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용산 성매매집결지 여성들의 공간‧기억 말하기의 또다른 방식


판도라 사진 프로젝트
― 충분한 공감으로 함께했던 놀라운 기록




동네 제일가는 오지랖쟁이 ‘큰언니’ 이옥정과 성매매 지역 여성들의 삶에 굵은 눈물을 뚝뚝 떨구던 미국 아줌마 문애현 수녀의 만남. 막달레나의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곳은 손가락질 받던 여성들의 고통이 어루만져지고, 스스로 자신들의 역사를 새로 써 내려간 위로와 치유, 그리고 성장의 공간이었다. 이곳을 ‘막달레나의 집’이라는 정식 명칭으로 부르는 여성들은 거의 없었다. ‘막달레 집’, ‘막달래 집’ 혹은 ‘수녀님네’, ‘옥정 언니네 집’ 등 자기들이 편한 대로 이 집을 지칭했다. 그들에게 막달레나의집은 ‘불쌍한 사람 도와주는 집’, ‘뭐든 잘 나눠 주는 집’, ‘아무 때고 가서 울어도 되는 집’, ‘힘들면 가서 살아도 되는 집’이었다. 사실 우리 역시 막달레나의집을 무엇으로 규정해야 할지 잘 몰랐다. 때로는 사회복지시설로, 여성단체로, 종교단체로 처지와 상황에 따라 그 용도변경이 자유자재였다. 우리가 함께하고자 하는 여성들을 위해 우리는 그 무엇도 될 수 있었고 또한 그 무엇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여성들에게 막달레나의집은 언제고 그 자리에서 따듯하게 팔 벌려 맞아 주는 ‘우리집’이라는 사실이다.


_막달레나공동체의 홈페이지(http://magdalena.or.kr/). 다양한 활동을 볼 수도 있고 후원도 가능하다.


30여 년 동안 (지금은 없어진) 용산 성매매집결지 근처에서 활동해온 ‘막달레나공동체’를 만난 지도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간다(위 인용문은 ‘막달레나의집’ 역사와 이야기가 담긴 책 『막달레나, 용감한 여성들의 꿈 집결지』에 나오는 소개글 중 일부). 나는 ‘용감한여성연구소’ 선생님들과 막달레나의집 이옥정 대표님(다른 이들은 모두 ‘큰언니’라 부르는)을 만나자마자 마음이 끌렸는데, 그건 사실 연인간에 왜 좋아하게 됐냐는 말에 딱히 답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로, 그저 ‘끌렸다’고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또 연인간에 그래도 뭐가 좋았냐고 묻는 것처럼 계속 마음이 끌린 이유를 묻는다면, ‘사람 생각’을 우선으로 하는 여인들이며, 고되고 어려운 일도 유머를 잃치 않고 그래서 그녀들과 함께하는 곳엔 웃음이 그치지 않으며,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고개 끄덕이고 공감하며 들어주는 모습들이었다고… 이외에도 더 생각나는 여러 가지를 줄줄이 읊어댈 수 있겠으나, 이쯤에서 그만두고 “다 좋았다”고 간단히 말하자.^^


‘성매매’나 ‘성매매집결지’ 같은 말은 깊은 편견이 각인된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곳에 ‘사는’ 사람을 상상하기 힘들고, 그저 그곳에서 특정한 일과 불빛만을 떠올릴 뿐이었다. ‘막달레나의집’과 ‘용감한여성연구소’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도 비로소 그곳의 삶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도 반짝반짝 닦은 장독들이 있고, 친구들과 나누는 야식이 있으며, 볕 좋은 날 널어놓은 빨래가 있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이번에 그렇게 용산 집결지에서 수십 년간 살아온 오륙십대의 중장년 여성들과 막달레나의집 그리고 ‘용감한여성연구소’의 선생님들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자신의 삶의 공간을 사진 찍고, 그 사진들을 가지고 만나 함께 이야기했던 판도라 사진 모임의 결과물이 『판도라 사진 프로젝트』라는 책으로 나왔다.




