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월간 이수영

[월간 이수영] 스피노자와 칸트의 자유는 어떻게 다른가?

by 북드라망 2023. 12. 5.

스피노자와 칸트의 자유는 어떻게 다른가?

월간 이수영 2022년 12월호

 


일본의 철학자, 고쿠분 고이치로 선생은 『중동태의 세계』에서 ‘책임과 의지’의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자유의지는 과거로부터 이어오는 원인을 끊어내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쿠분 선생은 과거와 단절하는 자유의지로는 책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고쿠분 선생의 생각은 스피노자의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스피노자와 칸트는 책임과 관련한 자유(의지)와 주체의 문제에 관해 어떻게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스피노자의 자유: 필연성을 따르는 것

 

 


스피노자의 신은 ‘절대적 무한성’을 가집니다. 절대적으로 무한하다는 것은 내부에 모든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신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신에게는 어떠한 제한이나 결핍도 없습니다. 따라서 신은 욕망과 자유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욕망과 의지가 없는 신에게는 ‘존재 자체가 활동’이 됩니다. 신은 어떤 목적 때문에 세상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존재하므로 세계를 만든 것일 뿐입니다. 신은 인과의 방식으로 움직이는데, 신의 활동의 원인은 바로 자신의 본성입니다. 신은 바깥에 다른 원인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내부에 모든 원인이 있어서, 본성의 필연성대로 사는 것이 스피노자의 자유입니다.

그렇다면 신이 아닌 인간에게도 자유가 있을까요? 스피노자는 외부의 원인에 영향을 받는 존재를 양태라고 부릅니다. 사람의 생각은 서로 다르면 충돌하고, 컵도 바닥에 부딪히면 깨지게 됩니다. 인간이나 컵처럼 외부의 원인에 의해서 제한받는 양태는 고유의 본성대로만 살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도 본성의 필연성을 인식하게 되면, 인식론적으로는 자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스피노자의 생각입니다. 우리 인간은 외부 원인에 종속된 수동적 존재이지만, 나의 본성을 조금씩 많이 표현하는 ‘능동적’ 삶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칸트의 자유: 인과를 벗어나 스스로 준칙을 세우는 것

 


세계를 인과로만 보았던 스피노자와 달리, 칸트는 세계를 현상계와 예지계 둘로 나눕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원인과 결과의 세계가 현상계이고, 그 바깥에 있는 영역이 예지계입니다. 그러므로 필연성은 현상계에 존재하고, 인과를 벗어나는 자유는 예지계에만 존재하게 됩니다.

칸트의 자유는 단순히 억압이나 금지가 없는 상태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칸트는 자유를 ‘자기 행동 규칙이 되는 준칙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칸트도 인과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수많은 원인이 작동하는 세계에 살고 있지만, 이 원인을 최종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것은 ‘나’입니다. 원인대로만 산다면, 나는 고유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게 됩니다. 바로 자유의 순간에만 나라는 주체가 탄생합니다.

그런데 이 준칙을 선택하는 데에는 무엇을 하라는 내용은 없고, ‘보편적으로 타당’해야 한다는 방식만 있습니다. 해야 할 행동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도 않고, 누가 알려 주지도 않습니다. 오롯이 내가 결정해야 합니다. 법의 판단이나 성경 말씀을 따라가며 사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자유는 오롯이 내가 행동에 관해 결정하는 것이고, 자유의 순간에 ‘나’라는 주체를 만날 수 있습니다.

 
고쿠분 선생의 책임과 의지
다시 고쿠분 선생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고쿠분 선생은 책임의 개념을 ‘귀책성(Imputability)’과 ‘책임성(Responsibility)’, 두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합니다. 귀책성은 주체의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하는 합법적인 책임이고, 책임성은 인과를 바탕으로 하는 좀 더 넓은 의미의 책임입니다. 고쿠분 선생은 귀책성만으로는 책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좀 더 전체적인 인과 과정에 대한 반성인 책임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전체적인 책임에 대한 감각이 고대 중동태 어법에 있었습니다.

잔인한 죄를 지은 범인이 자기의 죄를 순순히 인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선생은 이때의 인정은 오히려 책임지지 않는 행위라고 말합니다. 책임은 과거의 수많은 인과와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책임은 그 사태가 발생하게 된 모든 과정에 대한 파악과 전면적인 반성인 공통성 개념으로만 설명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고쿠분 선생의 생각은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필연성만을 인정하는 스피노자의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스피노자와 고쿠분 선생의 이야기처럼,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는 귀책성이라는 합법적인 책임을 지는 데 그치고 마는 것일까요? 칸트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칸트적 주체는 원인대로만 움직이는 현상계를 뛰어넘어, 스스로 행동의 준칙을 선택하는 순간에 탄생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체에 의해 자유와 윤리성이 발휘되는 장면입니다. 칸트적 주체는 인과의 세계를 넘어서, 자기 행동에 온전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의 개념에는 고쿠분 선생이 이야기하는 ‘귀책성’과 ‘책임성’ 이외에, ‘윤리성’의 차원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강의 후반에 이어지는 헤겔의 자유에 관한 내용은 지면 관계상 생략되었습니다. 독일의 또다른 철학자, 헤겔의 자유가 궁금하신 분들은 이제 곧 올라올 강감찬TV의 유튜브 영상을 확인해 주세요.

 

녹취정리 - 양희영(글공방 나루)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