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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일상의 애니미즘

[미야자키하야오-일상의애니미즘] 섬들의 바다, 자율의 하늘

by 북드라망 2023. 12. 28.

《붉은 돼지》 ① 공간   


섬들의 바다, 자율의 하늘 



지난 10월 7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했다. 10월 9일 세종시는 한글날을 기념해서 공군의 에어쇼가 있었다. 호수 공원 위 뻥 뚫린 하늘 위로 7대의 블랙 이글스가 날아올 것이라는 예고에 30분 전부터 시민들은 웅성웅성 하늘 기운을 읽었다. 옆에서 아이들이 발 구르기 하는 것도 돌진해 오는 비행기 소리로 착각할 정도로, 모두가 간절히 에어쇼를 기다렸다. 그러나 이런 풍경도 하늘 나름이다. 지구 저편의 다른 하늘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비행기가 날아올까봐 두려워 숨는다.  


에어쇼는 처음 보았다.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하겠느냐고 콧방귀를 끼다가, 단단히 뒷통수 맞았다. 열린 하늘 남쪽 끝에서 비행기가 몰려와 꽃잎이 펴지듯 펼쳐지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그 반대쪽으로 둘셋씩 짝을 이루어 각양각색의 무늬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과연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있구나! 저 곡예사는 인간의 발도 새의 날개도 초월해버렸는가? 마지막으로 블랙 이글스의 한 기(機)가 비행기 뒷꽁무니의 연기를 이용해 태극기를 그리고, 다시 또 하트를 그렸을 때는 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여기저기에 덩달아 탄성이 폭발! 물개 박수 와르르! 하늘이 저토록 넓구나 새삼 새로웠다. 지상의 인간이 무엇이든 할 수 있구나 새삼 대단했다. 블랙 이글스의 조종사는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한다. 정비사의 눈빛은 차원이 다르다고도 한다. 공군 최고의 전투사와 정비사가 느끼는 기쁨은 비행기 조종을 누구보다 잘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기술로 지상의 인간을 크게 즐겁게 할 수 있다는 데에서 온다. 다른 하늘에서 전쟁을 치르는 조종사들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들은 자신의 기술이 누군가에게 줄 기쁨과 슬픔에 대해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비행사와 조종사를 많이 그렸다. 달리는 인간에만 집중한 작품은 《모노노케 히메》뿐이다. 전작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키키는 자신이 왜 날아야 하는지 고민한다. 키키의 답은 쓸모가 있는 비행이었다. 1992년, 미야자키는 연이어 같은 문제 의식을 붙든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녀, 소녀, 빗자루가 아니다. 돼지, 아저씨, 붉은 비행기이다. 첫 장면부터 술에 담배 찌꺼기에, 스트레스로 뇌가 두부가 되어 버린 듯한 돼지-아저씨가 나온다. 그는 얽매인 것 없다는 듯 아무 간섭 없이 오후를 혼자 즐긴다. 빗자루의 가볍고 날렵한 긍지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비행에 대해 뭔가 달관한 듯도 하다. 하지만 붉은 돼지의 고민도 무엇을 위해 날아야 하는지에 있다. 

 

출처 - 다음 영화

 


파시즘은 도시를 좋아해
『붉은 돼지』는 한마디로 말하면 돼지-인간의 비행 이야기이다. 돼지 비행사는 아마 끝에서 인간의 얼굴을 되찾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계속 비행을 하게 될까?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어 그는 돼지의 얼굴을 하고 하늘을 날아야 하는 것일까? 답은 작품 속 공간을 분석해보면 나온다. 


『붉은 돼지』는 공간을 크게 세 개로 나눈다. 첫째가 섬이 많은 아드리아해이고, 둘째가 은행이 있는 도시와 피콜로의 정비소가 있는 밀라노이다. 셋째는 붉은 돼지가 멋지게 누비는 하늘이다. 미야자키는 앞의 두 공간을 대립적으로 그리면서 하늘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푸른 아드리아해와 그 위에 더 푸른 하늘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두 개의 도시부터 살펴보자. 

