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응답하라, 디 아더스!ㅡ우주의 경이로움에 대하여

안녕, 디 아더스the others

 

신근영(남산강학원Q&?)

 

디 아더스 the others

 

「디 아더스」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 진짜 무섭다. (@_@) 그러나 이 영화의 무서움은 다른 공포영화들과는 다르다. 살인마들이 내리치는 도끼나 칼에 피가 낭자하지도 않고, 머리를 풀어 헤친 귀신이 깜짝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묘한 섬뜩함과 놀라움이 「디 아더스」에는 있다.

 


영화의 배경은 2차 세계 대전이 막 끝난 영국의 외딴 저택이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주인공 그레이스에게는 두 아이가 있다. 이 아이들은 빛을 쬐면 안 되는 희귀병에 걸려있어서, 이들의 집에는 항상 두꺼운 커튼이 내리쳐져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인들이 모두 사라지고, 예전에 이 집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세 명의 하인들이 나타난다. 이 때부터 그레이스의 집에는 기괴한 일들이 벌어진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발자국 소리나 피아노 소리가 나기도 하고, 그레이스의 어린 딸은 집에 이상한 남자 아이와 할머니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그레이스는 그런 괴상한 이야기를 믿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서서히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여간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엄청난 반전과 함께 그 두려움의 정체가 밝혀진다. 그레이스가 살던 집은 차원이 다른 두 존재가 함께 사는 곳이었다. 죽은 자들의 차원과 산 자들의 차원이 공존하던 곳이 바로 그 집이었다. 그렇다면 그레이스와 그 아이들은? 짐작하셨겠지만, 죽은 자들이다. 그레이스는 그 집에서 아이들과 죽음을 맞이했는데, 그녀는 그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집에 계속 머물렀다.

 

그레이스가 자신의 집에서 기괴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느꼈다면, 이와 꼭 같게 현재의 집 주인들 역시 그 집에 무언가 낯선 존재들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들은 퇴마사같은 사람을 부르고, 이 퇴마사가 죽은 자들의 차원에 접속하게 된다. 그레이스 가족이 겪었던 기괴한 현상들은, 이 퇴마사가 그들의 차원에 접속하면서 생긴 일들이었다.

 

죽은 자의 시공간과 산 자의 시공간이 겹쳐진 집. 그곳에서 두 시공간의 존재들은 나름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서로를 낯선 존재로 여기면서(이것이 이 영화의 제목 ‘디 아더스’의 의미다), 서로가 서로를 기괴하다 느끼면서. 「디 아더스」의 섬뜩함은 여기에 있다. 우리가 평상시에 아무 문제없이 살고 있는 이 시공간에 또 다른 존재들이 겹쳐서 일상을 살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무섭지 아니하신지. (^^;;)

 

가운데 어렴풋이 보이는 사람 셋. 이들이 현재의 집 주인과 퇴마사다. 그레이스의 눈에는 이들이 유령으로 보인다.

 

물질은 우주의 세입자

 

아, 「디 아더스」의 시공간을 상상할 때,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었는데 깜빡했다. ‘현재 집 주인’과 ‘그레이스’ 중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하셨는지? 그러니까, 현재 집 주인과 그레이스의 시공간 중 어디를 자신이 사는 차원이라고 생각하셨는지? 혹 현재 집 주인의 차원이 우리 세계라고 생각하셨는지? 그렇다면, 잘못 짚으신 거다.

 

우리는 이 우주의 그레이스적 존재들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모두 죽었고, 유령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레이스가 현재의 집 주인에 얹혀산다는 점에서, 우리가 사는 시공간은 그레이스 쪽에 훨씬 가깝다. 요컨대, 우리는 이 우주의 세입자다.

 

이 이야기를 물리학적으로 접근해 보자. 우리에게 세상이 ‘물질’로 이루어졌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하게 들린다. 하지만 정확 히 말해서 이 말을 틀렸다. 우주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물질이란, 인간이 직접 보고 직접 만질 수 있는 것을 가리킬 뿐이다. 이 물질이 우주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작아도 너~~무~~ 작다.

