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와 『지식의 고고학』

나는 다른 행성에서 왔다!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와 『지식의 고고학』



미셸 푸코의 삶을 읽다보면, 다이내믹하게 변해가는 그의 사유들 때문에 크게 놀라게 된다. 특히 『감시와 처벌』(1975) 이후 7년간의 침묵 속에 이루어진 변화는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이루어진 그의 탐구를 이해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 기간 동안 푸코의 시선이 머문 대상이 다소는 엉뚱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물론 ‘현대’라는 시대를 밝혀내기 위해서 언제나 그가 ‘역사’를 천착해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 7년 동안 그가 헤맨 시간대가 그리스·로마 시대인 점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의 전 저작을 통틀어 그가 그리스·로마 시대를 중심에 두고 연구를 진행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혹자는 그도 역시 여러 대가들처럼 영원한 지혜의 젖줄인 그리스·로마로 돌아갔다느니, 그가 고대의 자기수양론에 빠져 퇴행적인 개인주의로 물러나버리고 말았다느니, 심지어 그의 후기 철학은 신자유주의적인 자기계발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내놓기까지 한다.[각주:1]

 

그러나 그의 침묵은 그런 것들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오히려 화산지대의 마그마처럼 온갖 생성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솟아나는 자리이기 때문에 어떤 말도 고정적으로 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푸코 강의 편집자인 프레데릭 그로가 정확하게 표현하였듯이, 1980년대 그의 말년은 개념들이 놀라운 속도로 바뀌는 곳이고, 문제틀도 새롭게 마구 생성되는 곳이었다. 아마도 푸코 자신도 자신의 사유를 따라잡지 못했을 것이다.[각주:2]


그는 이 장소를 그의 마지막 저서 『성의 역사 2 : 쾌락의 활용』 서문에 ‘변형’(Modifications)이라는 제목으로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푸코는 19세기 이전 사람들은 ‘성’(sexuality)을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바대로 경험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 그게  ‘성’(sexuality)인지도 의문스럽다. 한 여자(남자)가 한 남자(여자)를 죽도록 사랑하고, 어떤 육체적 열락을 상상하며 섹스에 열중한다거나, 동시에 섹스에 대한 상상이 불경스런 일이 되어 자기검열에 빠지는 그런 ‘성’은 19세기 이후에나 우리들에게 도래한 것이다. 

그게 가능하려면 자기 자신을 ‘성’의 주체(subjects of a “sexuality”)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스스로가 앞에서 말한 성적 쾌락을 욕망하고 경험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성적 쾌락이라고 할 수 없는 것(그냥 ‘어떤 쾌락’이다!)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마치 아기에게 아무리 유용한 노트북을 가져다 줘도 깨물기만 할 뿐 다른 용도로 사용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고대의 주체에게도 생물학적으로는 육체적 쾌락이란 게 있었을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주체가 경험한 그 쾌락은 지금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푸코는 그것을 추적해서 불연속적으로 변해온 ‘경험으로서의 성의 역사’를 탐구하고 싶어 했다.[각주:3]  

  

그러나 푸코는 작업을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자신이 굉장히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탐구는 기존 방식으로 시작했다. 시대마다 담론활동의 분석을 통해서 쾌락을 둘러싸고 형성된 지식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파악하고, 권력관계와 그 기술의 분석을 통해서 쾌락을 둘러싼 권력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들이 어떤 힘들에 의해 구성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이것만도 대단한 성과이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그런 지식이 구성되어온 과정은 대체로 알아듣겠는데, 어떻게 그런 지식들을 우리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또 그런 지식이 일러주는 대로 ‘나’를 그런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나는 나를 그런 사람으로 욕망하고 행동하게 되었을까? 그래서 궁극적으로 나를 그런 사람(그러니까 생물학적으로는 본래적으로 성적쾌락을 욕망하지만,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서 그 욕망을 억눌러야만 하는 사람)으로만 해석하는 자가 되었을까? 요컨대 담론과 권력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대로 나를 바꾸는가?


이것은 무척이나 중대한 질문이다. 아무리 담론이 강력하고, 권력관계가 요상하여도, 기존 담론과 권력관계로 둘러싸인 내가 그것들을 받아들일 줄 모른다면 도무지 소용없는 것이다. 

