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우리가 아는 '유학'儒學은 '주자학'朱子學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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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는, 공자와 <논어> 

우리가 아는 '유학'儒學은 '주자학'朱子學일지도 몰라

 

 

유학(儒學) vs 주자학=유학


오늘날 우리에게 유학은 어떤 이미지일까요. 자꾸 우리라고 해서 죄송한데요, 예를 들면 이전에 저는 유학에 대해 편견이 아주 많았습니다. 대충 제가 생각하고 있던 유학을 말씀드려 보면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글방 서생들이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서, 나이가 좀 들면 적당히 책이나 좀 읽고, 그러다 때가 되면 과거시험 보고 관직에 나아갑니다. 이제부터는 더 쉬워요. 대충 한 두 마디 정도만 하면 되거든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혹은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웃음)

 

그러면? 아니 그래서? 이 정도 하면 평생 잘 먹고 잘사는 기득권 세력,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학자 선비들이요. 저에게 유학자 사대부들은 손에 물 묻히지 않고,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팔자걸음으로 걷고, 몸 쓰는 일은 천한 일이라고 경시하는 그런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인물들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첨병이라고 유학을 생각했었습니다. 여하튼 요점은 유학자 사대부들이란 그저 그런 곱상한 글방 선비님네들이었다는 얘깁니다. 저만 그런가요? 안 그러신 거예요?

 

유학자 사대부 = 곱상한 글방 선비(?)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이거 또 제가 우리라고 했나요(웃음), 아니 제가 알고 있었던 그 유학은 나중에 알고 보니 2,500년 유학 역사에서 보자면,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존재했던 유학이었어요.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려볼게요. 우리에게 ‘유학’은 유학이라기보단 주자학입니다. 물론 주자학도 유학입니다. 하지만 주자학이 유학 자체인 것은 아니에요. 그렇게 보는 것은 우리에게 씌워진 어떤 안경 필터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 오래된 안경 필터가 마치 유학 자체인 것인 양 아무렇지도 않게 그 안경만으로 유학이라고 자처했어요. 주자학의 역사로 보자면 700여 년이었고, 우리에게 들어와 그 안경이 사용된 것만도 500여 년이었던 거죠.

 

하여 우리는 주자학의 장점이 있더라도 그것이 곧 유학의 장점인 줄 알고 있고, 주자학의 단점이 있더라도 그것이 곧 유학의 단점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이전에 생각해왔던 유학의 폐해들, 혹은 유학의 이미지들, 그 상당 부분이 저는 유학이라기보다 주자학에 대한 우리의 양가적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후에 제가 공부해본 바로는, 주자학과 유학은, 물론 큰 틀에서 주자학은 유학 일부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외연을 가진 유학 일부입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이런 지점에서도 지금 우리에게 <논어>를 다시 읽는 의미나 혹은 <논어> 읽기에 대한 시선에 대한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가 그렇게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주자학에 대해 그 외부를 살펴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 그것은 아마도 지금 현재 우리가 고전을 다시 읽어야 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다시 읽는 고전 중에 유학이나 공자나 <논어>나 이런 것들이 포함된다면, 저는 주자학의 여백인 이 지점이 어쩌면 더 지금 현재의 우리에게는 더 많은 부분을 응답해줄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런 관점에서 이 유학의 흐름, 또는 이 유학의 모습, 그런 유학적인 입장에서 공자와 <논어>를 다시 보자는 제안인 겁니다. 제가 지금 감히 주자학에 불경한 말을 하고 있는 건가요? ^^

 


사대부 = 곱상한 글방 선비(?)​


말이 자꾸 길어지고 있는데,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요점이자 이 강의의 전제로 삼고 싶은 것 하나는 일단 기본적으로 이 유학이라는 학문이 생각보다 아주 건강하고 씩씩한 학문이라는 사실입니다. 보수 꼰대 적이기보다는 뜻밖에 혁신적이고 유연합니다. 수동적이고 얌전한 줄 알았는데 웬걸 아주 적극적이고 용감합니다. 또 사회적 예법과 고리타분한 도덕 설교를 강요하는 답답한 학문인가 싶었더니 오히려 스스로 삶의 실천적이고 윤리적인 가치를 창출하라고 독려합니다. 유학(주자학 아닙니다^^)을 만나게 되면서 저는 이런 점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계급 문제도 그렇습니다. 공자는 출신이 기득권 귀족 세력이 아닙니다. 귀족은커녕 어찌 보면 미천한 출신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아버지 숙량흘은 하급 무사[士]였어요. 물론 민(民)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사(士) 계급은 당시 지배계급 중에서 가장 낮은 지위였습니다. 이들은 조상으로부터 권력이나 부를 상속받지 못한 계급이고, 결국 자신들의 능력을 통해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거죠. 어머니 안씨녀는 무가(巫家)의 딸입니다. 일종의 천민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미천한 공자가 춘추시대에, 그 계급시대에, 지역의 임금에 해당하는 제후들과 일 대 일로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인물이 되는 겁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당시의 일반적 위계로는 상식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신분 상승인 거죠. 지금 핵심은 공자가 노력해서 신분 상승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가 아니라 유학(儒學)이라는 학문이 이처럼 가난하고 미천한 출신의 인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입니다. 상상 한 번 해보시죠. 노나라의 제후, 노나라의 대부들이 이 미천한 공자에게 와서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장면을요. 또는 공자가 한 번 자기 나라를 떠나 이웃 나라를 다니고 있으면, 그 이웃한 나라에서 “공자가 우리나라에 왔다 하니 한 번 만나서 무슨 말 하는지 들어볼까?” 라는 겁니다. 제나라 같은 강대국에서 말이죠. 얼핏 생각하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건 굉장히 특별한 사건이었다는 거에요.

