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영혼의 편지』 하나의 작품을 위한 노력
"그러나 예술에 대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을 빼앗아가는 이 냉혹한 행성에서 화가들이 꾸려가는 생활은 정말 초라하지. 그뿐만 아니라 실천하기 힘든 사명 때문에 허리가 부서져라 멍에를 지고 고통에 시달리고 있네. 그래도 다른 무수한 행성이나 태양에도 선과 형태와 색채가 존재한다는 가설을 반박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른 존재가 되어 그림을 그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믿을 자유가 우리에겐 있지. (...) 지상에 머무르는 동안 지도 위에 검은 점으로 표시되어 있는 마을이나 도시에 직접 가볼 수 있는 것처럼, 어쩌면 나비가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무수한 별이 있을지도, 그리고 죽은 후에는 우리가 그곳에 갈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 않겠나." (베르나르에게 보내는 편지, p.187)
반 고흐는 왜 그림을 그렸을까?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는 사후에 유명해진 네덜란드의 화가이다. 그의 이름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죽은 형 ‘빈센트 빌럼’이라는 이름에서 따왔기 때문에 그는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죽은 형을 대신해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항상 죽음을 의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늦게 화가의 길로 들어섰고, 그림이 잘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동생 테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가 37세에 삶을 스스로 마감한 것은 슬프지만, 자신이 직접 선택한 일이기에 무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는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남동생 테오와 가족과 주고받은 편지 약 40편이 실려 있는 책이다. 이 고독했던 화가는 비록 자신이 그린 여러 작품 중 단 한 점밖에 팔지 못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한 반 고흐는 늘 테오에게 신세를 졌고, 항상 미안해했다. 반 고흐는, “돈은 꼭 갚겠다. 안된다면 내 영혼을 주겠다.”라고까지 편지에 적었다. 1800년대에 쓰였으니 꽤나 오래된 편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책임지느라 가난한 삶을 살았던 동생 테오에게 반 고흐가 느낀 미안함, 안타까움 같은 감정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양미간을 찌푸리고 울상을 지으며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반 고흐는 자신의 작품이 팔리지 않음에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도대체 그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얼마나 중요했기에 건강, 경제적 상황 등 모든 것들이 절박한 상황에서도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을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거나 그저 즐거워서 하는 가벼운 취미생활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반 고흐는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팔기 위해서’ 예술을 하는 것이라면 결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취미생활이라고 하기에는 그림에 너무 진지했고, 반 고흐가 취미생활 때문에 동생에게 신세를 질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 ‘그림이라면 사람의 영혼을 담을 수 있을까.’라는 문장이 있다. 처음에는 반 고흐에게 그림이란 자신이 살고 있는 삶 말고 다른 삶을 살아 보는 것인 줄 알았다. 내가 실제로 시도해 볼 수 없는 것을 그림으로 해보는 것인지 알았는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반 고흐의 그림이 굉장히 일상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반 고흐에게 그림이란 ‘부유하게 사는 모습은 아니지만, 여전한 나의 생활 모습을 담아놓는 것’일 거라고 생각해 보았다. 그 시대에는 카메라도 흔하지 않았으니 자신과 주변의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알아주지는 않지만,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길. 이것이 반 고흐에게 있어서 그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란?
내가 알고 있던 반 고흐의 화법은 그의 가장 유명한 그림인 <별이 빛나는 밤>이나 <꽃병에 꽂힌 열네 송이 해바라기>처럼 물감을 나이프에 두껍게 묻혀서 캔버스에 치덕치덕한 느낌으로 그리는 것이었다. 하늘을 파랑색이나 하얀색처럼 단색으로 칠하지 않고 노랑이나 빨강, 초록 등을 중간 중간 섞으며 다양한 종류의 색을 사용하는 것이 내가 아는 그 유명한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보니 그런 느낌의 그림은 반 고흐가 나이가 든 다음에 그린 것이었다. 반 고흐가 미술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어두운 그림들이 많았는데 여러 사람들을 그린 그림들 중에도 웃고 있는 사람은 없었고,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가만히 있는 것 같은 사람을 그린 경우가 많았다. 지금 널리 알려진 그림들은 대부분 반 고흐가 아를에 가서 그린 그림들이다. 전체적으로 밝은 것 같지만 밝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그림들? 밝은 색들을 많이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색들이 섞여서 그런지, 아니면 웃는 모습을 그리지 않아서인지 화풍 자체가 슬프게 느껴졌다.
