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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지금 만나러 갑니다

[공동체지금만나러갑니다] 이동하는 신체를 가진 청년, 경덕

by 북드라망 2023. 11. 20.

이동하는 신체를 가진 청년, 경덕

 


2023년 10월 26일, 북드라망에서 주최한 ’공부하는 청년들, 만나다 말하다‘ 북토크 행사에는 세 명의 사회자가 있었다. 전체 흐름을 이끌며 청년과 장년 사이를 이어주었던 은실 쌤, 청년 저자들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졌던 나, 그리고 행사에 참여한 청년들의 뒤풀이 자리를 이끌었던 경덕.


경덕은 유별나다. 내가 길드다에서 진행했던 세미나에 처음 왔을 때부터 그랬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하다가 마지막에 오프라인으로 만났는데 그날 식사 자리에서 자기가 어떤 사람처럼 보이냐고 물었다. 여러 세미나를 진행하며 낯선 사람을 많이 만나봤지만, 스스로에 대한 인상평을 묻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게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나날 속에서 불안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파악하기 위해 던진 질문이었다는 걸 이번에 인터뷰하며 알게 되었다.


인터뷰 연재를 위해 공동체 청년들을 만나면 종종 경덕의 이름이 불렸다. ”아, 경덕 쌤 지금은 문탁에 계시는 거예요?“ 북토크 행사에서 경덕은 여러 사람에게 인사하기 바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공동체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방대한 양의 글을 쫓아가지 못해 허덕이는데, 경덕은 여러 공동체의 홈페이지를 열심히 탐독하고 때때로 과거 행적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얼마 전에는 10년 전에 문탁에서 열렸던 축제 자료집 ’문헌‘을 발견했다며, 즐거운 얼굴로 그곳에 실린 내 글을 언급해 나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나도 놓치고 있었던 내 역사를 경덕이 찾아준 느낌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인문학 공동체에 진심인 사람.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두 눈을 반짝이며 좇는 사람.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 어느 공동체에 속해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사람. 엉덩이가 무거워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공동체 생태계에 나타난 낯선 캐릭터다.

 

 

 

1. 기록 탐사 광인
고은 이번에 밀양 농활 같이 다녀왔잖아요. 어땠어요?


경덕 소규모여서 오히려 좋았어요. 문탁에서 밀양을 가는 게 역사가 깊잖아요. 작년에 갈 때도 어느 정도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지난 1년 동안 문탁의 밀양에 대한 기록을 보기도 하고, 2016년에 샀던 밀양에 대한 사진집을 다시 보기도 하면서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요. 2016년에 나는 문탁도 문탁의 청년들도 몰랐지만 같은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구나, 라는 게 느껴지니까 연결되는 느낌도 들어요. 기억이 공유되는 느낌이 들어서 신기하기도 하고요. 기록을 볼 뿐이지만, 그 연대기 안에서 다른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고은 그래서 그렇게 예전 자료들을 찾아보시는 거예요?


경덕 의도나 계획을 가지고 들춰봤다기보다는, 왔다 갔다 하니까 우연히 새로운 뭔가를 보게 되고, 궁금하니까 검색을 해보게 되고, 그게 반복되는 것 같아요. 아, 지금 인터뷰가 시작된 거구나. (웃음) 처음에는 제가 길드다로 만났잖아요. 청년들과 대화를 나눴을 때 아우라가 느껴지는 거예요. 개별 청년의 독특한 캐릭터라기보다는 공동체의 윤리 감각과 함께 한 청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게시판에 있는 이전 자료들을 거슬러 보니까 재밌는 게 너무 많은 거죠. 이렇게 청년기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인문학 공동체에 속해서 공부하고 자립하려는 움직임이 끌렸던 것 같아요. 


올해는 문탁에서 장기 프로그램을 듣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뭐지? 하는 질문이 계속 드니까 과거를 찾아보게 됐어요. 워크숍에 가서 쌤이랑 산책하면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물어보며 인터뷰 아닌 인터뷰도 하게 됐고요. 내 나름대로 문탁의 지도가 그려지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가깝게 만나는 사람들의 기록을 유심히 보게 되고요. 누굴 만났을 때 “예전에 그런 글 쓰셨잖아요” 하면 상대방이 기억 못 하는 게 재밌기도 해요. 이게 제가 공동체와 관계 맺는 방식인 것 같아요. 
한번은 이랬던 적도 있어요. 문탁 연표를 만들어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문탁은 홈페이지 공지만 봐도 세미나가 어떤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보여요. 그래서 대충 만들어봤어요. 어느 시기에 뭐가 있었던 거지? 청년들이 길드다 할 때 나는 뭐 하고 있었지? 혼자만의 즐거움이랄까요. 우리가 만난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이 시기를 같이 통과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릴 때 새로운 연결감이 드는 것 같아요. 아, ‘이건 얘기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웃음)

