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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지금 만나러 갑니다

[공동체, 지금만나러갑니다] 취업을 포기한 문탁네트워크의 세 청년

by 북드라망 2023. 5. 15.

취업을 포기한 문탁네트워크의 세 청년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이하 문탁)에는 공부방 회원이라는 정회원 개념이 있는데, 그중 청년은 셋이다. 나와 동은, 우현. 우리가 공부방 회원이 된 경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길드다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나와 동은이 문탁에서 생활한 지 각각 6년, 4년이 되던 2018년에 청년인문학스타트업 길드다가 만들어졌다. 당시 선생님 한 명과 청년 네 명으로 꾸려진 길드다는 2년 차에 주위를 맴돌던 래퍼 우현을 영입했다. 3년 차 여름에 동은이가 나가게 되었고, 4년 차인 2021년 1월 1일 내가 급성 간염으로 앓아누운 데다 코로나로 타격을 입어 여름부터는 자체 쇄신을 위한 회의를 시작했다. 같은 해 겨울에 결론적으로 길드다를 정리하기로 한 뒤, 다른 친구 둘은 뉴스레터 ‘아젠다’를 가지고 독립했고… 이제 드디어 우리가 공부방에 들어오게 된 부분이 나온다. 길드다에서 분화된 나와 우현 그리고 여전히 문탁에 있었던 동은은 2022년부터 창작자협동조합 이크스튜디오를 만드는 동시에 공부방 회원이 되었다. 


나와 동은은 동갑내기 친구다. 길드다가 만들어지기 전, ‘100일 수행’을 하며 서로를 보고 충격을 많이 받았다. 나는 동은이 길가의 꽃이나 고양이를 보다가 출근 시간에 지각한다는 사실에 놀랐고, 동은은 부여받은 임무를 곧이곧대로 수행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 뒤로 내가 하고 있던 초등학생 동양고전 수업에 동은이 합류하며 함께 ‘한문이 예술’을 만들었다. 아직도 우리는 많이 싸우면서 서로에서 배우는 중이라, 가끔 우현이가 그 사이에서 새우 등 터지기도 한다. 동은과 우현은 게임 친구다. 문탁의 기숙사에서 함께 산 적도 있는 둘은 즉흥적이고, 재미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죽이 잘 맞는다. 친구들을 모집해서 노래방도 같이 가고, 스키장도 같이 가고, 피시방도 같이 간다. 둘은 내가 함께 놀기를 바라지만, 내가 그 모임에 참석하는 경우는 10번 중 1번이 될까 말까 한다. 우리 중에서는 그래도 우현과 내가 가장 선후배 같은 느낌이다. 어쩌면 내 잔소리를 우현이 받아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우현이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획을 다듬어 준다고 생각하고, 우현은 내가 덜 뻑뻑하게 살 수 있도록 윤활유를 부어준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셋이서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인터뷰가 기다려졌다. 그런데 이 인터뷰를 기다린 건 나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동은과 우현도 약간은 떨리고 기대에 찬 목소리로 테이블 앞에 앉았다.

 

 


