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군자는 신독해야 한다" 『중용』에서 말하는 '신독'이란?

군자의 전전긍긍, 신독(愼獨)



도라는 것은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다. 
떨어질 수 있다면 성을 따르는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다른 사람이 보지 않아도 신중히 행동한다. 
다른 사람이 듣지 않아도 도에서 벗어날까 두려워한다.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是故, 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도야자, 불가수유리야. 가리, 비도야. 
시고, 군자계신호기소부도, 공구호기소불문.) 

은밀한 곳보다 더 잘 보이는 곳은 없다.
작은 일보다 더 분명하게 나타나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신독(愼獨)한다.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막현호은, 막현호미, 고군자신기독야.)

- 『중용』의 두번째, 세번째 문장


군자는 늘 전전긍긍하는 자다. 다른 사람이 보지 않아도 제멋대로 하지 않고, 혼자 생각하는 것에도 혹시 도에서 벗어나는 바가 있을까 조심한다. 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어떤 경우에도 그 도덕률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칸트의 정언명령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에 무조건 지켜야 하는 분명한 규칙이 있고, 그것에 따르기만 하면 될 일이라면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군자가 늘 전전긍긍해야 하는 까닭은 성(性)을 따르는 것이 도(道)인데, 천지만물에 성(性)이 부여되지 않은 것은 없지만, 도(道)는 무엇이라고 딱 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번 어떻게 하는 것이 도(道)인지 살피고 또 살펴야 하니 전전긍긍 할 수밖에 도리가 없는 일이다. 도(道)가 없는 경우는 없으니 비록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는 경우에도 도(道)를 지키는데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도(道)를 따라 사는 군자는 하찮은 일이라고 함부로 하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사욕에 어두워 스스로를 속이지 않았는지를 늘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한다. 이를 “신독(愼獨)”이라고 한다. 그래서 신독(愼獨)하는 군자는 늘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군자란 누구인가? 공자이전에는 지배층을 통칭하는 말이었는데, 귀족과 더불어 글을 읽고 쓰는 독서인인 사(士)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일찍부터 제국이었던 중국은 통치를 위한 텍스트가 발달했고, 더불어 독서인 그룹, 사(士)계층도 함께 형성되었다. 높은 관직은 당연히 정복전쟁의 공신들이나 세습귀족들의 몫이었고 사(士)들은 제후나 귀족의 가신이나, 국가의 말직을 맡았다. 하지만 때때로 군주는 평민이지만 출중한 사(士)를 정치 파트너로 발탁하기도 했다. 공신들이나 왕족들은 전시에는 왕과 동지적 관계이지만, 안정기에는 오히려 왕의 자리를 위협하는 세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은 평민계층이나 한미한 가문 출신의 지식인들 중에 출중한 인재를 발탁해서 자신의 정치를 펴고자 했고, 유가의 3경(經)중에 하나인 주역(周易)에는 왕과 평민인재와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풀이가 많다. 

고대 중국에서 사(士)는 봉해 받은 땅이 없이 지식노동으로 먹고사는 자들이었다. 마르크스식으로 말하면, 제국의 건설과 더불어 일찍부터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분업이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군자와 소인은 이런 노동의 분업화에 따른 위계를 반영한 말이기도 하다. 사(士)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문화를 이끈 역사는 아주 오래 되었다. 기원전 1000년경에 3경(經)으로 불리는 시(詩), 서(書), 역(易)이 모두 공자를 중심으로 하는 사(士) 그룹에 의해 정리 되었으니, 이때에 이미 사(士)들은 정치와 문화에 상당한 정도로 참여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공자가 광(匡) 땅에서 포위되어 위험에 빠졌을 때 이렇게 말했다.  

“주나라 문왕은 이미 돌아가셨지만, 그 문화(斯文, 사문)는 나에게 있지 않은가? 하늘이 장차 그 문화(斯文, 사문)를 없애려 한다면 후세의 사람들은 이 문화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하늘이 이 문화를 없애려 하지 않는다면, 광 땅의 사람들이 나를 어찌 하겠는가” 
- 『논어』, 「자한편」 (피터 K. 볼, 『중국 지식인들과 정체성』에서 재인용)

『중국지식인들과 정체성』에서 피터 볼은 중국 지식인들의 정체성의 원류를 이 문장에서 찾는다. 문화의 계승자이자 담지자가 사(士)다. 사문난적이라고 할 때의 사문(斯文)이 여기서 나온 말이다. 이때의 문(文)은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중용의 첫 문장, “도를 세상에 펴는 것을 교(敎)라고 한다.(修道之謂敎)”의 교(敎)와 관련되어 있다. 주자는 교(敎)를 문물, 제도라는 의미로, 예(禮), 악(樂), 형(刑), 정(政)과 같은 것이라고 주석을 했다. 왕족이나 귀족은 세습되는 것이지만, 문(文)은 사회적 지위로 계승되는 것이 아님을 공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문화(斯文,사문)’를 계승하는 이유는, 왕업을 닦은 시조이자 성인으로 추앙받는 주나라 문왕이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가르침 자체가 하늘이 부여한 성(性)에 따라서 세상에 펼쳐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에 의해 선택된 자들만 ‘그 문화(斯文,사문)’를 계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그 도를 알면, ‘그 문화(斯文,사문)’의 담지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한미한 가문출신인 공자는 당당하게 ‘그 문화(斯文,사문)’는 나에게 있지 않은가?’라고 말할 수 있었다.