이 질문들을 풀어내려면 푸코 입장에서 지금까지 작업했던 방향을 모조리 다 갈아엎어야 하는 것이었다. 구조를 구성해 내는 담론이나 권력관계를 분석하기 보다, 개인들 각자가 스스로를 해석해온 방식들을 추적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들은 어떻게 자신의 욕망을 해석하고, 해석된 욕망에 의해서 어떻게 행동하여 왔는가? 즉 개인은 자기를 어떤 사람으로 해석하고 구성하여 왔는가? 그것은 주체의 해석학이자, 욕망의 해석학이었다. 그것은 푸코의 생애를 두고 보았을 때 매우 위험한 일이었는데, 푸코는 이 방향전환에 대한 사람들의 비판을 염두에 두고 다음과 같은 말로 응답한다. 


“위험? 그것은 내가 예고했던 출판계획을 지연시키고 뒤엎는 것이었다...(중략)...애를 쓰는 것, 시작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 시도하고 틀려보는 것, 되돌아가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것을 다시 해보는 것, 그러고도 여전히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데 머뭇거릴 이유를 찾는 것, 요컨대 불확실성 속에서 (신중하게) 작업하는 것이 그저 실패로만 보이는 사람들에게 내가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들은 우리와 같은 행성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각주:4](문구는 인용자가 수정)


결정적으로 자신의 기존 작업을 전부 뒤엎고, 기존에 얻은 모든 성과와 명성을 전부 내던져야 하는 상황. 자신이 너무 모르는 문헌들(그리스·로마 문헌들)에 손을 대야하는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상황. 보통의 학자라면 그런 위험천만한 일을 상상하지도, 실행하지도 않을 테지만, 푸코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야 만다. 

대단한 에너지이자 모험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그가 자신을 내던지며 돌파하려는 위험들을 이미 오래전에 장엄하게 묘사한 바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였다. 


“결국 위험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 기초를 주는 대신에, 소묘된 노선들의 충분한 특징들로 되돌아가는 대신에, 수많은 실책과 밤을 보낸 뒤 모든 것이 구체화되었다고 공언하는 이 은총받은 원환을 수행하는 대신에,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보장을 멀리 떠나 친숙한 광경들의 바깥(dehors, beyond familiar territory)으로, 우리가 아직 그 범주들을 구성하지 못한 땅으로, 예견하기 어려운 종말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가들의 보호를 받았던 모든 것이, 이 모든 것이, 분석에 의해, 하얀, 무사심한, 내면성도, 약속도 없는 공간을 되찾음으로써, 사라질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닐까?”[각주:5]



위 문장은 그가 주창하는 역사 탐구 방식이 지식의 고고학이고, 그 고고학은 “담론형성작용(formation discursive)”을 탐구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하는 장의 마지막 묘사이다. 이 부분은 우리가 자명하게 여기는 일상의 모든 일들이 담론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네 가지의 가설을 비판하면서 아주 박진감 넘치게 설명하는 곳이다. 


첫 번째 가설. 여러 언표들이 무언가 하나의 유일하고 동일한 대상을 중심으로 엮일 때, 하나의 지식 단위가 된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정신병리학이 당연히 ‘광기’라는 유일한 대상을 중심으로 엮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신병리학이 향하는 대상으로서 ‘광기’는 그 자체로 매우 이질적이고, 복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런 가설이 가짜임이 곧 드러난다. 즉 광기는 자연적인 개념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구성되고 심지어 가공되기까지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미친 놈”은 원래부터 그러하지 않다. 그는 어떤 배치 속에서라야 미친 것이다. 즉, 유일하고 동일한 하나의 대상이란 없는 셈이다. 

두 번째 가설. 어떤 스타일(양식)이 성립하면 하나의 단위로 구성된다는 주장이다. 요컨대 ‘의학’이란 특정한 병들에 대한 기술적 언표들(병을 기술하는 양식)이 모여서 된 것인 듯 보인다. 그러나 의학은 그것 말고도 우리들 속에 스며든 생명이나 죽음의 의미, 시대마다 다른 윤리적 선택들(공동체의 윤리상 고쳐야 할 것과 고치지 말아야 할 것들), 치료적 선택(알고도 치료방식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 등등이 알게 모르게 작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2000년 전에는 전혀 병이라고 할 수 없었던 것이, 근대에 와서 생명이나 죽음에 대한 지식과 태도가 바뀌면서 병이라고 규정하고 기술하고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어떤 형식들보다 언표들이 한 곳에 모여들게 하는 어떤 배치들, 어떤 놀이들이 있다는 것(예컨대 윤리적 배치들)이 더 중요한 것이다. 

