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장마의 시기, 하늘에는 물병자리가 뜬다! 여자의 별 - 여수(女宿)

여수(女宿)의 추억


물병자와 홍수신화


장마가 한창이다. 꿉꿉한 이부자리, 밀린 빨래가 주는 압박이 우리를 힘겹게 하는 때, 바야흐로 습(濕)의 전성시대다. 남산 자락에 깊숙이 감싸인 이곳 연구실은 가히 습(濕)의 향연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연구실이 세 들어 사는 깨봉빌딩은 하필 복개천 바로 옆에 자리 잡은 터라, 이즈음이 되면 ‘습지’를 방불케 할 눅눅함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강의실 바닥엔 달팽이가 기어 다니고, 눅눅해진 종이는 연신 복사기 안으로 말려 들어가며, 바닥 타일의 우아한 꽃무늬를 따라서는 까만 곰팡이가 피어오른다. 이 장마의 퀴퀴함과 싸우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뻔질나게 걸레질, 솔질을 해야 했던가! 


장마..... 토토로는 어디로 가고 습기만 ㅠ.ㅠ


깨봉시대 2년차를 목전에 두고서, 문득 하나의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각 잡고 반듯하게 살길 바라지만, 대자연의 힘은 끊임없이 인간이 잡아 놓은 각을 허물려 든다는 것을. 구획과 분별을 끊임없이 흐리려드는 ‘어머니 자연’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게 결국 우리 삶의 양상을 결정할 거라는. 누가 들으면 귀농이라도 한 줄 알겠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별을 봐야 원고에 뭐라도 좀 쓸 텐데 장마통에 한동안 별 구경이라곤 해 본 적이 없어, 심히 걱정스러웠던 게 이번 원고다. 서두에 미리 밝혀두건대, 이번 별자리 연재분은 필자도 아직 미처 보지 못한 별들에 대해, 이러저러한 책들에서 읽은 바를 ‘유추’ ‘종합’하여 끄적인 것임을 고백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오늘부터 연재할 별자리들은 장마철의 이 꿉꿉한 날씨와 묘한 매치를 이루는 별자리다. 물병자리라고 들어들 보셨으리라.(동양의 별자리로는 북방 현무의 여수(女宿), 허수(虛宿), 위수(危宿)가 이와 겹친다.) 하늘의 물병이 뒤집히기라도 한 듯, 쉼 없이 장마비가 내리는 요즘, 저 하늘에 물병자리가 떠 있다니 뭔가 기묘한 관련이 있는 것도 같다. 먼저 물병자리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자.


도대체 어디를 봐서 물병을 든 소년이란 말인가!

물병자리는 물병을 들고 선 소년의 형상이다. 별자리의 모습을 보자. 대체 어디가 소년이고, 어디가 물병이냐고? 실제로 이 물병자리는 구분하기 몹시 어려운 별자리에 속한다. 특출나게 밝은 별도 그닥 없는데다, 넓은 영역에 광범하게 산개해 있기 때문이다. 웬만한 상상력이 아니고선 별자리를 이렇게 그려내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 별자리를 만든 건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이다. 별 특징도 없는 별들을 길게 연결해서 물병을 든 소년이라고 우겼던 이유, 그건 그들에게 이 별이 황량한 겨울이 가고 생명의 단비가 내리는 계절이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기 때문이다.(우리의 각수(角宿)처럼 말이다.) 물병자리는 얼어붙은 세상을 깨워주는 단비와 같았다. 이 별이 뜰 즈음에 세상에 촉촉한 봄비가 내렸고,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은 생기를 머금고 넘실거렸다. 


하지만 물병자리가 뜨는 계절이 오면 잠시도 경계를 게을리 해선 안 되었다. 적당히 오면 문전옥답의 단비겠지만 조금이라도 넘쳐나면 홍수를 불러들이는 재앙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었다. 카렌암스트롱의 설명에 따르면, 메소포타미아인들에게 강의 범람은 곧 치명적인 재앙으로 여겨졌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의 범람은 불규칙적이었고 종종 파괴적이었다. 메소포타미아의 강에는 자연적인 장애물이 없기 때문에 물길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곤 한다. 따라서 강은 자주 범람했고, 재난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강의 범람은 이집트에서와는 달리 축복이란 의미가 아니라 정치사회적 분열을 빗대는 말로 쓰였다.


