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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씨앗문장

『낭송 18세기 소품문』 속에 숨겨진 웃긴 사람^^

by 북드라망 2015. 10. 28.


(나만의) 웃긴 사람을 찾아서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사람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웃긴가, 안 웃긴가가 그것이다. 웃기지 않은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괴롭다. 사주에 관성이 없어 원국상 극을 당하질 않아서인지, 괴로운 것을 정말 참지 못하는 것이 또, 나라는 인간(직속상사가 너무 웃기지 않은 사람이어서 회사를 그만둔 적도 있다;; 북드라망은 오래 다니고 있습니다!^^). 재밌지 않은 사람과의 만남은 피할 수 있는 데까지 피한다.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피할 수 있다면 미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을 때, 웃기지 않은 사람이 자신을 보고 웃어 주기를 바라며, 심지어 자신을 웃긴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기를 바랄 때, 더구나 나보다 자기가 더 웃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일 때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아무리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의 문이 저절로 닫히고 만다. 


반대로 웃긴 사람에게는 금세 홀라당 넘어가 버리고 마는 쉬운 여자가 또 나란 여자.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일단 ‘웃기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나의 마음은 편의점이 된다(24시간 연중무휴로 열려 있다!). 전혀 웃기지 않은 (혹은 못하는)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의외로 웃기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됐을 때는 (어쩐지 낯간지러운 표현이지만) 정말 기쁘다. 그 사람이 바로 내 앞에서 밥을 먹고 있는 사람이든, 10년 전 사람이든, 100년 전 사람이든 말이다. 내 주변 사람들을 얘기해 봤자 어차피 소용없을 테니 굳이 유명인(?)을 예로 들자면, 다산 정약용이 그랬다. 일찌감치 ‘왕의 남자’로 찍혀(?) 잘나갔을 때나, 인생이 요동쳐 유배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나 (내게는 늘) 진지와 엄숙, 비장의 아이콘이었던 그에게 의외의 면모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유배 시절 역시 흑산도에서 유배 중이었던 형님 정약전에게 개고기 요리법을 소개한 편지였다. 풀만 먹고 어찌 살겠느냐, 섬에 들개들이 널렸다는데 자신이라면 닷새마다 한 마리씩 삶아먹을 것이다, 개를 덫으로 잡는 방법은 이렇다, 들깨도 한 말 보내니 요런저런 방법으로 맛있게 해서 드시라는 자세한 레시피 끝에 무심히 덧붙인 말이 “이것이 바로 초정 박제가의 개고기 요리법이라는 겁니다”였다. 박제가의 개고기 요리법을 글로 받았을지, 귀로 직접 들었을지 모르겠으나 ‘아, 이렇게 하면 맛있는 개고기가!’ 하며 눈을 반짝였을 그가 머릿속에 그려지자, 나는 그를 곧바로 나의 ‘웃긴 사람’ 목록에 추가하였다.


어서와, 박제가의 레시피는 처음이지?



그리고 얼마 전, 나의 ‘웃긴 사람’의 목록에 한 번에 세 사람이 추가되는 일이 생겼다.


함양에 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몸가짐을 몹시 조심하여, 날마다 양쪽 볼기를 깨끗이 씻었다. 사람들이 그것을 괴이하게 여겨 물어보니 그가 말했다. “세상일은 알 수가 없소. 내가 지금 비록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관아에 죄를 지어 바지를 벗고 태형을 받을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소. 그때 볼기가 시커멓다면, 부끄러움과 후회스러움을 어찌 감당한단 말이오.”
과연 그가 죄 없이 관청 뜰에 송치되어 곤장을 맞게 되었다. 볼기가 이상하리만큼 깨끗하여 관장이 감탄하며 말했다.

“볼기가 저리도 깨끗한 걸 보니 저 사람이야말로 참선비로다.”
그리하여 한 대도 때리지 않고 죄를 사면해 주었다.
또 한 선비가 죄를 짓고 관아에 잡혀왔다. 볼기가 시커먼 것이 그을음과 숯 같아서 사람의 살갗이 아닌 듯했다. 관장이 큰소리로 죄를 물으려다 웃음을 터뜨리며 집행을 중지했다. 그 역시 한 대도 때리지 않고 오히려 죄를 면해 주었다.

「깨끗한 볼기와 때 낀 볼기」, 큰글자본 낭송Q시리즈 『낭송 18세기 소품문』, 181~182쪽)



이것이 바로 태형(笞刑). 지금 매를 맞고 있는 사람은 어쩐지 자기 볼기의 청결 상태에 자신이 있는 듯한 표정이다;;;



“함양에 한 선비가 있었다”로 시작되고 있는 이야기로 보아 이덕무가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를 글로 남긴 것이다. 아, ‘볼기’라니…… 『낭송 18세기 소품문』 속 주옥같은 명문들을 모두 제치고 내 볼을 발그레하게 한 저 한 마디!(^^;) 글 말미에 “그래도 볼기를 깨끗이 씻은 선비가 몸가짐을 매우 삼갔으니, 시속(時俗)을 깨우칠 만하다”고 짐짓 점잔을 빼고 있기는 하지만 좌우간 ‘볼기’ 이야기를 굳이 글로 남겨놓은 이덕무라는 사람, 당신은 웃긴 사람. 그리고 어쩌면 내 친구의 조상님일지도 모를, 혹시 당할지도 모를 태형을 대비해 늘 볼기를 깨끗이 했던 함양의 선비, 당신도 웃긴 사람(이분이 내 친구의 조상님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내 친구 중 혹시 무슨 일이 생겨 언제 병원 수술대에 눕히게 될지도 모른다며 몸의 때 관리(?)를 철저히 하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언제 남자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속옷은 늘 세트로 입고 있어야 한다던 친구의 조상님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깨끗한 볼기를 보고는 “참 선비”라며 돌려보내고 시커먼 볼기의 선비를 보고는 웃음을 터뜨리며 돌려보낸 관장(수령), 당신도 웃긴 사람.


함양은 안의현(현재는 안의면)이 속해 있던 땅이다. 연암 박지원은 1791년 안의현감에 임명되어 이듬해부터 4년여간 재직하는데, 혹시 볼기가 깨끗한 자나, 때가 낀 자나 모두 돌려보냈던 관리가 연암이고, 이덕무가 연암에게 전해들은 에피소드를 이 글로 남긴 것은 아닐까 싶어 (실은 실낱같은 기대를 가지고;;) 찾아보았더니 그건 아니란다. 이덕무는 1781년 함양 소재의 사근역 찰방이라는 외직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이때 함양을 중심으로 한 영남 지방의 풍속과 인물 등을 기록하여 글로 남긴 것이 『한죽당섭필』이라는 책이며, ‘볼기’ 이야기는 거기에 실려 있다. 좌우간 세상은 넓고 웃긴 사람은 많다. 고전 속에는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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