반 고흐의 작품에 대해 유명한 몇 편 밖에 알지 못했던 나는 이 책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목탄 스케치를 발견했다. <요람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 소녀>라는 그림은 목탄으로 전체적인 스케치를 하고 흰색 분필로 요람 안에 있는 이불을 중간 중간에 칠한 그림인데, 굉장히 사실적인 느낌이 들면서도 품위 있는 그림인 것 같았다. 흰색의 분필이 뽀얗게 나와서 그런지 이불이 정말 깨끗하고 보드랍고 폭신한 느낌이었다. 요람 앞에 앉아 있는 소녀는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아서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상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눈을 감고 아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모습, 아이를 보고 눈을 크게 뜨고 놀라워하는 모습, 아니면 빤히 쳐다보는 모습... 등 그냥 보고 ‘와, 멋지다’라는 생각이 드는 그림보다는 그 그림을 통해 화가나 그 그림 속에 있는 모델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한 작품에 임했는지 궁금해지는 그림이 더 좋다.
나는 예전에 예술을 하는 사람은 친구가 굉장히 많고 수다스런 사람이거나 괴짜라는 관념이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그것이 예술가에 대한 나의 전제였다. 내가 처음으로 미술을 배운 선생님이 그런 분이어서 나도 모르게 ‘예술(미술)을 하는 사람은 밝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은 것 같다 그래서 반 고흐가 고독한 삶을 살다가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많이 놀랐다. 예술가란 자고로 즐거운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이 예술가의 전제조건인 줄 알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동화에나 나올 법한 ‘행복하게 산 예술가의 삶’에 대한 생각이었다. 반 고흐는 예술가였지만 고독했다! 물론 내가 반 고흐의 삶을 파고들어 ‘이랬다 저랬다’하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외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내면에서는 얼마나 많은 다른 ‘반 고흐’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재능과 열정, 각고의 노력을 가진 자만이 그 일의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데, 반 고흐는 그 대가를 사후에 받은 걸까?
하루하루를 힘들게 생활하던 반 고흐가 테오에게 쓴 편지 중에 가장 많은 내용은 ‘물감 값’에 관한 것이다. 아무리 자신의 형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자신의 지지 없이는 살지 못하는 사람을 신뢰하기는 동생으로서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반 고흐가 이런 고독하고 힘든 인생을 살지 않았더라면 그가 유명해질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가 유명해진 데는 분명 반 고흐의 인생 이야기도 한몫 했을 것이다. 만약에 반 고흐가 그 시대에 맞는 작품을 그려서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유명해졌다면, 지금은 그저 ‘옛날에 유명했던 화가 중 한 명’으로만 기억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예 지금 언급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원했던 것이 자신이 죽고 나서 유명해져서 자신의 작품이 몇 백억의 가격으로 팔리며 재벌가의 저택이나 커다란 미술관에 걸리는 것이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만약에 내가 반 고흐였더라면, 내가 살아있는 동안 적은 사람들이라도 내 그림을 좋아해주는 것이 죽고 나서 유명해지는 것보다 훨씬 좋았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 반 고흐는 일생 중 성공하거나 좋은 일이 별로 없었다. 그림은 인기가 없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구혼했다가 ‘절대 안 된다’며 단칼에 거절당했으며, 귀를 자르고 자살하는 상황까지 가버렸으니 말이다.
예술가는 자신이 살아온 즐거운 삶을 그림으로 화려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가볍게 그림 몇 점을 스케치하고, 버리고... 이런 행위를 반복하며 낙서를 하는 것은 예술가가 아니다. 고흐가 생각하는 예술가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을 힘겹게 알아가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반 고흐가 보는 세상은?