육지는 두 개가 나오는데, 첫 번째 도시에는 이름이 없다. 대신 은행과 경찰이 있다. 포르코는 상륙 직후부터 은행에서 돈을 인출할 때까지 경찰들과 은행 직원들로부터 감시를 받는다. 미야자키는 은행 앞에 탱크 주변으로 몰려다니는 군중을 그린다. 이 사람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군가를 부르면서 우르르 몰려간다. 그들은 공황 때문에 매일같이 빚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인다. 붉은 돼지는 이런 각박한 분위기 속을, ‘싸우자’, ‘이기자!’ 하며 적대의 깃발을 펄럭이는 사람들 사이를, 무심히 지나간다. 은행원은 포르코에게 애국 채권을 사라고 한다. 포르코는 애국은 인간들이나 하는 것이라며 흥! 지나친다. 

 

포르코가 돼지가 된 이유는 파시즘에 있어 보인다. 이 첫 번째 도시는 미야자키가 파시즘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보여준다. 미야자키는 파시즘을 두 가지 수준에서 비웃는데 찢어진 눈으로 포르코를 노려보던 경찰을 통해서는 아니다. 첫 번째는 그들 돈에 박힌 무늬에 나타난다. 값어치가 없어진 지폐 위에는 흉측하게 보이도록 장난스럽게 그려진 괴물이 그려져 있다. 파시즘은 유치하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지하에서 은밀히 포르코에게 무기를 팔던 상인을 통해서다. 이들은 돈만 밝히는 장사치들로, 불량 총알을 판다. 파시즘에 침윤된 세계는 당당히 남을 속이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는 거짓말쟁이들로 넘쳐난다. 나중에 포르코는 아드리아해의 어떤 섬에서 비행기에 주유를 하게 된다. 하지만 섬 사람들은 기름값을 속이지 않았다. 미야자키는 파시즘을 정치가들이나 군인들을 악마적으로 그림으로써 비판하지 않고, 그 세계를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도덕적 타락을 문제삼는다. 

 

두 번째 도시는 밀라노다. 여기에는 붉은 비행정을 수리할 수 있는 피콜로씨의 정비소가 있다. 미야자키는 같은 도시라도 앞서보다 밀라노는 훨씬 건강하게 그린다. 비록 이 도시가 군수물자를 대고 있음에도 말이다. 왜냐하면 공장은 기계가 태어나는 산실이기 때문이다. 밀라노는 기계뿐만이 아니라 기술자가 만들어지고, 기술자들의 공동체가 일구어지는 고장이다. 그래서 완전히 여성적이다. 피콜로씨네 공장은 대가족의 여자들이 전부 자기 역할에 맞게 일하는데 심지어 피오처럼 17살의 설계사도 있고, 손주들 용돈이라도 쥐어 주려고 일하는 호호 할머니 시스터즈도 있다. 공장에서 여성들은 함께 요리를 하고, 기도하며 밥을 먹고(엄청 많이!!), 갓난쟁이부터(정비소에서 할 일이 없는 포르코는 담배를 벅벅 피우며 아기 침대를 흔든다) 아이들까지 떠들며 놀기도 하는 곳이다. 

 

설정이 전쟁이라 남자란 남자는 전부 전선으로 나갔나보다. 그래서 일터에는 여자만 있다. 그러나 이런 현실적 요인보다 미야자키가 밀라노를 그리면서 말하고자 했던 바는 공장이라는 곳의 모성성이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나 《라퓨타》에도 나오지만 기계도 태어났다는 점에서 생명이다. 밀라노는 어머니의 자궁처럼 힘 있고 따뜻한 곳이다. 붉은 비행정의 새탄생에 큰 역할을 한 물건은 엔진 ‘지브리’다. 피콜로의 공장이 낳은 상품은 지브리라는 엔진이다. 포르코에게도 미야자키에게도 비행기란 단순한 탈것이 아니라 숨을 부여받은 생명과 다름없는 소중한 존재이다. 태어난 모든 것에 생명이 있다면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만든 작품들 역시 생명이다. 그래서 피콜로 컴퍼니는 지브리 스튜디오를 의미한다. 