─ 카렌 암스트롱, 『신화의 역사』, 문학동네, 71쪽


이러한 두려움은 메소포타미아인들의 홍수신화에 특히 잘 나타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성서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라든지,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우트나피슈팀의 홍수이야기가 그것. 등장인물의 이름이야 어찌되었건, 이들 신화는 결국 홍수와 해일로 세상이 파멸에 처하고, 한 무리의 인간만이 파국 속에서 극적으로 살아남는다는 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강의 범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감을 이야기에 담았고, 이 이야기를 전해 받은 그리스인들은 천성적인 이야기꾼 기질을 발휘하여, 흥미진진한 물병자리 신화로 승화시켰다. 다음 이야기가 바로 물병자리에 얽힌 신화다.


제우스는 오만해진 인류를 홍수로 멸망시키려 했다. 그러자 프로메테우스의 아들 ‘데우칼리온’은 그의 부인 ‘피라’와 함께 방주를 건조하여 재난을 피했다. 이 최후의 생존자 한 쌍은 하늘의 제우스에게 간청한다. 다시금 인류에게 번성의 기회를 달라고. 그러자 제우스는 그들에게 어머니의 뼈를 등 뒤로 버리라는 전언을 내렸고, 데우칼리온과 그의 아내는 등 뒤로 돌을 던졌다. 그러자 이들 부부가 던진 돌에서 남자와 여자 한 쌍이 태어나 새로운 인류의 시조가 되었단다.(뼈가 아니라 돌을 집어든 실수로,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이 모양 이 꼴을 하고 산다.)


저 하늘의 물병자리는 인류를 종말의 나락에서 구원한 데우칼리온을 기리는 별자리다. 별자리의 모습을 보자. 뒤집힌 물병에서 물이 쏟아져 나와 재앙의 홍수를 일으키지만, 그는 등 뒤로 힘껏 팔을 뻗어 인류의 갱생을 위한 돌을 던지고 있다. 장마철이라 별은 안 보이지만 지금 밤하늘 동쪽 어딘가에는 저 물병자리가 빛나고 있으리라. 그 별은 수 천 년 전의 메소포타미아인들이 공포와 외경으로 바라보았던, 신성의 빛이다. 저 빛이 우리에게 풍요와 번성을 가져다 줄 것인지, 아니면 재앙과 파멸을 선사할 것인지, 사람들은 하늘의 미세한 조짐들에 이목을 집중했다.


돌 말고 뼈를 던지란 말이다. 뼈를!!!!



아낙네들의 별 여수


동양의 별자리로 앵글을 돌려보자. 물병자리와 함께 펼쳐지는 장대한 서사는, 공교롭게도 동양의 하늘에 없다. 끊임없이 신과 가까워지려는 인간의 오만과 이에 처벌을 내리는 신들, 또한 신의 처벌에 대항하며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영웅들... 안타깝게도 동양의 상상력엔 이런 류의 혹~하는 이야기가 없다. 똑같이 자연의 리듬을 말하고 생멸의 순환법칙을 얘기하면서도 동양인들은 서양인들이 꼭 한 번씩들 즈려밟고 가는, 처벌-파국-초극의 서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음과 양은 부단히 교대되는 양상일 뿐이다. 양이 극에 이르면 음으로 전환되고, 음은 다시금 양으로 전환된다. 이 순환의 고리에 신의 의지나 죄의식 따위는 개입하지 않는다. 


물병자리에 면한 별들은 동양에서도 확실히 어떤 전환의 계기가 된다. 하지(夏至)가 지나면서 치성하게 자라나던 양기(陽氣)가 한 풀 꺾이고, 음기(陰氣)가 자라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양인들은 이 전환점을 여여(如如)한 자연의 마디로 바라보았다. 유별난 모험과 투쟁하는 영웅 따윈 여기 없다. 동양인들은 처벌과 구원의 서사 없이 자연의 운행을 받아들였다. 물병자리의 데우칼리온이 미래의 인류를 위해 돌덩이를 던지는 그 자리에, 동양의 여수(女宿)가 있다. 왜 여수인가? 단순하다. 하지가 지나 음기가 자라는 시기이기 때문에, 음을 주관하는 여자의 별이 뜬다고 본 것이다. 이 심연 없음! 옛 동양인들은 소멸이니 파국이니 하는 근원적 공포감에 휘둘리지 않고, 천지자연의 호흡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했다. 