선생님들과 친구가 되다
고은 인터뷰한다는 얘기 들었을 때 어땠어?
동은 올 게 왔군, 했어.
우현 나도.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를 인터뷰하는 게 맞나, 조금 헷갈리더라고. 그동안 인터뷰한 곳은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서 공동체를 꾸리는 곳들인데 우리는 문탁에서 곁다리 같은 느낌이니까. 문탁의 공부방 회원이기는 하지만, 운영의 중심축은 아니잖아. 
고은 길드다에 있을 때랑 비교해 보면 너희는 지금 문탁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아?
우현 나는 내가 공부방 NPC 같다고 느껴져. 딱히 뭘 하지 않아도 여기 계속 있으니까. 쌤들도 필요하실 때 많이 부르시기도 하고. 물통을 갈아야 하는 일은 선생님들도 능숙하게 하실 수 있는 일인데, 굳이 나를 부르시더라고. (웃음) 선생님들과 일상을 같이 보내니까 더 편해졌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맥락들도 더 다양해졌어. 진달래쌤이 그러시더라. “너희들도 나랑 별로 다르지 않구나?” 나도 선생님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거지. 우리 또래가 하는 고민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구나.
동은 오히려 나는 예전에 선생님들이 친구 같았는데, 요즘엔 좀 더 동료 같아. 사실 작년에 공부방 회원 됐다고 했을 땐 단위만 바뀌는 느낌이었는데, 올해는 달라진 것 같아. 소속감도 생기고, 활동도 더 해보고 싶고 그래. 그래서 최근에 좀 더 많이 나오고 있어.
우현 맞아 그렇기도 해. 예전에는 선생님들이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봐라, 그러셨는데 이제는 우리 각자에 대한 이해가 더 생기신 것 같은 느낌이야. 그러면서 내 일과 관련해서 나눌 수 있는 지점이 늘어난 것 같아. 셋 각자의 영역이 다르기도 하고.
동은 나도 내가 하는 게 좀 더 선명해진 것 같아. <한문이 예술>이 고유한 영역으로 자리 잡으면서 그걸 위주로 생각할 수 있게 됐어. 선생님들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고. 고은이 너는 어때? 단위나 지형에 대해서 나보다 훨씬 더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잖아.
우현 역질문 당했다. (웃음)
고은 최근에 각자의 영역이 분명해진 건 맞는 것 같아. 나는 인터뷰, 동은이는 <한문이 예술>, 우현이는 영상. 사실 길드다가 각자의 영역을 분명하게 하려고 만든 거였잖아. 근데 길드다 할 때 우리 셋은 오히려 길드다를 운영하기에 바빴던 것 같아. 나는 이것저것 챙기고, 우현이는 공간 지키고, 동은이도 전체적으로 어떻게 되고 있는지 신경 쓰고. 물론 길드다 할 때는 각자 영역을 만들 준비가 안 됐을 수도 있지. 또 오히려 길드다를 했기 때문에 문탁에서 선생님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 부분도 있고. 어쨌든 문탁에 올라와서 선생님들이랑 새로운 관계를 맺고 있는 게 신기해. 확실히 예전엔 전수받는 느낌이었으면, 요즘엔 뭔가를 같이 하는 느낌이 들어.
동은 선생님들이 이거 보고 뭐라 하시는 거 아니야? (웃음)
우현 “뭐? 친구? 동료?” 그러실 수도 있어 (웃음)

 