 

엄청난 배율을 가진 현미경, 망원경 또는 온갖 적외선, 자외선 카메라를 다 동원해서 인간이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싸그리 긁어모아도, 우주의 4%정도다. 그나마도 그 중 3.6%는 우주의 미세 먼지들인 성간물질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자연이라 부르는 것들, 일테면 지구나 태양 같은 별과 은하들, 그리고 생명들이 우주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0.4%에 해당된다.

 

 

나머지 96%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히 ‘물질이 아닌 것들’이다. 이것들을 암흑 에너지, 암흑 물질이라 부른다. 이 에너지와 물질에 ‘암흑’이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우리가 죽었다 깨어나도 그것들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그 존재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그 존재들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과 같은 물질류가 살아가는 시공간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암흑 에너지와 암흑 물질 96%를 ‘나머지’라고 부르는 것은 뭔가 이상한 표현이다.  96대 4의 비율이라면, 당연히 96이 중심이고 4가 거기에 꼽사리 껴서 살아간다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이 우주의 중심적 존재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그레이스가 자신이 집 주인이라고 착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중성미자, 유령의 출몰

 

우주에는 정말로 신기한 애들이 너무 많다. 그 중, 암흑 에너지나 암흑 물질만큼 이상야릇한 놈으로 ‘중성미자’가 있다. 중성미자는 한 원자가 다른 원자로 바뀔 때, 튀어나오는 입자다. 예를 들어 태양에서는 계속해서 수소가 헬륨으로 바뀌고 있다. 이 때 중성미자가 나온다. 그리고 이런 원자의 변신에는 엄청난 에너지 방출이 일어나는데, 태양이 뜨거운 이유는 이 때문이다. 방사성 물질을 이용한 원자력 발전이나 핵무기 모두 이런 원자의 변신과정을 이용한 기술들이다.

 

중성미자는 여러 모로 희한 놈이다. 우선 중성미자를 발견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자. 중성미자는 1930년 물리학자 파울리가 ‘제안’한 입자로, 1950년 중반이 돼서야 비로소 그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파울리가 중성미자를 ‘제안’한 이유는, 물리학의 최고 법칙이라 할 수 있는 에너지 보존 법칙 때문이었다.

 

원자의 변신과정에서, 변신 전과 변신 후의 에너지를 계산하면 비는 부분이 있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아니 에너지 보존 법칙을 만족시키기 위해, 파울리는 ‘필사의 선택’을 하게 된다. 그는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어떤 물질이 있어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물리학계 역시 파울리의 의견에 동의했다. 물리학자들은 정말 열심히, 정말 부지런히 이 물질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20여년의 시간이 흐르고, 결국 그 놈을 찾아낸다. 이 놈이 중성미자다.


중성미자 검출기다. 여기에 모이는 동그란 애들이 중성미자를 발견하기 위한 일종의 눈들이다. 중성미자는 우리와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기에, 이런 수많은 눈들이 필요하다.

 

이 놈들을 찾아내는 데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 이유는, 중성미자 우리와 거의 상호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우주에 중성미자가 적다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 태양의 핵반응은 1초에 400조 개 이상의 중성미자를 우주에 쏟아 내고 있다. 지구에서의 자연 방사능은 1초에 500억 개 가량을, 지구 전역의 원자력 발전소는 100억에서 1000억개 가량의 중성미자를 우리에게 쏟아 붓고 있다. 하지만 중성미자는 우리와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 놈들을 만나는 일은 하늘에 별따는 일보다 힘들다.

 

우리가 어떤 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것과 상호작용한다는 소리다. 만약 그런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그 놈들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다. 앞에서 말한 암흑 물질, 암흑 에너지처럼 말이다. 중성미자는 그런 암흑 물질이나 에너지는 아니지만, 우리와 매우 약하게 상호작용한다. 요컨대, 중성미자는 거의 물질이 아니무니다~.(^^)

 

중성미자가 우리와 상호작용할 확률은 1032분의 1이다. 다시 말해, 중성미자 1032개 중 1개만이 우리와 상호작용한다. (참고로 지구 인구가 약 70억명, 그러니까 넉 잡아도 1010 정도다.) 간단히 말해서 수천, 수억, 수조개의 중성미자가 매일 우리를 슈~~우~~욱 통과하고 있다.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그렇게 통과한다. 아니, 중성미자 입장에서는 우리란 존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중성미자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러다 우연히 농도가 진한 중성미자의 움직임을 경험하게 된다면, 뭐라고 말하게 될까. 그게 혹 우리가 유령이라 부르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바로 그 때 중성미자들 역시 우리를 유령이라 여기고 깜짝 놀랄 거라는 점을 잊지 마시길.

