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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쿵푸스, 만나러 갑니다

[호모쿵푸스, 만나러 갑니다] 니체를 만나다: 소개팅 말고 연애!

by 북드라망 2024. 3. 18.


니체를 만나다 : 소개팅 말고 연애!


지난해 청년 북콘서트 이후로 오랜만에 영주 쌤을 만났다. 그때는 그가 쓴 『청년, 천 개의 고원을 만나다』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주역』 공부도 계속하고 있고, 니체 전집 읽기 세미나도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 직장인으로서 그냥 세미나를 하기에도 쉽지 않을 텐데, 한가지 공부를 오랫동안 뭉근하게 해내며 반장과 튜터까지 맡고 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자기가 이 길로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이야기를 했다. 글을 쓰고 강의를 하게 될 줄 몰랐다는 말이다. 북콘서트 경험이 그에게 ‘작가’ 혹은 ‘학자’의 정체성을 일깨워 준 모양이었다. ‘술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하는 애’라는 이미지 때문에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 회사에서 숨어 했다던 그는 이제 대놓고 데스크 위에 책을 올려둔단다.


니체는 쉽게 죽지 않는 학자, 불려 나오고 또 불려 나오는 ‘스테디’ 철학자 중 한 명이다. 인문학 공동체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정규직 청년 영주 쌤은 니체를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

 

 




소개팅 말고 연애!


어쩌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이 길로 오게 된 것 같으세요?
사실은 얼마 안 됐어요. 2012년에 소집 해제가 되고 공부를 시작했거든요. 10년 전이랑 비교하면 지금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신기하죠.


공부랑은 인연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어요. 중고등학생 때는 친구들이랑 노는 게 좋았고, 이곳에 와서도 책 읽고 글 쓰는 게 삶과 직접적으로 만나지는 않았어요. 주제도 질문도 딱히 없었거든요. 정규직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었고, 돈을 일찍 벌고 있었으니까요. 이게[정규직 생활이] 맞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죠.


2018년에 쓴 『청년, 천 개의 고원을 만나다』이 삶의 변곡점이었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술자리나 친구들과 노는 게 공부와 같이 갈 수는 없구나, 깨달았어요. 점점 마음의 끄달림도 사라지고 지금은 친구들이 아예 저를 찾지도 않더라고요. 일상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걸 느껴요.

 


주제나 질문이 없으셨다고는 하지만, 책을 쓰기 전까지 공부하러 6년을 오셨던 거잖아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데요. 어떤 힘이 공부를 계속하게 했을까요?
처음 시작은 가족적인 이유였어요. 고미숙 쌤과 혈연관계가 있어서 여기 옴으로써 가족 사이에서 소통자 역할을 할 수 있었죠. 수유너머 시절의 알바비와 감이당에서의 공부 지원금도 쏠쏠했고요. 그런데 공부가 누적되면서 사회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힘이 여기에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령 사주명리도 배우면서는 나를 이루고 있는 가치관 같은 걸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화두가 없어서 수동적으로 공부했지만, 그래도 성실하게 했죠. 쓰라면 쓰고 암송하라면 암송하면서 성취감을 느꼈어요.

명리 공부를 하며 어떤 걸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공부를 관성(官星)으로 했더라고요. 여기서 공부하는 것과 회사에서 일하는 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외부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 거죠. 제가 무인성 사주거든요. 인성(印星)으로 공부해야겠더라고요. 인성은 나를 생해주는 기운이잖아요. 나를 살려주게끔 공부해야겠다 싶었어요.

니체 세미나는 어떻게 하게 되신 거예요?
2021년에 '글공방 나루'에 접속해서 한 해를 『주역』 공부로 보냈어요. ‘글공방 나루’의 근영 쌤이 2022년 공부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전부터 니체 공부를 꼭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들이 혼자서는 안 된다, 3명 정도로 시작하는 게 좋다고 하셨어요. 고미숙 쌤도 처음에 그렇게 시작하셨더라고요. 혼자서는 공부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다행히 같이하고 싶다는 친구들이 생겨서 시작하게 됐죠. 내가 어떤 공부를 꼭 해야지,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텍스트와 시절 인연이 맞아야 되더라고요. 신기하죠?

왜 니체가 읽고 싶으셨나요?
이런 거에 휘둘리면 안 되는데 (웃음) 니체 강의를 듣고 나면 뭔가 팍팍 꽂히는 게 있었어요. 근데 그 뒤로 어느 철학자를 만나도 니체가 나오는 거예요. 도대체 이 사람이 가진 힘이 뭘까, 라는 막연한 질문이 있었죠. 이 사람을 넘어야 다른 사람을 만나도 공감대가 생기겠구나 싶었어요.


