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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18c 조선지식인 생태학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생태학을 마무리하며 : 두 가지 단상

by 북드라망 2015. 3. 17.



소리 한 번 질러보는 것도 운명입니다!



큰 바닷가 큰 강 언덕에 웬만한 어류들은 견줄 바 못 되는 어마어마한 괴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 괴물은 물을 만났다 하면 변화무쌍하게 비바람을 일으키고 하늘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일도 어렵지 않으나, 물을 만나지 못하면 그저 몇 자 몇 마디 되는 곳 안에서만 움직일 뿐이지요. … 곤궁하게도 메마른 곳에 처박힌 채 스스로 물을 구해 올 재간이 없어, 저 수달들의 비웃음을 받아온 지 여덟아홉 해가 되어갑니다. 힘 있는 자라면 그 곤궁함을 불쌍히 여겨 다른 데로 옮겨주는 것도 손 한 번 들고 다리 한 번 움직이는 수고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불쌍히 여겨주는 것도 운명이요, 불쌍히 여겨주지 않는 것도 운명입니다. 이 모든 게 운명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리 한번 질러보는 것, 이 또한 운명입니다.

-「과목에 응하면서 누군가에게 주는 편지(應科目時與人書)」, 『한유문집』1, 142-143쪽


중국 당나라 때의 위대한 문장가 한유가 과거에 응시하면서 선발에 당락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이다. 한유는 편지에서 자신을 선발해 달라고 외치고 있다. 수험생이 시험관에게 뽑아달라는 편지를 보내는 건, 요즘에는 정정당당하지 못한 행위가 아닌가? 어째 이런 불법적인(?) 부탁을 이리도 당당하게 할 수 있었을까? 한유는 왜 이런 편지를 보냈을까?


한유는 알다시피 그 유명한 고문의 주창자이다. 한유의 고문은 '변려문'에 대항하기 위해 새롭게 시도된 글쓰기이다. 변려문은 '전고'와 화려한 수사를 위주로 하며, 내용보다는 형식에 치우친 글로, 당시 문벌 귀족들이 독점하던 글쓰기이다. 많은 전적과 지식이 축적되지 않으면 이해하기도 쓰기도 어려운 글쓰기, 문벌귀족들끼리만 통하는 글쓰기. 그러나 관직에 오르려면 변려문을 써야만 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문벌 귀족들이 아니면 조정에 진출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유는 문벌귀족 출신이 아닌 한미한 선비 가문 태생이다. 당나라 때는 과거에 응시할 자격도 추천에 의해 주어졌고, 과거에 급제하려고 해도 추천과 배경이 필요했다. 문벌 귀족이 아니면 과거에 급제하기도 어려웠고, 조정에 나아가 벼슬하기도 어려운 세상이었다. 이런 때 한유는 한미한 집안의 서생에 불과했다. 그러니 먹고 살기 위해서도 선발해주기를 구걸하고 관직을 구걸할 수밖에 없었다. 살기 위한 몸부림, 그건 산 자들의 존엄한 소명이었다.


"이 모든 게 운명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리 한번 질러보는 것, 이 또한 운명입니다."



그럼에도 한유는 쉽게 문벌귀족이 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았다. 황실에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도가와 불가에서 정신적 안녕과 삶의 원리를 찾았던 시대, 한유는 도가와 불가를 배격하며 외로이 유학의 가르침과 성인의 도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자를 자처하며 사대부의 소임은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안정시키는 것이라 여겼다. 이 때문에도 관직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다. 출세간이 아니라 세간에서 세상을 경영하는 것이 유가에서 말하는 사대부의 역할이었다. 한유는 문벌귀족과는 구분되는 유가의 사대부로서 존립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한유는 문벌귀족이 쓰는 변려문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글쓰기인 고문으로 세상과 소통했다. 관직을 얻으려면 변려문을 갈고 닦아야 하는데, 한유는 오히려 문벌귀족을 따르지 않는 새로운 글쓰기를 갈고 닦았다. 한유는 먹고사는 일이 급했지만 구차하지는 않았다. 문벌귀족의 세상과 대결함으로써 관직에 나아가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형식보다는 의미를 담는 글쓰기, 성인의 도와 뜻을 추구하되 성인의 언어를 모방하지도 표절하지도 않는 글쓰기로 관직에 도전했다. 위축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고문을 쓰는 이 특별한 선비를 뽑아달라고 외쳤다. 역설적이지만 한유는 문벌귀족들의 글쓰기와 관직 독점에 도전하기 위해 편지를 써서 선발을 부탁했던 것이다. 적어도 사대부라면 성인의 도에 뜻을 두고, 그 뜻을 펼치는 문장을 써서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 이것이 한유의 굽힐 수 없는 신념이었다. 이 신념을 위해 한유는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고문의 문장을 알아줄 때까지 실력자들에게 글을 보내고 호소했다.  