반 고흐들의 시대별 그림들과 그가 어느 시대에 살았는지 조금 알게 되자 반 고흐가 어떻게 세상을 느꼈을지 궁금해졌다. 그가 화가를 어떠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였는지 말이다. 화가는 과연 있는 사물을 그대로 그림으로 담아내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다면 모든 화가가 같은 그림을 그리게 될 테고, ‘화가’라는 이름이 아닌 그저 어떤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화가마다 각자가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세계를 보고 그 세계 안에서 그림을 그린다. 반 고흐의 화집을 찾아보았는데 많은 해설들이 ‘반 고흐가 그림 안에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19세기의 미술들은 주로 사실을 전달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상에 따라 대상의 느낌을 전달하는 것에 목적을 두는 ‘인상주의’가 발달하였다고 한다. 반 고흐와 비슷한 시기에 그렸던 화가들은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폴 세잔(Paul Cézanne),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등이 있는데 모두 화려한 채색을 사용하여 그림에 분위기를 내려는 것 같았다.
반 고흐는 편지에서 자신이 존경하는 화가로 밀레를 많이 언급하였다. 밀레의 그림은 사람에게 편안함을 준다며 그의 그림 여러 점을 모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밀레의 그림은 순수한 삶의 모습을 보여 준다’며 매우 좋은 그림의 소재라고 했다. 그렇다면 반 고흐도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 반 고흐의 그림들을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밀레의 그림을 모사한 것들을 보면 원래의 편안한 느낌의 그림은 없어지고 그림 속 사람들의 다른 감정들이 나타나는 것 같았다. 편안한 느낌의 그림보다는 왜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 라는 질문을 끌어내는 그런 그림.
우리가 그림을 그릴 때 나무를 본다면 그 나무에서 느낀 점이 아닌 그 나무의 모습을 그리려고 한다. 물론 나무를 그리는 것이 맞지만, 자신의 그림을 그리지 않고 ‘모두가 아는 그림의 틀’에 맞춰서 그린다고 할까? 자신이 나무를 보고 바람처럼 느꼈다면 바람을 표현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바람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나무를 그린다. 나무를 보았기 때문에 나무를 그려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 고흐는 그 대상이 나무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린다기보다는 나무를 알기 전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그린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시대의 다른 그림들과 많이 다른 느낌이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기술을 형식의 문제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부적절하고 공허한 용어를 마음대로 지껄인다. 그냥 내버려두자. 진정한 화가는 양심의 인도를 받는다. 화가의 영혼과 지성이 붓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붓이 그의 영혼과 지성을 위해 존재한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캔버스가 그를 두려워한다." ( 1885년.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p.134)
니체 전집 시리즈에서 짧게 본 기억이 있는데, 니체는 예술가의 전제조건이 끈기와 성실성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예술가가 되려면 2,30년을 그것에 전념해야 한다고. 이런 성실함에 있어서는 반 고흐가 베테랑이 아닐까 싶다. 비록 그림을 그린 시간은 짧았지만, 그는 자신이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어떤 상황이 닥치든 간에 쭉 그림을 그렸으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진정한 예술은 다른 사람의 내적인 삶을 진지하게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말이야 쉬울지 모르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너무 신경 쓰느라 다른 사람의 내적인 것은 물론 외적인 것에조차 관심을 잘 주지 못한다. 겉에 보이는 것도 신경쓰지 못하는데 어찌 내부의 것을 신경 쓸 수 있을까? 반 고흐는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이 그릴 대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 같았다. 반 고흐는 자신이 그리려는 대상을 완전히 이해하고 나서야 붓을 든 화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삶을 진지하게 관찰한 결과가 아닐까?
"비가 그치고 까마귀가 다시 날아다니자, 기다렸던 걸 다행으로 여기게 되었다. 비 내린 숲의 흙이 찬란한 검은색을 띄었기 때문이다. 비가 오기 전에 시야를 낮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비가 그쳤을 때는 진흙탕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새로운 형식이 탄생하는 것은 바로 그런 식의 모험 덕분이지."