그래도 니체를 틈틈이 만나왔더라고요. 니체 세미나를 열 때 책을 사려고 보니까 이미 책장에 다 있었어요. 근데 그때까진 소개팅으로 만났던 것 같아요. 니체 전작 읽기 세미나를 하면서는 연애를 해서 애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전집의 거의 끝까지 다 왔는데요. 예전이었으면 ‘세미나가 끝나는구나!’ 했을 텐데 이제는 ‘그 사람의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구나!’ 싶어요.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한 철학자의 전집을 읽는 건 어떤 경험인가요?
다른 전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니체 책들은 되게 파편적이거든요. 일관된 글쓰기가 아니라 조각조각 있는 거예요. 니체는 아포리즘이라고 하는데 이걸 다 이해하려고 하면 니체를 읽을 수 없거든요. 나의 질문과 주제로 조각을 꿰어가는 작업이 필요해요. 이해를 못 한 부분도 많은데, 그래도 이 사람과 괜찮은 티키타카를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청년기를 지나 중년기로 가고 있는데, 그사이에 전제가 깨지거나 뭔가가 새롭게 확장되는 것들이 있어요. 지난 북토크처럼요. 니체에게도 그런 변곡점들이 있는 거예요. 전집을 읽으면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청년기의 니체, 중년기의 니체가 정말 다르더라고요. 완전히 다른 시공간에서 사람을 볼 수 있어서 굉장히 재밌어요.


한 사람을 알아가더라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닐까, 이런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관계에서 마음을 내서 뭔가를 주고받는 게 어렵잖아요. 전집을 읽으면 그런 마음을 낼 수 있게 해줘요.

니체가 타임슬립을 해서 지금 이 시공간을 만난다면 뭐라고 할까요?
『주역』을 읽으면서 근영 쌤이랑 문 쌤이 해주신 말인데요, 저희를 보고 있으면 늙은 여우 같대요. 이 표현이 너무 리얼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니체도 그런 말을 할 것 같아요. 청년인데 너무 빨리 늙어버린 거예요.


니체는 ‘너 자신이 되어라’고 이야기해요.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 거죠. 그래서 너 자신을 아는 데 생명을 쏟아야 되는 거예요. 아파트나 돈에 쏟는 게 아니라, 온전히 자기한테 집중하는 거죠.


누군가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영끌로 5억 대출을 받았지만, 투자로 산 게 아니라고, 그 집에서 주거할 거고요. 전 절대 아니라고 봐요. 집을 집이라고 봤다면 절대 영끌을 해서 사지 않았을 거예요.

 


너 자신이 돼라는 논조가 자기계발서에서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는데요.
실제로 니체가 많이 인용될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어딘가에 휩쓸려 가면 그게 나를 충만하게 해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저는 회사 생활을 오래 한 것처럼 선생님들에게도 너무 사무적으로 대했어요. 일 처리는 잘하지만 배우는 자세가 작동하지 않는 거죠. 아무리 선생님들이 저한테 뭐라고 해도 내가 내 주인이 되지 않으면 직장 상사 대하듯 선생님들을 대하지 않을까요?


자기계발서와 니체의 차이점은 나를 바꿀 수 있느냐는 거예요.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계속 훈련해야 하는 거죠.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성공을 위한 루틴이나 방법 그 너머에 뭔가 다른 게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오히려 내가 왜 이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지 욕망을 탐구해 본다든지, 스무 살에 왜 자립해야 될까 고민해 봐야 하는 거죠. 맞다 틀리다를 떠나서, 누구의 시선에 끄달리지 않고 스스로 결정을 해보는 거예요. 

지지난 시즌에서 니체가 철학적인 의사 되기를 한다고, 그걸 알아보자고 쓰셨더라고요. 지금 해주신 말과 비슷한 맥락일까요?
제가 아프면 의사가 저를 치료해 주잖아요. 그런데 의사가 주는 약이 뭔지 아세요? 저는 모르겠어요. 약봉지에 약 이름이 있지만, 그걸 제가 결정할 수는 없잖아요. 주도권이 완전히 의사에게 있는 거예요.


내가 의사가 되려면 적어도 내가 왜 아픈지, 어떻게 삶을 바꿀 것인지 질문을 하는 게 시작이잖아요. 그런데 공부한다고 다 고쳐지는 것도 아니에요. 저는 식욕 때문에 아팠을 때가 많았거든요. 내가 왜 그렇게 먹고 아픈지 계속 의식하고 질문하는 거죠.