한유는 세번 낙방 끝에 진사과에 합격하고, 이부시에서도 세번 낙방하고, 재상에게 세번이나 글을 올리고 나서야 가까스로 천거된다.



이 편지는 다른 사대부로 서고자 했던 한유의 도전이자 외침이다. 이 편지에서 한유는 자신을 다른 사람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괴물로 표현한다. 그 괴물은 재주는 있으나 스스로 재주를 펼 기회를 만들지는 못한다. 한유가 생각하기에 세력 있고 실력 있는 누군가가 이 괴물을 불쌍히 여겨 발탁하는 것도 운명이고, 이 괴물을 발탁하지 않는 것도 운명이다. 알아주는 것은 실력자의 마음이니 내가 어찌 할 수 없다. 정말 운에 맡겨야 한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한유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과야 어떻든 나의 뜻을 포기하지는 않아야 한다. 그리하여 한유는 누군가가 불쌍히 여기든 여기지 않든 최선을 다해 자신만의 사유와 문장을 갈고 닦아 세상을 향해 알아달라고 소리치는 행위, 이것이 괴물의 운명이라고 보았다. 8-9세기 당나라 때의 상황에서 한유는 이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여겼다. 문벌 귀족과는 다른 사유와 다른 글쓰기와 다른 존재로서 세상과 소통하는 것, 이것이 한유의 길이었다. 한유는 그래서 외칠 수밖에 없었다. 알아달라고 소리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재하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외침이야말로 삶을 위한 투쟁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어쩔 수 없어서 한다! 오직 이것 뿐!


은나라의 주왕 시대, 왕의 폭정과 사치로 백성들은 제대로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주왕의 폭정에 대처하기 위해 각기 다르게 행동했다. 무왕은 주왕을 정벌했고, 주왕의 삼촌 비간은 간언하다 죽임을 당했다. 미자는 은나라의 종묘사직을 지키기 위해 제기를 짊어지고 도망갔다. 기자는 거짓 미친 척하다가 주나라에 잡혀서 종이 되었다. 태공망은 주왕을 정벌하여 은나라 백성을 구제하고 주나라를 세웠다. 백이는 정복하러 떠나는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전쟁을 반대했고, 자신들의 뜻이 통하지 않자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다 굶주려 죽었다. 


과연 누가 옳았던 것일까? 이들 중 진정한 인자는 누구인가? 우리네 생각으로는 은나라 주왕에 대한 정벌을 감행한 무왕과 태공이 인자라면, 정복 전쟁을 말린 백이는 인자가 될 수 없다. 은나라에 대한 정복 전쟁을 막았던 백이가 인자라면, 주왕을 처벌한 무왕과 태공은 인자가 될 수 없다. 주왕에게 간언하다 기꺼이 죽은 비간이 인자라면, 주왕에게서 도망을 친 미자나 미친 척했던 기자는 인자가 될 수 없다. 은나라의 사직을 지키기 위해 도망간 미자나 미친 척했던 기자가 인자라면,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한 미자는 인자가 될 수 없다. 


그런데 18세기 연암 박지원은 「백이론」에서 우리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논지를 펼친다. 놀랍게도 연암은 은나라 주왕 때에 활약했던, 무왕도, 비간도, 미자도, 기자도, 태공망도, 백이도 모두 인자라고 말한다.


"저 다섯 사람의 인자들은 소행은 각자 달랐지만, 모두 절실하고 간곡한 뜻을 지니고 있었다."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하러 갈 때 백이는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전쟁을 만류했다. 그런데도 무왕은 백이를 물리치고 천하를 얻으러 떠났다. 현자를 죽이고 천하를 얻었으니 무왕은 난폭하고 거리낌이 없었던 것일까? 무왕이 기자(箕子)를 감옥에서 풀어 주고, 비간(比干)의 무덤에 봉분을 해 주고, 상용(商容)의 마을을 지나갈 때 수레에서 경의를 표했으면서, 유독 백이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 이는 무슨 까닭인가? 백이가 인자라면 무왕은 무도한 사람이 아닐까?


