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명과 과학

생명체 지구의 또 다른 이름, 가이아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7. 25.

가이아, 생명을 다시 묻다

 

박영대(남산강학원 Q&?)

 

지구가 살아있다?

 

무더운 날씨에 장마까지 겹쳐 연일 후텁지근하다. 이런 날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온통 땀에 젖는다. 땀은 체온이 상승하면 교감신경에서 분비된다. 땀이 증발하면서 피부 표면을 냉각시켜 체온이 떨어지는 것이다. 땀은 유기체가 자신의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지구도 같은 노력을 한다. 여러 생물들을 통해 지구의 기후는 지난 38억년간 일정한 범위에서 유지되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지구‘가’ 자신의 온도를 조절하려는 노력일까. 대부분 아니라고 한다. 우리는 생물이지만 지구는 무생물이다. 따라서 지구는 스스로 회복하려는 노력을 할 수 없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동일한 현상을 놓고 서로 다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건 이해 이전에 선지식이나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 지구=무생물이라는 선지식이 있다.


이런 선지식을 과감하게 돌파한 사람들이 있다. 제임스 러브록과 스테판 하딩. 전자는 영국의 과학자이고, 후자는 러브록의 친구이자 내가 오늘 소개할 책 『지구의 노래』의 저자다. 그 돌파의 결과로 나온 것이 가이아이론이다. 그들은 주장한다. 지구는 살아있는 유기체다. 이건 비유도 아니고 상징도 아니다. ‘리얼’한 과학적 팩트다.

 

'가이아'는 신화, 판타지 소설에서만 등장하는 용어일까?

 

선지식과 충돌한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가이아 이론은 정말 진짜일까? 한 번 증명해봐.” 증명해보라는 건, 사실 반박할 흠집을 찾기 위한 심리적 저항이다. 그러니 지난한 증명논쟁을 떠나 다르게 물어보자. “지구는 어떻게 살아갈까?”,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는 걸까?”

 

피드백하는 지구

 

가이아이론의 핵심은 지구가 자기정화력, 유지복원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 방법이 ‘피드백(되먹임 작용)’이다. 시스템의 구성요소 하나가 변해서 어떤 결과를 일으키고, 그 결과가 다시 원래의 요소에 영향을 준다. 희망온도를 설정한 에어컨을 생각하면 쉽다. 에어컨은 실내온도를 인지해서 저절로 작동한다. 지구가 기후를 조절하는 것도 이런 방법이다.

 
지구는 장구한 역사 동안 무수한 변화를 겪어왔다. 하지만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항상 180ppm~300ppm을 유지했고, 그에 맞춰 온도 또한 일정 범위 내에서 안정적이었다. 태양이 계속 뜨거워져 처음보다 25%가량 더 밝아진 것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비밀은 생물과 암석, 여러 화학물질들의 피드백 관계에 있다. 


"이봐, 요새 너무 이산화탄소가 부족하지 않아?"


지구의 기후에 큰 영향을 미치는 탄소, 이 탄소의 여행을 따라가 보자. 여행은 화산에서 출발한다. 화산이 펑!하고 폭발하면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가 뿜어져 나온다. 탄소의 온실효과로 뜨거워진 지구는 더 많은 비를 내린다. 그런데 비는 지표면의 암석을 분해한다. 내리는 비가 암석을 풍화시키기도 하고, 비가 식물의 생장을 촉진해서 간접적으로 식물을 통해 암석을 잘게 부수기도 한다. 그러면 풍화된 암석 속 칼슘이 탄소와 반응해서 탄산칼슘 이온을 만든다. 이렇게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한껏 빨아들이는 것이다. 강으로 흘러간 탄산칼슘은 결국 바다에 퇴적되고, 여기서 탄소는 긴 여행을 마친다.


이렇게 이산화탄소가 일시적으로 증가해도 암석부터 식물, 화학물질들의 노력에 힘입어 대기 속 탄소량이 저절로 줄어든다. 그러다가 화산활동이 시작하면 탄소는 다시 거대한 ‘순환의 여행’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지구라는 생명체가 살아가는 비밀이다. 뭇 생물(화학물질도 생물이다)들의 피드백적 관계, 가이아라는 거대한 생명체를 통과하는 순환.

 

점점 밝아지는 태양과 같은 외적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가이아가 생명이 살 수 있는 적절한 조건을 유지했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 지구가 정말로 살아 있음을 의미한다. 자기 조절 능력은 모든 생명체 또는 생명체의 산물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외부 온도가 크게 변해도 우리의 체온은 조금만 변할 뿐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가이아와 다를 게 없다. 