스승과 훈련


누가 특히 니체를 읽으면 좋을까요?
청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사람이 1844년생인데요. 20대에 교수 생활을 하면서부터 그가 바라보는 세계가 독특하다는 게 드러나요.


그때가 19세기라서 근대가 시작하던 시기였거든요. 니체는 세상을 이렇게 봐요. 생명이라는 게 노동을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닌데, 사람들은 왜 노동을 하면서 살아있다고 느끼는 거지? 돈-자본이 어떻게 저렇게 증식하고 뻗어나가는 거지? 거기에 어떻게 나의 생명력을 온전히 바칠 수 있을까?


저는 이게 너무 놀라운 거예요. 저도 빚을 내서 집을 사려고 했어요. 심지어 왜 집을 사야 되는지에 대한 글을 써서 고미숙 쌤한테 보여드리기도 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데, 거기에 끌려가고 있는 거예요. [돈-자본에 끌려가는] 주체가 청년이니까 청년들에게 니체가 좋은 스승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니체가 선생님에게 좋은 스승이 되어주셨군요.
생명이라는 건 뭘까? 지금 여기서 살아간다는 건 뭐지? 이런 질문을 줄 수 있는 스승이 니체인 것 같아요. 자기 자신한테 집중할 수 있는 정신적인 거처가 좀 필요하지 않나, 그래야 생명 활동이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요즘에 책을 많이들 안 읽는대요. 며칠 전에 아내랑 어느 백화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요. 예전에 데이트할 때는 거기에 아주 큰 서점이 있었어요. 미리 가서 기다리면서 책을 읽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가봤더니 다 옷 가게가 된 거예요.


공부를 하고 훈련을 받아야 내가 깨부술 힘도 생기겠죠. 니체는 사후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 이루고 난 다음에 해야 된다고도 하지 않고요.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스승을 만나야 되는 거죠. 멘토에서 끝나는 게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승과 멘토는 어떻게 다른가요?
사회에 이미 멘토들이 많잖아요. 여러 결의 사람들이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멘토는 자본의 목표를 제시해 주는 거예요. 주식 어디에 투자해라, 뭘 사면 좋다. 저희 회사에도 그런 멘토들이 있어요. 자기가 아는 누가 있는데 여기가 좋다더라. 성공 철학 같은 멘토들도 있고요.


그걸로는 훈련되지 않죠. 반드시 지금 실천하게 할 수 있는 스승이 필요한 거예요. 이 사람이 나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지, 머물러 있는 나를 떠나게 할 수 있는지 질문을 꼭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게 지금 하는 걸 그만두고 다른 걸 해라, 이런 건 아니고요. 내 자리에서 다른 걸 할 수 있는, 다른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물리적으로 떠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도 뭘 할 수 있는 힘을 만들도록 해주는 게 스승이죠. 그런 존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저의 화두이기도 하고요.

영주 선생님은 어떤 머무름에서 떠나게 되셨어요?
예전에는 가방 메고 와서 수업 듣고, 학기 말이 되면 낭송하고 에세이 쓰고, 다 끝나면 내년에 [선생님들이] 뭐 또 하시겠지, 그랬어요. 이곳의 살림이 전혀 궁금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좋은 스승과 도반을 만나면서 이 공간에 마음을 쓰고 싶어졌어요.


이곳에 제가 2012년도에 왔지만, 모집 글은 작년에 처음 써봤거든요. [이제야] 어떻게 공동체가 운영되고 누가 살림 멤버고, 이런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그런 것도 마음이 바뀌어야 보이는 것 같아요.


되게 복 받은 거죠. 그런 훈련을 할 수 있는 거 자체가 감사해요. 훈련할 수 있는 곳이 요즘에는 잘 없잖아요. 그런데 훈련하지 않으면 끄달리고 중독되어 버리거든요.



그의 관심사는 꽤나 명확하다. 돈(자본)과 청년. 『청년, 천 개의 고원을 만나다』에서 들뢰즈와 가타리의 입을 빌려 청년이 돈(자본)을 만나는 방식을 이야기했다면, 니체를 통해서는 어떻게 그 굴레를 뚫고 나갈 수 있을지 생각한다. 그가 니체를 불러내서 찾아낸 해답 역시 명쾌하다. 스승을 만나 훈련해야 한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욕망을 부수고, 그 시공간을 거슬러 올라 새로운 가치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 한다.


인터뷰하며 그가 이 말들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일이 실은 꽤나 소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점심시간 혹은 퇴근하고 나서 모여서 서로의 에너지를 나누고 싶다, 아파트, 땅, 차, 가정, 그런 이야기 말고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그가 당면한 과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도 이러한 장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영주 쌤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인터뷰_김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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