 

《붉은 돼지》를 제작할 무렵, 미야자키는 실제로 새 사옥을 설계 건축하고 있었다. 새 스튜디오를 올리면서 모두가 함께 의논할 자리를 만든다든지, 여자 화장실을 크게 한다든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생각해 작업별로 동선을 짜고, 취향을 고려해 설계를 하고 있었다. 미야자키는 지브리 스튜디오를 새로 만들면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도 소개했는데, 그의 페미니즘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피콜로 컴퍼니에 나와 있는 셈이다. 미야자키는 비행기 하나를 만들기 위해 각자 맡은 바를 하고 그러면서도 함께 먹으며 서로의 작업이 모두의 작품이 되도록 하고 싶었다. 이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은, 지브리 스튜디오도 마찬가지겠지만 작품을 탄생시키는 자궁으로서의 정비소와 스튜디오라는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실제 애니메이터로는 남자들이 많았겠지만, 애니메이션이라는 작품을 낳는 존재라면 그의 본성은 여성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비행기의 핵심이 엔진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도라의 타이거 모스에 도라네 일가는 아니지만 비행정을 손보던 엔지니어의 작달막한데다 안경까지 쓴 모습, 피콜로 씨의 작은 체구와 두꺼운 안경, 그리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유바바 온천장의 가마 할아범이 안경을 쓴 것까지가 차례로 연상된다. 엔진을 담당하는 이들, 비행기의 동력 장치, 비행기의 인격을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이들이다. 그럼 이들의 최종 버전은 누가 될까? 『바람이 분다』의 지로다. 지로는 설계사로 안경까지 썼다. 물론 지로의 안경은 지독한 그의 근시를 의미하기도 하고, 멀리 보지 못하는 엔지니어의 한계를 나타내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단 두꺼운 안경을 쓴 이들이야말로 엔진을 상징하며, 비행기 전체, 스튜디오 전체, 작품 전체를 지탱한다는 점을 기억해 두자. 앗! 그러고보니, 미야자키 하야오야말로 두꺼운 안경을 썼다!     

 

미야자키 하야오 - 출처 : ELLE

 

《붉은 돼지》의 공간 구성은 바다와 육지라는 이분법 안에서 심플하게 나뉜다. 공장이 육지에 있다는 점은 첫 번째로 등장하는 도시가 군국주의적라는 점에 비추어 조금 더 해석해볼 여지가 있다. 미야자키 개인의 꿈이 모두의 꿈이 되는 과정은 대단히 중앙집중적이면서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으로 전개될 수가 있다. 또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데에는 정말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을 마련하려면 어쩔 수 없이 원화의 셀이나 굿즈를 팔기도 해야 한다. 2023년의 최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제작 날짜를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작품 완성도를 최대한 끌어올리려 한 덕분에) 해외 넷플렉스에 지브리 전작에 대한 판권을 팔아야 했다고도 한다. 물론 그 덕분에 10년 정도 작품을 그릴 수 있는 제작비를 벌었지만, 어쨌든 지브리 작품의 상업적 가치를 최고도로 끌어올린 다음 돈을 벌어들인 일이었다. 피콜로씨의 정비소가 파시스트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육지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장인 중심의 제작 방식, 그리고 상업적 성공 자체를 목표로 하는 흥행 목표를 현실적으로 고려해서일 것이다. 섬에서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없다. 하지만 돈이면 다 되는 도시여서도 안 된다. 《붉은 돼지》의 밀라노는 미야자키가 지브리의 현실을 투여한 장소이다.  

 


자유로운 이들은 바다를 좋아해  
두 도시와 완전히 대비되는 아드리아해로 가보자.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탈리아 인근의 아드리아해를 실제로 모델 삼았다고 한다. 이 바다에는 많은 섬이 있다. 나중에 포르코가 비행기 주유를 위해 들르는 섬을 보면 이 바다 위 대부분의 섬들이 매우 가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포르코의 아지트도 변변치 않은 반공호 아니 창고 같은 건물 한 채와 비 정도를 조금 피할 수 있는 텐트를 갖춘 수준이다. 가난한 것으로 치면 미니멀리즘의 극단에 서 있는 포르코가 이들 중 일등일지도 모른다. 