생전 처음 디카(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든 언니들이 찍어온 용산 집결지의 일상, 그리고 집결지가 사라져가는 모습, 집결지 폐쇄 후 생활터전을 옮겨간 언니들의 새로운 공간의 모습들 등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언니들이 찍은 사진과 함께 실린 용감한여성연구소 선생님들의 글을 보면 그 사진의 일상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나에게는 무엇보다 무려 4년간 각자 찍은 사진을 가지고 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이 그 모임에 모인 언니들과 연구소 선생님들에게 모두 공감의 시간이었다는 점이 마음에 와닿았다. 수십년의 생활터전이 사라지고(심지어 그 공간은 마땅히 사라져야 할 곳으로 모두가 생각하는 곳이고) 전혀 낯선 새로운 곳으로 터전을 옮겨갈 때의 안타까움, 분노, 원망, 쓸쓸함, 두려움 등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이 있고, 친구들이 있었기에, 아마도 그 감정들을 그저 쌓아두거나 자신에게 해로운 방향으로 흘러가게 두어 더 큰 상처가 되는 일이 없었던 게 아닐까. 이 책 말미에 실린 원미혜 선생님의 에필로그 끝부분에 나오듯 “낯선 사람들 속에서 전적인 내편과 함께한다는 안정감”은, ‘다시 한번’ 세상으로 나갈 볼 용기를 내게 한다. 이들처럼 내게도 당신에게도, 그런 전적인 내편, 친구들이 있어, ‘다시 한번’ 일어서볼 수 있기를, 내가, 당신이 또 그런 ‘편’ 그런 ‘친구’가 될 수 있기를… 판도라의 우정을 보며 마음으로 빌어본다.


사진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냐는 질문에, 사람들에게 “그저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이해받고 싶다고 언니들은 답했다. 언니들은 판도라 모임과 자신들이 찍은 사진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다는 표현을 했다. 나 역시 그렇다. 판도라 언니들이나 용감한여성연구소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걸을 때, 나는 어떤 자부심으로 마음이 꽉 차오르는 듯한 행복한 느낌을 받곤 한다. 그것은 충분한 공감이 주는 놀라운 능력이자 힘이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전적인 내편과 함께한다는 안정감, ‘쎄고’ 멋진 지인들에 대한 우쭐함, 이들과 전적으로 공명한다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 홀로 걸을 때 나는 그 느낌을 떠올리려 애쓰곤 한다. “쫄지 마! 넌 ‘쎈년’이잖아!” 새로운 일자리를 갖게 되어 걱정이 많은 나에게 언니들이 해주었던 말이다. 평생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온 생활력 강한 언니들에게서 뱃심 기르는 법을 더 배워야겠다. 내가 나로 인정받는 곳, 내가 ‘쎌’ 수 있도록 뒷배가 되어주는 곳. 내가, 또 네가, 함께, 가장 아름답게 빛났던 역사를 기억하는 곳. 고달픔을 위로받으며 함께 흘린 눈물이 있는 곳…. 갈보, 창녀, 섹스워커, 피해자, 생존자, 연구자 등의 분류가 아닌 고유한 이름을 가진 누구누구로 불리고, 같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많아도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곳. 때때로 언니들의 집에 놀러가거나, 전화하며 안부를 묻거나, 아니면 더 오랜만에 만나게 될 때에도 그 깊은 기억들이 묻어난다.― 지금 판도라의 사진들이 언니들에게 주는 자부심은 그 험한 곳을 살아냈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렇게 우리가 함께 어떤 역사를 공유하고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 원미혜, 「에필로그: 판도라의 힘, 삶을 이야기로 전환하는 원동력」,
판도라 사진 프로젝트』, 봄날의박씨, 2016, 286~287쪽



온라인 서점에서 『판도라 사진 프로젝트』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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