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불기(不器), 백수로 살기 위하여

불기(不器), 백수로 살기 위하여



子曰 君子不器

자왈 군자불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그릇으로 쓰이지 않는다.” 

- 〈위정〉편 12장

子貢問曰 賜也 何如 子曰 女 器也 曰 何器也 曰 瑚璉也

자공문왈 사야 하여 자왈 여 기야 왈 하기야 왈 호련야


자공이 물었다. “저는 어떻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그릇이다.”

자공이 물었다. “무슨 그릇입니까?”

선생님께서 대답하셨다. “호련이다.” 

- 〈공야장〉편 3장

=글자풀이=

=주석풀이=

내 나이 스물 넷. 학력은 고졸이요, 가지고 있는 기술도, 능통한 외국어도 없다. 사회적으로 무능한 존재다. 하지만 오히려 누군가에게 이런 나를 당당히 ‘백수’라 소개하고 싶다. 남들과 똑같은 코스를 밟고 똑같은 가치를 추구하며 살지 않아도 충분히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러나 아직은 불안감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다. 그래도 특정한 기술이나 외국어 같은 걸 익혀둬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엄습한다. 그러나 공자의 말을 통해 앞으로 백수로서의 삶을 어떻게 그려나갈지 그 실마리를 잡은 것 같다. 그것은 바로 군자불기(君子不器)!


주희에 따르면, ‘군자불기’란 한정된 쓰임 속에 자신을 가둬두지 않는 군자의 태도를 뜻한다. 공자를 생각해보자. 그는 묘를 관리하는 일에서 재판을 처리하는 일까지 어떤 일을 맡아도 잘 처리했다. 그렇다고 해서 공자가 자신이 맡은 모든 영역에 재주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공자는 잘난 척하며 자신의 지식과 재주로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맡은 일이 낮은 지위의 것이라도 최선을 다했으며, 사소한 것도 하나하나 물어가며 신중하고 겸손한 태도를 고수했다. 그 결과 그는 어떤 일이든 능히 해내고 어떤 일을 맡겨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이것이 누구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자기역량을 성실히 발휘할 수 있었던 공자가 삶에서 견지한 태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가 말한 ‘군자불기’란 모든 일에서 배우고자 하는 호학(好學)인 동시에 일의 전체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이자 책임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을 특정한 그릇으로 한정짓지 않는다는 것은 당장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기본적 자질을 키우려는 적극적인 태도인 것이다.


자공은 공자의 제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재주를 가진 축에 속한다. 그는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고, 돈 버는 재주도 뛰어나서 공자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유능한 제자기도 하다. 사실 공자가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 것도 자공과 같은 걸출한 제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이런 자공을 호련(瑚璉), 즉 중요한 의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제기(祭器)와 같은 존재라고 했다. 하지만 앞서 공자는 ‘군자(君子)는 그릇이 아니다’라고 얘기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자공을 ‘호련’이라고 한 공자의 평가는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여전히 ‘군자’가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하는 공자의 강력한 일침일 수도 있다.


유가는 사람을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한다. 하나는 배움을 통해 성인되기를 추구하는 군자(君子)이고, 다른 하나는 욕망에 사로잡혀 눈앞의 이익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소인(小人)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우리, ‘현재의 소인’들은 자신만의 재주를 갈고 닦아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길 갈망한다. 당장 스펙을 하나라도 더 쌓아 자신을 하나의 그릇으로 완성시키는 데만 혈안이 돼있지, 삶에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에 대해선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매 순간 자기역량을 남김없이 발휘했기 때문에 어떤 그릇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공자는 언제든 다른 그릇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그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그릇이 될 수 있는 기본적인 태도를 연마하는 일이 아닐까?


흔히 ‘그릇이 크다, 작다’란 표현을 쓴다. 공자는 분명 그릇이 큰 존재였다. 아니, 그 크기조차 짐작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그릇이었다. 공자는 어떤 괴팍한 사람이 와도, 어떤 궂은 일이 기다리고 있어도, 지금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반면에 난 그동안 어떠했는가? 능력을 넓히는 일이 시급하다 생각하면서 정작 당장 눈앞에 있는 일에는 소홀했다. 사람을 가리고 일을 가리는 등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았다. 공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지금 써야 하는 글과 약속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특정한 모양의 작은 그릇을 만들어 그 속에 뭔가를 채우고자 아등바등했을 뿐이다.


'어떤 그릇이 될 것인가'를 질문하기 전에, 백수인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특정한 그릇으로서의 완성이 아니라 앞으로 인생을 살아갈 기본적인 태도를 배우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공자의 ‘군자불기’라는 구절을 절실하게 음미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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