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이야기로 읽는 동의보감] 일상으로 치유하기

일상으로 치유하기

 『동의보감』에 따르면 감정, 즉 7정(희노애락우비경공)은 우리의 마음을 구성하는 요소다. 7정은 우리의 생존에 다 필요하지만 지나치거나 제때에 적절한 감정을 발현하지 못할 때가 문제다. 칠정중에서도 가장 조절하기 어려운 감정은 놀람과 무서움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놀람과 무서움은 한 번 겪고나면 놀랄 상황이 아닌데도 이전에 놀랐던 기억이 살아나 발현되기 때문이다. 기쁨이나 슬픔에 비해 무서움은 당장 생명을 위협하므로 있는 힘을 다해 저항했던 것이며 따라서 그만큼 몸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다음에도 그런 위험이 닥치면 피하거나 방어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너무 강하게 각인된 나머지 과거처럼 위험한 상황이 아닌데도 과거와 유사한 어떤 요소만 보거나 들어도 놀라고 무서워하게 된다는 점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격이다. 이것은 너무나 빨리 작동하는 감정이라서 자신의 의지로 어쩔 수가 없다. 요즘말로 하면 ‘트라우마’라 할 수 있다. 『동의보감』에도 이런 경우가 나온다.

 



한 부인이 밤에 도적에게 위협을 당하여 크게 놀란 후로 어떤 소리만 들어도 놀라 졸도하면서 깨어나질 못하곤 하였다. 의원이 심병(心病)으로 여겨 치료하였으나 효험이 없었다. 이에 대인(戴人)인이 보고 말하기를 “놀라는 것은 양증(陽證)으로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고 무서워하는 것은 음증(陰證)으로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놀라는 것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생기는 것이고 무서워하는 것은 자기가 알면서도 생기는 것입니다.

이 부인이 도적에게 위협을 당하여 놀란 것을 대인은 양증으로 보고 있다. 도적은 외부의 요인이기 때문이다. 외부의 요인이 없어졌는데도 자꾸 놀라는 것은 자신 안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음증으로 보고 있다. 이 부인은 지금 음양증을 동시에 앓고 있는데 본인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 의원은 어떤 처방을 내릴까?

​”담(膽)이란 용감한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놀라면 담이 상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환자의 두손을 잡아 의자 위에 놓게 하고 바로 앞에 앉은뱅이 책상을 하나 놓은 다음 “부인, 이것을 똑똑히 보시오.” 라고 하면서 나무 막대로 책상을 세게 내리치니 그 부인이 몹시 놀랐다. 조금 있다가 또 치니 놀라는 것이 다소 줄어들고, 연거푸 너더 댓 번을 친 다음에는 서서히 놀라던 것이 안정되었다. 그러자 숨을 크게 내쉬면서 묻기를 “이것이 무슨 치료법입니까”라고 하였다. 대인이 말하기를 “놀란 것은 평안하게 해 주어야 하는데 평안하게 해 준다는 것은 일상적인 것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입니다. 곧, 평상적인 것으로 보게 되면 반드시 놀라는 것을 없앨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날 밤 창문을 두드려보았는데 초저녁부터 날이 밝을 때까지 깊이 잠들어서 듣질 못했다. 대체로 놀라는 것은 신(神)이 위로 날리는 것이다. 따라서 아래에서 책상을 쳐서 내려다보게 하는 것은 신을 수습하게 하는 것이다.

─『동의보감』, 법인문화사, 279쪽

헐! 증상은 심각한데 처방치고는 너무 간단해서 싱겁기까지 하다. 고작 책상을 내려치는 것 뿐이라니! 하지만 여기에는 감정과 장부가 어떻게 연계되었는지에 대한 통찰이 있다. 의원은 환자가 놀랄 일이 아닌데도 놀라는 건 처음 도적에게 놀랐을 때 담(膽)이 상했기 때문으로 보았다. 담은 용기를 주관한다. 그러므로 담의 기능을 회복하려면 놀람을 자꾸 반복하여 그것에 익숙해지게 함으로서 놀라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일상으로 느끼게 해주어 담력을 키우기. 놀람을 놀람으로 치유하기. 그래서 여러 번 책상을 내리쳐 부인을 놀라게 한 것이다.

그런데 책상 높이를 허리 아래에 오도록 했다는 점에 또 한번 대인의 의술이 빛난다. 대인은 부인이 처음 도적에게 위협당할 때 담을 지키는 신(神)이 놀라서 위로 뜨거나 몸 밖으로 나간 것으로 보았다. 담은 하초(복부 아래)에 있다. 그러므로 신을 불러들이려면 아래를 내려다보아 의념을 아래에 두게 했다. 얼마나 절묘한가!

이와 비슷한 처방이 무속(巫俗)에도 있다. ‘넋 들이기’다. 제주에서는 무당이 병자를 애초에 놀랐던 그 장소에 데려가서 자신의 신통력으로 병자의 나간 넋을 몸 안으로 들인다. 병자의 태어난 해와 날, 시를 말하고 이름을 부르며 허공에 떠도는 넋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 때 병자는 꿇어 앉아 머리를 숙여 혼이 몸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어린 아이가 놀라거나 어른이라도 증세가 심하거나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지금도 제주에서는 간혹 무당을 부른다.

무속과 달리 의원은 환자가 어른일 경우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연출’만 하고 있다. 특별한 처방을 하지 않고 증상을 오히려 일상으로 경험하게 해서 증상을 없애기. 현대 임상의학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특별한(?) 치유법이다.

글_박정복(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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