도(道)라는 것은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다. 떨어질 수 있다면 성(性)을 따르는 도(道)가 아니다.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性)은 만물에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인간의 성이,  박테리아에게는 박테리아의 성이, 바위에게는 바위의 성이 있다. 그러니까 성(性)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만물의 성은 천차만별이고, 그로 인해 그들 사이의 관계는 또한 천태만상이다. 무릇 물(物)이라고 하는 것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물(物)과의 관계 속에 있는 것이다. 성(性)을 따르는 것이 도(道)라 했을 때, 도(道)는 천차만별한 성(性)들의 관계성을 따르는 것이다. 세상에 도(道)가 없는 관계란 없다. 

박테리아에게도 그만의 성(性)이 있다. 세상에 도(道)가 없는 관계란 없다.


공자가 말한 ‘그 문화(斯文, 사문)’는, 성인이 도를 문물제도의 형태로 세상에 펼쳐진 놓으신 것이고, 성인이 돌아가시고 없더라도 그 문화는 면면히 전해서 내려오는 것이다. 하지만 도는 옛날의 서책이나 성인이 만든 제도에 박제된 채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에 책이나 제도에 고정된 모습으로 있다면, 도에 맞을까 아닐까 그리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군자의 “신독(愼獨)”을, 혼자 있을 때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언행을 제멋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그 의미를 너무 축소시키는 것이 될 듯하다. “신독(愼獨)”은 늘 새로운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자신이 기대고 있는 제도나 규범이 도에 맞는지 늘 의심해야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도나 규범은 그 자체로 권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도(道)가 그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독(愼獨)”하는 군자는 칸트 식의 정언명령이나 “대의(大義)”에 손쉽게 기댈 수 없다. 각기 부여된 천차만별한 성들은 늘 조화로울 수만은 없고, 서로 충돌하고 모순적일 수밖에 없으니, 그들 사이의 관계는 늘 변화에 열려있는 것이다. 그래서 군자는 도(道)에 따라 살려면 “신독(愼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물 해방을 주창하는 피터싱어라는 학자가 있다. 그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동물의 권리문제에 접근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뿐만 아니라 어떤 동물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그는 누구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동물의 이익을 침해할 권리는 없지만, 그것이 불가피할 때는 이익을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리주의의 입장이라는 것이 정량적인 것으로서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인데, 그가 기준으로 삼은 것은 얼마나 고통을 느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신경세포의 분포 따위로 고통의 양을 가늠할 수 있을까? 아니 도대체 고통의 양을 잴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그의 해결책을 따져보자. 그는 우선 누구에게도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정언명령을 설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켜질 수 없는 명령이다. 그래서 ‘고통을 덜 느끼는 존재가 고통을 많이 느끼는 존재를 위해 희생하자.’라는 대의를 다시 설정한다. 이렇게 정언명령과 대의가 설정되면 판단기준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더 이상 판단을 위해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 희생자로 지목된 존재는 그 굴레를 절대로 벗어날 방법이 없다. 이것이 최대의 이익을 보장하는 방법일지라도, 그 희생자에게는 얼마나 극단적인 폭력인가! 대의(大義)는 늘 폭력을 수반한다. 신독하는 군자는 대의(大義)가 고정해 버리는 관계에 대해 늘 전전긍긍, 재고의 여지가 없는지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신독하는 군자는 살피고 또 경계해야 한다!


각자에게 부여된 성을 발현하며 사는 것이 도(道)라고 해서, 어떤 길이든 좋다고 하는 것은 중용이 말하는 도(道)가 아니다. 어떤 길이든 좋다면, 군자가 전전긍긍할 이유가 뭐가 있으랴. 요즘 지식인들 중에는 정언명령이 폭력적이라고 해서, 어떤 윤리적인 판단도 거부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어떤 윤리적인 판단도 하지 않는다면, 약육강식을 쉽게 정당화해버리는 것이기에 정언명령만큼이나 폭력적이다. 군자의 “신독(愼獨)”은 정언명령 따위에 기대지 않고, 도(道)를 알기 위한 고투다. 공자는, 지배계층을 지칭하던 군자라는 말을 도(道)를 추구하는 자라는 의미로 재정의 했다. 공자가 지배계층에게 신독(愼獨)이라는 요건을 하나 더 부과한 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정언명령에 기대지 않고, 약육강식을 용인하지도 않으면서 천자만별인 성(性)들 속에서 도(道)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그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왜냐하면 정치란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언명령이나 약육강식만 있다면 고정된 관계만 있을 뿐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정치의 영역은 없게 된다. 무릇 정치는 폭력을 죄악시 하지도 않으면서, 가장 덜 폭력적인 관계를 끊임없이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유가(儒家)의 사(士)들에게 정치는 도(道)를 이루는 길이었고, “신독(愼獨)”을 통해서 그 해법을 찾아나갔다. 그래서 군자는 늘 전전긍긍, 신독(愼獨)하는 자다.

글_최유미


낭송 대학 중용 - 10점
자사.증자 지음, 김벼리 풀어 읽은이, 우응순 감수/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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