조선판 시월드 : 어머니 베짜는데 뚫어지게 보시면 부담스러와요.


여수는 물병자리의 3등성 별 ‘알바리(albari)'를 포함한 사다리꼴 모양의 별자리다. 이순지의 『천문류초』에서는 이 별을 길쌈하는 여자를 뜻하는 수녀(須女)에 빗대고 있다. 이 별이 뜰 무렵부터 부녀자들의 길쌈하는 시기가 도래하기 때문이었다. 하지가 지나고 음이 자라나는 시기, 이 때가 되면 닥쳐올 겨울에 대비해 겨울 옷감의 길쌈에 돌입했다. 곧 하늘의 여수는 길쌈하는 때를 알려주는 신호탄과 같았다.  점성학의 해석도 뭐 크게 다를 건 없다. 여수가 밝으면 길쌈이 잘 되어 그 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징조였다. 조금 확대해서 해석도 가능하다. 여인네의 일 전반을 범치는 표지로도 읽을 수 있었다. 별이 밝으면 풍년이 들어 먹고 살기 좋아지고, 별이 흐리거나 이동하면 부녀자가 재앙을 입게 되어 아이를 낳다가 죽는 일이 많아진다.


여수를 가운데 놓고, 일월오성이 어떻게 지나드는지를 보고, 조금 복잡한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여수는 해와 달이 드나드는 길목이다. 하지만 해와 달이 정상적으로 지나다니지 않고 여기서 일식 혹은 월식이 일어난다면, 이는 나라에 우환이 생길 징조로 본다. 목성은 왕을 상징한다. 따라서 목성이 여수를 지난다면 황후, 즉 여자 대통령이 나올 징조다.(그렇다면 우리나라도?!) 화성과 금성은 전쟁과 군대의 상이니, 이들이 여수를 범하면 병란이 일어나거나 여자들이 많이 죽게 된다고 한다. 또한 상벌의 상징인 수성이 머무르면 자라나는 음기를 벌하는 형국이므로 만물이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되고, 제후와 임금의 상인 토성이 머무르면 여자들이 죽는 일이 벌어진다.


고롬.... 삶을 자고로 물 흐르듯이 살아야지....


여수는 여자의 별이다. 단순하고 당연한 얘기지만, 여기 동양적 사유의 본질이 있다. 있는 그대로 여여하게. 동양인들은 자신에게 닥쳐온 시절을 투쟁하고 초극하려들지 않고, 녹아들고 살아내려 했다. 물이 형세에 부합하며 흐르듯, 자연의 그러한 바를 거스르지 않으며 살아가려 했다. 나의 일상을 돌아보자. 있는 그대로 여여하게!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달군(남산강학원)




설정

트랙백

댓글

  • 봄봄 2013.07.11 12:15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저 죄송하지만 여여(如如)가 아니라 여여(與與)인듯 합니다.

    • 지나가는1인 2013.07.11 13:51 신고 수정/삭제

      如如 산스크리트어 tathatā
      ① 분별이 끊어져 마음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 분별이 끊어져, 있는 그대로 대상이 파악되는 마음 상태.
      ② 그렇게 있음. 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모습.
      ③ 모든 현상의 본성.

      ②, ③번 모두 통할 것 같네요.

    • 북드라망 2013.07.12 14:11 신고 수정/삭제

      댓글 감사합니다. ^^

  • 봄봄 2013.07.12 12:14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그랬군요. 그런 '여여하다'가 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또 하나 배우네요.^^

    • 북드라망 2013.07.12 14:13 신고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봄봄님.
      한자의 세계는 (잘 모르지만) 깊고 멋진 것 같습니다. 하하;;
      요즘에는 단어 하나도 허투루 쓰면 안 되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더라구요. 말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