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유행병, 도시문명의 산물

질병의 진화사? 인간의 진화사!

신근영(남산강학원Q&?)

 

 

삐용은 한국사람을 좋아해?

 

‘삐용’. 파리 이름이다. 몇 년 전인가 아마존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나와 화제가 되었던 놈들이다. 삐용은 파리지만, 좀 특이한 파리다. 이 놈들은 피 빠는 파리다. 일종의 모기 같은 파리. 그런데 다큐를 찍으러 간 제작진들이 이 파리에 수 백 방 물려 괴로워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삐용에 물리면 정말로 죽도록 가렵다고 한다. 피가 날 때까지 긁는 건 보통이고, 뇌를 긁고 싶은 정도라고(ㅠㅠ).

 

 

삐용과 사투를 하던 우리나라 제작진들. 그 중 한 명은 결국 염증이 심해져 긴급하게 병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런 제작진들을 아마존의 원주민들은 걱정스레 바라봤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원주민들은 멀쩡했다. 제작진들처럼 물린 자국이 붉게 올라오지도, 가려워 긁지도 않았다. 마치 삐용이 일부러 한국 사람만 골라서 문 듯 보였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와 비슷한 일이 16세기 초, 남아메리카에서도 일어났다. 그러나 상황은 아마존에 대한 다큐 때와 정 반대였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방문을 받은 쪽이었던 것. 사실 그건 방문이 아닌 침략이었지만….

 

인디언들만을 노리던 저격수, 유행병

 

1519년, 600명의 스페인 군사를 이끈 코르테스가 남아메리카의 아스텍 제국을 공격했다. 그건 무모한 도전이었다. 아스텍은 인구가 수천만에 이르렀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다. 결국 코르테스는 군사의 3분의 2를 잃고 겨우 해안으로 도망갈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이어진 코르테스의 두 번째 침략. 물론 아스텍인들은 스페인에 맞서 격렬하게 싸웠다. 그러나 아스텍인들이 상상도 할 수 없던 무기가 코르테스에게는 있었다. 그건 ‘천연두’였다.

 

1520년 스페인령 쿠바에서 천연두에 감염된 노예 한 명이 맥시코에 도착했다. 그 때부터 시작된 유행병은 아스텍족 인구 절반을 몰살시켰다. 죽은 사람 중에는 당시 아스텍의 왕도 있었다. 묘한 점은 천연두가 스페인인들은 피해갔다는 것이다. 아즈텍인들에게 그 병은, 오로지 자신들만을 타겟으로 삼아 죽이는 것 같았다. 아스텍 인디언들의 마음은 흔들렸고, 군대의 사기는 떨어졌다. 그렇게 코르테스는 아스텍을 점령한다. 그 후 1618년까지, 천연두는 아스텍 인구를 처음의 2000만 명에서 160만 명 정도로 바꿔버렸다.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경우도 아스텍과 비슷했다. 아메리카로 이주한 유럽인들은 아메리카가 비어있는 땅이었고, 자신들은 그런 빈 땅을 잘 사용하게 된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사실이다. 실제로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로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그곳은 비어 있었다.

 

그러나 한 두 세기 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할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그동안 인디언 인구의 최대 95%가 감소했다. 여기에도 천연두와 같은 유행병의 개입이 있었다. 예를 들어 1837년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정교한 문화를 가졌던 만단족 인디언은, 천연두로 인해 몇 주 사이에 인구가 2000명에서 40명으로 줄었다. 여기서도 유행병들은 인디언들에게만 강력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보였다.

 

전염병 앞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북아메리카 인디언들. 유럽 역시 비슷하게 흑사병을 경험했었다.

 

아스텍을 비롯해 아메리카 전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말 그대로 유행병인데, 이게 어떻게 인디언들에게만 강력하게 나타난 것일까? 답은 코르테스, 그러니까 처음 아메리카를 찾아온 서유럽 사람들에게 있었다.

 

서유럽 앞에, 그리고 함께 온 질병들

 

당시 아메리카를 휩쓸었던 유행병에 있어서, 서유럽 사람들과 인디언들의 차이는 뭘까? 지금 혹 뭔가 심오한 것을 생각하고 계시다면, 그건 답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좀 더 쉽게 쉽게 생각해야 차이의 정체가 나온다. 떠오르셨는지. 그럼 답을 발표하면, 두 집단이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는 점이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여서 이게 그 사건의 전모를 밝혀주는 열쇠가 된다는 게 이상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여기에 힌트 하나 더. ‘진화!’ 이제 감이 좀 오시죠? (*^^*)

 

인디언들을 쓰러뜨리던 유행병의 근원은 서유럽 사람들 자체였다. 그들은 아메리카와는 다른, 그들만의 시공간을 거쳐 왔다. 이 과정에서 그 유행병들과 함께 진화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어느 정도 면역성이 있었다. 허나 인디언들은 달랐다. 그들은 서유럽인들이 가져온 유행병과 살아 본 역사가 없다. 이 때문에 인디언들만 그 병들에 쓰러져가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서유럽에 의한 남아메리카 아스텍 문명이나 잉카 문명의 정복은 그들 자신이 가져온 유행병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한편 북아메리카의 경우, 서유럽의 정복자들은 별다른 수고조차 할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보다 앞서 도착한 유라시아의 유행병들이 모든 번거로운 일들을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인디언들이 죽은 주된 요인은 구세계의 병원균이었다. 인디언들은 그런 [대중성] 질병에 노출된 적이 없었으므로 면역성이나 유전적인 저항력이 전혀 없었다. 살인적인 질병의 1위 자리를 놓고 다투었던 것은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발진 티수프 등이었고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듯 디프테리아, 말라리아, 볼거리, 백일해, 페스트, 결책, 황열병 등이 그 뒤를 바싹 따랐다. 병원균이 보인 파괴력을 백인들이 직접 목격한 경우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ㅡ 제레드 다이아몬드,총,균,쇠』