 

《붉은 돼지》에서 아드리아해의 특징으로 꾸민 섬은 세 곳이다. 첫 번째가 포르코의 비밀 아지트다. 아지트는 미야자키가 소년의 공간으로 즐겨 구상하는 장소 같다. 《라퓨타》의 파즈는 부모 없이 혼자 사는 탓에 자기 집이 바로 아지트였고, 《움직이는 성》의 하울은 멋지게 움직이는 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법으로 아무도 모르는 아지트를 만들어 두었다. 포르코의 아지트는 어떻게 생겼나? 일단 외관과 들어가는 입구의 모양 같은 것을 생각하면 섬이지만 굴처럼 되어 있다. 첫 장면에서 카메라가 아지트의 높은 구멍으로부터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포르코를 비출 때까지 쭉 내려오고, 나중에는 공적들과 미국 용병 비행사 커티스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은 토토로를 만나기 위해 메이나 사츠키가 나뭇 속 터널로 툭 떨어지는 것을 연상시킨다. 이런 구도로 생각해보면 포르코는 소년이 아니라 굴 밑에 은신처를 마련했던 토토로 계열에 놓인다. 투실하고 빵빵한 얼굴과 히프 등이 뒤에서 보면 포르코는 완전히 애기 토토로다. 그러고보니 토토로도 미니멀리스트였다. 그의 집에도 두 개의 단지, 하나의 커다란 침대 외에는 별다른 물건이 없었다. 나이가 몇 살이나 되는지 짐작할 수 없는 이 숲의 정령은 장난감도 평생 세 개다. 오카리나, 팽이, 그리고 새로 생긴 우산!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것이 굴 생활자의 특징인가보다.  

 

붉은 돼지는 무엇을 가졌나? 일단 창고같은 작은 건물 하나가 굴의 벽에 붙어 있고, 그 왼쪽 옆에 텐트가 하나 있다. 두 공간에 포르코가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입을 것 몇 가지와 책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지트 생활에서 포르코의 필수품은 간이 의자, 라디오, 포도주, 사과, 담배, 그리고 전화기다. 토토로가 식물 씨앗의 정령이고 메이와 사츠키 자매의 성장을 돕는다는 점, 그리고 토토로도 나무-팽이를 타고 하늘을 날며 나뭇가지 위에서 오카리나를 부는 것, 이런 점은 완전히 포르코와 유사하다. 포르코도 피오를 성장시키고, 나무로 된 비행기를 타고 날아 오르고, 늘 음악을 즐긴다. 그러므로 이 아지트는 스트레스로 머리가 두부가 되어 버린 현대의 중년들이 몰래 갖고 싶은 비밀 공간 같은 것이 아니다. 물론 포르코도 처음에는 그런 의미에서 이런 은밀한 굴을 찾아냈을지 모른다. 하지만 친구들과 피오의 방문으로 여기서는, 어린 개발자에 불과한 한 소녀가 자기 작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당찬 일꾼으로 바뀌고, 허세 작렬하는 비행사가 연적에게 도전장을 내미면서까지 여인의 마음을 지켜주는 사랑꾼이 되며, 틀려먹은 세상을 부정하기만 한 어른이 소녀의 운명을 구하기 위해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된다.  

 



아드리아해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섬은 지나의 호텔이다. 섬 하나가 호텔 하나다. 지나는 공적(空賊)들의 뮤즈다. 호텔은 섬이므로 배나 비행기를 타고서만 들어갈 수 있다. 여기에는 맛있는 음식과 술이 차고 넘쳐서 지나가 호탕하게 쏘는 일도 잦다. 이 호텔에는 온갖 비행기, 비행사들의 사진들이 빽빽하다. 포르코는 자신의 아지트에 그 누구도 들이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해적들과 피오가 차례로 찾아오게 된다. 반면 지나의 호텔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다만 지나가 사랑하는 이들은 여기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징크스가 있다. 포르코의 아지트는 포르코가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 굳이 찾아오고, 지나의 호텔에는 함께 하고 싶은 이들이 애써 찾지 않는다. 