 

문탁은 항상 후기 글이 올라와서 찾아볼 마음만 있다면 다 찾아볼 수 있는 저장소예요. 어느 순간에는 전체 검색으로 안 나오는 것들이 있어서, 언제 이전 자료는 게시판 별로 봐야 한다는 거를 알게 됐어요. 그래서 게시판 별로 가서 볼 때도 있고요. 나만의 노하우로 찾아보고 있죠. 그런데 제가 이렇게 계속 얘기해도 되나요?


고은 네 그럼요. (웃음) 홈페이지 게시판 비밀까지 알고 계실 줄은 몰랐어요. 저는 홈페이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옆에서 봐서 알고 있었는데, 보통은 모르거든요. 대단하다!

 


2. 동료를 찾아서
경덕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내가 문탁에 그 이전도 아니고 그 이후도 아닌 이 시점에 나타나서 이 사람들과 관계를 지속하는 이유는 뭘까? 서울에 있는 공동체들이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예전에는 문탁 홈페이지는 가끔 들어가 보긴 했어도 멀게 느껴졌거든요. 이 몇 년 사이에 만난 청년들이 길드다 활동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걸 고민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나 역시 같은 처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공유할 수 있는 관계라서 좋았어요. 문탁이 분화하는 과정이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앞으로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사람들과 뭔가를 같이 하고 싶다는 감각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고은 경덕 님은 왜 과도기라고 느끼고 있었어요?


경덕 제가 2010년에 군대를 전역했어요. 복학하고 한 학기가 지나니까 대학생활에 회의가 들더라고요. 공학을 전공했는데 흥미가 없어졌고, 또 한때 대학생들이 자퇴하는 게 뉴스에 나오던 시기였어요. 배움의 장이 아니라 취업 양성소가 되어가는 대학에 대한 비판이 있었고 그즈음에 저도 자퇴를 고민했죠. 일단은 휴학하고 2016년도쯤에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 네다섯 명이서 독서 모임을 만들었어요. 처음엔 장소를 빌려서 하다가 나중에 제가 투룸에 살 때는 방 하나를 아예 공부방처럼 꾸미기도 했죠. 그 해에 사회적 이슈가 많았어요. 강남역 살인 사건과 미투 운동, 구의역 노동자 사망 사건, 그리고 대통령 탄핵 집회가 이어졌어요. 희생자를 추모하는 자리나 집회에 참여하면서 페미니즘과 소수자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모임에서도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코로나가 왔는데, 일 년 정도는 온라인으로 활동을 이어가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동력이 떨어져서 그 커뮤니티가 해체됐어요. 고향으로 내려간 친구도 있었고 다른 일을 시작한 친구도 있었어요. 한 3~4년 했죠. 2021년은 뭐 했는지 모르게 지나간 것 같아요. 이전에 활동한 이력이 있으니까 독서나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는 강사로 섭외가 몇 번 되기는 했지만, 지속적이진 않았어요. 그러면서 인문학 공동체들 커리큘럼을 살펴보면서 남산강학원에서 신세계 세미나를 듣기도 했고, 규문에서는 불교 세미나를, 감이당에서는 과학 세미나를 들었어요. 


그리고 그해 겨울에 길드다에서 고은 님 세미나를 듣게 된 거죠. 1~2년의 불안정한 시기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기존의 관계는 멀어졌으니까, 새로운 동료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동체에 접속한 것 같아요. 그래서 동료를 만났죠.


고은 공부해야겠다가 아니라 동료가 필요하다고 느꼈다니, 재밌어요. 그전에 하셨던 커뮤니티의 영향이 있었을까요?


경덕 그렇죠. 처음 커뮤니티를 할 때는 공부 내용 자체에 흥미가 있었는데, 활동이 종료가 된 후에는 그 관계가 동력이 되었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거기에는 어떤 한계도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새로운 동료를 만나서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고은 공부는 왜 하고 싶었어요?


경덕 처음에는 나를 억압하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그때 보이는 게 학교와 가족이었던 거죠. 그래서 최소한의 돈을 들고 고시원으로 독립했고, 무기한 휴학을 했어요. ‘이렇게 살아야 돼’라고 하는 것들에 대한 반감이 있었고 그게 질문으로 이어졌거든요. 질문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컸죠. 답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책 읽기였던 것 같아요. 글쓰기를 하면서 좀 해소할 수 있었고요. 해소되지 않은 질문도 있고 계속 새로 생겨나기도 하지만, 그게 중요한 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서 질문을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공부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 것 같고요. 문탁에 오면서는 ‘여기서 동료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문탁에서 만난 청년들도 그랬고 선생님들도 그랬는데요. 궁금하더라고요. 궁금하니까 계속 만나고 싶어지고, 뭔가를 같이 하고 싶어지고, 역사를 알고 싶어지고, 이렇게 확장이 된 거죠.