ㅡ스테판 하딩, 『지구의 노래』

 

어떤 생명인가

 

영화 <존 말코스키 되기> 포스터. 어쩌면 우리는 '생명'이라는 것을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형체들이라는 풍경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딩의 책에는 가이아이론의 증거가 매우 많다. 하지만 사례들을 나열한다고 해서 지구가 생명으로 느껴질지 의문이다. 아마도 그건 우리의 선지식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가진 생명의 정의를 살펴보자.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도킨스는 가이아이론의 강력한 반대자 중 하나다. 도킨스에게 생명이란 무릇 생식을 하고 환경에 의해 자연선택되는 존재다. 하지만 지구는 엄마 지구에게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자라면서 우주환경에 적응한 적도 없다. 지구는 당연히 무생물이고 가이아는 얼토당토 않는 소리다. 도킨스는 여기서 진화론적 생명개념으로 가이아이론을 반박하고 있다. 아마도 그는 가이아이론이 제기한 생명의 정의에서 진화생물학 전체를 흔드는 위기를 느꼈을 것이다.


여기서 생명은 이기적이고 맹목적이다. 자기 유전자를 더 많이 퍼트리려는 불굴의 의지가 있고 그 의지는 다른 생물과의 경쟁이나 외부환경에 의해서 통제된다. 이 관점엔 자기 외의 모든 것들과 대립하는 묘한 적개심이 있다. 친구도 없이 홀로 세상과 싸워야하는 외로움. 이렇게 쓸쓸하고 고독한 생명이라...글쎄다.


피드백에서 보았다시피, 가이아이론에서 생명이란 자기를 유지하는 힘이다. 생명은 외부환경이 변한다고 해서 거기에 무조건 종속되지 않는다. 외부변화에 맞서 자신을 유지한다. 여기서는 맞서는 게 대립적인 느낌이 아니다. 자율적인 사람들끼리 함께 살아가는, 활발한 느낌이다. 그래서 스스로 유지한다는 것은 맹목과 다르다. 어떤 강제도 필요 없다.

 

<강철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진리의 문의 지킴이. 진리의 문 속에서 잃어버린 육체를 찾으려는 형제의 여정은, 결국 모든 것이 생명이자 인간이라는 진리를 드러낸다.


가이아적인 생명은 관계, 그 자체다. 자율적인 생명체들이 서로 피드백적 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크게 보면 관계 자체가 지구를 살아있게 만든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땀을 흘리며 체온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수많은 세포나 단백질이 협동한 결과이고 그들은 우리 의지로 움직일 수 없는 각각의 생명들이다. 그러니 고독한 생명은 없다. 살아있다는 것은 곧 ‘함께’라는 뜻이다. 

가이아의 생명은 우리가 지금껏 알아왔던 생물/무생물의 구분에 도전하고 있다. 우리가 무생물이라 여겨왔던 지구, 광물, 우주가 생명으로서 다시 조명되기 때문이다. 생명에 대한 상반된 정의 중에 무엇이 맞을까. 나는 둘 다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어쩌면 전혀 새로운 생명도 있을 수 있고. 중요한 건 생명에 대한 풍부한 생각을 펼치는 것이다.

 

‘가이아’적으로 과학하기

 

가이아이론은 신비로운 ‘생명’을 과학에 들여오고 있다. 생명력을 중심으로 과학, 지식, 우리 자신을 새롭게 구성하려 한다. 나는 이런 노력이 과학과 삶을 훨씬 풍부하게 바꾸리라 확신한다. 과학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자주 과학을 없애려는 사람으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은 과학을 풍부하게, 자연을 경이롭게 만들려는 것이지 과학을 내동댕이치려는 것이 아니다.


파울 클레, <노란 새가 있는 풍경>


멋진 과학철학자 파이어아벤트는 어떤 이론을 대할 때 이렇게 질문해보라고 했다. “그 이론에 따라 사는 것이 바람직한가?” 가이아이론은 이해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우리 삶에 어떤 도움이 될까. 자연과 생명에 대해 경외심을 갖게 된다. 경외심을 갖고 생명을 소중함을 느끼면서, 자연을 탐구한다. 멋지지 않은가. 이것이 가이아이론의 바람직한 점,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점이라 생각한다. 이것만 해도 가이아이론에 빠져볼 매력은 충분할 듯 싶다.

 

생태적 그리고 사회적 위기의 이 시대에 가장 만족스러운 행동은 가이아를 위한다는 생각에 고무되어 나오는 행동일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지구를 구성하는 살아 있는 유기체 군집, 공기, 암석, 물에 대한 깊은 소속감이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가이아의 과학이 지구에 대한 직관적 이해(진화하고 항상 변하는, 살아 있는 존재로서 지구를 받아들이는 것)와 어떻게 일치하는지 살펴보았다. …… [이렇게] 지구와 화해하면 우리의 합리성과 과학은 매우 풍요로워질 것이다.

스테판 하딩, 『지구의 노래』

 

마지막으로 책에 대한 팁 하나. 이 책이 훌륭하다는 증거가 또 있다. 과학적 설명이 쭉 이어지다가도 중간중간 자연을 ‘느끼는’ 방법이 나온다. 풀밭에 누워 등 뒤에서 살아 숨 쉬는 지구를 느끼기, 걸음을 걸으면서 발 아래의 지구를 굴리는 상상하기. 저자는 놀랍게도 과학 책에 신비적 체험법을 써 놓았다. 이를 통해 가이아를 꼭 한 번 느껴보시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