 

인간과 질병은 함께 진화한다

 

이제 앞에서 말한 ‘삐용’에 얽힌 비밀을 아셨을 거다. 우리는 삐용과 함께 진화하지 못했다. 이에 비해 아마존 원주민들은 삐용과 함께 살아왔다. 그렇기에 그들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진화의 시공간 속에서 배웠다. 원주민들은 삐용이 자신들의 피를 빨아 먹도록 허용했고, 삐용은 그런 원주민들에게 약간의 따가움 정도를 줬을 거다. 요컨대, 우리에게 모기가 그들에게 삐용인 것.

 

진화와 병에 대한 얘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가보자. 우선 궁금한 점은 아메리카에는 서유럽 사람들에게 타격을 줄 그런 유행병이 없었냐는 거다. 생화학자이자 진화생물학을 연구하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없었다.’ 그럼 다시 궁금해진다. 왜 아메리카에는 치명적인 유행병이 없었던 걸까? 좀 더 쉽게 바꿔 묻자면, ‘대체 서유럽(유라시아)사람들만이 겪어왔던 진화의 시공간은 무엇일까?’

 

첫 번째 답은 ‘가축화된 동물’에 있다. 인류 근대사에 주요 사망 원인이었던 그 대중성 유행병들은 동물의 질병에서 진화된 전염병들이다. 원래 동물들에게 퍼져 있던 매우 유사한 병원균이 돌연변이를 거쳐 인간의 병원균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 이런 질병은 인간들에게만 감염되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이 모든 병의 원인을 동물에게 떠넘기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만약 인간이 동물을 가축화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유라시아 사람들은 일찍부터 동물을 가축화해서 살아왔다. 이에 비해 남북아메리카에서는 종류를 막론하고 단 5종의 동물밖에는 가축화되지 못했다. 칠면조, 라마, 기니피그, 사향 물오리, 개. 이는 아메리카에 가축화할 야생동물이 적기 때문이었다.

 

가축을 많이 길렀던 유라시아 인종과(좌) 가축을 거의 키우지 않았던 인디언들(우).

 

여기에 덧붙여, 아메리카 가축들의 특징은 유행병의 세균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향물오리나 칠면조는 막 안아주고 싶은, 그러니까 인간과 신체접촉을 많이 하게 되는 동물이 아니다. 라마와 알파카는 유라시아의 가축화된 동물과 비슷해 보이지만, 이들에게 얻은 전염병은 하나도 없다. 그 이유는 라마와 알파카가 작은 무리를 이루고, 숫자도 적고, 인디언들이 그 젖을 먹는 일도 없으며, 실내에서 키우지도 않기 때문이다. 의심이 되는 것은 기니피그 하나인데, 현재까지 그놈들로부터 확인된 전염성 질병은 없다고 한다.  

 

농경과 도시의 삶, 그리고 대중성 질병

 

대중성 질병의 다른 주된 요인은 ‘농경과 도시의 발생’이었다. 농경의 발생이라고 하면 왠지 긍정적이게 느껴지지만, 그래서 심지어 신석기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농경과 그로인한 정주형 생활은 많은 문제들을 불러왔다.

 

그 중 하나는, 자신의 오물과 함께 살게 된 일이다. 유목민들은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곧 다른 곳으로 떠나니 말이다. 하지만 정착생활은 그럴 수 없었다. 거기에 식량저장은 쥐를 불러들였고, 그것이 매개가 되어 동물성 세균이 인간의 질병으로 바뀌는 데 한몫했다. 여기에 도시가 발생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농경의 발생이 세균들에게 큰 행운이었다면 도시의 발생은 더 큰 행운이었다. 전보다 더욱 조밀한 인구 전보다 더욱 열악한 위생 환경 속에서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럽의 도시 인구는 20세기 초에 들어와서야 마침내 자립할 수 있게 되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총,균,쇠』

 


어쩌면 지구는 도시문명을 '인간의 번영'이 아닌 '곤충의 번영'으로 볼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에는 인간만 사는 게 아니다. 질병 역시 내가 사는 이 세계의 일부다.



이런 조건이 아니면, 대중성 전염병은 발생할 수 없다. 그렇기에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그런 병들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제국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남아메리카의 아즈텍이나 잉카 문명은 서유럽 국가와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도시는 없었다. 도시는 전적으로 자본주의가 시작되며 형성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두 문명처럼 정착과 농경 생활을 하지 않던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더욱 그런 세균들을 만날 삶의 조건을 가지지 못했고, 그 만큼 더욱 그 질병들에 취약했다.

 

흔히들 병의 주 원인을 세균에게 떠넘긴다. 그래서 병의 예방하는 데 중요한 것은 세균박멸이다. 그러나 대중성 질병의 예가 보여주듯, 그 세균들은 인간이 살아온 시공간을 제거시키고 나면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기에 그런 세균이 발생했다는 건, 역으로 인간 삶에 뭔가 뒤틀린 시공간, 그 치명적 세균들이 태어날 만한 삶의 양태들이 있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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