 

 


3. 이동하는 신체와 앉아 있는 신체
경덕 이 관계로부터 파생된 게 많잖아요. 새벽이생추어리도 고은 님의 세미나를 통해서 하게 됐고, 또 인문약방에서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연재를 하면서 새벽이생추어리 사람들이 읽고 피드백을 해주기도 하고, 북드라망 블로그에 올라가기도 하고요. 관계가 끈이 되어서 이어지는 것 같아요. 밀양에 다녀와서도 송전탑 이슈가 나의 문제로 새롭게 흡수되고, 거기서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진 것처럼요.

 

그러다 보니까 문탁에 처음 왔을 때와 지금,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 같아요. 내 주위 동료들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가 궁금해지고 그것들 속에서 내년을 그려보게 돼요.

 

고은 경덕 님은 문탁 소속이라고 생각해요?

 

경덕 공동체에서 5년, 10년씩 공부한 청년들의 감각을 보면 배우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기에 제가 공동체와 관계 맺는 방식은 좀 다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동해야 하는 신체여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작년과 올해 문탁에서 이어진 활동을 중심으로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어디로 간다기보다는 문탁에서 맺어진 관계를 중심으로 다른 공동체 사람들과 새로운 무언가를 도모해 보고 싶어요. 

 

고은 ‘이동해야 하는 신체’는 어떤 거예요?

 

경덕 저는 신체적 차원, 경험적 차원에서 계속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어야 작동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계속 만나게 되는 것 같고, 기존의 관계에서도 새로운 걸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고요. 특히 앉아 있는 신체를 가진, 나와 달라서 매혹적인 사람과 같이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고은 이번에 북드라망 청년 북토크는 어땠어요? 뒤풀이 자리에서 사회도 맡았잖아요.

 

경덕 1부, 2부, 뒤풀이가 다 달랐던 것 같아요. 1부는 어떤 책을 썼고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소개했죠. 각 공동체의 선생님들도 많이 계셨고요. 2부에는 우현 님이 공연을 해주시면서 몸이 풀린 느낌이 났고, 패널도 청중도 더 자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뒤풀이에서는 좀 더 진솔하고 흥이 나는 분위기여서 그 에너지가 되게 좋았어요. 뒤풀이를 길게 하지 못했는데 그런 자리가 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길드다에서 주최했던 <비학술적 학술제>에 참여해 보지 못했지만, 그 기록이 제가 길드다에서 가장 흥미롭게 봤던 프로젝트였거든요. 다 섞여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리에 대한 기록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더라고요. 이질적인 사람들이 섞일 수 있는, 교류할 수 있는 여러 방식의 자리가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아요. 


재밌는 게, 길 가다가 인문학 공동체를 나간 청년들을 자주 마주치고 있어요. 제 동네로 이사 오는 이들이 많은 거예요. 계속 보이니까 그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여러 유형의 청년들이 모였을 때 무슨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뭘 해볼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막연하게 혼자 해볼 때가 있어요. 여하튼 저는 공동체에 걸친 청년들에게 관심이 있어요. 기본적으로 읽고 쓰는 활동을 하잖아요.

 

 

 


경덕은 마을양생실험실 인문약방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여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어쩌면 인류학적 탐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멋대로 그를 ‘현장 탐구인’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인터뷰를 시작하고 인터뷰에 관해 공부하며 나는 현장에 접근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저널리즘 정신에 투철한 기자도 아니고, 무언가를 고발하려는 르포 작가도 아니며, 구조적 분석에 심혈을 기울이는 사회학도나 대학의 절차를 따라가는 인류학도도 아니다. 경덕은 그 사이 어디에서, 보다 공동체적인 방식을 탐독하고 그렇게 현장을 만나고 싶은 탐구인이다. 그가 문탁의 대표적인 엉덩이 무거운 청년으로 꼽은 나 역시 경덕과 비슷하다. 나는 공동체에서 배운 방식으로 세계를 만나고, 그렇게 만난 세계를 누군가들과 나누고 싶다. 이 인터뷰는 우리가 그 일을 하기 위해 어떤 공부가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며 자연스레 마무리되었다. 우리가 배운 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 '무엇을 누구와 함께 공부할 것인가' 이다.

 

 

글_김고은(문탁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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