연암은 이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백이와 무왕은 똑같은 생각이었다고. 그들은 천하와 후세를 위해 염려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백이는 주왕을 비난하기 위해서 말고삐를 잡은 게 아니고, 자신의 뜻을 천하에 밝히고자 말고삐를 잡은 것이다. 무왕은 후세 사람들이 자신을 구실로 삼을까 걱정해서 백이를 기리지 않은 것이다. 은나라를 정복한 무왕이 백이를 기리면, 백이의 뜻은 퇴색한다. 그래서 무왕은 일부러 백이만은 기리지 않았던 것이다.


연암은 비간과 미자와 기자와 태공망과 백이에 대해서도 똑같은 생각이었다고 말한다.


저 다섯 사람의 인자들은 소행은 각자 달랐지만, 모두 절실하고 간곡한 뜻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서로 기다려야만 인이 되고, 서로 기다리지 않을 경우 불인이 되는 처지였다.

미자는 속으로 ‘은나라가 결국 망하고 말 터이니, 내가 충고할 수도 없는데 충고하려고 애쓰느니 은나라의 종사를 보존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고서 마침내 나라를 떠났으니, 이는 미자가 비간에게 왕에 대해 충고해 줄 것을 기다린 것이다.

비간은 속으로 ‘은나라가 결국 망하고 말 터이니, 내가 충고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해서 충고하지 않느니 차라리 낱낱이 충고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고서 마침내 충고하고 죽었으니, 이는 비간이 기자에게 도를 전해 줄 것을 기다린 것이다.

기자는 속으로 ‘은나라가 결국 망하고 말 터이니, 내가 도를 전하지 않으면 누가 도를 전하랴’라고 생각하고서 마침내 거짓으로 미친 척하다가 잡혀서 종이 되었으니, 기자에게는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비록 그러하나 인자의 마음은 하루라도 천하를 잊지 못하는 법이니, 이는 기자가 태공에게 백성들을 구제해 줄 것을 기다린 것이다.

태공은 속으로 자신을 은나라의 유민으로 생각하면서, ‘은나라가 결국 망하고 말 터인데, 미자는 떠났고, 비간은 죽었고, 기자는 구금되었으니, 내가 은나라의 백성을 구제하지 않는다면 장차 천하는 어떻게 될 것인가’하고서 마침내 주를 쳤으니, 태공 역시 서로 기다릴 사람이 없는 듯하다. 비록 그러하나 인자의 마음은 하루라도 후세를 잊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태공이 백이에게 의리를 밝혀 줄 것을 기다린 것이다.

백이는 속으로 자신을 은나라의 유민으로 생각하면서, ‘은나라가 결국 망하고 말 터인데, 미자는 떠났고, 비간은 죽었고, 기자는 구금되었으니, 내가 그 의리를 밝혀 놓지 않는다면 장차 후세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서 마침내 주나라를 받들지 않았다. 무릇 이 다섯 분의 군자가 어찌 좋아서 그렇게 했겠는가. 모두 어쩔 수 없어서[마지못해서] 한 일이었다.

-「백이론」하, 『연암집』


연암은 비간도 미자도 기자도 태공망도 백이도 어쩔 수 없어서 한 것이지 인자가 되기 위해 꼭 그렇게 행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비간은 미자가 있었기 때문에 죽을 수 있었고, 미자는 기자가 있었기 때문에 도망갔던 것이다. 기자는 태공망이 있었기 때문에 거짓 미친 척하고 종이 되었던 것이다. 태공망은 백이가 있었기 때문에 은나라 백성을 구제했던 것이다. 연암은 이들 중 누구 하나라도 없었다면 어느 누구도 인자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서로가 서로를 인자로 만들었다니 이 무슨 뜻인가? 연암은 이에 대해 다시 말한다.