두 달만에 엎어진 세 사람의 취업 다짐
고은 우리가 2023년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문탁 워크숍에 갔을 때만 해도 다 취업하겠다고 했잖아. 그게 11월이었는데 거의 두 달 만에 그 말을 전부 번복했지. 아무도 취업 안 하겠다고. (웃음)
동은 그치. 우현이가 갑자기 워크숍 다음 회의에서 문탁에 취업했다 생각하고 지내보겠다 선언했지. 고은이도 인터뷰집 출간하기로 하면서 인터뷰어 하기로 하고, 나도 <한문이 예술>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보겠다고 했으니까.
고은 동은이는 작년 여름에도 친구가 제안해서 취업하겠다고 했었잖아. 사실상 작년 여름과 겨울, 두 번에 걸쳐서 취업하겠다고 했다가 번복한 건데 어쩌다 완전히 취업에 대한 마음을 접게 됐어?
동은 내가 마음먹었다는 건 어떤 방향으로 가겠다는 거지, 너처럼 “가고 말겠다!”가 아니야. 그전에는 <한문이 예술>로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없었는데, 주변에서 용기를 많이 줬던 것 같아. 내가 하는 게 좋다고, 앞으로도 해볼 수 있겠다고. 나는 뭔가를 할 때 내가 재밌고 내가 좋은 게 우선이거든. 옷도 내가 좋아하는 걸 사. 그러고는 김고은한테 맨날 혼나지, 안 어울리는 거 샀다고. 여튼 나는 가능성이나 전망을 잘 못 봐. ‘나만 재밌는 게 아닌가? 이게 진짜 뭐가 될 수 있을까?’ 하거든. 물론 내가 용기를 내는 데 제일 영향을 받았던 건 고은이었어.
고은 응? 엎드려 절 받기 같은데…. (웃음)
동은 어, 아니야. 길드다 나오고 난 뒤에 폐인이 됐던 시기가 있었어. 힘들었어서 기억도 잘 안 나. 그럴 때 너랑 같이 <한문이 예술>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많이 보고 배웠으니까. 아, 그리고 요즘엔 다들 <한문이 예술>이 동은이가 하는 거다, 이렇게 생각해 주니까 용기를 더 내게 되기도 해.
고은 오…. 이젠 다들 인정해주는구나. 멋지다.
동은 나는 가끔 이게 이해가 안 돼. 김고은의 감동 시스템은 뭐지?
우현 (웃음) 요즘 동은한테 긍정적인 피드백이 많이 오는 거 같아. 그거에 동은이 힘을 많이 얻고 있구나, 하고 느껴져. 
고은 우현이는 문탁에서 영상도 하고 공부도 하는 거지?
우현 응. 영상 작업물들로 선생님들하고 같이 얘기해 볼 수 있는 지점들이 있어서 좋더라고. 예전에 음악했을 때보다 작업에 대한 공유가 더 잘 되는 것 같아. 공부는 미학을 계속해 보고 싶어. 선생님들도 수긍해 주시는 것 같고. 사실 길드다 때 생긴 콤플렉스가 있어. 선배들하고 나이 차이도 있고 공부한 경력도 압도적으로 적었으니까, 베이스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올해 서양철학입문 세미나를 듣는 것도 기초를 쌓고 싶어서야.
동은 고은은 지금 하는 <주역> 공부 어때?
고은 잘 맞는 것 같아. 내가 좀 고집 부리는 면이 있잖아.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그냥 계속 하는 거. 근데 <주역>은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를 따지는 공부가 아니라 어떤 시기, 어떤 상황에서 삶을 살아간다는 감각을 기를 수 있게 해줘. 그게 나한테 유연함을 주더라.
우현 이마에 쓰여 있어. ‘유연하지 않음’ (웃음) <주역> 진짜 잘 맞아 보여.
동은 그럼 난 <주역> 공부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지? 난 물렁이잖아.
고은 너는 반대로 어떤 경우에는 뭔가를 ‘해야 된다’는 걸 알게 되면 되지.
우현 그래. 비가 올 땐 나가 놀지 말라, 그런 문장 있는지 좀 살펴봐 봐. (웃음)

 