 

 

미천하고 야생적인 학문으로서의 유학


<공자 세가>에 나와 있는 공자는 키가 9척 6촌의 아주 건장한 사람이에요. <공자가어>에 묘사된 공자 아버지는 키가 10척입니다. 대략 230cm 정도 될 겁니다. 거기에 직업은 직업 용병 무사. 아마 숙량흘은 압도적인 육체를 가진 인물이었을 겁니다. 저는 숙량흘의 이 신체적 능력을 공자가 고스란히 물려받았을 거라고 봅니다.

 

안 믿기세요? 그럼 이런 예는 어떨까요. 공자의 주요한 제자 중에 자로라고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자로는 공자보다 고작 아홉 살 적어요. 공자랑은 거의 형제와 같은 또는 친구와 같은 뻘인데, 공자의 제자 중에서 초기 제자이고 굉장히 씩씩하고 용맹한 제자입니다. 사마천이 <중니제자열전>에서 이 자로에 관해 써놓은 게 있는데요. 거기를 보면, “자로는 공문에 들어오기 이전에 왈인이었다.”라고 되어 있어요. 왈인이란 말은 건달이란 말입니다. 지역에서 껌 좀 씹었다는 말이죠.(웃음) 골목 하나 딱 쥐고 있었어요. 그런데 사마천에 따르면 자로는 공문에 들어온 이후로 아주 온순해졌다는 거예요. 훌륭한 사(士)가 된 거죠. <논어>에 많은 제자가 나오지만, 자로는 제자들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아주 중요한 제자입니다. 그만큼 나이도 많고 공자랑 오래 생활을 하기도 했고 그만큼 에피소드도 많은 공자의 최측근입니다.

 

공자의 최측근, 자로


자, 이제 결론. 그런 자로에 관해 사마천의 말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자로가 공문에 들어온 이후로 세상에서 공자에 대한 비방이 사라졌다.” 이게 뭘 뜻하는 줄 아세요? 연구자들은 이걸 이렇게 해석합니다. 자로가 본래 깡패처럼 성질이 굉장히 거칠고 드세고 주먹을 잘 쓰는 인물이었는데, 의리가 또한 뛰어나서 우연히 선생님(공자)을 비방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로가 먼저 주먹으로 다 해결을 한 거다! 이렇게요. 그래서 자로가 공자의 문하에 들어온 이후로는 세상에서 공자에 대한 비방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자로가, 우리 힘세고 용감무쌍한 자로가, <논어> 안에서 어떤지 아십니까? 대부분 스승께 크게 혼나고 깨지고 박살 나는 장면들입니다. 이걸 후세의 유학자들은 이렇게 이해합니다. “성인(공자님)의 고매한 도덕적 · 인격적 인품이 지역 깡패였던 자로를 인격적으로 교화시켰다.” 물론 맞죠. 누가 그걸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왠지 자로에게는 다른 방법도 없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즉 공자한테 자로는 힘으로도 아마 안 되었을 거라는 겁니다. 키가 이미터가 넘는 거구 스승한테 성질 한 번 못 참고 덤볐다가, 제대로 한 번 깨지지 않았을까요?(웃음)

 

자, 지금까지 제가 드린 말의 요점은 분명합니다. 유학이라고 하는 학문은 기본적으로 아주 야생적인 학문이라는 거예요. 아주 밑바닥 삶을 경험한 천한 인물로부터 기원하는 학문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굉장히 귀족적인 학문이라고 생각을 하고, 굉장히 온순한 학문이라고 생각을 하고, 굉장히 수동적이고 보수적인 학문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거친 학문이에요. 역동적이고, 실제적이고, 용감하고, 남성적인 학문이라는 것. 그런데 그렇게 보고 나서 다시 보니, 제가 좋아하는 유학자들은 대부분 다 본래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보라고요? 맹자가 그렇고요. 명나라의 왕양명이 그렇고. 사마천이 그렇고... 에 또 결정적으로 조선 후기 최고의 지성 연암 박지원이 그렇습니다. 


문리스 (남산 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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