비간이 없었다면 미자는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미자가 없었다면 비간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떠날 필요가 없었는데도 떠났다면, 미자는 인자가 되기에 부족했을 것이다. 미자가 떠나지 않았는데도 비간이 홀로 죽었다면, 비간은 인자가 되기에 부족했을 것이다. 비간이 이미 죽고, 미자가 이미 떠났는데도 기자가 거짓으로 미친 척하지 않았다면, 기자는 인자가 되기에 부족했을 것이다. 태공이 천하 백성을 생각하지 않고 백이가 후세 사람을 염려하지 않았다면, 백이와 태공은 인자가 되기에 부족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자가 주 나라로 달아난 것도 마지못해 한 것이요, 비간이 충고하다가 죽은 것도 마지못해 한 것이요, 기자가 도를 전한 것도 마지못해 한 것이요, 태공이 주를 친 것도 마지못해 한 것이요, 백이가 주나라를 받들지 않은 것도 마지못해 한 것이다.

-「백이론」하, 『연암집』


비간과 미자와 기자와 태공과 백이는 각각 그 때, 그 상황에 맞추어 어쩔 수 없는 행위를 한 것이다. 그 일밖에 할 수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다. 만약 비간과 미자와 기자와 태공의 행위가 없었다면 백이는 가장 먼저 비간의 행위를 했을지 모른다. 시기와 상황에 따라 그렇게 밖에 달리 어떤 행위를 할 수 없는, 그 부득이(不得已)함을 알았기에 이들은 모두 그와 같은 행위를 한 것이다. 이들 다섯 명은 행위는 달랐지만 마음은 똑같았기 때문에 모두가 인자이다. 이들 중 누구 하나라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모두가 인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연암은 그렇게 해석했다. 이들의 행위는 모순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연기법(緣起法)’으로 얽혀있다. 어떤 행위가 있어 그 다음 행위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때 그 상황에서는 딱 그렇게만 해야 하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고 나아가는 행위. 그 결과가 죽음이든, 굶주림이든 생각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 이밖에 다른 게 없다. 이들은 현실을 직시했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통찰했다. 다른 사람들의 행위 다음에 가야 할 길을 피하지 않고 걸어갔다. 그뿐이었다. 
 




18세기 지식인들의 어쩔 수 없는 외침!


한유의 시대로부터 가히 놀랄 만한 시간이 지나, 18세기의 노론 지식인들과 남인 지식인들의 삶이 펼쳐졌다. 이들은 한유하고는 사뭇 다른 상황 앞에 놓였다. 관직에 나아가는 것이 진정 선비로서 해야 할 일인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관직에 나아가지 않는 것에 존재를 걸었다. 한유의 경우는 관직에 나아가는 것이 세상에 대한 저항이자 도전이었다면, 18세기 지식인들의 경우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가난한 백수로 사는 것이 세상에 대한 도전이었다. 18세기 수동적인 관리만을 양산하는 시대에 관직에 나아가는 것은 오히려 생기를 고갈시키는 일이자, 비루하고 구차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들은 알아달라고 외치는 대신 백수로서 주체적으로 살겠다고 외쳤다. 이들은 오히려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줌으로써 세상과 대결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감으로 해서 선비의 존재 방식을 바꾸는 것. 이들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들은 최선을 다해 선비의 삶을 새롭게 구성했다. 농암 김창협과 혜환 이용휴는 문장을 통해 새로운 선비의 삶을 창안했고, 성호 이익과 담헌 홍대용은 현실을 개혁하고 사유를 혁신하는 방법을 연구함으로써 선비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었다. 이 중 어떤 것이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렵고, 어떤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들이 할 바를 수행했던 것이다. 누군가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세상의 상식과 싸우며 세상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들이 듣고,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말하고, 자신들의 진짜 하고자 하는 대로 살았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흉내 내지도 않았고 억지로 따르지도 않았다. 자신들의 현실에서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래서 이들의 삶과 글은 저마다 충만하다.


한유가 당나라 때 고문으로 세상에 나아가기를 외쳤기 때문에 농암과 성호와 혜환과 담헌은 18세기 새로운 문장과 방법을 통해 존재를 증명할 뿐 세상에 나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아니 이들은 이렇게 하는 것 밖에 달리 길이 없었다. 18세기 현실에서 농암, 성호, 혜환, 담헌은 각자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연암이 말한 바처럼, 농암이 하지 않은 일을 성호가 했고, 성호가 하지 않은 일을 혜환이 했고, 혜환이 하지 않은 일을 담헌이 했기에 서로의 삶과 글이 완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1세기 우리들도 지금 여기의 생태학에 맞추어 18세기 지식인들처럼 그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길을 찾아야 하리라.  



_길진숙(남산강학원)



한유문집 1 - 10점
한유 지음, 이주해 옮김/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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