길드다에서 이크스튜디오로
고은 길드다가 분화된 지 딱 1년 됐더라고. 그동안은 친구들을 미워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일 년 지나고 나니까 정리가 좀 되는 것 같아. 길드다를 할 때는 왜 그렇게 여유가 없었을까 싶어. 운영 문제로 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친구들도 힘들게 했던 것 같아. 너희는 지금 와서 돌아보면 어떤 것 같아?
우현 아직도 1년밖에 안 됐다는 게 너무 이상하다. 길드다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 전혀 없었어서 그런가, 되게 오래전 일처럼 느껴져. 나한테 길드다는 확실히 사회생활 시작으로는 난도가 높았던 것 같아. 일과 공부에 대한 감이 전혀 없었는데, 그 둘을 결합해서 뭘 해야 했으니까.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나만의 뭔가를 펼치기 힘든 상황이었고, 끌려가는 느낌이 강했지. 그런데 반대로 얘기하면 도움은 많이 됐어. 그만큼 레벨업은 했다.
고은 운영에 신경을 많이 썼던 나도 끌려가고, 막내였던 너도 끌려갔네. (웃음)
동은 제일 허덕였던 건 내가 아니었을까? (웃음) 길드다 일이 내가 할 줄 아는 거, 할 수 있는 것과 불일치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도 나도 힘들고, 내가 그런 상황을 만든다는 것도 슬펐어. 그러니까 스스로를 감당하기가 힘들었지. 제어가 되지 않았고, 행동의 원인도 보이지 않았고, 내 행동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래도 지금 길드다 할 때와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나 자신에 대해서는 좀 덜 답답해하게 됐다는 거?
고은 작년 길드다가 분화되고 나서는 우리 셋이서 공모사업이랑 <계사전> 공부를 했잖아. 그런데 올해는 셋이서만 뭘 하는 건 없네.
동은 이렇게 보는 것도 오랜만이지. 김고은이 너무 바빠서 우리를 왕따시킨다니까.
고은 내가 너희를? 왕따는 원래 소수가 당하는 거 아니야?
우현 소수가 다수를 왕따시키는 건 김고은 같은 인간이라야 가능한 거야. (웃음) 근데 나는 오히려 지금처럼 흩어지면서 공간이 생기니까, 거기서 다양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 반가워. 
고은 그래도 우리 셋 다 하는 건 있잖아. 이크스튜디오에서 미디어 작업을 하고 있지. 특히 영상 미디어 작업을 우현, 동은 둘 다 하고 있잖아.
동은 처음엔 노트북 성능이 좋은데 한글 머신으로 놀리기 아까워서 시작한 거거든. ‘월간문탁’으로 처음 영상을 만들 때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 그 덕에 일리치약국에서 영상도 만들게 됐고, 길드다를 나와서도 뭔가를 해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나한테 힘이 많이 됐던 것 같아. 내가 창작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 지금 영상은 내게 생계의 의미가 커.
우현 나도 영상을 업으로 해야겠다는 건 생계의 차원이었는데, 이번에 이크스튜디오에서 미디어 세미나를 하면서 좀 달라진 것 같아. 나는 책방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부터 책보다 게임이나 영상 매체에 관심이 더 많았어. 또 우리의 현실적인 조건이기도 하잖아. 유튜브 안 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그만큼 안 다뤄진다는 생각이 들어. 영상과 인문학을 섞는 게 내가 갖고 있는 큰 소망 같은 거야. 나는 진짜 재밌는 영상을 만들고 싶어. 그리고 그게 인문학적이었으면 좋겠어. 어떤 담론이나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개그, 그러니까 인문학적 X소리를 하고 싶거든.

동은이와 우현이는 인터뷰 내내 나에게 역질문하며 즐거워했다. 내가 인터뷰하는 장면을 직접 본 게 처음이라 그럴 테고, 또 평소에 내가 내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할 타이다. 나 역시 자주 보는 이들이지만, 셋이서만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건 오랜만이라 이 인터뷰 시간이 귀하게 느껴졌다. 

 

동은과 우현은 내가 오지 않으면 절대 단체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우겼다.

 

작년에 내가 동은에게 ‘한문이 예술’로 장기 비전을 세우자고 했을 땐 취업하겠다고 거절했는데, 올해 갑자기 마음을 바꿔 ‘한문이 예술’로 뭔가 해보겠다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 직감만 믿고 앞서가려는 나와 달리 동은은 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와 맥락을 믿고 의지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우현이 요새 들어 이것저것 해보겠다고 일을 너무 많이 벌이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우현에게 ‘길드다를 하며 너를 충분히 펼치지 않고 있다’고 말한 적은 있었지만, 우현이 그걸 그리 크게 느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길드다 후배 위치를 벗어나 선생님들과 무언가를 해볼 수 있게 된 지금 이 시간이 우현에게 얼마나 즐거울지, 상상만 해도 마음이 좋다.

 

사실 우리 셋의 관계는 이 인터뷰에 등장하지 않은 많은 선생님들과 그 선생님들이 만든 단위, 그리고 그 단위가 활동하는 공간으로부터 나온다. 우리가 싸우고 멈추고 방황했음에도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건 모두 그 덕이다. 지면상 그 이야기를 다 담을 수 없었으므로, 이 글은 반쪽짜리 인터뷰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쩌면 읽는 이들이 행간에 숨어 있는, 우리의 바탕이 되어준 관계들을 찾아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인터뷰_고은(문탁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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