세 번째 가설. 어떤 항구적이고 정합적인 개념들의 체계가 있어서 하나의 단위가 구성된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개념적 통일성. 아마 학자들이 가장 집착하기 쉬운 관념이 아닌가 싶다. 문법은 혹시 수의 법칙에 연동된 것은 아닌지, 그래서 수의 법칙에 의해 문법의 개념들을 정리해내고, 주어, 동사 등 문법적 개념을 창안하여 그에 맞게 현상들을 배열하여 집어넣는 것, 그래서 문법의 개념적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 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릇된 통일성’(false unity)이다.[각주:6]


개념적 건축물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개념들이 외관만 그럴듯하게 연결시켜놓은 게 대부분이다. 실제는 이질적인 것으로부터 가져다가 통일된 것처럼 해 놓았을 뿐이다. 


마지막 네번째 가설. ‘중농주의’처럼 어떤 테마가 동일성을 가지고 일정하게 존속하는 경우 하나의 단위가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중농주의조차도 그리로 들어가 뜯어보면 서로 다른 중농주의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대번에 알게 된다. 케네의 중농주의와 공리주의자들의 중농주의는 동일한 개념체계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서로 정반대의 의견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네 가지 가설들에 대한 푸코의 반박은 명확하다. 뭔가 자연적이고 불변의 대상이 있어서 지식의 단위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광기라는 대상은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 어떤 형식이 동일하다고 하나의 지식 단위가 생기는 것도 아니며(의학이라는 단위는 제도, 윤리 등 다양한 것과 관계하며 구성되었다!), 심지어 지식의 핵심이라 할 개념들의 체계가 구성된다고 지식의 단위가 생기는 것도 아닐 뿐 아니라(문법을 구성하는 개념들은 서로 모순된다!), 심지어 같은 개념과 말을 사용하고, 서로 같은 주장을 한다고 생각해도 하나의 지식 단위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중농주의도 다 같은 중농주의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지식들이 사실은 자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들을 자명하게 착각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네 가지 가설로 반박했던 것들, 그러니까, 가짜 대상, 가짜 스타일, 가짜 통일성, 가짜 테마(théme)이다. 이른바 엘리트들은 하나의 대상, 스타일, 통일성, 테마를 이용해서 지식들이 마치 원래부터 그러했던 것처럼, 마치 자연적인 법칙인양 우리 앞에 나타나도록 하여 우리를 지배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들을 이용해 우리를 노예화시킨다. 


지식을 구성했던 언표들은 그 자체로 분산(dispersion)되어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지식을 구성하는 것들은 원래 하나로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저 흩어져 있었던 언표들에 불과했던 것들이었다. 그러던 것들이 어떤 이유에서인지(이게 정말 우연이라는 게 또 핵심이다!), 갑작스럽게 하나인 듯이 모여서 우리들 앞에 선 것이 바로 그런 지식들이다. 지식으로 이루어지기 전, 전혀 관계없는 언표들의 분산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었느냐를 보려는 것, 즉 이미 만들어진 대상, 이미 만들어진 스타일, 이미 만들어진 통일성, 이미 만들어진 테마를 넘어서 언표들이 분산되어 있어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려는 것, 그것이 바로 담론 분석이다. 이 분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자명한 지식들이 어떤 담론형성작용(formation discursive)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알려준다. 나를 둘러싼 자명성이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지를.


다시 앞에 인용한 문장으로 돌아가 본다. 자명성으로부터 벗어나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 그것이 푸코에게 위험이었던 것이다. 나를 존재하게 만드는 안정성을 흔들어대는 위험 지대로 가는 것. 그래서  『지식의 고고학』의 시절, 푸코는 자꾸 다른 곳으로 간다는 표현을 썼다. 외부(dehors)라는 단어도 그래서 나온 용어다. 


