가씨는 도라지꽃과 같았다"고 시작하며, 도라지 꽃을 상징하는 보라색이 주로 표현되지요. 겨울 편에서는 "아가씨가 해바라기와 같았다"는 언급이 되며, 역시 어둠과 빛이 극명하게 표현됩니다. 부잣집 도련님인 주인공이 친구인 K를 자신이 묵는 하숙집으로 데려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도련님은 자신이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친척들에게 배신을 당했지만 하숙집의 두 모녀로 인해 인간에 대한 온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친구인 K에게도 그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하숙집 딸을 남몰래(?) 좋아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K와 하숙집 딸(애니에서는 '아가씨'라고 나옵니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는 것을 느끼게 되고, 차츰 K를 의심하고 질투하게 됩니다. 여름 편에서는 K가 놀랄 정도로 의연하고 담대하게 나옵니다. 이것은 아마도 주인공이 K를 그렇게 여겼다는 것을 강하게 반영한 것이겠지요.


겨울 편은 대체로 회색빛이 깔려있습니다. 그런데 아가씨가 등장할 때만 밝아지지요. K가 아가씨와 만나면 컬러가 되는 느낌을 통해 K의 마음이 잘 드러나게 됩니다. K는 소심하고, 아가씨에게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입니다. (여름 편에서는 K가 아가씨에게 적극적으로 대하는 것처럼 표현되지요;) K는 아가씨에게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려 노력하지만, 자신을 챙겨주는 아가씨에게 차츰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결국 '수행'을 정진하고자 했던 K는 "아가씨가 좋다"며 이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냐고, 친구인 도련님에게 털어놓습니다. 도련님은 겨울 편에서는 냉정하고 차가운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라쇼몽>에서도 같은 사건을 사람들이 다 다르게 기억하는 것처럼, <마음> 여름 편과 겨울 편도 같은 사건이나 같은 대사가 나오는 데에도 두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점이 재미요소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원작이 더 궁금해지더라구요.


여름 편에서의 도련님겨울 편에서의 도련님


소세키의 원작을 읽으면서 애니메이션에서는 소설에서의 화자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설에서는 '나'라는 한 청년이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서, 그가 감추고 있던 비밀을 알게 되는 구조로 되어있지요. 또한 '나'와 가족 간의 이야기도 소설에서는 한 축을 이루고 있는데, 애니에서는 선생님의 비밀 위주로 제작한 것 같습니다. 또, K의 입장 역시 소설 원작에 없는데 이는 『마음』에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던 내용들을 상상하여 만들어낸 하나의 '다른' 해석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하튼 저는 여름 편과 겨울 편 중 어디가 더 원작과 근접한지 궁금했습니다.


여름 편에서 도서관에 공부하고 있는 K를 도련님이 불러내 아가씨와의 이야기를 꺼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겨울 편에서는 반대입니다. 소설을 보니 K가 도련님을 불러내는 것으로 나와있더군요! 애니를 먼저 본 후 책을 읽으니 계절 표현도 왠지 꼼꼼하게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


… 그가 마음의 안정을 찾은 것이 그 딸에 대해 연정을 느꼈기 때문이라면 나는 결코 그를 용서할 수 없었네. 이상하게도 그는 내가 그 집 딸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지. 하긴 나도 K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도록 행동한 일은 없었지만 말이네. K는 원래 그런 일에는 둔한 사람이었지. 내게는 처음부터 K라면 안심해도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데리고 들어온 것이니까. (『마음』, 문예출판사, 257쪽)


<마음>은 보고난 후 여운이 진하게 남는 작품입니다. 약간 멍~ 해지는 느낌도 들구요. 여름 편을 보면 K가 꽤 나쁘게 등장하고, 겨울 편을 보면 도련님이 꽤 나쁘게 느껴집니다. 진실은 뭘까… 두 사람의 마음이 모두 진실이겠지요,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네요. 흑; 원작에서는 도련님의 입장에서만 서술되어서 아쉬움이 남았는데, 애니메이션을 통해 K의 입장을 보니 더욱 인상깊었던, <마음>이었습니다.



나는 어두운 인간 세상이 낳은 그림자를 숨김없이 자네의 머리 위로 쏟아내겠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어둠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자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붙잡게. 내가 어둠이라 한 것은 윤리적인 면에서의 어둠을 말하는 것이네. 나는 윤리적으로 태어난 사람이지. 또한 윤리적으로 성장한 사람이고. 나의 윤리 의식은 요즘 젊은이들하고는 많이 다를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어떤 차이가 있든지 간에 내가 이해하고 있는 범위에서 난 나 자신을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고자 하네. … 그러니 이제부터 많은 변화를 거치며 성장해 나갈 자네에게는 이런 내 얘기도 얼마간 참고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네. (같은 책, 178쪽)


마음 - 10점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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