비 오는 날이면 반 고흐는 캔버스에 우산을 꽂고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만약에 내가 그렇게 성실해지는 것이 가능하다면, 나라도 관찰을 하는 한에선 비 오는 날에도 쉬면 안 될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관찰하는 대상에서 눈을 떼는 순간 내가 그 대상에 대해서 생각한 모든 느낌이나 생각이 모두 빠져나가 버리며 그동안의 모든 것들을 까먹어 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쉬지 않고 항시 그림을 그리는 반 고흐가 대단하단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왜 저렇게 몸을 혹사시키며 그림을 그리려 하나 싶었다. 하지만 한 작품을 마무리하려고 끝까지 그리는 모습은 정말 본받을 만했다. 하기가 귀찮아서 하루 쉬면 다음 날에도 하기가 싫고, 그 다음날은 핑계를 대서 쉬게 되고, 그 다음날에는 이슬비가 조금 온다고, 아니면 폭염이라고 쉬는 게 실제 나의 모습인데, 한 작품을 딱 마무리 짓는 반 고흐의 모습이 무척 책임감 있어 보였다. 하지만 ‘나도 저렇게 해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현실은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뭘까?
그런데 반 고흐의 여러 그림들을 보고 드는 생각도 그렇고, 다른 아름다운 것들을 판단하는 나의 기준은 뭘까? 반 고흐의 그림은 여러 색들 덕분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노력이 아름다워서 그림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다면 ‘이 그림 예쁘다!’라고 말할 때의 나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일까? 항상 당연히 아름답다고 생각하기만 했지 정작 그 아름다움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사람 또는 어떤 사물을 판단하는 여러 형용사들 - ‘아름답다’ ‘추하다’, ‘좋다’ ‘나쁘다’ 등등의 말들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요즘 잘생긴 사람을 많이 찾아다니는데 특히 대학로에 가면 잘생긴 사람이 많아서 규문에 올 때마다 항상 간다. 왜 찾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그냥 뭔가 보면 기분이 좋아져서?’라는 흔한 말 외에는 딱히 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로에서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비율 좋고, 얼굴이 황금 비율인데다가, 눈 크고 코 높고 헤어스타일은 살짝 곱슬곱슬한 느낌의 사람이다. 옛날식으로 표현하자면 ‘기생오라비’ 같은 사람, 그리고 좀 더 현대적인 말로는 요즘 ‘아이돌’과 비슷한 인상이다. 솔직히 아이돌과 같은 인상을 가진 남자가 잘생긴 남자의 기준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내가 ‘아이돌’이라는 것이 없는 곳에서 태어났어도 그랬을까? 아니다. 하지만 꼭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모든 곳에는 다른 ‘잘생김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왜 우리가 판단하는 모든 것에는 기준이 생길까? 그리고 왜 그 기준들은 모두 나 자신이 될 수 없는 걸까? 무엇보다도, 왜 잘생김, 아름다움, 이 모든 것은 외적인 것이 기준이 될까? 왜 항상 무언가를 잘생기거나 아름답다고 하면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하기보다는 다른 아름다운 상을 떠올리며 비교하게 되는 걸까? ‘와, 이건 정말 이 자체로 아름다워!’라고 말할 때도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줄 다른 추함이나 아름다움의 기준이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더라도 아마 우리는 외적인 것을 보고 찬사를 하거나 비난을 할 때 ‘그 자체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항상 그에 따라오는 상이 있고, 그것에 대비시키며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외적인 것만이 아니라 내적인 것도 그렇다. ‘쟤 좀 성격이 이상하지 않아?’하고 말을 할 때도 그 ‘이상함’은 어떤 ‘평범한’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나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내가 죽을 때까지 나 ‘엄이우’의 온전한 모습이 아닌 어떤 다른 모습이 떠올려지며 사람들에게 인식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나도 여태껏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보아 왔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글_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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