 

지나의 호텔이 육지의 여느 장소와도 다른 이유는 첫 번째로 음악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섬은 예술가들을 이끈다. 할리우드에 가서 유명한 배우가 되고, 그 다음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커티스는 예술의 여신처럼 지나를 바라본다. 지나의 노래는 자기 집이라고는 없는, 떠돌고 다투지만 그리운 사람 하나쯤은 각자 마음에 품고 사는 모든 고독한 해적들에게 위로가 된다. 두 번째는 정원이 있다는 점이다. 이 정원은 완전히 사적인 공간으로, 지나는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사랑하는 이들과의 옛추억을 음미하고 새롭게 살아갈 미래를 그린다. 은행이 있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모두 같은 음악을 듣고 한목소리로 애국을 외쳤다. 지나는 자신의 정원에서 오롯이 혼자 있다. 미야자키는 정원을 다양한 의미로 그렸다. 《붉은 돼지》의 정원은 자기만의 생각과 감정을 소중히 간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정원은 파시즘과 거리를 두는 사람의 아름답고 소중한 장소가 된다. 여기서 《붉은 돼지》의 엔딩을 장식하는 공간도 지나의 정원이라는 점을 떠올리는 것도 좋겠다. 

 

단지 두 개의 섬만 보아도 이렇게 다양하니, 아드리아해는 풍요의 스팩트럼이 다양하다. 섬들의 바다를 군도(群島)라 한다. 인류학자는 나카자와 신이치는 철학자 고쿠분 고이치로와 대담하면서 탈원전, 반성장의 운동으로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다리가 없는 곳’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哲學の自然』). 나카자와 신이치는 일본에서도 지속적으로 그런 운동을 하는 이와이시마(祝島)라는 섬을 예로 든다. 이곳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다리가 연결되면 자신의 세계가 붕괴된다’고 본다. 하루에 한 번 정도 정기선이 와서 섬들 사이를 이동하는 것이 전부이다. 다리가 아니라 연락선으로 연결되는 섬들이란, 그때그때 열리고 닫히는 네트워크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완전히 고립되지도 전적으로 묶이지도 않은 채, 리듬을 맞추어 필요에 따라 섬들 사이에 활로가 생겼다 꺼졌다하는 식이다. 

 

『哲學の自然』에서 나카자와 신이치와 고쿠분 고이치로는 고대 그리스 사회의 자연 철학자들이 ‘이소노미아’라고 하는 무지배적 공동체를 실험했던 것을 함께 떠올린다. 그 지역도 역시 많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영화가 시작할 때, 타자기로 각기 다른 언어로 작품 배경이 설명된다. 한국어도 있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가는 아랍어도 나온다. 어떤 문자는 같은 내용이라도, 글자 수가 일본어나 영어보다 더 많아서인지 더 길게 타이핑되기도 한다. 여러 개의 언어가 타자기 위에서 같은 상황을 다르게 표현하므로 이것은 언어적 군도 모델이 아닐까?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리는 아드리아해에는 섬들이 가득하다. 바다의 섬들도 제각각, 해적들의 비행기 모양도 제각각, 유치원 아이들의 얼굴도 제각각이다. 공적들은 바다의 섬들을 닮았다. 중간에 포르코 로소가 맘마유토단의 해적선을 쫓을 때, 광대한 하늘 위에서인지라 잘못 보고 엉뚱한 비행기에 접근하는데, 이 비행기도 덕지덕지 뭔가 땜질 자국이 가득하다. 형편이 제각각인 것이다.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난하다. 하지만 그 제각각의 어려움 속에서도 남을 속이거나 죽이지 않는다. 포르코도 해적들과 대립은 하지만 적대하지는 않는다. 서로 으르렁거리지만 돈을 놓고 다투지도 않는다. 해적들과 포르코는 이 다양한 바다 위에서 계속 머물고 싶다. 그들은 어떤 육지에도 뿌리내리지 않으려 한다. 떠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이 진정 원한 것은 육지의 약속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글_오선민(인문공간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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