『성의 역사』 2권 서문을 읽으면서 나는 『지식의 고고학』의 바로 그 문장, 외부라는 단어가 나온 그 문장이 자꾸 떠올랐다. 거기서 그는 다시 시도하고 틀려보지 않는 사람은 같은 행성에서 오지 않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각주:7]


다시 말하면 자신은 자명성에 둘러싸인 사람과 다른 행성에서 왔다는 말이다. 마치 지식의 고고학을 경유하여 다른 행성에 가보았던 사람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아니, 예전에 건너간 다른 행성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행성인. 자신을 지칭하는 말들 중 아마 푸코가 들었다면 가장 좋아했을 말이 아닐까. 

글_약선생(a.k.a. 강민혁)

  1. 사사키 아타루에 의해서 그의 저서 『야전과 영원』에서 죽기 직전의 인터뷰(1984년 5월 29일 인터뷰로서 의사에게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직후로서 실제 그는 이로부터 한 달도 되지 않아 타계한다)를 인용하면서 푸코가 말년에 자신의 탐구를 부정했다는 식으로 쓴다. 자기배려가 항상 ‘교단’의 형태와 연계되며, 그러다보면 그것이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교단’에 종속되어 수행하는 것이 되어,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한 컬트적인 자기계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사사키 아타루 지음, 『야전과 영원:포코·라캉·르장드르』, 안천 옮김, 자음과모음, 2015, 727~741쪽.]. 그러나 나는 그것이 형식적 자기배려 혹은 자기배려를 형식적으로 표방하는 공동체가 미끄러질 수 있는 수많은 오류들 중 하나를 경고한 것일 뿐이지, 푸코가 자신의 연구 전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물론 세네카의 스토아주의는 기독교의 교회체제에 의해서 포섭되면서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스토아주의에서 말하는 자기배려의 형식을 뒤집어 기독교 교리에 전유된 것이지, 자기배려 그 자체와는 너무나 다르다(오히려 정반대이다!). 또한 소크라테스주의와 에피쿠로스주의의 자기배려는 현대에 와서 마르크스주의와 소수자운동으로 부활되어 대안담론의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저항 공동체가 ‘세속적 교단’으로 전락하는 것은 모든 공동체가 직면하는 위기이지, 자기배려-공동체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자기배려적인 방식으로 운영될 때 공동체는 매번 새로운 갱신 속에서 세속적 종교단체로 전락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위험이 공동체 내의 경제적 교환관계와 깊이 관련된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관계가 안정화되었을 때 그것은 종교에 가깝게 굳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부분은 더 많은 사유가 필요한 주제다. [본문으로]
  2. 미셸 푸코, 『주체의 해석학』, 심세광 옮김, 동문선, 2007, 545쪽. [본문으로]
  3. 미셸 푸코 지음, 『성의 역사 2 : 쾌락의 활용』, 문경자·신은영 옮김, 나남, 2004, 18쪽. ; Michel Foucault, 『The Use of Pleasure Volume 2 of The History of Sexuality』, Translated from the French by Robert Hurley, Vintage Books, 1990, p. 4. [본문으로]
  4. 미셸 푸코 지음, 『성의 역사 2 : 쾌락의 활용』, 문경자·신은영 옮김, 나남, 2004, 21~22쪽. ; Michel Foucault, 『The Use of Pleasure Volume 2 of The History of Sexuality』, Translated from the French by Robert Hurley, Vintage Books, 1990, p. 7. [본문으로]
  5. 미셸 푸코, 『지식의 고고학』, 이정우 옮김, 민음사, 2000, 69쪽. ;‘Michel Foucault, 『Archaeology of Knowledge』, Translated by A. M. Sheridan Smith, Routledge, 1989, p. 42~43 [본문으로]
  6. 미셸 푸코, 『지식의 고고학』, 이정우 옮김, 민음사, 2000, 63쪽. ;‘Michel Foucault, 『Archaeology of Knowledge』, Translated by A. M. Sheridan Smith, Routledge, 1989, p. 38 [본문으로]
  7. 영문판에는 “we are not from the same planet”이라고 번역되어 있으나, 한국어는 “세계”로 번역되어 있다. 좀 더 낯선 느낌이 들도록 planet이라는 단어의 원뜻을 살려서 “세상, 세계”보다는 “행성”으로 번역해 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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