 

커플 뒤로 보이는 검은 형상. 영국에서 찍혔다는 유령 사진이다. 어쩌면 저 검은 물체는 우리와 중첩되어 살고 있는 중성미자의 세계일지도.

  

 

안녕, 디 아더스~

 

중성미자는 우리에게, 우리는 중성미자에게 서로가 ‘디 아더스’다.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 역시 우리와 ‘디 아더스’다. 이런 물리학계의 낯선 차원들은, 우리에게 우주에 대해 새롭게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우주는 다양한 차원들이 중첩되어 살아가고 있는 시공간이다. 이 시공간은 결코 순수하지 않은, 온갖 시공간이 겹쳐진 잡종이다. 

 

그 동안 이 ‘디 아더스’의 우주를 그려보려 노력했다. 이 우주의 중첩된 다양한 차원을, 잡종으로서의 생명을 말이다. 그러나 《생명과 과학》의 연재를 마치는 오늘까지, 우리는 그 세계들 중 극히 일부분만을, 우주에서 물질이 차지한 만큼이나 작은 부분만을 여행하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약간의 변명을 해보자면, 현대 우주론에서는 우주가 10500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죽을 때까지 이 글을 연재한다고 해도, 그 우주들도 다 소개할 수 없을거다.^^;;)

 

현대 우주론에서는 현재 우주가 10의 500승 개의 여러 우주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그림을 제시한다.

 

그래도 요 20회의 작은 여행이 이 세계에 대한 경의로움과 아름다움을 선물했기를 기대하면서, 첫 연재에서 소개한 굴드의 말로 마무리 할까 한다.

 

생물의 문제에 대해 결정적이며 보편적인 해답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연이 아닌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 사실 나는, 정직한 연구라면 어느 곳에서나 그러한 해답을 찾아낼 것이라는 말이 오히려 더 의심스럽다. 우리는 작은 문제에 한해서라면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있다. 우리는 중간 정도의 문제라면 웬만큼은 다룰 수 있다. 그러나 참으로 큰 문제들은 풍요로운 자연 앞에 무릎을 꿇는다. 변화는 일방향적이거나 무방향적이며 점진적인가 하면 돌발적이고 선택적인가 하면 중립적이다. 나는 앞으로도 자연의 다양성을 만끽할 것이지만, 확실성이라는 갈피를 잡기 어려운 괴물은 정치가와 목사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반인 반수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그리스의 신 판Pan이다. 고통을 뜻하는 panic이라는 말은, 이 신의 기괴한 모습을 보고 놀란데서 유래한다. 그러나 판은 다산의 신으로, 영어로 ‘Pan’은 모든 것을 뜻한다. 이 판이라는 신은 우주의 모든 것이 잡종임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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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dd 2012.11.14 08:32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글 넘 잘 읽었습니다.
    근영샘의 안내로 본 우주란 제대로알기 어렵지만 멋진곳인듯 합니다.
    재미나고 다르지만 새롭게 생각해 보게 하는 시선들을 따라 온 여행 참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르게라도 샘글 또 뵐수 있음 좋겠습니다.

    • 북드라망 2012.11.14 10:19 신고 수정/삭제

      그동안 <생명과 과학> 코너를 이끌어오신 근영샘과 애독자님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디 아더스」는 저도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여태 못 봤네요. 흑;
      조만간 꼭 봐야겠습니다. 하하하;;

      근영샘의 글을 또 만날 수 있도록~~ 기대해주세요! ^^

  • 이웃한의사 2012.11.14 09:35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우주라는 곳에서 물질이 차지하는 비율이 4%라니. 정말 경외감이 느껴집니다.
    이런 작은 물질계에서 아둥바둥 살고있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은 웃음이 나기도 하구요.ㅎㅎ
    오늘도 잘 보고갑니다.^^

    • 북드라망 2012.11.14 10:20 신고 수정/삭제

      정말 인간이 우주에서는 '디 아더스'인지도 모르겠어요. ^^
      저에게도 새로운 시선이 하나 생긴 것 같은 재미있는 글이었습니다. 홍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